지세경 持世經 제1권
〓 12인연에 대하여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가란타죽원(伽蘭陀竹園)에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약간의 백천만(百千萬)의 무리에게 공경을 받으며 둘러싸여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셨다.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園,與大比丘僧俱。爾時,世尊與若干百千萬衆,恭敬圍繞而爲說法。
모임 가운데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지세(持世)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보살마하살의 무량한 공덕 장엄의 발심(發心)을 위하여 일체 법의 피안(彼岸)을 잘 알고자 하였고, 무량한 원을 발하여 무량한 장엄을 구족하는 것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무량한 모든 법의 결정된 상(相)에 통달하고자 하였으며, 무량한 장엄의 원을 발하여 깊은 마음의 소행이 청정하고자 하였으며, 청정하고 구족한 보시를 잘 알고자 하였으며, 필경엔 청정한 지계(持戒)를 잘 알고자 하였으며, 구족한 인욕과 부드러운 마음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청정한 정진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청정한 선정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반야바라밀의 피안에 통달하는 일을 잘 알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매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會中有菩薩摩訶薩名曰持世,爲諸菩薩摩訶薩無量功德莊嚴發心,欲善知一切法彼岸,欲善知發無量願具足無量莊嚴,欲通達無量諸法決定相,欲發無量莊嚴願深心所行淸淨,欲善知淸淨具足布,施欲善知畢定淸淨持戒,欲善知具足忍辱柔軟之心,欲善知淸淨精進,欲善知淸淨禪定,欲善知通達般若波羅蜜彼岸;以如是等無量功德故,從坐而起偏袒右肩,合掌向佛,白佛言(1권)
...중략...
| (自解)세존께서는 5온/의식의 윤회를 5온과 12처 12인연 집착에 있음을 설하셨다. 불자들에게 12인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12인연을 지세경에서 살피기 이전에 세친존자가 지은 《아비달마구사론》 9권에 제시된 12인연을 먼저 살피고 나서 지세경의 12인연을 살피고자 한다. |
아비달마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 제9권(전 30권)
존자 세친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3. 분별세품 ② 分別世品第三之二
● 생명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대하여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아(我)가 부정되지 않는 것인가?
오로지 제온(諸蘊)만이 존재할 뿐이니, 이를테면 온에 대해 일시 ‘아’라는 명칭을 설정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若爾,何等我非所遮?唯有諸薀,謂唯於薀假立我名,非所遮遣。
만약 그렇다면 제온(5온;색수상행식)이 능히 이 세간(현세)으로부터 다른 세간(후세)으로 전지(轉至)하는 것은 인정하는가? 若爾,應許諸薀卽能從此世閒轉至餘世?
온은 찰나에 소멸하여 [다른 세간으로] 전지하는 공능이 없을지라도(즉 제온은 찰나에 소멸하기 때문에 후세에 이를 수 없고, 찰나찰나에 각각의 제온이 상속하여 전지(轉至)한다.)
자주 익힌 번뇌와 업으로 말미암아 중유(中有)의 온(5온)이 상속하고 태에 들어가게 되는(입태) 것이다. 薀剎那滅,於輪轉無能,數習煩惱業所爲故,令中有薀相續入胎。
비유하자면 등불의 불꽃은 비록 찰나에 소멸할지라도 [다른 불꽃이] 능히 상속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제온도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전지한다’고 말해도 여기에는 어떠한 허물도 없다. 따라서 비록 자아가 없다고 할지라도 번뇌[惑]와 업(신구의 3업에 의해 제온(5온)은 상속하고 입태한다는 뜻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譬如燈焰雖剎那滅,而能相續轉至餘方。諸薀亦然,名轉無失,故雖無我而由惑業諸薀相續入胎義成。
‘제온은 업이 일어난(引起)한 순서대로 더욱 증장(增長)하여 상속하며, 다시 번뇌와 업의 힘에 의해 다른 세간으로 나아가게 된다. 如業所引次第轉增諸薀相續,復由煩惱業力所爲轉趣餘世,
이를테면 일어난 일체 제온의 증장과 상속에 길고 짧음[修促]이 있어, 그 양이 같지 않은 것은 목숨[壽]을 인기하는 업인(業因)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謂非一切所引諸薀增長相續脩促量齊,引壽業因有差別故。
즉 능히 인기하는 업의 세력이 증장하거나 미약해짐에 따라 [인기된 수명이나 신근 등은] 다 같이 그러한 때에 순서대로 증장하게 되는 것이다.隨能引業勢力增徵,齊爾所時次第增長。
순서가 어떠한가?
성교(聖敎)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즉 云何次第?如聖說言:
최초에는 갈라람(羯邏藍)이고, 다음은 알부담(頞部曇)이며, 이로부터 폐시(閉尸)가 생겨나고, 폐시에서 건남(鍵南)이 생겨난다. 最初羯剌藍,次生頞部曇,從此生閉尸,閉尸生鍵南。
다음이 발라사가(鉢羅奢佉)이며, 그 후 머리카락과 터럭과 손톱 등과
아울러 색의 근(根)과 형상이, 점차로 더욱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次鉢羅奢佉,後髮毛爪等,及色根形相,漸次而轉增。
태내(胎內) 5위
| 가라라 | (迦邏邏, Kalala / 응 : 凝)시기: 잉태 직후의 첫 7일상태: 어머니의 피와 아버지의 정액이 결합한 상태로, 마치 맑은 물방울이나 엉긴 젖과 같이 매우 미세한 형태 |
| 알부다 | (頞部曇, Abbuda / 포 : 疱)시기: 두 번째 7일 (8일~14일)상태: '물집'이라는 뜻으로, 가라라 단계에서 조금 더 부풀어 올라 얇은 피부에 싸인 물집이나 거품 같은 형태 |
| 폐시 | (閉尸, Pesi / 굴 : 軟肉)시기: 세 번째 7일 (15일~21일)상태: '살덩어리'라는 뜻으로, 물집 형태가 응고되어 굳어지며 만지면 부드러운 살덩어리 형태 |
| 건타 | (鍵南, Ghana / 견 : 堅肉)시기: 네 번째 7일 (22일~28일)상태: '단단한 덩어리'라는 뜻으로, 굳어진 살덩어리가 더욱 단단해져서 형태 |
| 바라사하 | (鉢羅奢羅, Pasakha / 지체 : 肢節)시기: 다섯 번째 7일 이후 (29일~출생)상태: '팔다리'라는 뜻으로, 이 단계에서 팔, 다리, 머리 등 인체의 완전한 지체(머리카락, 손발톱 등 포함)가 비로소 뚜렷하게 자라나며 태아의 형태 |
즉 모태 중에서 다섯 상태(태내 5위)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니,
첫 번째는 갈라람의 상태이며,
두 번째는 알부담의 상태이며,
세 번째는 폐시의 상태이며,
네 번째는 건남의 상태이며,
다섯 번째는 발라사거의 상태이다. 謂母腹中分位有五:一羯剌藍位、二頞部曇位、三閉尸位、四鍵南位、五鉢羅奢佉位。
그리고 이러한 모태 중의 화살[箭, 아이를 말함]은 점차로 증장하여 이윽고 유색(有色)의 근과 형상이 원만하게 된 상태에서 업에 의해 일어난 이숙의 풍력(風力)으로 말미암아 모태 중의 화살은 산문(産門)으로 나아가게 된다. 此胎中箭漸次轉增,乃至色根形相滿位,由業所起異熟風力轉胎中箭令趣產門。
그리고 마치 딱딱하게 굳어진 변을 양에 넘치게 볼 때처럼 속이 답답하고도 껄끄럽게[悶澁] 산문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니, 그 때의 극심한 고통은 참기가 어렵다.如强糞團過量閟澀,從此轉墮劇苦難任。
그런데 그 산모가 혹 어느 때 몸가짐[威儀]과 음식을 분수에 넘치게 취하거나, 혹은 그 아이가 지은 숙세의 죄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내에서 죽기도 한다. 其母或時威儀飮食執作過分,或由其子宿罪業力死於胎內。
그 때 해산의 법도[産法]에 대해 매우 능통하고 애기를 잘 받을 줄 아는 여인이나 혹은 의사가 있으면 따뜻하게 소유(酥油)나 섬말리(睒末梨)나무의 즙을 손에 바르고 작고 예리한 칼을 잡고 [탯집의 아이를 끄집어내게 된다.]時有女人或諸醫者,妙通產法善養嬰兒,溫以酥油睒末梨汁用塗其手執小利刀。
그러나 그 속은 항문[糞坑] 속처럼 악취가 지독하고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으며, 어두컴컴한 곳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천의 벌레들이 우글거린다. 또한 항상 나쁜 액체가 흘러나와 반드시 잘 대처해야 한다. 즉 정혈과 기름 때로 썩어 문드러져 부정(不淨)이 흘러 넘치며 비루하고 더러워 차마 보기 어려운데, 구멍이 뚫려 누설되는 얇은 거죽[皮]이 그 위를 덮고 있다. 內如糞坑最極猥賤雜穢充塞,黑闇所居無量千虫之所依止,常流惡汁恒須對治,精血垢膩潰爛臭滑,不淨流溢鄙穢叵觀,穿漏薄皮以覆其上。
즉 숙업에 의해 인기된 [이와 같은] 몸(어머니의 몸)의 창공(瘡孔,産門 즉 자궁을 말함) 속으로 [손을 넣어 태아의] 지절(支節)을 분해하여 밖으로 끄집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태아는 숙세에 지은 순후수업(順後受業)을 받게 되는데, 그가 나아가는 취(趣)에 대해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다.宿業所引,身瘡孔中分解支節牽出於外。然此胎子乘宿所爲,順後受業所趣難了。
혹은 또한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생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몸은 마치 부스럼이 막 돋아난 것과 같으며 가늘고 연약하여 다루기 어려운데, 어떨 때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혹 어떨 때는 다른 여인(유모)이 칼과 같고 재와 같은 거칠고 투박한 두 손으로 아이를 잡고서는 씻기고 닦아 그를 편안한 곳에 눕힌다. 或復無難安隱得生,體如新瘡細軟難觸。或母愛子或餘女人,以如刀灰麤澀兩手,執取洗拭而安處之。
그런 다음 맑은 소유(酥油)를 먹이고 모유를 먹이며, 점차 부드러운 음식과 거친 음식을 섭취시켜 익숙하게 한다. 그리하여 점차 순서대로 증장하여 근(根, 여근ㆍ남근)이 성숙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다시 번뇌를 일으켜 온갖 업을 쌓으며, 나아가 이 같은 [현세의] 몸이 괴멸하고서 다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중유가 상속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세간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次含淸酥飮以母乳,漸令習受細麤飮食,次第轉增至根熟位,復起煩惱積集諸業。由此身壞,復有如前中有相續更趣餘世。
이와 같이 혹(惑, 즉 번뇌)과 업을 원인으로 삼아 생(生)이 있는 것이며, 생이 다시 원인이 되어 혹과 업을 일으키며, 이러한 혹과 업으로부터 다시 생이 있게 된다. 如是惑業爲因故生,生復爲因起於惑業,從此惑業更復有生,
따라서 존재의 수레바퀴[有輪:즉 생사를 윤회하는 4有(生有, 本有, 死有, 中有)의 轉生]는 돌고 도는 것으로 시작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시작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시작에는 마땅히 그 원인이 없어야 할 것이며, 시작에 이미 원인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 밖의 다른 것도 [원인이 없이] 마땅히 스스로 생겨나야 한다.故知有輪旋環無始。若執有始,始應無因;始旣無因,餘應自起。
그러나 지금 싹 등을 보건대 그것은 씨앗 등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났으니, 생겨나는 장소와 시간이 모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 등에 의해 숙변(熟變) 등이 생겨나니,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원인 없이 일어나는 법은 결정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상주(常主)하는 원인을 설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앞(본론 권제7)에서 이미 비판한 바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생사에는 결정코 시초가 없는 것이다. 現見芽等因種等生,由處及時俱決定故。又由火等熟變等生,由此定無無因起法。說常因論,如前已遣。是故生死決定無初。
그러나 생사의 끝[後邊]은 있으니, 그 원인이 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생은 원인(즉 惑과 業)에 의지하기 때문에 원인이 멸하여 허물어질 때 생이라는 결과도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然有後邊由因盡故。生依因故,因滅壞時生果必亡,
이는 마치 종자가 멸하여 허물어질 때 싹은 필시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치상 결정코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理定應爾。 如種滅壞芽必不生。
이상에서와 같은 온(蘊)의 상속은 세 가지 생(과거, 미래, 현재)을 분위(分位,단계)로 한다고 설하니, 게송으로 말하겠다. 如是薀相續,說三生爲位。頌曰:
이와 같은 온갖의 연기는 12지(支)로서, 3제(際)이니
전제와 후제는 각기 두 가지이며, 중제는 원만한 자에 따를 경우 여덟 가지이다. 如是諸緣起,十二支三際,前後際各二,中八據圓滿。
논하여 말하겠다. 12지(支/인연)란
첫 번째는 무명(無明)이며,
두 번째는 행(行)이며,
세 번째는 식(識)이며,
네 번째는 명색(名色)이며,
다섯 번째는 6처(處)이며,
여섯 번째는 촉(觸)이며,
일곱 번째는 수(受)이며,
여덟 번째는 애(愛)이며,
아홉 번째는 취(取)이며,
열 번째는 유(有)이며,
열한 번째는 생(生)이며,
열두 번째는 노사(老死)이다. 論曰:十二支者,一、無明;二、行;三、識;四、名色;五、六處;六、觸;七、受;八、愛;九、取;十、有;十一、生;十二、老死。
그리고 3제(際)라고 하는 말은
첫 번째는 전제(前際/전생)이며,
두 번째는 후제(後際/내생)이며,
세 번째는 중제(中際/금생)이니,
바로 과거ㆍ미래와 아울러 현재의 세 가지 생을 말한다.言三際者,一前際、二後際、三中際,卽是過未及現三生。
12지를 3제에 건립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전제와 후제에 각기 두 가지 지(인연)를 설정하고, 중제에 여덟 지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12지가 되는 것이다. 云何十二支於三際建立?謂前後際各立二支,中際八支,故成十二。
즉 무명과 행은 전제에 있으며,
생과 노사는 후제에 있으며,
그 밖의 나머지 여덟 가지 지는 중제에 있다.無明行在前際,生老死在後際,所餘八在中際。
이러한 중제의 여덟 지는 일체의 유정의 일생 중에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此中際八,一切有情此一生中皆具有不?非皆具有。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여덟 지가 있다고 설한 것인가?
원만한 자에 근거하여 설하였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말하려는 뜻은, 보특가라〔Pudgala. 윤회의 주체/ 중생〕로서 모든 단계[位]를 거친 이를 ‘원만한 자’라고 일컬은 것으로, 중간에 요절한 이[中夭]나 색계ㆍ무색계의 온갖 보특가라는 ‘원만한 자’가 아니다. 若爾,何故說有八支?據圓滿者。此中意說,補特伽羅歷一切位名圓滿者,非諸中夭及色無色,
다만 욕계의 보특가라에 근거하여 [여덟 지가 있다고 설한 것으로], 『대연기경(大緣起經; 『중아함경』 권제24 『대인경(大因經)』에서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 경에서는 이같이 설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아난타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식(識)이 만약 입태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증성 광대해 질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증성 광대해질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但據欲界補特伽羅。『大緣起經』說具有故。彼說:“佛告阿難陁言:‘識若不入胎,得增廣大不?不也。世尊!乃至廣說。’”
그러나 어떤 때에는 다만 전제에 포섭되거나 후제에 포섭된다고 하는 두 단계의 연기를 설한 경우도 있다. 즉 앞의 일곱 지는 전제에 포섭되니, 이를테면 무명 내지 수(受)가 그것이며, 뒤의 다섯 지는 후제에 포섭되니, 有時但說二分緣起,一前際攝、二後際攝。前七支前際攝,謂無明乃至受;後五支後際攝,
이를테면 애(愛)로부터 노사까지가 그것이다. [이는 바로 12지를] 전제와 후제, 원인과 결과의 두 단계로 나누어 포섭하였기 때문이다. 謂從愛至老死,前後因果二分攝故。
무명 등의 12지(支/12 인연)는 어떠한 법을 본질로 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無明等支何法爲體?頌曰:
① 숙생에서의 번뇌의 상태[惑位]가 ‘무명’이며
② 숙세의 온갖 업을 ‘행’이라 이름한다.
③ ‘식’은 바로 결생(結生)의 온이며
④ 6처가 생겨나기 이전이 ‘명색’이다. 宿惑位無明,宿諸業名行,識正結生薀,六處前名色。
⑤ 안(眼) 등의 근이 생겨나면서부터, 세 가지의 화합 이전이 ‘6처’이며,
⑥ 3수(受; 괴로움, 즐거움, 不苦不樂)의 원인이 다름에 대해, 아직 요지(了知)하지 못한 것을 ‘촉’이라 이름한다. 從生眼等根,三和前六處,於三受因異,未了知名觸。
⑦ 음애(婬愛)가 생겨나기 이전이 ‘수’이며
⑧ 물건[資具]이나 음욕을 탐하는 것이 ‘애’이며
⑨ 온갖 경계를 획득하기 위하여, 두루 추구하는 것을 ‘취’라고 이름한다. 在婬愛前受,貪資具婬愛,爲得諸境界,遍馳求名取。
⑩ ‘유(有)’란 말하자면 바로 당유(當有)의 과를, 능히 견인하는 업을 짓는 것이고,
⑪ 당유를 맺는 것을 ‘생’이라 이름하며
⑫ 당래 수(受)에 이르기까지가 ‘노사’이다. 有謂正能造,牽當有果業,結當有名生,至當受老死。
논하여 말하겠다.
① 숙생(宿生/전생) 중의 온갖 번뇌의 상태로부터 지금 그 결과가 익을 때까지의 상태[의 오온]을 총칭하여 ‘무명(無明, avidy)’이라고 하니, 論曰:於宿生中諸煩惱位,至今果熟,摠謂無明,
그것(오온)은 무명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며, 무명의 힘에 의해 그것이 현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왕이 행차한다’고 할 때, 그를 선도하고 뒤따르는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왕이 뛰어나기 때문에 총칭하여 ‘왕이 행차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彼與無明俱時行故。由無明力,彼現行故。如說王行,非無導從,王俱勝故摠謂王行。
② 숙생(宿生) 중의 복(福) 등의 업의 상태로부터 지금 그 결과가 익을 때까지의 상태[의 오온]을 총칭하여 ‘행(行, saṃskāra)’이라고 하는데, 게송 첫 구에서의 ‘상태’라고 하는 말은 노사에 이르기까지를 말한 것이다.於宿生中福等業位,至今果熟,摠得行名。初句位言流至老死。
③ 모태 등에서 바로 결생(結生)하는 순간의 일찰나 상태의 오온을 ‘식(識, vijñāna)’이라고 이름한다. 於母胎等正結生時,一剎那位,五薀名識。
④ 결생의 식 이후와 6처가 생겨나기 이전의 중간의 온갖 상태[의 오온]을 총칭하여 ‘명색(名色, nāma rūpa)’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송 중에서 마땅히 ‘4처가 생겨나기 이전’이라고 설해야 함에도 6처라고 말한 것은 원만함에 근거하여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結生識後、六處生前,中閒諸位摠稱名色。此中應說四處生前,而言六者,據滿立故。
⑤ 안(眼) 등의 근이 이미 생겨나서 근(根)ㆍ경(境)ㆍ식(識)이 아직 화합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오온]을 ‘6처(處, ṣad-āyatana)’라고 이름한다.眼等已生,至根境識未和合位,得六處名。
⑥ [근ㆍ경ㆍ식] 세 가지가 이미 화합하였을지라도 아직 3수(苦受ㆍ樂受ㆍ捨受)의 원인의 차별을 능히 요별할 수 없는 상태[의 오온]을 모두 일컬어 ‘촉(觸, sparśa)’이라고 한다.已至三和,未了三受因差別位,摠名爲觸。
⑦ 3수의 원인의 차별상을 이미 요별하였을지라도 아직 음탐(婬貪)을 일으키지 않은 이러한 상태[의 오온]을 ‘수(受, vedanā)’라고 이름한다. 已了三受因差別相,未起婬貪,此位名受。
⑧ 좋은 물건[資具]을 탐하거나 음애가 현행하였을지라도 아직 널리 추구하지 않는 이 같은 상태[의 오온]을 ‘애(愛, tṛṣṇa)’라고 이름한다.貪妙資具婬愛現行,未廣追求,此位名愛。
⑨ 여러 가지 좋은 물건을 획득하기 위해 주변을 마구 치달아 추구하는 이러한 상태[의 오온]을 ‘취(取, upādāna)’라고 이름한다.爲得種種上妙境界,周遍馳求,此位名取。
⑩ [온갖 경계로] 마구 치달아 추구하였기 때문에 미래의 존재 즉 당유(當有)의 과보를 견인할 업을 쌓게 되니, 이러한 상태[의 오온]을 ‘유(有, bhāva)’라고 이름한다. 因馳求故,積集能牽當有果業,此位名有。
⑪ 이러한 업력에 의해 지금 생의 목숨을 버리는 때로부터 바로 당유(當有) 즉 미래 존재를 맺게되는 이러한 상태[의 오온]을 ‘생(生, jāti)’이라고 이름한다. 즉 미래존재로서의 ‘생지(生支)’는 바로 현재생에서의 식지(識支)와도 같다. 由是業力從此捨命,正結當有,此位名生。當有生支,卽如今識。
⑫ [당래]생의 찰나 이후 점차 증장하여 당래 ‘수’의 상태까지[의 오온]을 총칭하여 ‘노사(老死, jarā-maraṇa)’라고 이름한다. 즉 이와 같은 노사는 바로 현재생의 명색과 6처와 촉과 수의 4지와도 같다.生剎那後漸增,乃至當來受位,摠名老死。如是老死,卽如今世名色、六處、觸、受四支。
| 구분 | 전제/전생 | 중제/금생 | 후제/내생 | |||||||||||||||
| 과거2인 | 현재5과 | 현재3인 | 미래2과 | |||||||||||||||
| 無明 | 行 | 識 | 名色 | 六處 | 觸 | 受 | 愛 | 取 | 有 | 生 | 老死 | |||||||
| 無明 | 愛 | 取 | 有 | 生 | 老死 | 無明 | 行 | 識 | 名色 | 六處 | 觸 | 受 | 愛 | 老死 | ||||
| 無始 | 無終 | |||||||||||||||||
12지의 차별을 분별해 보면 이상과 같다.
또한 온갖 연기는 차별되어 네 가지로 설해지는데,
첫 번째는 찰나(刹那) 연기이며,
둘째는 원속(遠續) 연기이며,
셋째는 연박(蓮縛) 연기이며,
넷째는 분위(分位) 연기이다.辯十二支體別如是。又諸緣起差別說四:一者剎那、二者連縛、三者分位、四者遠續。
1) 무엇을 일컬어 찰나연기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탐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행할 때 찰나에 12지(인연)가 모두 갖추져 있는 것을 말하니, [업을 발동시키는] 어리석음[癡]은 ‘무명’이며,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사[思]는 ‘행’이며, 온갖 대상에 대해 요별하는 것을 ‘식’이라 이름하며, 식과 구생하는 세 가지 온을 총칭하여 ‘명색’이라 하며, ) 명색이 머무는 근을 설하여 ‘6처’라 하며, 6처가 그 밖의 다른 것(즉 경ㆍ식)에 대해 화합하는 것을 ‘촉’이라 하며, 云何剎那?謂剎那頃由貪行殺具十二支,癡謂無明,思卽是行,於諸境事了別名識,識俱三薀摠稱名色,住名色根說爲六處,六處對餘和合有觸,
촉을 영납(領納)하는 것을 ‘수’라고 이름하며, [수에 대해] 탐하는 것이 바로 ‘애’이며, 이것과 상응하는 온갖 전(纏)을 ‘취’라고 이름하며, [이것에 의해] 일어난 신ㆍ어의 두 업을 ‘유’라고 이름하며, 이와 같은 제법의 생기를 바로 ‘생’이라 이름하며, 원숙하여 변화하는 것[熟變]을 ‘노’라고 이름하며, 괴멸하는 것은 ‘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領觸名受,貪卽是愛,與此相應諸纏名取,所起身語二業名有,如是諸法起卽名生,熟變名老滅壞名死。
다시 어떤 이는 설하기를, “찰나와 연박은 『품류족론』에서 설하고 있듯이 다 같이 유루에 두루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復有說者,“剎那、連縛如『品類足』,俱遍有爲。”
12지의 상태[位]로 존재하는 오온은 모두 분위(分位) 연기에 포섭되며, 이것(12지)이 멀리 떨어져 상속하는 것으로 시작이 없는 것을 설하여 원속(遠續) 연기라고 한다.十二支位所有五薀皆分位攝。卽此懸遠相續無始說名遠續。
지세경 3권 5. 십이인연품(十二因緣品)
“지세(보살)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12인연을 잘 관찰하고 선택한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12인연을 관찰하고 선택함에, 이른바 있음[有:존재]이 없는 까닭에 설하여, 무명(無明)이라고 이름하며, 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觀擇十二因緣?菩薩摩訶薩觀擇十二因緣,所謂無有故說名無明,
무명 가운데 법이 없는 까닭에 설하여 무명이라고 이름하며, 밝음[明]을 모르는 까닭에 설하여 무명이라고 한다.於無明中無法故說名無明,不知明故說名無明。
무엇이 밝음을 모르는 것인가?
무명은 결정적인 법이 불가득임을 알지 못하는 것, 이를 무명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云何不知明?不知無明決定法不可得,是名無明。何以故?
①무명(無明)의 인연의 모든 행을 설하되, 모든 행은 있는 바가 없음에도 범부가 지음[作]을 일으키는 까닭에 무명의 인연의 모든 행을 설하는 것이다. 說無明因緣諸行,諸行無所有,而凡夫起作故,說無明因緣諸行。
②행(行)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③ 식<識; 이는 과거의 미혹하였던 업(業)에 의하여 생하는 심식(心識)으로서 비로소 모태 등에 탁생(託生)하는 한 찰나의 일>의 생함이 있다. 이 까닭에 모든 행의 인연의 식을 설한다. 從行起故有識生,是故說諸行因緣識。
④식으로부터 명색(名色)의 두 상이 생한다. 이 까닭에 식의 인연의 명색을 설하며, 名色二相,是故說識因緣名色。
⑤명색으로부터 6입(入)을 생한다. 이 까닭에 명색의 인연의 6입을 설하며, 從名色生六入,是故說名色因緣六入。
⑥ 6입으로부터 촉(觸)을 생한다. 이 까닭에 6입의 인연의 촉을 설하며, 촉으로부터 수(受:느낌)를 생한다. 이 까닭에 촉의 인연의
⑦수를 설하며, 수로부터 애(愛)를 생한다. 이 까닭에 수의 인연의 애를 설하며, 從六入生觸,是故說六入因緣觸。從觸生受,是故說觸因緣受。從受生愛,是故說受因緣愛。
⑧애로부터 취(取)를 생한다. 이 까닭에 애의 인연의 취를 설하고,
⑨취로부터 유(有:業)를 생한다. 이 까닭에 취의 인연의 유를 설하고, 從愛生取,是故說愛因緣取。從取生有,是故說取因緣有。
⑩유로부터 생(生)을 생한다. 이 까닭에 유의 인연의 생을 설하고,
⑪생으로부터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老死憂悲苦惱]가 쌓이고 모이게 된다. 이 까닭에 생의 인연의 늙음과從有生生,是故說有因緣生。
⑫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의 쌓이고 모임을 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큰 고뇌의 쌓임인 이 가운데서 무슨 법을 모으겠는가? 從生有老死憂悲苦惱聚集,是故說生因緣老死憂悲苦惱聚集。如是大苦惱聚,於此中爲集何法?
다만 전도(顚倒)와 밝음[明]의 다름을 알고 무명의 쌓임[無明聚]으로 후세에 받을 몸의 애(愛)를 삼는다. 但知顚倒與明相違,無明聚爲後身愛,
기쁘게 물드는 것[染:번뇌]에 의지하여 처처(處處)에 나는 것을 구한다면, 곧 이는 애의 모임[集]인 것이다.依止喜染求處處生,則是愛集。
지세야,
세간은 이와 같이 12인연에 묶여 있으며, 장님은 눈이 없기 때문에 무명의 그물에 들어 어둠속으로 떨어진다. 持世!世閒如是,爲十二因緣所繫縛,盲無眼故,入無明網墮黑闇中。
①무명을 우두머리로 삼는 까닭에 12인연을 구족하게 일으킨다.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이 사유하여 무명의 실상을 관하고, 무명은 공하다고 아는 까닭에 본제(本際:究竟)는 불가득이다. 無明爲首故,具足起十二因緣。諸菩薩如是思惟觀無明實相,知無明空故本際不可得。
무슨 까닭인가? 무명은 무(無)이기 때문에 본제가 무(無)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제(際)가 아닌 것이 곧 본제라고 관한다. 즉 본제를 분별하지 않는다. 何以故?無明無故本際無,智者觀非際是本際,則不分別本際,
생각과 분별을 끊었기 때문에 무명에 탐착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을 알고, 이 법은 그 설하는 바와 같지 않으면서 만약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을 설한다면 곧 이는 무명을 지견(知見; 如實知見)한 것이라고 설한다. 斷憶想分別故。不貪著無明,知一切法無所有,是法不爾如所說。若說一切法無所有,卽是說知見不明,
능히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에 통달하면 이는 곧 밝음[明]을 얻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다시 남은 밝음이 없다. 다만 무명을 지견하여 이를 이름해서 밝음이라 할 뿐이다.能通達一切法無所有,是爲卽得明。於此中更無餘明,但知見無明是名爲明。
무엇을 무명을 지견한다 하는가?
이른바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과 모든 법의 얻는 바 없음과 모든 법의 허망하여 전도됨과 모든 법은 그 설하는 바와 같지 않은 것, 이를 무명을 지견한다고 이름한다. 云何爲知見無明?所謂一切法無所有,一切法無所得,一切法虛妄顚倒,一切法不爾如所說,是名知見無明
무명을 지견하는 것, 이를 곧 밝음이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밝음은 있는 바가 없는 까닭이다.。知見無明卽爲是明。何以故?明無所有故。
무명의 인연의 모든 행이라는 것은 모든 법의 있는 바가 없음이다. 범부는 무명의 어둠 속에 들어 미치고 미혹하여 모든 행업(行業)22)을 짓는다. 無明因緣諸行者,諸法無所有,凡夫入無明闇冥中,狂惑作諸行業,
② 행업(行業)은 형상[形]이 없고, 곳이 없는 것으로서, 무명이 행업을 낳을 수는 없다. 법으로서 일으키고 지을 수 없는 까닭에 무명의 인연의 모든 행업을 설한다. 모든 행업은 쌓고 모으는 일이 없다. 혹은 이곳, 혹은 저곳에서 오는 모든 행업이라 해도 역시 과거가 아니며 또 미래가 아니며 또한 현재가 아니다. 是行業無形無處,是無明不能生行業,無法而起作故,說無明因緣諸行業。諸行業無有聚集,若是處若彼處來諸行業,亦非過去亦非未來亦非現在,
무명은 무명의 성품이 공(空)하고 행업은 행업의 성품이 공하여 모든 행업은 의지하는 곳이 없고, 다만 무명에 의지하여 모든 행업을 일으킬 뿐, 모든 행업은 무명에 의지하지 않고, 무명은 행업에 의지하지 않으며, 무명은 무명을 알지 못하고 행업은 행업을 알지 못한다. 無明無明性空,行業行業性空,諸行業無所依,但依無明起諸行業。諸行業不依無明,無明不依行業,無明不知無明,行業不知行業。
이와 같이 무명과 모든 행업은 전도된 것이기 때문에 무명으로부터 생한다. 이 가운데서 무명을 얻을 수 없고 모든 행업을 얻을 수 없다. 무명의 성품을 얻지 못하고 모든 행업의 성품을 얻지 못한다. 如是無明諸行業,以顚倒故從無明生,此中不得無明,不得諸行業,不得無明性,不得諸行業性,
다만 어둡기 때문에 자주 어둠이라고 이름할 뿐이다. 이 무명은 어둡기 때문에 분별해서 행업을 설함에, 있는 바가 없는 법을 쫓아서 일어나고 짓는 까닭에 무명과 행업은 모두가 있는 바가 없다고 한다.但以闇冥。數名闇冥。以是無明闇冥故,分別說行業從無所有法而起作故,無明行業皆無所有。
행업의 인연의
③식(識)이라는 것은, 식은 행업에 의지하지 않고 또 행업을 떠나지 않고서 식을 내며 행업 또한 식을 내지 않는다. 行業因緣識者,識不依行業,亦不離行業生識,行業亦不生識。
무슨 까닭인가? 행업은 행업을 알지 못하고, 행업 또한 가져오는 자가 없다. 다만 전도된 중생이 행업을 쫓아 식(識)을 낸다. 이 식은 행업의 안에 있지 않고, 행업의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何以故?行業不知行業,行業亦無持來者,但顚倒衆生從行業生識。是識不在行業內,不在行業外,亦不在中閒。
이 식을 내는 자는 없고, 또 낳게 하는 자도 없다. 다만 행업을 반연하여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식이 생한다. 是識無有生者,亦無使生者,但緣行業相續不斷故有識生。
지혜로운 자는 식의 상을 구함에 불가득이며, 또 식의 생을 얻지 않는다. 식은 또 식을 알지 못하고, 식은 또한 식을 보지 않고 식은 식에 의지하지 않는다.智者求識相不可得,亦不得識生,識亦不知識,識亦不見識,識不依識。
식의 인연의
④명색(名色)이라는 것은, 명색은 식에 의지하지 않고 또 식을 떠나지 않고서 명색을 낳는다. 이 명색은 또한 식의 안에서 오지 않고 다만 식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범부는 어둡기 때문에 명색에 탐착하나 식은 또한 명색에 이르지 못한다. 지혜로운 자는 이 가운데서 명색을 구하되 불가득이며 보지 말아야 한다. 識因緣名色者,名色不依識,亦不離識生名色是名色,亦不從識中來,但緣識故。凡夫闇冥貪著名色,識亦不至名色。智者於此求名色,不可得不可見,
이 명색은 형체가 없고 방위가 없으며 생각과 분별을 쫓아 일어난다. 이 명색의 상(相)은 식의 인연 때문에 있으나 식의 성품은 더욱 얻을 수 없다. 하물며 식의 연(緣)을 쫓아 명색을 낳겠느냐. 만약 결정코 이 명색의 성품을 얻는다고 하면 이것은 옳지 않다.是名色無形無方,從憶想分別起,是名色相識因緣故有,識性尚不可得,何況從識緣生名色?若決定得是名色性者,無有是處。
명색의 인연의
⑤ 6입(入)이란 것은, 이 6입은 명색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이름[名]은 몸 가운데 있는 까닭에 들고 나는 숨과 몸을 이롭게 하는 것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법이 있는 것이다. 이 6입은 모두가 거짓된 것으로서 있는 바[所有]가 없으며 분별을 쫓아 일어나고 전도된 작용[用]이 있다. 名色因緣六入者,是六入因名色起,名在身中,故有出入息利益身及心心數法,是六入皆虛誑無所有,從分別起有顚倒用。
6입의 인연의 ⑥촉(觸)이란 것은, 이 촉은 색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다. 촉은 색을 감촉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색은 아는 바가 없고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과 다름이 없다. 다만 6입을 쫓아 일어나기 때문에 분별하여 촉이라고 설한다. 무슨 까닭인가? 6입은 더욱 허망하고 있는 바가 없다. 하물며 6입을 쫓아 촉을 낳겠느냐. 六入因緣觸者,是觸依色而有,觸不觸色。何以故?色無所知,與草木瓦石無異,但從六入起故分別說觸。何以故?六入尚虛妄無所有,何況從六入生觸?
촉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 생각과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난다. 이 촉은 방위[方]가 없고 곳[處:속한 곳]이 없다. 촉은 공하여 촉의 성품이 없는 까닭에 촉은 6입을 알지 못하고 6입도 역시 촉을 알지 못한다.觸空無所有,從憶想顚倒起,是觸無方無處,觸空以無觸性故,觸不知六入,六入亦不知觸。
촉의 인연의
⑦수(受)란 것은, 이 수는 촉의 안에 있지 않고 촉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이 촉도 역시 다른 곳으로부터 수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촉을 쫓아 수를 일으킨다. 이 촉은 더욱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다. 하물며 촉을 쫓아 수를 낳겠느냐. 모든 수에는 하나의 결정적인 상도 없고 모든 수는 다 있는 바가 없으며,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나 전도된 작용이 있을 뿐이다.觸因緣受者,是受不在觸內,不在觸外,不在中閒,是觸亦不餘處持受來。而從觸起受,是觸尚虛妄無所有,何況從觸生受?諸受無一決定相,諸受皆無所有,從顚倒起有顚倒用。
수의 인연의
⑧애(愛)란 것은, 이 수는 다른 곳에서 애를 가져오지 않는다. 수는 또 애와 더불어 합하지 않는다. 수(受)도 역시 애를 알지 못하고 애를 분별하지 않는다. 애도 또한 수를 알지 못하고 수를 분별하지 않는다. 애는 수와 더불어 합하지 않는다. 이 애도 역시 수에 의지하지 않고 또한 수를 떠나지 않고서 애가 있는 것이다. 受因緣愛者,是受不於餘處持愛來,受亦不與愛合,受亦不知愛不分別愛,愛亦不知受不分別受,愛不與受合。是愛亦不依受,亦不離受有愛,
수(受) 중에는 더욱 수의 상은 없다. 하물며 수의 인연으로 애(愛)를 낳겠는가. 애는 수 가운데 있지 않고, 수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애도 역시 애의 안에 있지 않고, 또 애의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애 중에서 애의 상은 불가득이다. 이 애는 다만 허망한 생각을 쫓아 전도되어 상응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애라 한다. 受中尚無受相,何況受因緣生愛?愛不在受內不在受外不在中閒,愛亦不在愛內亦不在愛外亦不在中閒,愛中愛相不可得,是愛但從虛妄憶想顚倒相應故名爲愛,是愛非過去未來現在,是愛非以縛相故起,是愛亦非縛相,
이 애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니다. 이 애는 얽매인 상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이 애는 또 얽매인 상이 아니다.
다만 인연이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까닭에 수의 인연의 애를 설한다. 지혜로운 자는 이 애는 처소가 없고 방위가 없으며, 공하여 견고함이 없으며,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지견(앎)한다.但以因緣相續不斷故,說受因緣愛。智者知見是愛無處旡方,空無牢堅,虛妄無所有。
애의 인연의
⑨취(取)란 것은, 애는 다른 곳에서 취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애는 취와 더불어 합하지 않는다. 애는 또한 취(取)를 낳지 못한다. 애가 있기 때문에 설하여 취라고 이름한다. 愛因緣取者,愛不於餘處持取來,愛不與取合,愛亦不能生取,有愛故說名取,
인연의 화합에 따르는 까닭에 설하는 것이다. 취는 애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애는 취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취는 애의 안에 있지 않고 애의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애는 더욱 있음이 없다. 하물며 애의 인연으로 취를 낳겠는가. 隨因緣和合故說。取不與愛合亦不散,愛不與取合亦不散,取不在愛內不在愛外亦不在中閒,愛尚無有,何況愛因緣生取?
모든 취의 결정적인 상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로운 자는 이 취를, 허망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지견한다. 취 가운데는 취의 상이 없다. 이 취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니다. 취는 취의 안에 있지 않고 취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 이 취는 다만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나고 본래 지은 인연에 의하여 생한다.諸取決定相不可得。智者知見是取虛妄無所有,取中無取相,是取非過去未來現在,取不在取內不在取外不在中閒,是取但從顚倒起,因本緣生,
지금 뭇 연으로 해서 취가 있는 것이다. 법에는 혹은 합하고 혹은 흩어지는 일이 없다. 이 취는 근본이 없으며 하나의 정해진 법도 얻을 수 없다. 범부의 수(受)는 곧 허망한 취(取)인 것이다. 今衆緣故有取。無有法若合若散,是取無有根本,無一定法可得。凡夫受是虛妄取,
이 모든 행은 다 허망하기 때문에 세간은 취에 얽매인다. 지혜로운 자는 이 취는 허망하고 공하여 견고함이 없으며 근본이 없고 하나의 정해진 법도 얻을 수가 없음을 통달한다.是諸行皆虛妄故。世閒爲取所繫縛,智者通達是取虛妄空無牢堅,無有根本,無一定法可得。
취의 인연의
⑩유(有)란 것은, 이 취는 유를 가져오지 않으며, 이 취는 유를 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취의 인연의 유를 설한다. 이 유는 취의 안에 있지 않고 취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 유는 취를 의지하지 않고 취는 유와 더불어 합하지 않으며,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取因緣有者,是取不持有來,是取不能生有,而說取因緣有,是有不在取內不在取外不在中閒。有不依止取,取不與有合亦不散,
다만 모든 연이 화합하므로 해서 취의 인연의 유를 설할 뿐이다. 취는 유를 생하지 못하며, 취는 유를 분별하지 않는다. 취는 더욱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다. 하물며 취의 인연을 좇아 유를 낳겠느냐. 유는 가져오는 자가 없으며, 유 가운데서 유를 얻을 수는 없다. 但以衆緣和合故說取因緣有。取不能生有,取不分別有,取尚虛妄無所有,何況從取因緣生有?有無有持來者,有中有不可得,
유는 안에 있지 않고, 유는 밖에 있지 않으며, 유는 중간에 있지도 않다. 이 유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아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 유는 허망하고 전도되어 상응하며 합함이 없고 흩어짐이 없음을 통달한다. 유는 아는 것이 없으며 분별하는 바가 없다. 이 유는 처소가 없으며 방위가 없다. 有不在內有不在外有不在中閒,是有非過去未來現在。智者通達是有虛妄,顚倒相應無合無散。有無所知無所分別,是有無處無方,
이 유(有)는 앞의 경계[前際]가 없고, 뒤의 경계[後際]가 없으며, 중간의 경계[中際]가 없다. 이 유는 유가 아니기 때문이며, 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12인연에 수순하기 때문에 이 유를 설한다. 지혜로운 자는 유의 상은 공하여 견고함이 없음을 통달한다.是有無前際無後際無中際,是有非有故、非無故,但隨順十二因緣故說是有。智者通達有相空、無牢堅。
유의 인연의
⑪생(生)이란 것은, 이 유는 생을 가져오지 않으며 생도 유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이 생은 유의 안에 있지 않고, 유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유는 생(生)을 생하지 못하며, 또한 유를 떠나지 않고서 생이 있다. 有因緣生者,是有不持生來,生亦不與有合亦不散,是生不在有內不在有外不在中閒。有不能生生,亦不離有有生,
다만 12인연의 상속함을 나타내어 유의 인연의 생을 설한다. 유는 생과 반연하지 않고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유는 더욱 불가득(不可得)이다. 하물며 유를 쫓아 생을 낳겠느냐. 但示十二因緣相續,說有因緣生。有與生非緣非不緣,有尚不可得,何況從有生生?
지혜로운 자는 이 생은 유에게 의지하지 않음을 통달한다. 생 가운데 생의 상은 없으며, 생 가운데 자성(自性)이 없고 생 가운데 근본이 없으며 하나의 정해진 법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로운 자는 이 생은 성품이 없고 있는 바가 없음을 통달한다. 다만 12인연이 화합하고 상속함을 나타낼 뿐이다. 智者通達是生不依於有生,生中無生相,生中無自性,生中無根本,無一定法可得。智者通達是生無性無所有,但示十二因緣和合相續,
그러므로 유의 인연의 생을 설함에 생의 법은 혹은 합하고 혹은 흩어지는 일이 없고, 생은 유의 안에 있지 않으며 유의 밖에 있지 않으며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故說有因緣生。生無有法若合若散,生不在有內不在有外亦不在中閒,
이 생은 과거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며 현재도 아니다. 이 생의 앞의 경계와 뒤의 경계와 중간의 경계가 불가득이다. 이 생은 근본이 불가득이다. 지혜로운 자는 뭇 인연을 좇아 생하는, 전도되어 상응하여 허망하고 있는 바가 없는 것은 허깨비[幻化]와 같은 상임을 통달한다.是生非過去非未來非現在,是生前際後際中際 不可得,是生根本不可得,智者通達從衆因緣生,顚倒相應、虛妄無所有、如幻化相。
생의 인연의
⑫ 늙음[老]과 죽음[死]과 근심[憂]과 슬픔[悲]과 고뇌(苦惱)란 것은, 이 생은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가져오지 않는다. 생은 또한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낳지 못한다.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는 생의 안에 있지 않으며 생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生因緣老死憂悲苦惱者,是生不持老死憂悲苦惱來,生亦不能生老死憂悲苦惱。老死憂悲苦惱,不在生內不在生外不在中閒。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도 생에 의지하지 않는다. 생을 까닭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설한다. 다만 뭇 인연으로 생한 법을 나타내는 까닭에 생은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老死憂悲苦惱,亦不依生,以生故老死憂悲苦惱可說,但示衆因緣生法故。生不與老死憂悲苦惱合亦不散,
생 가운데 생은 더욱 불가득이다. 하물며 생의 인연의 늙음과 죽음과 고뇌이겠느냐. 늙음과 죽음과 고뇌 안에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불가득이다. 生中生尚不可得,何況生因緣老死苦惱老死苦惱?中老死苦惱不可得。
무슨 까닭인가?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늙음과 죽음과 고뇌의 안에 있지 않고 또 밖에도 있지 않고 역시 중간에도 있지 않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과거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며 현재가 아니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늙음과 죽음과 더불어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다. 何以故?老死苦惱不在老死苦惱內,亦不在外亦不在中閒。老死苦惱非過去非未來非現在,老死苦惱不與老死合亦不散,
다만 전도되어 상응하고 뭇 연과 화합하며 12인연을 구족하기 때문에 생의 인연의 늙음과 죽음과 고뇌라고 설한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의지하는 곳이 없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의 결정적인 상은 불가득이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앞의 경계와 뒤의 경계와 중간의 경계가 불가득이다. 但顚倒相應衆緣和合,具足十二因緣,故說生因緣老死苦惱。老死苦惱無所依止,老死苦惱決定相不可得,老死苦惱前際後際中際不可得。
지혜로운 자는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으며 전도되어 상응하여 근본이 없으며 짓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며 나지 않는다고 통달한다.智者通達老死苦惱,虛妄無所有、顚倒相應、無有根本、不作不起不生。
이와 같이 12인연의 법을 관함에 인연의 법은 혹은 과거, 혹은 미래, 혹은 현재를 보지 않는다. 또 인연의 상을 보지 않는다. 다만 인연은 곧 연(緣)이 없고 생이 없고 상이 없고 지음이 없고 일어남이 없고 근본이 없고 본래부터 줄곧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음을 아는 까닭에 이 12인연에 통달한다. 如是觀十二因緣法,不見因緣法,若過去若未來若現在,亦不見因緣相。但知因緣是無緣,無生無相無作無起無根本,從本已來,一切法無所有故。通達是十二因緣,
또 이 12인연은 짓는 자와 받는 자가 없음을 본다. 만약 법이 인(因)을 좇아 생하는 것이라면 이 인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도 역시 없음[無]이다.亦見是十二因緣無有作者受者。若法所從因生,是因無故是法亦無,
보살은 무명의 뜻을 따르는 까닭에 일체의 법이 불가득이라고, 이와 같은 관(觀) 가운데 들면 연이 없음이 곧 12인연이며, 이 가운데 생함이 없는 것이다.菩薩隨無明義故,一切法不可得。入如是觀中,無緣卽是十二因緣,此中無所生。
보살은 12인연을 관함에, 이는 허망한 생이라 하여 무명의 뜻에 수순한다. 12인연에 통달함에, 혹 법이 없으면 이 법도 역시 없고, 이 까닭에 무명의 뜻에 수순하여 12인연에 통달한다고 설한다. 菩薩觀十二因緣是虛妄生,隨順無明義,通達十二因緣。若法無者是法亦無,是故說隨順無明義,通達十二因緣,
무명은 곧 불생(不生)이고 부작(不作)이며 불기(不起)이고 근본이 없고 하나의 정해진 법도 없으며 연이 없고 있는 바가 없다. 보살은 이때 이는 명(明)이고 이는 무명이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無明是不生不作不起、無根本、無一定法、無緣無所有。菩薩爾時不分別是明是無明,
무명의 실상이 곧 명이며, 무명을 인하기 때문에 일체의 법은 있는 바가 없다. 일체의 법은 연이 없으며 생각과 분별이 없다. 이런 까닭에 무명의 뜻에 수순하여 12인연에 통달한다.無明實相卽是明,因無明故一切法無所有,一切法無緣無憶想分別,是故隨順無明義,通達十二因緣。
지세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12인연의 방편 지혜(方便智慧)라고 이름한다. 持世!是名菩薩摩訶薩十二因緣方便智慧。
만약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이 12인연의 합하고 흩어짐에 통달하면, 이것을 보살이 무생(無生)의 지혜를 잘 얻었다고 이른다. 若菩薩能如是通達十二因緣合散,是名菩薩善得無生智慧。
무슨 까닭인가? 생멸(生滅)로서 관하면 곧 12인연을 잘 알지 못한다. 何以故?以生滅觀則不能善知十二因緣,
만약 12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관하면, 이를 무생의 지혜를 얻었다고 이른다. 若觀十二因緣集散,是名得無生智慧。
만약 무생의 지혜를 얻으면 이를 12인연에 통달한다고 이른다.若得無生智慧是名通達十二因緣。
지세야,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통달함에 들고자 하고, 무생의 지혜를 깨닫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12인연의 지혜를 부지런히 행하고 닦아 모아야 한다. 그러면 능히 12인연의 무생의 상을 관하여 깨달을 것이다.持世!是故菩薩摩訶薩欲入通達,欲證無生智慧,應當如是勤行修集是十二因緣智慧,則能觀證十二因緣無生相。
지세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무생이 곧 12인연임을 알면, 곧 능히 이와 같은 12인연의 방편을 얻는다. 持世!若菩薩摩訶薩知無生卽是十二因緣者,卽能得如是十二因緣方便,
이 사람은 무생(無生)의 상(相)으로써, 3계(界)를 지견하고 빨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보살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에게 친근(親近)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는다. 이 보살은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수기를 받고 차례로 수기한다.是人以無生相知見三界,疾得無生法忍。當知是菩薩於諸現在佛得近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是菩薩不久當得受記次第受記。
지세야, 이와 같이 착한 사람은 수기를 받음으로 해서 안온한 마음을 얻고 모든 법의 뜻이 나아가는 방편 중에서 지혜의 광명을 얻는다. 持世!如是善人因與受記得安隱心,於一切法旨趣方便中,得智慧光明,
이 사람은 12인연은 곧 무생임을 통달하고, 이 사람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에게 친근할 수 있게 되며, 이 사람은 모든 악마를 두려워하는 일이 없으며, 이 사람은 생사(生死)의 흐름을 건너 육지에 이를 수 있게 되고, 이 사람은 무명의 진흙땅을 건널 수 있게 되고, 이 사람은 안온한 곳에 이를 수 있게 된다.是人通達十二因緣是無生,是人得近現在諸佛,是人於諸惡魔無所怖畏,是人度生死流得到陸地,是人得度無明淤泥,是人得到安隱之處。
지세야, 만약 지금 혹은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혹은 듣고 혹은 믿고 혹은 독송하고 혹은 이 12인연의 방편을 닦아 익히면, 나는 이 사람에게 수기를 줄 것이며,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무생법인을 얻을 것이다. 나도 이 사람이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현재의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으리라고 예언할 것이다.持世!若我今世若我滅後,若聞若信若讀誦若修習是十二因緣方便者,我與是人授記不久當得無生法忍,我亦記是人不久當於現在諸佛所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