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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연 태내5위 지세경 아비달마구사론 9권

작성자상민 시자|작성시간26.06.09|조회수34 목록 댓글 0

지세경 持世經 1

 

12인연에 대하여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가란타죽원(伽蘭陀竹園)에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약간의 백천만(百千萬)의 무리에게 공경을 받으며 둘러싸여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셨다.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園與大比丘僧俱爾時世尊與若干百千萬衆恭敬圍繞而爲說法

 

모임 가운데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지세(持世)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보살마하살의 무량한 공덕 장엄의 발심(發心)을 위하여 일체 법의 피안(彼岸)을 잘 알고자 하였고, 무량한 원을 발하여 무량한 장엄을 구족하는 것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무량한 모든 법의 결정된 상()에 통달하고자 하였으며, 무량한 장엄의 원을 발하여 깊은 마음의 소행이 청정하고자 하였으며, 청정하고 구족한 보시를 잘 알고자 하였으며, 필경엔 청정한 지계(持戒)를 잘 알고자 하였으며, 구족한 인욕과 부드러운 마음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청정한 정진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청정한 선정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반야바라밀의 피안에 통달하는 일을 잘 알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매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會中有菩薩摩訶薩名曰持世爲諸菩薩摩訶薩無量功德莊嚴發心欲善知一切法彼岸欲善知發無量願具足無量莊嚴欲通達無量諸法決定相欲發無量莊嚴願深心所行淸淨欲善知淸淨具足布施欲善知畢定淸淨持戒欲善知具足忍辱柔軟之心欲善知淸淨精進欲善知淸淨禪定欲善知通達般若波羅蜜彼岸以如是等無量功德故從坐而起偏袒右肩合掌向佛白佛言(1)

...중략...

(自解)세존께서는
5온/의식의 윤회를 5온과 12처 12인연 집착에 있음을 설하셨다.
불자들에게 12인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12인연을 지세경에서 살피기 이전에
세친존자가 지은 《아비달마구사론》 9권에 제시된
12인연을 먼저 살피고 나서
지세경의 12인연을 살피고자 한다.

 

아비달마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 9(30)

존자 세친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3. 분별세품 分別世品第三之二

 

생명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대하여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아()가 부정되지 않는 것인가?

오로지 제온(諸蘊)만이 존재할 뿐이니, 이를테면 온에 대해 일시 라는 명칭을 설정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若爾何等我非所遮唯有諸薀謂唯於薀假立我名非所遮遣

 

만약 그렇다면 제온(5;색수상행식)이 능히 이 세간(현세)으로부터 다른 세간(후세)으로 전지(轉至)하는 것은 인정하는가? 若爾應許諸薀卽能從此世閒轉至餘世

 

온은 찰나에 소멸하여 [다른 세간으로] 전지하는 공능이 없을지라도(즉 제온은 찰나에 소멸하기 때문에 후세에 이를 수 없고, 찰나찰나에 각각의 제온이 상속하여 전지(轉至)한다.)

자주 익힌 번뇌와 업으로 말미암아 중유(中有)의 온(5)이 상속하고 태에 들어가게 되는(입태) 것이다. 薀剎那滅於輪轉無能數習煩惱業所爲故令中有薀相續入胎

 

비유하자면 등불의 불꽃은 비록 찰나에 소멸할지라도 [다른 불꽃이] 능히 상속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제온도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전지한다고 말해도 여기에는 어떠한 허물도 없다. 따라서 비록 자아가 없다고 할지라도 번뇌[]와 업(신구의 3업에 의해 제온(5)은 상속하고 입태한다는 뜻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譬如燈焰雖剎那滅而能相續轉至餘方諸薀亦然名轉無失故雖無我而由惑業諸薀相續入胎義成

 

제온은 업이 일어난(引起)한 순서대로 더욱 증장(增長)하여 상속하며, 다시 번뇌와 업의 힘에 의해 다른 세간으로 나아가게 된다. 如業所引次第轉增諸薀相續復由煩惱業力所爲轉趣餘世

 

이를테면 일어난 일체 제온의 증장과 상속에 길고 짧음[修促]이 있어, 그 양이 같지 않은 것은 목숨[]을 인기하는 업인(業因)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謂非一切所引諸薀增長相續脩促量齊引壽業因有差別故

 

능히 인기하는 업의 세력이 증장하거나 미약해짐에 따라 [인기된 수명이나 신근 등은] 다 같이 그러한 때에 순서대로 증장하게 되는 것이다.隨能引業勢力增徵齊爾所時次第增長

 

순서가 어떠한가?

성교(聖敎)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云何次第如聖說言

 

최초에는 갈라람(羯邏藍)이고, 다음은 알부담(頞部曇)이며, 이로부터 폐시(閉尸)가 생겨나고, 폐시에서 건남(鍵南)이 생겨난다. 最初羯剌藍次生頞部曇從此生閉尸閉尸生鍵南

 

다음이 발라사가(鉢羅奢佉)이며, 그 후 머리카락과 터럭과 손톱 등과

아울러 색의 근()과 형상이, 점차로 더욱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次鉢羅奢佉後髮毛爪等及色根形相漸次而轉增

 

태내(胎內) 5

가라라(迦邏邏, Kalala / 응 : 凝)시기: 잉태 직후의 첫 7일상태: 어머니의 피와 아버지의 정액이 결합한 상태로, 마치 맑은 물방울이나 엉긴 젖과 같이 매우 미세한 형태
알부다(頞部曇, Abbuda / 포 : 疱)시기: 두 번째 7일 (8일~14일)상태: '물집'이라는 뜻으로, 가라라 단계에서 조금 더 부풀어 올라 얇은 피부에 싸인 물집이나 거품 같은 형태
폐시(閉尸, Pesi / 굴 : 軟肉)시기: 세 번째 7일 (15일~21일)상태: '살덩어리'라는 뜻으로, 물집 형태가 응고되어 굳어지며 만지면 부드러운 살덩어리 형태
건타(鍵南, Ghana / 견 : 堅肉)시기: 네 번째 7일 (22일~28일)상태: '단단한 덩어리'라는 뜻으로, 굳어진 살덩어리가 더욱 단단해져서 형태
바라사하(鉢羅奢羅, Pasakha / 지체 : 肢節)시기: 다섯 번째 7일 이후 (29일~출생)상태: '팔다리'라는 뜻으로, 이 단계에서 팔, 다리, 머리 등 인체의 완전한 지체(머리카락, 손발톱 등 포함)가 비로소 뚜렷하게 자라나며 태아의 형태

 

모태 중에서 다섯 상태(태내 5)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니,

 

첫 번째는 갈라람의 상태이며,

두 번째는 알부담의 상태이며,

 

세 번째는 폐시의 상태이며,

네 번째는 건남의 상태이며,

 

다섯 번째는 발라사거의 상태이다. 謂母腹中分位有五一羯剌藍位二頞部曇位三閉尸位四鍵南位五鉢羅奢佉位

 

그리고 이러한 모태 중의 화살[, 아이를 말함]은 점차로 증장하여 이윽고 유색(有色)의 근과 형상이 원만하게 된 상태에서 업에 의해 일어난 이숙의 풍력(風力)으로 말미암아 모태 중의 화살은 산문(産門)으로 나아가게 된다. 此胎中箭漸次轉增乃至色根形相滿位由業所起異熟風力轉胎中箭令趣產門

 

그리고 마치 딱딱하게 굳어진 변을 양에 넘치게 볼 때처럼 속이 답답하고도 껄끄럽게[悶澁] 산문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니, 그 때의 극심한 고통은 참기가 어렵다.如强糞團過量閟澀從此轉墮劇苦難任

 

그런데 그 산모가 혹 어느 때 몸가짐[威儀]과 음식을 분수에 넘치게 취하거나, 혹은 그 아이가 지은 숙세의 죄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내에서 죽기도 한다. 其母或時威儀飮食執作過分或由其子宿罪業力死於胎內

 

그 때 해산의 법도[産法]에 대해 매우 능통하고 애기를 잘 받을 줄 아는 여인이나 혹은 의사가 있으면 따뜻하게 소유(酥油)나 섬말리(睒末梨)나무의 즙을 손에 바르고 작고 예리한 칼을 잡고 [탯집의 아이를 끄집어내게 된다.]時有女人或諸醫者妙通產法善養嬰兒溫以酥油睒末梨汁用塗其手執小利刀

 

그러나 그 속은 항문[糞坑] 속처럼 악취가 지독하고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으며, 어두컴컴한 곳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천의 벌레들이 우글거린다. 또한 항상 나쁜 액체가 흘러나와 반드시 잘 대처해야 한다. 즉 정혈과 기름 때로 썩어 문드러져 부정(不淨)이 흘러 넘치며 비루하고 더러워 차마 보기 어려운데, 구멍이 뚫려 누설되는 얇은 거죽[]이 그 위를 덮고 있다. 內如糞坑最極猥賤雜穢充塞黑闇所居無量千虫之所依止常流惡汁恒須對治精血垢膩潰爛臭滑不淨流溢鄙穢叵觀穿漏薄皮以覆其上

 

즉 숙업에 의해 인기된 [이와 같은] (어머니의 몸)의 창공(瘡孔,産門 즉 자궁을 말함) 속으로 [손을 넣어 태아의] 지절(支節)을 분해하여 밖으로 끄집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태아는 숙세에 지은 순후수업(順後受業)을 받게 되는데, 그가 나아가는 취()에 대해서는 참으로 알기 어렵다.宿業所引身瘡孔中分解支節牽出於外然此胎子乘宿所爲順後受業所趣難了

 

혹은 또한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생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몸은 마치 부스럼이 막 돋아난 것과 같으며 가늘고 연약하여 다루기 어려운데, 어떨 때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혹 어떨 때는 다른 여인(유모)이 칼과 같고 재와 같은 거칠고 투박한 두 손으로 아이를 잡고서는 씻기고 닦아 그를 편안한 곳에 눕힌다. 或復無難安隱得生體如新瘡細軟難觸或母愛子或餘女人以如刀灰麤澀兩手執取洗拭而安處之

 

그런 다음 맑은 소유(酥油)를 먹이고 모유를 먹이며, 점차 부드러운 음식과 거친 음식을 섭취시켜 익숙하게 한다. 그리하여 점차 순서대로 증장하여 근(, 여근ㆍ남근)이 성숙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다시 번뇌를 일으켜 온갖 업을 쌓으며, 나아가 이 같은 [현세의] 몸이 괴멸하고서 다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중유가 상속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세간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次含淸酥飮以母乳漸令習受細麤飮食次第轉增至根熟位復起煩惱積集諸業由此身壞復有如前中有相續更趣餘世

 

이와 같이 혹(, 즉 번뇌)과 업을 원인으로 삼아 생()이 있는 것이며, 생이 다시 원인이 되어 혹과 업을 일으키며, 이러한 혹과 업으로부터 다시 생이 있게 된다. 如是惑業爲因故生生復爲因起於惑業從此惑業更復有生

 

따라서 존재의 수레바퀴[有輪즉 생사를 윤회하는 4(生有, 本有, 死有, 中有)轉生]는 돌고 도는 것으로 시작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시작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시작에는 마땅히 그 원인이 없어야 할 것이며, 시작에 이미 원인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 밖의 다른 것도 [원인이 없이] 마땅히 스스로 생겨나야 한다.故知有輪旋環無始若執有始始應無因始旣無因餘應自起

 

그러나 지금 싹 등을 보건대 그것은 씨앗 등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났으니, 생겨나는 장소와 시간이 모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 등에 의해 숙변(熟變) 등이 생겨나니,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원인 없이 일어나는 법은 결정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상주(常主)하는 원인을 설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앞(본론 권제7)에서 이미 비판한 바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생사에는 결정코 시초가 없는 것이다. 現見芽等因種等生由處及時俱決定故又由火等熟變等生由此定無無因起法說常因論如前已遣是故生死決定無初

 

그러나 생사의 끝[後邊]은 있으니, 그 원인이 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생은 원인()에 의지하기 때문에 원인이 멸하여 허물어질 때 생이라는 결과도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然有後邊由因盡故生依因故因滅壞時生果必亡

 

이는 마치 종자가 멸하여 허물어질 때 싹은 필시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치상 결정코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理定應爾如種滅壞芽必不生

 

이상에서와 같은 온()의 상속은 세 가지 생(과거, 미래, 현재)을 분위(分位,단계)로 한다고 설하니, 게송으로 말하겠다. 如是薀相續說三生爲位頌曰

 

이와 같은 온갖의 연기는 12()로서, 3()이니

전제와 후제는 각기 두 가지이며, 중제는 원만한 자에 따를 경우 여덟 가지이다. 如是諸緣起十二支三際前後際各二中八據圓滿

 

논하여 말하겠다12(/인연)

 

첫 번째는 무명(無明)이며,

두 번째는 행()이며,

세 번째는 식()이며,

 

네 번째는 명색(名色)이며,

다섯 번째는 6()이며,

여섯 번째는 촉()이며,

 

일곱 번째는 수()이며,

여덟 번째는 애()이며,

아홉 번째는 취()이며,

 

열 번째는 유()이며,

열한 번째는 생()이며,

열두 번째는 노사(老死)이다. 論曰十二支者無明名色六處十一十二老死

 

그리고 3()라고 하는 말은

 

첫 번째는 전제(前際/전생)이며,

두 번째는 후제(後際/내생)이며,

세 번째는 중제(中際/금생)이니,

바로 과거ㆍ미래와 아울러 현재의 세 가지 생을 말한다.言三際者一前際二後際三中際卽是過未及現三生

 

12지를 3제에 건립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전제와 후제에 각기 두 가지 지(인연)를 설정하고, 중제에 여덟 지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12지가 되는 것이다. 云何十二支於三際建立謂前後際各立二支中際八支故成十二

 

무명과 행은 전제에 있으며,

생과 노사는 후제에 있으며,

그 밖의 나머지 여덟 가지 지는 중제에 있다.無明行在前際生老死在後際所餘八在中際

 

이러한 중제의 여덟 지는 일체의 유정의 일생 중에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此中際八一切有情此一生中皆具有不非皆具有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여덟 지가 있다고 설한 것인가?

원만한 자에 근거하여 설하였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말하려는 뜻은, 보특가라Pudgala. 윤회의 주체/ 중생로서 모든 단계[]를 거친 이를 원만한 자라고 일컬은 것으로, 중간에 요절한 이[中夭]나 색계ㆍ무색계의 온갖 보특가라는 원만한 자가 아니다. 若爾何故說有八支據圓滿者此中意說補特伽羅歷一切位名圓滿者非諸中夭及色無色

 

다만 욕계의 보특가라에 근거하여 [여덟 지가 있다고 설한 것으로], 대연기경(大緣起經; 중아함경권제24 대인경(大因經)에서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 경에서는 이같이 설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아난타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이 만약 입태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증성 광대해 질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증성 광대해질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但據欲界補特伽羅。『大緣起經說具有故彼說佛告阿難陁言識若不入胎得增廣大不不也世尊乃至廣說’”

 

그러나 어떤 때에는 다만 전제에 포섭되거나 후제에 포섭된다고 하는 두 단계의 연기를 설한 경우도 있다. 즉 앞의 일곱 지는 전제에 포섭되니, 이를테면 무명 내지 수()가 그것이며, 뒤의 다섯 지는 후제에 포섭되니, 有時但說二分緣起一前際攝二後際攝前七支前際攝謂無明乃至受後五支後際攝

 

이를테면 애()로부터 노사까지가 그것이다. [이는 바로 12지를] 전제와 후제, 원인과 결과의 두 단계로 나누어 포섭하였기 때문이다. 謂從愛至老死前後因果二分攝故

 

무명 등의 12(/12 인연)는 어떠한 법을 본질로 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無明等支何法爲體頌曰

 

숙생에서의 번뇌의 상태[惑位]무명이며

숙세의 온갖 업을 이라 이름한다.

은 바로 결생(結生)의 온이며

6처가 생겨나기 이전이 명색이다. 宿惑位無明宿諸業名行識正結生薀六處前名色

 

() 등의 근이 생겨나면서부터, 세 가지의 화합 이전이 ‘6이며,

3(; 괴로움, 즐거움, 不苦不樂)의 원인이 다름에 대해, 아직 요지(了知)하지 못한 것을 이라 이름한다. 從生眼等根三和前六處於三受因異未了知名觸

 

음애(婬愛)가 생겨나기 이전이 이며

물건[資具]이나 음욕을 탐하는 것이 이며

온갖 경계를 획득하기 위하여, 두루 추구하는 것을 라고 이름한다. 在婬愛前受貪資具婬愛爲得諸境界遍馳求名取

 

()’란 말하자면 바로 당유(當有)의 과를, 능히 견인하는 업을 짓는 것이고,

당유를 맺는 것을 이라 이름하며

당래 수()에 이르기까지가 노사이다. 有謂正能造牽當有果業結當有名生至當受老死

 

논하여 말하겠다.

숙생(宿生/전생) 의 온갖 번뇌의 상태로부터 지금 그 결과가 익을 때까지의 상태[의 오온]을 총칭하여 무명(無明, avidy)’이라고 하니, 論曰於宿生中諸煩惱位至今果熟摠謂無明

 

그것(오온)은 무명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며, 무명의 힘에 의해 그것이 현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왕이 행차한다고 할 때, 그를 선도하고 뒤따르는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왕이 뛰어나기 때문에 총칭하여 왕이 행차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彼與無明俱時行故由無明力彼現行故如說王行非無導從王俱勝故摠謂王行

 

숙생(宿生) 중의 복() 등의 업의 상태로부터 지금 그 결과가 익을 때까지의 상태[의 오온]을 총칭하여 (, saṃskāra)’이라고 하는데, 게송 첫 구에서의 상태라고 하는 말은 노사에 이르기까지를 말한 것이다.於宿生中福等業位至今果熟摠得行名初句位言流至老死

 

모태 등에서 바로 결생(結生)하는 순간의 일찰나 상태의 오온을 (, vijñāna)’이라고 이름한다. 於母胎等正結生時一剎那位五薀名識

 

결생의 식 이후와 6처가 생겨나기 이전의 중간의 온갖 상태[의 오온]을 총칭하여 명색(名色, nāma rūpa)’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송 중에서 마땅히 ‘4처가 생겨나기 이전이라고 설해야 함에도 6처라고 말한 것은 원만함에 근거하여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結生識後六處生前中閒諸位摠稱名色此中應說四處生前而言六者據滿立故

 

() 등의 근이 이미 생겨나서 근()ㆍ경()ㆍ식()이 아직 화합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오온]‘6(, ṣad-āyatana)’라고 이름한다.眼等已生至根境識未和合位得六處名

 

[근ㆍ경ㆍ식] 세 가지가 이미 화합하였을지라도 아직 3(苦受樂受捨受)의 원인의 차별을 능히 요별할 수 없는 상태[의 오온]을 모두 일컬어 (, sparśa)’이라고 한다.已至三和未了三受因差別位摠名爲觸

 

3수의 원인의 차별상을 이미 요별하였을지라도 아직 음탐(婬貪)을 일으키지 않은 이러한 상태[의 오온](, vedanā)’라고 이름한다. 已了三受因差別相未起婬貪此位名受

 

좋은 물건[資具]을 탐하거나 음애가 현행하였을지라도 아직 널리 추구하지 않는 이 같은 상태[의 오온](, tṛṣṇa)’라고 이름한다.貪妙資具婬愛現行未廣追求此位名愛

 

여러 가지 좋은 물건을 획득하기 위해 주변을 마구 치달아 추구하는 이러한 상태[의 오온](, upādāna)’라고 이름한다.爲得種種上妙境界周遍馳求此位名取

 

[온갖 경계로] 마구 치달아 추구하였기 때문에 미래의 존재 즉 당유(當有)의 과보를 견인할 업을 쌓게 되니, 이러한 상태[의 오온](, bhāva)’라고 이름한다. 因馳求故積集能牽當有果業此位名有

 

이러한 업력에 의해 지금 생의 목숨을 버리는 때로부터 바로 당유(當有) 즉 미래 존재를 맺게되는 이러한 상태[의 오온](, jāti)’이라고 이름한다. 즉 미래존재로서의 생지(生支)’는 바로 현재생에서의 식지(識支)와도 같다. 由是業力從此捨命正結當有此位名生當有生支卽如今識

 

[당래]생의 찰나 이후 점차 증장하여 당래 의 상태까지[의 오온]을 총칭하여 노사(老死, jarā-maraṇa)라고 이름한다. 즉 이와 같은 노사는 바로 현재생의 명색과 6처와 촉과 수의 4지와도 같다.生剎那後漸增乃至當來受位摠名老死如是老死卽如今世名色六處受四支

 

구분전제/전생중제/금생후제/내생

과거2인현재5과현재3인미래2과
無明名色六處老死
無明老死無明名色六處老死


無始無終

 

12지의 차별을 분별해 보면 이상과 같다.

 

또한 온갖 연기는 차별되어 네 가지로 설해지는데,

첫 번째는 찰나(刹那) 연기이며,

둘째는 원속(遠續) 연기이며,

셋째는 연박(蓮縛) 연기이며,

넷째는 분위(分位) 연기이다.辯十二支體別如是又諸緣起差別說四一者剎那二者連縛三者分位四者遠續

 

1) 무엇을 일컬어 찰나연기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탐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행할 때 찰나에 12(인연)가 모두 갖추져 있는 것을 말하니, [업을 발동시키는] 어리석음[]무명이며,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사[]이며, 온갖 대상에 대해 요별하는 것을 이라 이름하며, 식과 구생하는 세 가지 온을 총칭하여 명색이라 하며, ) 명색이 머무는 근을 설하여 ‘6라 하며, 6처가 그 밖의 다른 것(즉 경ㆍ식)에 대해 화합하는 것을 이라 하며, 云何剎那謂剎那頃由貪行殺具十二支癡謂無明思卽是行於諸境事了別名識識俱三薀摠稱名色住名色根說爲六處六處對餘和合有觸

 

촉을 영납(領納)하는 것을 라고 이름하며, [수에 대해] 탐하는 것이 바로 이며, 이것과 상응하는 온갖 전()라고 이름하며, [이것에 의해] 일어난 신ㆍ어의 두 업을 라고 이름하며, 이와 같은 제법의 생기를 바로 이라 이름하며, 원숙하여 변화하는 것[熟變]라고 이름하며, 괴멸하는 것은 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領觸名受貪卽是愛與此相應諸纏名取所起身語二業名有如是諸法起卽名生熟變名老滅壞名死

 

다시 어떤 이는 설하기를, “찰나와 연박은 품류족론에서 설하고 있듯이 다 같이 유루에 두루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復有說者剎那連縛如品類足』,俱遍有爲

 

12지의 상태[]로 존재하는 오온은 모두 분위(分位) 연기에 포섭되며, 이것(12)이 멀리 떨어져 상속하는 것으로 시작이 없는 것을 설하여 원속(遠續) 연기라고 한다.十二支位所有五薀皆分位攝卽此懸遠相續無始說名遠續

 

아비달마구사론 9권 - 12인연

 

지세경 3권 5. 십이인연품(十二因緣品)

 

 

지세(보살),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12인연을 잘 관찰하고 선택한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12인연을 관찰하고 선택함에, 이른바 있음[존재]이 없는 까닭에 설하여, 무명(無明)이라고 이름하며, 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觀擇十二因緣菩薩摩訶薩觀擇十二因緣所謂無有故說名無明

 

무명 가운데 법이 없는 까닭에 설하여 무명이라고 이름하며, 밝음[]을 모르는 까닭에 설하여 무명이라고 한다.於無明中無法故說名無明不知明故說名無明

 

무엇이 밝음을 모르는 것인가?

무명은 결정적인 법이 불가득임을 알지 못하는 것, 이를 무명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云何不知明不知無明決定法不可得是名無明何以故

 

무명(無明)의 인연의 모든 행을 설하되, 모든 행은 있는 바가 없음에도 범부가 지음[]을 일으키는 까닭에 무명의 인연의 모든 행을 설하는 것이다. 說無明因緣諸行諸行無所有而凡夫起作故說無明因緣諸行

 

()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識; 이는 과거의 미혹하였던 업(業)에 의하여 생하는 심식(心識)으로서 비로소 모태 등에 탁생(託生)하는 한 찰나의 일>의 생함이 있다. 이 까닭에 모든 행의 인연의 식을 설한다. 從行起故有識生是故說諸行因緣識

 

식으로부터 명색(名色)의 두 상이 생한다. 이 까닭에 식의 인연의 명색을 설하며, 名色二相是故說識因緣名色

 

명색으로부터 6()을 생한다. 이 까닭에 명색의 인연의 6입을 설하며, 從名色生六入是故說名色因緣六入

 

6입으로부터 촉()을 생한다. 이 까닭에 6입의 인연의 촉을 설하며, 촉으로부터 수(느낌)를 생한다. 이 까닭에 촉의 인연의

 

수를 설하며, 수로부터 애()를 생한다. 이 까닭에 수의 인연의 애를 설하며, 從六入生觸是故說六入因緣觸從觸生受是故說觸因緣受從受生愛是故說受因緣愛

 

애로부터 취()를 생한다. 이 까닭에 애의 인연의 취를 설하고,

 

취로부터 유()를 생한다. 이 까닭에 취의 인연의 유를 설하고, 從愛生取是故說愛因緣取從取生有是故說取因緣有

 

유로부터 생()을 생한다. 이 까닭에 유의 인연의 생을 설하고,

 

생으로부터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老死憂悲苦惱]가 쌓이고 모이게 된다. 이 까닭에 생의 인연의 늙음과從有生生是故說有因緣生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의 쌓이고 모임을 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큰 고뇌의 쌓임인 이 가운데서 무슨 법을 모으겠는가? 從生有老死憂悲苦惱聚集是故說生因緣老死憂悲苦惱聚集如是大苦惱聚於此中爲集何法

 

다만 전도(顚倒)와 밝음[]의 다름을 알고 무명의 쌓임[無明聚]으로 후세에 받을 몸의 애()를 삼는다. 但知顚倒與明相違無明聚爲後身愛

 

기쁘게 물드는 것[번뇌]에 의지하여 처처(處處)에 나는 것을 구한다면, 곧 이는 애의 모임[]인 것이다.依止喜染求處處生則是愛集

 

지세야,

세간은 이와 같이 12인연에 묶여 있으며, 장님은 눈이 없기 때문에 무명의 그물에 들어 어둠속으로 떨어진다. 持世世閒如是爲十二因緣所繫縛盲無眼故入無明網墮黑闇中

 

무명을 우두머리로 삼는 까닭에 12인연을 구족하게 일으킨다.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이 사유하여 무명의 실상을 관하고, 무명은 공하다고 아는 까닭에 본제(本際究竟)는 불가득이다. 無明爲首故具足起十二因緣諸菩薩如是思惟觀無明實相知無明空故本際不可得

 

무슨 까닭인가? 무명은 무()이기 때문에 본제가 무()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제()가 아닌 것이 곧 본제라고 관한다. 즉 본제를 분별하지 않는다. 何以故無明無故本際無智者觀非際是本際則不分別本際

 

생각과 분별을 끊었기 때문에 무명에 탐착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을 알고, 이 법은 그 설하는 바와 같지 않으면서 만약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을 설한다면 곧 이는 무명을 지견(知見; 如實知見)한 것이라고 설한다. 斷憶想分別故不貪著無明知一切法無所有是法不爾如所說若說一切法無所有卽是說知見不明

 

능히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에 통달하면 이는 곧 밝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다시 남은 밝음이 없다. 다만 무명을 지견하여 이를 이름해서 밝음이라 할 뿐이다.能通達一切法無所有是爲卽得明於此中更無餘明但知見無明是名爲明

 

무엇을 무명을 지견한다 하는가?

이른바 모든 법의 있는 바 없음과 모든 법의 얻는 바 없음과 모든 법의 허망하여 전도됨과 모든 법은 그 설하는 바와 같지 않은 것, 이를 무명을 지견한다고 이름한다. 云何爲知見無明所謂一切法無所有一切法無所得一切法虛妄顚倒一切法不爾如所說是名知見無明

 

무명을 지견하는 것, 이를 곧 밝음이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밝음은 있는 바가 없는 까닭이다.知見無明卽爲是明何以故明無所有故

 

무명의 인연의 모든 행이라는 것은 모든 법의 있는 바가 없음이다. 범부는 무명의 어둠 속에 들어 미치고 미혹하여 모든 행업(行業)22)을 짓는다. 無明因緣諸行者諸法無所有凡夫入無明闇冥中狂惑作諸行業

 

행업(行業)은 형상[]이 없고, 곳이 없는 것으로서, 무명이 행업을 낳을 수는 없다. 법으로서 일으키고 지을 수 없는 까닭에 무명의 인연의 모든 행업을 설한다. 모든 행업은 쌓고 모으는 일이 없다. 혹은 이곳, 혹은 저곳에서 오는 모든 행업이라 해도 역시 과거가 아니며 또 미래가 아니며 또한 현재가 아니다. 是行業無形無處是無明不能生行業無法而起作故說無明因緣諸行業諸行業無有聚集若是處若彼處來諸行業亦非過去亦非未來亦非現在

 

무명은 무명의 성품이 공()하고 행업은 행업의 성품이 공하여 모든 행업은 의지하는 곳이 없고, 다만 무명에 의지하여 모든 행업을 일으킬 뿐, 모든 행업은 무명에 의지하지 않고, 무명은 행업에 의지하지 않으며, 무명은 무명을 알지 못하고 행업은 행업을 알지 못한다. 無明無明性空行業行業性空諸行業無所依但依無明起諸行業諸行業不依無明無明不依行業無明不知無明行業不知行業

 

이와 같이 무명과 모든 행업은 전도된 것이기 때문에 무명으로부터 생한다. 이 가운데서 무명을 얻을 수 없고 모든 행업을 얻을 수 없다. 무명의 성품을 얻지 못하고 모든 행업의 성품을 얻지 못한다. 如是無明諸行業以顚倒故從無明生此中不得無明不得諸行業不得無明性不得諸行業性

 

다만 어둡기 때문에 자주 어둠이라고 이름할 뿐이다. 이 무명은 어둡기 때문에 분별해서 행업을 설함에, 있는 바가 없는 법을 쫓아서 일어나고 짓는 까닭에 무명과 행업은 모두가 있는 바가 없다고 한다.但以闇冥數名闇冥以是無明闇冥故分別說行業從無所有法而起作故無明行業皆無所有

 

행업의 인연의

()이라는 것은, 식은 행업에 의지하지 않고 또 행업을 떠나지 않고서 식을 내며 행업 또한 식을 내지 않는다. 行業因緣識者識不依行業亦不離行業生識行業亦不生識

 

무슨 까닭인가? 행업은 행업을 알지 못하고, 행업 또한 가져오는 자가 없다. 다만 전도된 중생이 행업을 쫓아 식()을 낸다. 이 식은 행업의 안에 있지 않고, 행업의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何以故行業不知行業行業亦無持來者但顚倒衆生從行業生識是識不在行業內不在行業外亦不在中閒

 

이 식을 내는 자는 없고, 또 낳게 하는 자도 없다. 다만 행업을 반연하여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식이 생한다. 是識無有生者亦無使生者但緣行業相續不斷故有識生

 

지혜로운 자는 식의 상을 구함에 불가득이며, 또 식의 생을 얻지 않는다. 식은 또 식을 알지 못하고, 식은 또한 식을 보지 않고 식은 식에 의지하지 않는다.智者求識相不可得亦不得識生識亦不知識識亦不見識識不依識

 

식의 인연의

명색(名色)이라는 것은, 명색은 식에 의지하지 않고 또 식을 떠나지 않고서 명색을 낳는다. 이 명색은 또한 식의 안에서 오지 않고 다만 식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범부는 어둡기 때문에 명색에 탐착하나 식은 또한 명색에 이르지 못한다. 지혜로운 자는 이 가운데서 명색을 구하되 불가득이며 보지 말아야 한다. 識因緣名色者名色不依識亦不離識生名色是名色亦不從識中來但緣識故凡夫闇冥貪著名色識亦不至名色智者於此求名色不可得不可見

 

이 명색은 형체가 없고 방위가 없으며 생각과 분별을 쫓아 일어난다. 이 명색의 상()은 식의 인연 때문에 있으나 식의 성품은 더욱 얻을 수 없다. 하물며 식의 연()을 쫓아 명색을 낳겠느냐. 만약 결정코 이 명색의 성품을 얻는다고 하면 이것은 옳지 않다.是名色無形無方從憶想分別起是名色相識因緣故有識性尚不可得何況從識緣生名色若決定得是名色性者無有是處

 

명색의 인연의

6()이란 것은, 6입은 명색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이름[]은 몸 가운데 있는 까닭에 들고 나는 숨과 몸을 이롭게 하는 것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법이 있는 것이다. 6입은 모두가 거짓된 것으로서 있는 바[所有]가 없으며 분별을 쫓아 일어나고 전도된 작용[]이 있다. 名色因緣六入者是六入因名色起名在身中故有出入息利益身及心心數法是六入皆虛誑無所有從分別起有顚倒用

 

6입의 인연의 ()이란 것은, 촉은 색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다. 촉은 색을 감촉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색은 아는 바가 없고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과 다름이 없다. 다만 6입을 쫓아 일어나기 때문에 분별하여 촉이라고 설한다. 무슨 까닭인가? 6입은 더욱 허망하고 있는 바가 없다. 하물며 6입을 쫓아 촉을 낳겠느냐. 六入因緣觸者是觸依色而有觸不觸色何以故色無所知與草木瓦石無異但從六入起故分別說觸何以故六入尚虛妄無所有何況從六入生觸

 

촉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 생각과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난다. 이 촉은 방위[]가 없고 곳[속한 곳]이 없다. 촉은 공하여 촉의 성품이 없는 까닭에 촉은 6입을 알지 못하고 6입도 역시 촉을 알지 못한다.觸空無所有從憶想顚倒起是觸無方無處觸空以無觸性故觸不知六入六入亦不知觸

 

촉의 인연의

()란 것은, 이 수는 촉의 안에 있지 않고 촉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이 촉도 역시 다른 곳으로부터 수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촉을 쫓아 수를 일으킨다. 이 촉은 더욱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다. 하물며 촉을 쫓아 수를 낳겠느냐. 모든 수에는 하나의 결정적인 상도 없고 모든 수는 다 있는 바가 없으며,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나 전도된 작용이 있을 뿐이다.觸因緣受者是受不在觸內不在觸外不在中閒是觸亦不餘處持受來而從觸起受是觸尚虛妄無所有何況從觸生受諸受無一決定相諸受皆無所有從顚倒起有顚倒用

 

수의 인연의

()란 것은, 이 수는 다른 곳에서 애를 가져오지 않는다. 수는 또 애와 더불어 합하지 않는다. ()도 역시 애를 알지 못하고 애를 분별하지 않는다. 애도 또한 수를 알지 못하고 수를 분별하지 않는다. 애는 수와 더불어 합하지 않는다. 이 애도 역시 수에 의지하지 않고 또한 수를 떠나지 않고서 애가 있는 것이다. 受因緣愛者是受不於餘處持愛來受亦不與愛合受亦不知愛不分別愛愛亦不知受不分別受愛不與受合是愛亦不依受亦不離受有愛

 

() 중에는 더욱 수의 상은 없다. 하물며 수의 인연으로 애()를 낳겠는가. 애는 수 가운데 있지 않고, 수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애도 역시 애의 안에 있지 않고, 또 애의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애 중에서 애의 상은 불가득이다. 이 애는 다만 허망한 생각을 쫓아 전도되어 상응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애라 한다. 受中尚無受相何況受因緣生愛愛不在受內不在受外不在中閒愛亦不在愛內亦不在愛外亦不在中閒愛中愛相不可得是愛但從虛妄憶想顚倒相應故名爲愛是愛非過去未來現在是愛非以縛相故起是愛亦非縛相

 

이 애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니다. 이 애는 얽매인 상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이 애는 또 얽매인 상이 아니다.

다만 인연이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까닭에 수의 인연의 애를 설한다. 지혜로운 자는 이 애는 처소가 없고 방위가 없으며, 공하여 견고함이 없으며,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지견()한다.但以因緣相續不斷故說受因緣愛智者知見是愛無處旡方空無牢堅虛妄無所有

 

애의 인연의

()란 것은, 애는 다른 곳에서 취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애는 취와 더불어 합하지 않는다. 애는 또한 취()를 낳지 못한다. 애가 있기 때문에 설하여 취라고 이름한다. 愛因緣取者愛不於餘處持取來愛不與取合愛亦不能生取有愛故說名取

 

인연의 화합에 따르는 까닭에 설하는 것이다. 취는 애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애는 취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취는 애의 안에 있지 않고 애의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애는 더욱 있음이 없다. 하물며 애의 인연으로 취를 낳겠는가. 隨因緣和合故說取不與愛合亦不散愛不與取合亦不散取不在愛內不在愛外亦不在中閒愛尚無有何況愛因緣生取

 

모든 취의 결정적인 상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로운 자는 이 취를, 허망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지견한다. 취 가운데는 취의 상이 없다. 이 취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니다. 취는 취의 안에 있지 않고 취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 이 취는 다만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나고 본래 지은 인연에 의하여 생한다.諸取決定相不可得智者知見是取虛妄無所有取中無取相是取非過去未來現在取不在取內不在取外不在中閒是取但從顚倒起因本緣生

 

지금 뭇 연으로 해서 취가 있는 것이다. 법에는 혹은 합하고 혹은 흩어지는 일이 없다. 이 취는 근본이 없으며 하나의 정해진 법도 얻을 수 없다. 범부의 수()는 곧 허망한 취()인 것이다. 今衆緣故有取無有法若合若散是取無有根本無一定法可得凡夫受是虛妄取

 

이 모든 행은 다 허망하기 때문에 세간은 취에 얽매인다. 지혜로운 자는 이 취는 허망하고 공하여 견고함이 없으며 근본이 없고 하나의 정해진 법도 얻을 수가 없음을 통달한다.是諸行皆虛妄故世閒爲取所繫縛智者通達是取虛妄空無牢堅無有根本無一定法可得

 

취의 인연의

()란 것은, 이 취는 유를 가져오지 않으며, 이 취는 유를 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취의 인연의 유를 설한다. 이 유는 취의 안에 있지 않고 취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 유는 취를 의지하지 않고 취는 유와 더불어 합하지 않으며,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取因緣有者是取不持有來是取不能生有而說取因緣有是有不在取內不在取外不在中閒有不依止取取不與有合亦不散

 

다만 모든 연이 화합하므로 해서 취의 인연의 유를 설할 뿐이다. 취는 유를 생하지 못하며, 취는 유를 분별하지 않는다. 취는 더욱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다. 하물며 취의 인연을 좇아 유를 낳겠느냐. 유는 가져오는 자가 없으며, 유 가운데서 유를 얻을 수는 없다. 但以衆緣和合故說取因緣有取不能生有取不分別有取尚虛妄無所有何況從取因緣生有有無有持來者有中有不可得

 

유는 안에 있지 않고, 유는 밖에 있지 않으며, 유는 중간에 있지도 않다. 이 유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아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 유는 허망하고 전도되어 상응하며 합함이 없고 흩어짐이 없음을 통달한다. 유는 아는 것이 없으며 분별하는 바가 없다. 이 유는 처소가 없으며 방위가 없다. 有不在內有不在外有不在中閒是有非過去未來現在智者通達是有虛妄顚倒相應無合無散有無所知無所分別是有無處無方

 

이 유()는 앞의 경계[前際]가 없고, 뒤의 경계[後際]가 없으며, 중간의 경계[中際]가 없다. 이 유는 유가 아니기 때문이며, 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12인연에 수순하기 때문에 이 유를 설한다. 지혜로운 자는 유의 상은 공하여 견고함이 없음을 통달한다.是有無前際無後際無中際是有非有故非無故但隨順十二因緣故說是有智者通達有相空無牢堅

 

유의 인연의

()이란 것은, 이 유는 생을 가져오지 않으며 생도 유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이 생은 유의 안에 있지 않고, 유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유는 생()을 생하지 못하며, 또한 유를 떠나지 않고서 생이 있다. 有因緣生者是有不持生來生亦不與有合亦不散是生不在有內不在有外不在中閒有不能生生亦不離有有生

 

다만 12인연의 상속함을 나타내어 유의 인연의 생을 설한다. 유는 생과 반연하지 않고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유는 더욱 불가득(不可得)이다. 하물며 유를 쫓아 생을 낳겠느냐. 但示十二因緣相續說有因緣生有與生非緣非不緣有尚不可得何況從有生生

 

지혜로운 자는 이 생은 유에게 의지하지 않음을 통달한다. 생 가운데 생의 상은 없으며, 생 가운데 자성(自性)이 없고 생 가운데 근본이 없으며 하나의 정해진 법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로운 자는 이 생은 성품이 없고 있는 바가 없음을 통달한다. 다만 12인연이 화합하고 상속함을 나타낼 뿐이다. 智者通達是生不依於有生生中無生相生中無自性生中無根本無一定法可得智者通達是生無性無所有但示十二因緣和合相續

 

그러므로 유의 인연의 생을 설함에 생의 법은 혹은 합하고 혹은 흩어지는 일이 없고, 생은 유의 안에 있지 않으며 유의 밖에 있지 않으며 또 중간에 있지도 않다. 故說有因緣生生無有法若合若散生不在有內不在有外亦不在中閒

 

이 생은 과거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며 현재도 아니다. 이 생의 앞의 경계와 뒤의 경계와 중간의 경계가 불가득이다. 이 생은 근본이 불가득이다. 지혜로운 자는 뭇 인연을 좇아 생하는, 전도되어 상응하여 허망하고 있는 바가 없는 것은 허깨비[幻化]와 같은 상임을 통달한다.是生非過去非未來非現在是生前際後際中際 不可得是生根本不可得智者通達從衆因緣生顚倒相應虛妄無所有如幻化相

 

생의 인연의

늙음[]과 죽음[]근심[]과 슬픔[]과 고뇌(苦惱)란 것은, 이 생은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가져오지 않는다. 생은 또한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낳지 못한다.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는 생의 안에 있지 않으며 생의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生因緣老死憂悲苦惱者是生不持老死憂悲苦惱來生亦不能生老死憂悲苦惱老死憂悲苦惱不在生內不在生外不在中閒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도 생에 의지하지 않는다. 생을 까닭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설한다. 다만 뭇 인연으로 생한 법을 나타내는 까닭에 생은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뇌와 더불어 합하지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는다. 老死憂悲苦惱亦不依生以生故老死憂悲苦惱可說但示衆因緣生法故生不與老死憂悲苦惱合亦不散

 

생 가운데 생은 더욱 불가득이다. 하물며 생의 인연의 늙음과 죽음과 고뇌이겠느냐. 늙음과 죽음과 고뇌 안에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불가득이다. 生中生尚不可得何況生因緣老死苦惱老死苦惱中老死苦惱不可得

 

무슨 까닭인가?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늙음과 죽음과 고뇌의 안에 있지 않고 또 밖에도 있지 않고 역시 중간에도 있지 않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과거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며 현재가 아니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늙음과 죽음과 더불어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다. 何以故老死苦惱不在老死苦惱內亦不在外亦不在中閒老死苦惱非過去非未來非現在老死苦惱不與老死合亦不散

 

다만 전도되어 상응하고 뭇 연과 화합하며 12인연을 구족하기 때문에 생의 인연의 늙음과 죽음과 고뇌라고 설한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의지하는 곳이 없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의 결정적인 상은 불가득이다.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앞의 경계와 뒤의 경계와 중간의 경계가 불가득이다. 但顚倒相應衆緣和合具足十二因緣故說生因緣老死苦惱老死苦惱無所依止老死苦惱決定相不可得老死苦惱前際後際中際不可得

 

지혜로운 자는 늙음과 죽음과 고뇌는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으며 전도되어 상응하여 근본이 없으며 짓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며 나지 않는다고 통달한다.智者通達老死苦惱虛妄無所有顚倒相應無有根本不作不起不生

 

이와 같이 12인연의 법을 관함에 인연의 법은 혹은 과거, 혹은 미래, 혹은 현재를 보지 않는다. 또 인연의 상을 보지 않는다. 다만 인연은 곧 연()이 없고 생이 없고 상이 없고 지음이 없고 일어남이 없고 근본이 없고 본래부터 줄곧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음을 아는 까닭에 이 12인연에 통달한다. 如是觀十二因緣法不見因緣法若過去若未來若現在亦不見因緣相但知因緣是無緣無生無相無作無起無根本從本已來一切法無所有故通達是十二因緣

 

또 이 12인연은 짓는 자와 받는 자가 없음을 본다. 만약 법이 인()을 좇아 생하는 것이라면 이 인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도 역시 없음[]이다.亦見是十二因緣無有作者受者若法所從因生是因無故是法亦無

 

보살은 무명의 뜻을 따르는 까닭에 일체의 법이 불가득이라고, 이와 같은 관() 가운데 들면 연이 없음이 곧 12인연이며, 이 가운데 생함이 없는 것이다.菩薩隨無明義故一切法不可得入如是觀中無緣卽是十二因緣此中無所生

 

보살은 12인연을 관함에, 이는 허망한 생이라 하여 무명의 뜻에 수순한다. 12인연에 통달함에, 혹 법이 없으면 이 법도 역시 없고, 이 까닭에 무명의 뜻에 수순하여 12인연에 통달한다고 설한다. 菩薩觀十二因緣是虛妄生隨順無明義通達十二因緣若法無者是法亦無是故說隨順無明義通達十二因緣

 

무명은 곧 불생(不生)이고 부작(不作)이며 불기(不起)이고 근본이 없고 하나의 정해진 법도 없으며 연이 없고 있는 바가 없다. 보살은 이때 이는 명()이고 이는 무명이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無明是不生不作不起無根本無一定法無緣無所有菩薩爾時不分別是明是無明

 

무명의 실상이 곧 명이며, 무명을 인하기 때문에 일체의 법은 있는 바가 없다. 일체의 법은 연이 없으며 생각과 분별이 없다. 이런 까닭에 무명의 뜻에 수순하여 12인연에 통달한다.無明實相卽是明因無明故一切法無所有一切法無緣無憶想分別是故隨順無明義通達十二因緣

 

지세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12인연의 방편 지혜(方便智慧)라고 이름한다. 持世是名菩薩摩訶薩十二因緣方便智慧

 

만약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이 12인연의 합하고 흩어짐에 통달하면, 이것을 보살이 무생(無生)의 지혜를 잘 얻었다고 이른다. 若菩薩能如是通達十二因緣合散是名菩薩善得無生智慧

 

무슨 까닭인가? 생멸(生滅)로서 관하면 곧 12인연을 잘 알지 못한다. 何以故以生滅觀則不能善知十二因緣

 

만약 12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관하면, 이를 무생의 지혜를 얻었다고 이른다. 若觀十二因緣集散是名得無生智慧

 

만약 무생의 지혜를 얻으면 이를 12인연에 통달한다고 이른다.若得無生智慧是名通達十二因緣

 

지세야,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통달함에 들고자 하고, 무생의 지혜를 깨닫고자 하면, 땅히 이와 같이 12인연의 지혜를 부지런히 행하고 닦아 모아야 한다. 그러면 능히 12인연의 무생의 상을 관하여 깨달을 것이다.持世是故菩薩摩訶薩欲入通達欲證無生智慧應當如是勤行修集是十二因緣智慧則能觀證十二因緣無生相

 

지세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무생이 곧 12인연임을 알면, 곧 능히 이와 같은 12인연의 방편을 얻는다. 持世若菩薩摩訶薩知無生卽是十二因緣者卽能得如是十二因緣方便

 

이 사람은 무생(無生)의 상()으로써, 3()를 지견하고 빨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보살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에게 친근(親近)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는다. 이 보살은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수기를 받고 차례로 수기한다.是人以無生相知見三界疾得無生法忍當知是菩薩於諸現在佛得近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是菩薩不久當得受記次第受記

 

지세야, 이와 같이 착한 사람은 수기를 받음으로 해서 안온한 마음을 얻고 모든 법의 뜻이 나아가는 방편 중에서 지혜의 광명을 얻는다. 持世如是善人因與受記得安隱心於一切法旨趣方便中得智慧光明

 

이 사람은 12인연은 곧 무생임을 통달하고, 이 사람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에게 친근할 수 있게 되며, 이 사람은 모든 악마를 두려워하는 일이 없으며, 이 사람은 생사(生死)의 흐름을 건너 육지에 이를 수 있게 되고, 이 사람은 무명의 진흙땅을 건널 수 있게 되고, 이 사람은 안온한 곳에 이를 수 있게 된다.是人通達十二因緣是無生是人得近現在諸佛是人於諸惡魔無所怖畏是人度生死流得到陸地是人得度無明淤泥是人得到安隱之處

 

지세야, 만약 지금 혹은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혹은 듣고 혹은 믿고 혹은 독송하고 혹은 이 12인연의 방편을 닦아 익히면, 나는 이 사람에게 수기를 줄 것이며,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무생법인을 얻을 것이다. 나도 이 사람이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현재의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으리라고 예언할 것이다.持世若我今世若我滅後若聞若信若讀誦若修習是十二因緣方便者我與是人授記不久當得無生法忍我亦記是人不久當於現在諸佛所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지세경 3권 - 12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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