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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적부

색수상행식 5음 지세경 1권

작성자상민 시자|작성시간26.06.15|조회수26 목록 댓글 0

지세경(持世經) 1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 5음(온)에 대하여

5()
(); 물질로 결합(지수화풍)된 상()을 집착 -色陰 즉 물질의 집적(集積),
(); 괴로움(),즐거움 (), 불고불락 등 3(三受)를 느끼는 작용-수음(受陰) 즉 느낌의 집적
(); 외계(外界)의 사물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집착하는 작용-상음(想陰) 즉 생각의 집적,
(); 잘못된 인연, 신구의(3) 등에 집착하는 작용 -행음(行陰) 즉 작용의 집적,
();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見聞覺知) 것을 의식하고 분별하여 집착하는 작용-식음(識陰) 즉 인식의 집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가란타죽원(伽蘭陀竹園)에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약간의 백천만(百千萬)의 무리에게 공경을 받으며 둘러싸여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셨다.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園與大比丘僧俱爾時世尊與若干百千萬衆恭敬圍繞而爲說法

 

모임 가운데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지세(持世)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보살마하살의 무량한 공덕 장엄의 발심(發心)을 위하여 일체 법의 피안(彼岸)을 잘 알고자 하였고, 무량한 원을 발하여 무량한 장엄을 구족하는 것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무량한 모든 법의 결정된 상()에 통달하고자 하였으며, 무량한 장엄의 원을 발하여 깊은 마음의 소행이 청정하고자 하였으며, 청정하고 구족한 보시를 잘 알고자 하였으며, 會中有菩薩摩訶薩名曰持世爲諸菩薩摩訶薩無量功德莊嚴發心欲善知一切法彼岸欲善知發無量願具足無量莊嚴欲通達無量諸法決定相欲發無量莊嚴願深心所行淸淨欲善知淸淨具足布

필경엔 청정한 지계(持戒)를 잘 알고자 하였으며, 구족한 인욕과 부드러운 마음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청정한 정진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청정한 선정을 잘 알고자 하였으며, 반야바라밀의 피안에 통달하는 일을 잘 알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매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施欲善知畢定淸淨持戒欲善知具足忍辱柔軟之心欲善知淸淨精進欲善知淸淨禪定欲善知通達般若波羅蜜彼岸以如是等無量功德故從坐而起偏袒右肩合掌向佛白佛言(1)

 

...중략...

 

2. 오음품(五陰品)

(): lakṣaṇa, saṃjñā. 물질의 형태와 의식의 관념, 본체

) 4(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法相), 실상(實相)

) 체상용(體相用): (본질/), (형태, 모양/조각품), ()(쓰임새/활용)

이때 부처님께서는 지세(持世)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세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일체 법의 실상(實相)을 얻고자 하고, 혹은 일체 법의 글귀를 잘 분별하고자 하며, 혹은 염력(念力)을 얻고자 하고, 혹은 몸을 돌려 끊어지지 않는 생각[不斷念]을 구족하게 얻고자 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면 爾時佛告持世菩薩持世若菩薩摩訶薩欲得一切法實相若欲善分別一切法章句若欲得念力若欲轉身具足得不斷念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마땅히 이와 같은 법의 문에 빨리 들어가야 하니, 이 법의 문에서 지혜의 광명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법 안에서는 구족함을 빨리 얻기 때문이다.當疾入如是法門於是法門得智慧光明何以故於是法中疾得具足故

 

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부지런히 이와 같은 법의 문을 닦아 모으고, 법의 방편의 문에 들면,

 

곧 능히 음(5;色受想行識)의 방편과

(18; 6근 안이비설신의/6경 색성향미촉법/6)의 방편과

 

(12; 6. 6)의 방편과 인연으로 생하는 법의 방편과

4념처(4念處; 身念處, 受念處, 心念處, 法念處)의 방편과

 

5(5; 번뇌를 극복하는 힘)의 방편과

신근(信根): 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

 

정진근(精進根): 바른 길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노력

염근(念根): 대상을 항상 기억하고 알아차리는 마음챙김

 

정근(定根): 마음을 하나로 모아 흔들리지 않는 집중

혜근(慧根):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

 

여덟 가지 거룩한 길[팔정도 八聖道分]의 방편과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법의 방편을 분별하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법의 방편을 분별(分別; 智明함을 얻는다. 又復持世菩薩摩訶薩勤修集如是法門入是法方便門者則能得分別陰方便界方便入方便因緣生法方便四念處方便五根方便八聖道分方便世閒出世閒法方便分別有爲無爲法方便

 

지세야, 무엇을 보살이 5()을 분별하는 방편이라고 말하는가? 持世何謂菩薩分別五陰方便

 

보살마하살은 바르게 다섯 가지 번뇌의 쌓임[五取陰; 色受想行識]을 관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의 쌓임은 곧 다섯 가지 번뇌의 쌓임이다. 菩薩摩訶薩正觀五取陰所謂無明陰是五取陰

 

괴로움의 쌓임은 곧 다섯 가지 번뇌의 쌓임이다. 병이 쌓이고 등창이 쌓이고, 화살이 몸을 뚫고 들어감과 같은 것이 쌓이는 것은 곧 다섯 가지 번뇌의 쌓임이다. 苦陰是五取陰癡陰是五取陰病陰癰陰如箭入身陰是五取陰

 

보살은

① 색의 번뇌의 쌓임[色取陰]을 분별하고 관찰하고 선택한다.

무엇을 색의 번뇌의 쌓임을 분별하고 관찰하며 선택한다고 하는가? 菩薩分別觀察選擇色取陰云何爲分別觀察選擇色取陰

 

이 색의 번뇌의 쌓임은 네 가지 요소[四大]로부터 생긴 것이니, 거짓으로 이름하여 색의 번뇌의 쌓임이라고 한다. 是色取陰從四大生假名爲色取陰

 

이 색의 쌓임[色陰]은 자성(自性)이 없다. 다만 네 가지 요소가 화합한 것으로서 거짓으로 이름하여 색의 쌓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是色陰無有自性但以四大和合假名爲色陰

 

색의 쌓임은 짓는 자가 없고 부리는 자도 없다. 지음이 없고 일어남이 없고 남[]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색이 쌓인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전의 업의 인연으로 네 가지 요소가 섭수하는 수()를 색이 쌓인 것이라고 한다. 色陰無有作者無使作者無作無起無出名爲色陰但以先業因緣四大所攝數名色陰

 

쌓임이 아닌 것[非陰]은 곧 색이 쌓인 것이다. 비유컨대 허공과 같아서 쌓임은 실로 생기는 상()이 없으며, 만약 허공의 쌓임을 설한다면 이 가운데 법의 생함이 없을 것이니, 다만 명자(名字)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허공의 쌓임이라고 한다. 非陰是色陰譬如虛空陰實無生相若說虛空陰是中無有法生但有名字故名爲虛空陰

 

범부는 이 쌓임이 없음에도 쌓임의 상이 있다. 전도(顚倒)된 마음 때문에 실()이 없음에도 실의 상이 있다. []의 다섯 가지 쌓임과 내 것[我所]의 다섯 가지 쌓임에 탐착하여 나의 색의 쌓임과 내 것의 색의 쌓임도 이와 같이 탐착한다.凡夫於此無陰陰相以顚倒心故無實實相貪著我五陰我所五陰我色陰我所色陰如是貪著

 

이 모든 범부가 색에 탐착한 다음에는 색 가운데서 나()와 내 것(我所)에 의지하여 색이 있고 색을 받고 색을 취하고 색에 탐착하고, 색을 의지하여 갖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업[不善業]을 받아 행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범부의 배움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보리를 돕는 법을 닦고 모아야 한다. 지금 마땅히 바르게 색의 쌓임을 관찰하여야 한다.是諸凡夫貪著色已於色中依止我我所有色受色取色著色依色受行種種惡不善業我等不應隨凡夫學我等應勤修集助菩提法今應正觀色陰

 

보살이 바르게 색의 쌓임을 관찰할 때는 물거품이 모인 것과 같다고 안다. 어떻게 물거품의 모임과 같다고 아는가? 모임이 없는 것, 이것이 물거품의 모임이다. 菩薩正觀色陰時知同水沫聚云何知同水沫聚無聚是水沫聚

 

다만 뭇 인연으로부터 생기니 붙잡을 수가 없으며, 견고하고 튼튼함이 없다. 물거품 속에는 모임의 상이 없고, 모임이 없는 것이 곧 물거품의 모임이다. 색의 쌓임도 이와 같다. 색의 쌓임 안에는 쌓임의 상이 없다.但從衆緣生不可執捉無有堅牢水沫聚中無有聚相無聚是水沫聚色陰亦如是色陰中無有陰相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이러한 생각을 한다.

범부는 허망한 색을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며, 색이 무상(無常)함을 여실하게 알지 못하며, 색의 상을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들은 바른 길에 들어 마땅히 허망한 것에 탐착하지 말고 색에 탐착하지 않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菩薩如是觀時作是念凡夫不能正觀虛妄色不能如實知色無常不能如實知色相我等入正道不應貪著虛妄不應貪著色何以故

 

색은 곧 탐착할 수 없는 상()이다. 색은 다만 명자(名字)만이 있을 뿐 결정적인 상()이 없다고 마땅히 관찰해야 한다. 이 색은 결정적인 상이 없고 명자를 떠나기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색이라 한다. 또 색을 설하여 번뇌를 무너뜨리는 상이라고 이름한다. 色是不可貪著相色但有名字無決定相當觀是色無決定相離名字故名之爲色又說色名惱壞相

 

지혜 있는 자는 통달하여 이를 상이 없다고 안다. 우리들은 마땅히 잘 알아서 색에 상이 없는 방편을 닦아 모아서 색의 상에 탐착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사람이 색의 상에 탐착하면 곧 색에 탐착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잘 알아서 색의 상에 들어야 한다.智者通達知是無相我等應當善知修集色無相方便不貪著色相若人貪著色相卽貪著色我等應善知入色相

 

보살이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할 때, 여실하게 색을 관찰하고 선택한다. 이 색의 쌓임은 모두가 범부의 생각[憶想]과 분별로 일어난다. 만약 법이 생각과 분별로 일어난다면 이는 곧 불생(不生)이다. 모든 생각과 분별은 모두가 진실이 아니다.菩薩如是正觀時如實觀察選擇色是色陰皆從凡夫憶想分別起若法從憶想分別起卽是不生一切憶想分別皆非眞實

 

범부는 전도(顚倒)되어 일어난 색에 의지하여 색에 얽매이고, 색 때문에 해를 입고 오고 가며 고뇌한다. 무명과 어리석음의 어둠 때문에 색을 탐착하여 버리지 않고, 색을 항상하고 견고하며 튼튼하다고 본다. 이것을 범부의 사람이 색에 얽매인다고 한다. 凡夫依止顚倒所起色爲色所縛爲色所害往來苦惱無明癡闇故貪色不捨見色有常牢固是凡夫人爲色縛

 

색에 얽매이기 때문에 지옥과 축생과 아귀(餓鬼)와 천인(天人)을 왕래하며, 색의 맛을 깊이 탐착하고, 색 가운데 온갖 잘못과 악()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色所縛故往來地獄畜生餓鬼天人深貪色味不觀色中有諸過惡

 

우리들은 마땅히 범부의 배움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관찰하고 선택하고 분별하여 색의 방편을 닦아 익혀야 한다. 我等不應隨凡夫學應當觀察選擇分別修習色方便

 

색을 관찰하고 선택하고 분별할 때, 색의 성품을 보는 것은 꿈과 같다. 비유컨대 꿈속의 색은 모두가 생각과 분별의 각관(覺觀; 관조 觀照)으로부터 일어난다. 일찍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았던 것의 인연에서 일어난다. 이 꿈속에서 또한 그와 나를 알고, 또 땅과 불과 물과 바람을 보고, 또 산과 강과 무성한 숲을 보아도 꿈속의 색의 상에 결정적인 것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생각과 기억으로써만 있을 뿐이다. 分別觀察選擇色時見色性如夢譬如夢中色皆從憶想分別覺觀起曾所見聞覺知因緣起是夢中亦知彼我亦見地水火風亦見山河叢林夢中色相無有決定但以憶想故有

 

색의 쌓임의 상도 이와 같다. 선세(先世)의 업()의 인연으로부터 나와 결정적인 성품이 있을 리 없다. 보살은 이와 같이 사유(思惟)하여 색은 나이다, 혹은 내 것이다 하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 色陰相亦如是從先世業因緣出無有決定性菩薩如是思惟不取色若我若我所

 

다만 색은 여실히 무상(無常)한 상()으로서 허망하고 전도된 것이라고 바르게 관한다. 중생은 전도되어 탐착해서 색은 혹은 나의 색이며, 혹은 내 것의 색이며, 혹은 그의 색이며, 혹은 그의 것[彼所]의 색이라고 취한다. 이와 같이 색을 바르게 관찰하고 선택할 때, 색을 얻지 않으며, 색의 성품을 보지 않으며, 또 색의 무상함을 탐착하지 않는다.但正觀色如實無常相虛妄顚倒衆生顚倒貪著取色若我若我所色若彼色若彼所色如是正觀察選擇色時不得色不見色性亦不貪著色無常

 

보살이 이때 만약 색 중에서 사랑하는 생각과 탐착을 모두 남김없이 끊어 없애서 색의 바른 상을 잘 알고 색의 평등한 상을 잘 알고, 색이 없어지는[] 상을 잘 알고, 색이 없어지는 길[滅道; 고집멸도에서 멸제]의 상을 잘 알고, 색의 쌓임이 쫓아오는 곳도 없고 또 가는 곳도 없음을 잘 알아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菩薩爾時若於色中愛念貪著皆悉除斷善知色正相善知色平等相善知色滅相善知色滅道相善知色陰無所從來亦無所去作是念

 

이 몸의 색의 쌓임은 모두가 업의 과보와 각관(覺觀)에서 일어난다. 네 가지 요소[四大]가 모여서 된 것이, 이 몸의 색의 쌓임으로서 나가 아니며, 그가 아니며, 속하는 것이 없으며, 쫓아 일어나는 곳도 없다.’是身色陰皆從業果報覺觀起四大所攝是身色陰非我非彼無有所屬無所從起

 

색의 쌓임을 관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안의 색[內色]을 탐착하지 않고 받지도 않고, 바깥 색[外色]을 탐착하지 않고 받지도 않는다. 과거의 색도 탐착하지 않고 받지 않으며, 미래의 색도 탐착하지 않고 받지 않으며, 현재의 색도 탐착하지 않고 받지 않는다. 곧 일체의 색의 쌓임은 생함이 없는 상이라고 안다. 이는 보살이 이때에 색을 없애지 않고, 또한 색을 없애는 법을 구하지도 않는 것이다. 觀色陰如是內色不貪不受外色不貪不受過去色不貪不受未來色不貪不受現在色不貪不受卽知一切色陰是無生相是菩薩爾時不滅色亦不求滅色法持世菩薩摩訶薩觀察選擇色取陰如是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색의 번뇌의 쌓임[色取陰]을 관찰하고 선택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느낌[感受]의 번뇌의 쌓임을 관찰하고 선택한다고 말하는가? 보살은 이렇게 사유한다.持世何謂菩薩摩訶薩觀察選擇受取陰菩薩作是思惟

 

이 괴로움의 느낌과 즐거움의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 여러 가지 인연에 속하여 느낌의 상()에 든다. 이 안에는 받는 자가 없으며, 다만 탐착하기 때문일 뿐이다. 탐착하는 자는 곧 이 진실이 아니며 허망하여 생각과 분별로 일어난다.’是苦受樂受不苦不樂受皆從因緣生屬諸因緣入受相中此中無有受者但以貪著故貪著者卽是不眞虛妄從憶想分別起

 

이 보살이 이와 같이 사유할 때,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이 범부는 허망한 느낌에 얽매여 세 가지 느낌(三受) 때문에 해를 입는다. 이른바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이 범부가 만약 즐거움을 받으면 사랑의 결박으로 부리는 바가 있다. 사랑의 결박으로 부림을 받기 때문에 능히 나쁜 업을 일으킨다. 是菩薩如是思惟時作是念是凡夫爲虛妄受所縛爲三受所害所謂苦樂不苦不樂受是凡夫若受樂爲愛結所使以愛結所使故能起惡業若受苦爲恚結所使以恚結所使故起諸惡業

 

만약 괴로움을 받으면 성냄의 결박으로 부리는 바가 되고, 성냄의 결박으로 부림을 받기 때문에 여러 나쁜 업을 일으킨다. 만약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는 느낌을 받으면 무명(無明)의 결박으로 부리는 바 되고, 이 사람은 무명의 결박으로 인하여 부림을 받기 때문에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若受不苦不樂受爲無明結所使是人因無明結所使故不脫憂悲苦惱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범부의 배움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모든 법을 바르게 관하고, 우리들은 마땅히 모든 느낌을 여실하게 관할 것이다.’我等今不應隨凡夫學應正觀諸法我等應如實觀諸受

 

보살은 여실히 느낌의 쌓임[受陰]을 관하여 이러한 생각을 한다.

쌓임이 아닌 것은 곧 느낌의 쌓임이다. 생각과 분별로 일어나 전도되어 상응(相應)한 것일 뿐 받는 자는 없다. 다만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지금 세상에 연()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모든 느낌은 자성이 공()하여 느낌 가운데 느낌의 상이 없다.菩薩如實觀受陰作是念非陰是受陰從憶想分別起顚倒相應無有受者但從先世業因起今世緣故諸受自性空受中無有受相

 

보살은 느낌의 쌓임을 관하여 통달한다. 비유컨대 빗방울은 물거품과 같아 생이 있고 멸이 있으나, 결정적인 것은 없다. 느낌의 쌓임도 이와 같다. 차례의 인연으로 일어나며, 여러 인연에 속하여 머무는 때가 없다. 허망하고 실답지 않으며 생각과 전도되어 상응함을 따라 일어난다.菩薩觀達受陰譬如雨渧水泡有生有滅無有決定受陰亦如是次第因緣起屬諸因緣無有住時虛妄不實從憶想顚倒相應起

 

보살은 이때 이러한 생각을 한다.

범부를 가엾이 여겨야 한다. 여러 가지 느낌에 억제되어 느낌의 쌓임을 바르게 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느낌을 얻고서 탐착이 생기고, 괴로운 느낌을 얻어서는 또 탐착이 생기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얻고서는 또 탐착이 생긴다. 菩薩爾時作是念凡夫可愍爲諸受所制以不正觀受陰故故得樂受生著得苦受亦生著得不苦不樂受亦生著

 

여러 가지 느낌에 얽매여 분주히 뛰어서 오고 가며, 몸을 좇아 몸에 이르러 번뇌[]의 여러 결박을 받으며 다섯 가지 길[五道;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에 윤회하여 쉬고 그침이 없다. 이 범부는 여러 가지 느낌에 탐착하고, 느낌에 억제되며, 느낌에 묶여 느낌의 쌓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느낌의 쌓임에서 나올 곳을 보지 못하고, 느낌의 쌓임을 바르게 보는 것을 알지 못한 까닭에 느낌의 쌓임이 무상함을 여실히 관할 줄 모른다. 爲諸受所縛馳走往來從身至身受結所縛輪轉五道無有休息是凡夫著於諸受爲受所制爲受所繫不脫受陰於受陰所不見出處不知正觀受陰故不知如實觀受陰無常

 

느낌의 쌓임 안에서 탐욕으로 물들었기 때문에, 묶이고 느낌의 쌓임의 여실한 상을 알지 못한다. 우리들은 지금, 마땅히 범부의 배움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여실(如實)하게 느낌의 쌓임을 관찰하고 선택해야 한다. 즉시 쌓임이 없는 것은 곧 느낌의 쌓임이며, 진실하지 않은 쌓임은 곧 느낌의 쌓임이며, 전도된 쌓임은 곧 느낌의 쌓임이며, 머무르지 않는 쌓임은 곧 느낌의 쌓임이라고 느낌의 쌓임을 여실하게 관해야 한다.’於受陰中爲欲染所縛不知受陰如實相我等今不應隨凡夫學應如實觀察選擇受陰卽時如實觀受陰無陰是受陰不眞陰是受陰顚倒陰是受陰不住陰是受陰

 

이때 느낌의 쌓임의 여실한 상을 봄에, 지은 자가 없고 부리는 자도 없다. 느낌의 쌓임 중에서 느낌의 쌓임의 상을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느낌의 쌓임을 관함에 느낌의 쌓임이 안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느낌의 쌓임이 밖에 있음도 보지 않는다. 느끼는 나에게 집착하지 않고, 느끼는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是時見受陰如實相無有作者無有使作者於受陰中不見受陰相如是觀受陰不見受陰在內不見受陰在外不著受我不著受彼

 

느낌의 쌓임은 쫓아서 오는 곳이 없고 속한 것이 없음을 안다. 법은 능히 느낌을 생하는 일이 없다. 다만 전도되어 상응함을 쫓아 전생의 업의 과보의 수()를 느낌의 쌓임이라고 한다. 느낌의 쌓임을 허망한 인연이 서로 이어진 행이라고 본다. 이때 과거의 느낌의 쌓임을 받지 않고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知受陰無所從來無有所屬無法能生受者但從顚倒相應先世業果報數名受陰見受陰虛妄因緣相續行爾時過去受陰不受不貪不著

 

미래의 느낌의 쌓임도 받지 않고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현재의 느낌의 쌓임도 역시 받지 않고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즐거운 느낌 중에서 사랑의 결박을 제거하며, 괴로운 느낌 중에서 성냄의 결박을 제거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중에서 무명의 결박을 알고 보기[知見; 실견 實見] 때문에 부지런히 정진을 행한다. 未來受陰亦不受不貪不著現在受陰亦不受不貪不著是人於樂受中除卻愛結於苦受中除卻恚結不苦不樂受中知見無明結故勤行精進

 

보살이 이때 만약 즐거운 느낌을 받아도 마음에 사랑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받아도 마음에 성냄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받아도 마음에 어리석음이 생기지 않는다.菩薩爾時若受樂受心不生愛若受苦受心不生恚若受不苦不樂受心不生癡

 

지세야, 범부는 대부분 즐거운 느낌에서 사랑을 낳고, 괴로운 느낌에서 성을 내고,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 어리석음을 낸다. 곧 여러 범부는 사랑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어둠 속에 깊이 들어가 느낌의 쌓임을 여실히 알지 못한다. 持世凡夫多於樂受生愛苦受生恚不苦不樂受生癡是諸凡夫以愛恚癡故深入闇冥不能如實知受陰

 

또한 사랑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상을 알지 못하여 사랑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깊이 탐착한다. 이른바 이는 나[]이며, 내 것[我所]이다. 이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따위이다.亦不知愛恚癡相深貪著愛恚癡所謂是我我所是此彼等

 

지세야, 보살마하살이 이 가운데서 느낌의 쌓임을 바르게 관하면 사랑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끌리지 않는다. 만약 사랑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생기면 곧 능히 끊어 없애고 바른 길을 행한다. 持世菩薩摩訶薩於此中正觀受陰者不爲愛恚癡所牽若生愛恚癡卽能除斷行於正道

 

즐거운 느낌 가운데서 사랑의 결사[結使; 번뇌]를 끊기 때문에 부지런히 정진하고, 괴로운 느낌 가운데서 성냄의 결사를 끊기 때문에 부지런히 정진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중에서 어리석음의 결사를 끊기 때문에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 가지 느낌<삼수상三受相; 괴롭다는 고수(苦受), 즐겁다는 낙수(樂受),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수(捨受)>의 상을 여실히 안다.於樂受中斷愛結使故勤精進於苦受中斷恚結使故勤精進於不苦不樂受中斷癡結使故勤精進如實知三受相

 

이때 느끼는 것(3수상)이 있기를 혹은 괴로움이거나 혹은 즐거움이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어도 모두 떠나서 탐착하지 않는다. 사랑의 결사를 떠나고 성냄의 결사를 떠나고 어리석음의 결사를 떠나, 모든 느낌이 일어날 때 능히 깨달아 느낌의 쌓임은 무상하다고 여실히 안다. 爾時有所受若苦若樂若不苦不樂皆離不著離愛結使離恚結使離癡結使諸受起時皆能知見知受陰如實無常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고 나면 느낌의 쌓임 안에서 탐욕에 물드는 것을 남김없이 끊는다. 느낌의 쌓임을 끊고, 탐욕으로 물드는 길에 들어도 모든 느낌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若能如是知已於受陰中欲染悉斷入斷受陰欲染道中不爲諸受所污

 

이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이 바르게 느낌의 쌓임을 관하면 느낌의 쌓임을 여실하게 알고, 느낌의 쌓임이 모인 것[]과 느낌의 쌓임이 없어지는 것[]과 느낌의 쌓임이 없어지는 길[滅道]을 알고, 是菩薩若如是正觀受陰如實知受陰知受陰集受陰滅受陰滅道

 

그런 뒤에 느낌의 쌓임은 곧 무생(無生)의 상

이라고 여실하게 알며, 무생의 상으로써 느낌의 쌓임은 상이 없다고 통달한다.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느낌의 쌓임을 관찰하고 선택한다.然後如實知受陰是無生相以無生相通達受陰無相持世菩薩摩訶薩如是觀察選擇受陰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생각의 쌓임[想陰]을 관찰하고 선택한다고 하는가? 持世何謂菩薩摩訶薩觀察選擇想陰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생각의 쌓임을 관할 때, 생각의 쌓임을 봄에 모두가 전도됨으로 좇아 일어나고 허망하며, 견고하지 않으며, 진실하지 않으며, 본래부터 상()을 낳지 않으며, 인연의 화합으로써 전생[先世]의 업력(業力)을 좇아 일어난다. 이러한 생각을 한다.菩薩摩訶薩正觀想陰時見想陰皆從顚倒起虛妄不堅固不眞實從本已來不生相以因緣和合從先世業力起作是念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생각의 쌓임이다. 허망이 쌓인 것은 곧 생각의 쌓임이다. 전도된 것의 쌓임은 곧 생각의 쌓임이다. 생각의 쌓임 안에 생각이 쌓인 상이 없는 것을 비유하면 늦은 봄의 달무리와 같다. 명자(名字) 때문에 설하여 불꽃의 쌓임이라고 한다. 非陰是想陰虛妄陰是想陰顚倒陰是想陰想陰中無想陰想譬如春後月焰以名字故說名爲焰

 

생각의 쌓임도 이와 같다. 인식[]() 때문에 설하여 생각의 쌓임이라고 한다. 범부는 이 허망한 생각 때문에 얽매인다. 혹은 즐거움을 알고, 혹은 괴로움을 알고,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알고, 혹은 춥고 더운 것을 알고, 혹은 남자와 여자를 안다.陰想陰亦如是以識相故說名想陰凡夫於此爲虛妄想所繫或識樂或識苦或識不苦不樂或識寒熱或識男女

 

혹은 다섯 가지 길(5)에 나고 죽는 것을 알고, 혹은 합()하는 것을 알고, 혹은 흩어지는 것을 알고, 혹은 과거를 알고, 혹은 미래를 알고, 혹은 현재를 알고, 혹은 좋은 것을 알고, 혹은 더러운 것을 알고, 혹은 있는 것을 알고, 혹은 없는 것을 안다. 이는 범부의 생각으로서 모두가 전도됨과 허망 때문에 여러 가지 인연에 속한다. 다만 거짓으로 이름하여 생각의 쌓임이라고 할 뿐이다. 或識五道生死或識合或識散或識過去或識未來或識現在或識好或識醜或識有或識無是凡夫想皆爲顚倒虛妄屬諸因緣但假名爲想陰

 

이 가운데 혹은 밖에, 혹은 안에 생각이란 없다. 범부의 사람은 허망한 생각에 얽매었기 때문에, 혹은 탐욕을 알고, 혹은 성냄을 알고, 혹은 어리석음을 알고, 혹은 아내와 자식을 안다. 범부는 이 생각의 쌓임에 의지하고 허망한 것을 탐착하며, 이 생각의 쌓임 때문에 분주히 뛰어서 가고 온다. 생각의 쌓임이 곧 허망한 것을 여실하게 관하지 못한다. 此中若內若外無有想者凡夫人虛妄想所繫故或識貪欲或識瞋恚或識愚癡或識妻子凡夫依止是想陰貪著虛妄以是想陰馳走往來不能如實觀想陰是虛妄

 

범부의 사람은 나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생각과 남자와 여자에 대한 생각으로 생각의 쌓임에 얽매어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의 쌓임에 탐착하여 나는 곧 생각이 쌓인 것이며, 내 것은 곧 생각이 쌓인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범부의 배움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凡夫人以我想彼想男女想繫於想陰不能得脫貪著想陰我是想陰我所是想陰我等不應隨凡夫學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바르게 생각의 쌓임을 관하므로 생각의 쌓임 가운데서 생각이 쌓인 상을 얻을 수가 없다. 마치 불꽃의 쌓임 가운데서 불꽃이 쌓인 상을 얻을 수가 없는 것과 같다. 菩薩摩訶薩如是正觀想陰想陰中想陰想不可得如焰陰中焰陰相不可得

 

보살이 생각의 쌓임은 불꽃의 성품과 같다고 보면 과거의 생각의 쌓임도 탐하지 않고 받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미래의 생각의 쌓임도 탐하지 않고 받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현재의 생각의 쌓임도 머무르지 않는다. 혹은 나, 혹은 그를 분별하지 않는다. 菩薩見想陰如焰性過去想陰不貪不受不著未來想陰亦不貪不受不著現在想陰不住不分別若我若彼

 

즉 그 생각과 느낌이 쌓이는 길을 없애고, 생각의 쌓임은 곧 남이 없는 것[無生]이라고 통달하며, 생각의 쌓임이 혹은 온 곳과 혹은 가는 곳을 보지 않는다. 다만 선세의 업인(業因)이 전도되어 상응하여 일어난 것으로 현재의 연()에 묶인 것이며, 쌓임이 없음은 곧 생각의 쌓임이다. 卽彼滅想受陰道通達想陰是無生不見想陰若來處若去處但以顚倒相應先世業因所起現在緣所繫無陰是想陰

 

생각의 쌓임을 관찰하고 선택함에 좇아오는 곳이 없고, 또 가는 곳도 없다. 즉 생각의 쌓임은 생함이 없는 것이라고 통달하고, 또 생각의 쌓임이 없어지는 것을 분별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생각과 느낌의 쌓임을 없애기 위한 까닭이며, 또한 여실한 지견(知見;사물을 바르게 관찰하는 견해)에 머무는 까닭이다.觀察選擇想陰無所從來亦無所去卽通達想陰無生亦不分別想陰滅但爲滅一切想受陰故亦住如實知見故

 

보살이 여실하게 생각의 쌓임을 관할 때, 모든 생각의 길을 멀리 떠나며, 마음도 모든 생각의 길에 머물지 않는다. 다만 지견으로서의 생각의 쌓임과 또 여실한 생각의 쌓임과 탐착하지 않는 생각의 쌓임에 머물러 여실하게 모든 생각의 쌓임을 관찰하고, 여실하게 생각의 쌓임이 모이고 없어지고 다하는 것을 안다.菩薩如實觀想陰時遠離一切想道心亦不住一切想道但住知見想陰亦如實想陰不貪著想陰如實觀察一切想陰如實知想陰集滅盡

 

지세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생각의 쌓임을 바르게 관찰하고 선택하면 곧 생각의 쌓임의 번뇌[欲染]를 떠나고, 또한 생각의 쌓임의 번뇌를 끊는 길을 행한다.持世菩薩摩訶薩如是正觀察選擇想陰則離想陰欲染亦能行斷想陰欲染道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행의 쌓임[行陰]을 관찰하고 선택한다고 말하는가? 持世何謂菩薩摩訶薩觀察選擇行陰

 

지세야, 보살마하살이 행의 쌓임을 관함에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고 허망한 생각[憶想]과 분별을 임시로 빌려서 있는 것이다.持世菩薩摩訶薩觀行陰從顚倒起虛妄憶想分別假借而有

 

보살이 이때 혹은 몸의 행()과 입의 행과 뜻의 행 모두가 부정(不淨)하고 무상(無常)하고 고()이고 공()하며 무아(無我)라고 관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이 생각을 한다.菩薩爾時若身行口行意行皆觀不淨無常苦空無我如是觀時作是念

 

쌓임이 아닌 것은 곧 행의 쌓임이다. 괴로움이 쌓인 것은 곧 행의 쌓임이다. 인연으로 생하는 쌓임은 곧 행의 쌓임인 것이다. 모양[]이 쌓인 것도 행의 쌓임이다. 모든 행의 쌓임은 더함이 없고 덜함이 없고 모임도 없다. 몸의 행과 입의 행과 뜻의 행은 짓는 자가 없다.’非陰是行陰苦陰是行陰因緣生陰是行陰像陰是行陰諸行陰無增無減無集若身行口行意行無有作者

지혜로운 자는 느낌[]이 곧 행의 쌓임이라 하여 탐착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智者不貪受是行陰何以故

 

이 모든 몸의 행은 몸 안에 있지 않으며, 몸 밖에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다. 입의 행과 뜻의 행도 이와 같아서 뜻 안에 있지 않고, 뜻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 행의 쌓임 안에 행이 쌓인 상()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是諸身行不在身內不在身外不在中閒口行意行亦如是不在意內不在意外不在中閒行陰中無行陰相何以故

 

이 행의 쌓임은 뭇 인연이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난 것으로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으며 이전에 지은 업의 과보가 거두는 것이며, 또 인연으로 묶여 능히 짓는 것[所行]이 있다. 모든 지음이 있는 행, 혹은 몸의 행과 혹은 입의 행과 혹은 뜻의 행은 모두가 진실한 행이 아니다. 이는 지음이 없는 행이며, 이는 허망한 행이며, 이는 전도된 행이다. 이런 까닭에 쌓임이 아닌 것은 곧 행의 쌓임이라고 설한다. 무슨 까닭인가? 是行陰從衆因緣顚倒起虛妄不眞先業果報所攝亦令因緣所繫能有所行諸所有行若身行若口行若意行皆非眞行是無所有行是虛妄行是顚倒行是故說非陰是行陰何以故

 

지혜로운 자는 결정코 행이 쌓인 상을 얻지 않는다. 이는 몸의 행이다, 이는 입의 행이다, 이는 뜻의 행이라든가 이곳이라든가 저곳이라든가, 혹은 안, 혹은 밖, 또는 몸과 입과 뜻의 행은 더욱 결정적인 행의 상이라고 얻을 것도 설할 것도 없다. 하물며 행의 쌓임을 얻을 수 있고 설할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쌓임이 없는 것은 곧 행의 쌓임이라고 설한다.智者不決定得行陰相是身行是口行是意行此處彼處若內若外又身口意行尚無決定行相可得可說何況行陰可得可說是故說無陰是行陰

 

범부는 전도된 생각을 일으켜 몸과 입과 뜻의 행에 탐착하고 잊지 않고 생각해서 이는 행의 쌓임이라고 분별하며, 행의 쌓임 때문에 묶여서 분주히 뛰어서 가고 온다. 이 범부의 사람은 전도됨으로 해서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일으키고, 일으킨 다음에는 탐착하여 돌아가는 곳이 법이 없음에도 법의 생각을 내고 쌓임[]이 없음에도 쌓임의 생각을 내는 곳이다. 전도된 행에 탐착하기 때문에 행의 쌓임에 묶여 다섯 갈래의 길(5)에 오고 가며 항상 몸과 입과 뜻의 행을 따르므로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여실하게 관할 수가 없다. 凡夫起顚倒想貪著身口意行憶念分別是行陰爲行陰所縛馳走往來是凡夫人以顚倒故起身口意行起已貪著歸趣無法生法想無陰生陰想貪著顚倒行故爲行陰所繫往來五道常隨身口意行不能如實觀身口意行

 

여실하게 행의 쌓임을 관할 수 없기 때문에 몸과 입과 뜻으로 모든 행을 일으킨다. 이는 모든 범부가 전도된 것에 탐착하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은 법에 탐착하기 때문에, 허망에 탐착하기 때문에 수(; 수량)를 행의 쌓임이라고 이름한다.不能如實觀行陰故以身口意而起諸行是諸凡夫著顚倒故著不眞法故著虛妄故數名行陰

 

지세야, 보살은 이 가운데서 이와 같이 모든 행은 근본이 없다고 바르게 관한다. 쇠약하고 용렬하고 힘이 없는 뭇 연[衆緣]의 화합으로써 행의 쌓임을 설할 것이다. 이 가운데 진실한 행의 쌓임은 없다. 쌓임이 없음은 곧 행의 쌓임이며, 본래부터 줄곧 생하지 않는 것은 곧 행의 쌓임이다. 持世菩薩於此中如是正觀諸行無有根本羸劣無力以衆緣和合可說行陰是中無有眞實行陰無陰是行陰從本已來不生是行陰

 

성품이 없음은 곧 행의 쌓임이다. 모든 행의 과거[前際]는 얻을 수가 없다. 미래[後際]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中際]도 얻을 수가 없다. 머무는 때도 없고, 모든 행은 생각마다 나고 없어진다.無性是行陰諸行前際不可得後際不可得中際不可得無有住時諸行念念生滅

 

지세야, 보살은 이와 같이 바르게 행의 쌓임을 관한다.

()하여 얻을 수가 없고 굳고 튼튼하지 않은 상이며, 나아가 호리(毫釐)도 얻을 수가 없다.’ 持世菩薩如是正觀行陰空不可得不堅牢相乃至毫釐亦不可得

 

이 모든 범부는 굳고 튼튼하지 않은 법에 묶이고, 행의 쌓임에 묶이고, 탐착에 묶여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일으킨다. 나는 곧 행이며, 내 것은 곧 행이라고, 이와 같이 업을 일으켜 행의 쌓임에 묶여 행의 쌓임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서 무명(無明)의 어리석은 어둠 속에 들고, 모든 행 가운데서 진실의 상을 낳고 전도되기 때문에 느낌[]과 취()함과 행의 쌓임에 탐착한다. 作是念是諸凡夫爲不堅牢法所繫行陰所繫貪著所縛起身口意行我是行我所是行起如是業爲行陰所縛不知行陰性入無明癡冥於諸行中生眞實想以顚倒故貪著受取行陰

 

이 사람은 느낌과 취함과 행의 쌓임에 탐착하는 까닭에 혹은 즐거운 행을 일으키고, 혹은 괴로운 행을 일으키고,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행을 일으킨다. 이 사람은 즐거운 행을 일으켜서 즐거운 몸을 얻고, 괴로운 행을 일으켜서는 괴로운 몸을 얻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행을 일으켜서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을 얻는다. 이 사람은 즐거운 몸을 얻고서는 사랑을 낳고, 괴로운 몸을 얻고서는 성을 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을 얻고서는 어리석음을 낳는다. 是人貪著受取行陰故或起樂行或起苦行或起不苦不樂行是人起樂行已得樂身起苦行已得苦身起不苦不樂行已得不苦不樂身是人得樂身已生愛得苦身已生瞋得不苦不樂身已生愚癡

 

이 사람은 사랑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모든 행의 잘못과 악()을 보지 않고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청정하게 하지 못한다. 이 사람은 몸과 입과 뜻의 행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은 길에 떨어진다. 이른바 지옥과 축생(畜生)과 아귀(餓鬼)이다. 혹 때로는 천인(天人) 속에 나서 몸과 입과 뜻의 행에 탐착하고 깊이 행의 쌓임에 집착한다.是人以愛瞋癡故不見諸行過惡不能淸淨身口意行是人身口意行不淸淨故墮不淸淨道中所謂地獄畜生餓鬼或時蹔生天人中貪著身口意行深著行陰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들은 마땅히 범부의 배움에 따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마땅히 행의 쌓임에 탐착하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행의 쌓임의 잘못과 악을 관해야 한다. 마땅히 행의 쌓임을 벗어날 길을 구해야 한다.’菩薩摩訶薩應如是正觀今我等不應隨凡夫學我等應淸淨身口意行不應貪著行陰應觀行陰過惡應求出行陰道

 

이와 같이 관하는 자를 이름하여 여실하고 바르게 행의 쌓임을 관한다고 한다. 또 행의 쌓임의 무상함을 바르게 관한다고 이름한다. 즉시 여실하게 모든 행과 모든 행의 모임[]과 모든 행의 없어짐[]과 모든 행의 없어지는 길을 관하여 모든 행을 받지 않고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행의 쌓임에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관할 때, 행의 상을 멀리 떠나고, 또한 행의 쌓임이 없는 길을 행한다. 如是觀者名爲如實正觀行陰亦名正觀行陰無常卽時如實觀諸行諸行集諸行滅諸行滅道不受不貪不著諸行亦不貪不著行陰如是觀時遠離行相亦行無行陰道

 

즉 모든 행의 공()함을 관하여 일체의 모든 행 중에서 놀라고 두려워 싫어하여 떠나려는[厭離] 마음을 내고 다만 청정한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일으킨다. 행의 상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행의 쌓임의 상을 떠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얻은 바가 있는 몸이며 모두가 곧 청정하다. 무슨 까닭인가? 卽觀諸行空於一切諸行中驚怖生厭離心但起淸淨身口意行壞行相故離行陰相故是人有所得身皆是淸淨何以故

 

이 사람은 몸의 업이 청정하고 입의 업이 청정하고 뜻의 업이 청정하며, 몸의 행이 청정하고 입의 행이 청정하고 뜻의 행이 청정하다. 이 사람은 행의 쌓임의 상을 멀리 떠나고, 모든 법과 근본의 상을 무너뜨린다.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할 때, 행의 쌓임이 쫓아오는 곳이 없고, 또 가는 곳도 없음을 본다. 是人身業淸淨口業淸淨意業淸淨身行淸淨口行淸淨意行淸淨是人遠離行陰相壞諸法及根本相如是正觀時見行陰無所從來亦無所去

 

결정코 모든 행의 생하는 상을 얻지 않으며, 또한 결정코 없어지는 상도 얻지 않는다. 즉 모든 행의 생함과 멸함이 없는 상을 관하여 일체의 모든 행도 역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不得諸行決定生相亦不得決定滅相卽觀諸行無生滅相一切諸行亦無生滅

 

이 사람은 일체의 모든 행의 생멸이 없는 상을 관하여 싫어하여 떠나려는 마음을 내고 모든 행이 모이고 없어지는 상을 바르게 통달한다. 비록 모든 행의 생함이 없는 상을 밝혔다[] 하더라도 모든 행의 상에 잘 통달한다. 무슨 까닭인가? 是人觀一切諸行無生滅相生厭離心正通達諸行集滅相雖證諸行無生相而善通達諸行相何以故

 

지세야, 이 행의 쌓임의 결정적인 상이 없는 것은, 비유컨대 파초와 같아서 굳고 튼튼한 상을 얻을 수가 없다. 굳고 튼튼함이 없는 상도 얻을 수가 없다. 행의 쌓임도 이와 같다. 굳고 튼튼한 상을 얻을 수가 없고, 굳고 튼튼함이 없는 상도 얻을 수가 없다.持世是行陰無決定相譬如芭蕉堅牢相不可得無堅牢相亦不可得行陰亦如是堅牢相不可得無堅牢相亦不可得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고 선택하고 사유하여 행의 쌓임에 든다.”持世菩薩摩訶薩如是觀察選擇思惟入於行陰(1)

 

<지세경 2권>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식의 쌓임[識陰]을 관찰하고 선택한다고 말하는가? 持世何謂菩薩摩訶薩正觀察選擇識陰

 

보살마하살은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식의 쌓임이며, 전도된 쌓임은 곧 식의 쌓임이며, 허망의 쌓임은 곧 식의 쌓임이라고 관한다. 무슨 까닭인가? 菩薩摩訶薩觀非陰是識陰顚倒陰是識陰虛妄陰是識陰何以故

 

지세야, 식의 쌓임은 전도된 것을 쫓아서 일어나고 허망한 연()에 묶였으며 이전의 업()을 쫓아 있고, 현재의 연에 묶여 뭇 인연에 속한다. 허망은 소유(所有)함이 없고 생각과 분별로 일어나고 식으로부터 생긴다. 持世是識陰從顚倒起虛妄緣所繫從先業有現在緣所繫屬衆因緣虛妄無所有憶想分別起從識而生

 

인식하는 바가 있는 까닭에 이를 이름하여 식이라고 한다. 생각과 분별에서 각관(覺觀)이 생긴다. 임시로 빌려서 있으며 인식하는 바가 있는 까닭에 수()를 이름하여 식이라고 한다. 有所識故名之爲識從憶想分別覺觀生假借而有有所識故數名爲識

 

온갖 사물을 인식하는 까닭이며, 마음의 업을 일으키는 까닭이며, 사유(思惟)하는 까닭이며, 뭇 인연의 생상(生相) 때문이며, 갖가지 사유를 일으키는 까닭에, ()를 식의 쌓임이라고 이름한다. 以識諸物故以起心業故以思惟故衆緣生相故起種種思惟故數名識陰

 

인식하는 바가 있음으로부터 식의 상()이 나옴이 있다. 마음의 업을 나타내는 까닭이며, 사유를 섭수하는 까닭에 수()를 식의 쌓임이라고 이름한다. 혹은 이름하여 마음[]이라고 하며, 혹은 이름하여 뜻[]이라고 하며, 혹은 이름하여 식()이라고 한다. 從有所識有識像出示心業故攝思惟故數名識陰或名爲心或名爲意或名爲識

 

이 모두는 뜻의 업이 분별하는 까닭에 식의 쌓임이 섭수하는 바로서 식의 상()과 식의 행과 식의 성품을 나타내는 까닭에 수를 식의 쌓임이라고 이름한다. 皆是意業分別故識陰所攝識相識行識性示故數名識陰

이와 같이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식의 쌓임인 것이다. 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짓지 않는 것이나 다만 전도되어 상응하여 허망한 식()을 연하기 때문에 수를 식의 쌓임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如是非陰是識陰不生不起不作但以顚倒相應緣虛妄識故數名識陰何以故

 

이 식의 쌓임은 뭇 인연으로부터 생겨 자성(自性)이 없고, 차례로 상속(相續)하여 생하며 생각마다 생하고 멸한다. 是識陰從衆因緣生無自性次第相續生念念生滅

 

식은 낳지 않는 쌓임의 상을 연()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의 쌓임이 낳는 상[生相; 色心에서 일어나는 ]은 얻을 수 없고, 결정적인 상도 얻을 수 없다. 낳는 상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며, 결정적인 상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며, 근본을 소유함이 없는 까닭이며, 자상(自相)이 없는 까닭이며, 굳고 튼튼함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는 바르게 관찰하고 선택하여 쌓임이 아닌 것, 이것이 식의 쌓임이라고 통달한다. 是識緣不生陰相何以故是識陰生相不可得決定相亦不可得生相不可得故決定相不可得故根本無所有故自相無故牢堅不可得故智者正觀察選擇通達非陰是識陰

 

범부는 식의 쌓임이 아닌 것에서 식의 쌓임의 상을 낳고, 각관(覺觀)과 분별하는 생각으로 전도되어 상응하여 허망함에 묶인다. 굳이 이름하여 식의 쌓임이라고 한다.凡夫於非識陰生識陰相以覺觀分別憶想顚倒相應虛妄所縛强名爲識陰

 

이 식의 쌓임에 탐착하고, 인식하는 것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여 갖가지 사유(思惟)를 나타내는 까닭에 식의 쌓임을 낳고 일으킨다. 이 사람은 여러 가지로 분별하고, 안의 식에 탐착하며, 밖의 식에 탐착하며, 안과 밖의 식에 탐착하며, 먼 식[遠識]에 탐착하며, 가까운 식[近識]에 탐착하며, 식의 상이기 때문에 분별하고 식의 쌓임을 일으킨다. 貪著是識陰依止所識依止識種種示思惟故生起識陰是人種種分別貪著內識貪著外識貪著內外識貪著遠識貪著近識以識相故分別起識陰

 

이 사람은 생각과 분별로써 혹은 마음[]과 혹은 뜻[], 혹은 식()을 임시로 빌려 굳이 이름하여 이는 마음이다, 이는 뜻이다, 이는 식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마음의 상이 생기는 것을 안다. 이는 범부가 식의 쌓임에 탐착하여 식의 쌓임에 묶인 것이다. 是人以憶想分別若心若意若識假借强名是心是意是識如是知種種心相生是凡夫貪著識陰爲識陰所縛

 

마음과 뜻과 식이 합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식의 쌓임을 일으킨다. 허망한 일을 분별하는 까닭이며, 하나의 상인 까닭이며, 결정적인 상인 까닭에 능히 이는 마음이다, 이는 뜻이다, 이는 식이라고 하게 되어 능히 분별하고 애착한다. 心意識合故起種種識陰分別虛妄事故以一相故以決定相故能得是心是意是識能得分別愛著

 

이 사람은 식의 쌓임에 의지하여 깊이 식을 탐하는 까닭에 또한 과거의 식의 쌓임을 얻어 탐착하는 생각[]이 있고, 또 미래의 식의 쌓임을 얻어 탐착하는 생각이 있으며, 또 현재의 식의 쌓임을 얻어 탐착하는 생각이 있다.是人依止識陰深貪識故亦得過去識陰貪著念有亦得未來識陰貪著念有亦得現在識陰貪著念有

 

모든 범부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 가운데서 식의 쌓임을 헤아리고 얻어 탐착하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에 탐착하여 식의 쌓임에 묶이고, 그 아는 바를 귀하게 여긴다. 諸凡夫於見聞覺知法中計得識陰貪著念有是人貪著見聞覺知法爲識陰所縛貴其所知

 

마음과 뜻과 식이 합하여 묶임으로 해서 분주히 뛰어서 가고 온다. 이른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이르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에 이르는 모두가 식의 쌓임에 묶였기 때문에 여실하게 식의 쌓임을 알지 못한다.以心意識合繫故馳走往來所謂從此世至彼世從彼世至此世皆識陰所縛故不能如實知識陰

 

식의 쌓임은 곧 허망함과 실답지 않음[不實]과 전도되어 상응한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을 인하여 일어나며, 이 안에는 진실한 식[實識]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이 실답게 관하지 못하면, 혹은 좋은 식[善識]을 일으키고, 혹은 좋지 않은 식[不善識]을 일으키며, 혹은 좋고 좋지 않은 식[善不善識]을 일으킨다. 이 사람은 항상 식의 행에 따르고, 식이 생하는 곳을 모르며, 식의 여실한 모양을 모른다.識陰是虛妄不實顚倒相應因見聞覺知法起此中無有實識者若不能如是實觀或起善識或起不善識或起善不善識是人常隨識行不知識所生處不知識如實相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서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 식의 쌓임은 허망한 식으로부터 일어난다고 안다.持世菩薩摩訶薩於此中如是正觀知識陰從虛妄識起

 

이른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 중의 뭇 인연에서 생한다. 법이 없는데 법의 생각이 생겼으므로 식의 쌓임에 탐착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범부의 배움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지금 우리들은 여실하고 바르게 식을 관찰하고 선택하여, 여실하고 바르게 식의 쌓임을 관찰하고 선택해야 한다.’所謂見聞覺知法中衆因緣生無法生法想故貪著識陰我等不應隨凡夫學人我等當如實正觀察選擇識如實正觀察選擇識陰

 

이 모든 보살이 여실하게 관할 때, 식의 쌓임은 허망하고 실답지 않다고 알며 본래부터 항상 생하지 않는 상()임을 알아,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식의 쌓임이며, ()의 쌓임은 곧 식의 쌓임이며, ()의 쌓임은 곧 식의 쌓임이라고 안다. 是諸菩薩如實觀時知識陰虛妄不實從本已來常不生相知非陰是識陰像陰是識陰幻陰是識陰

 

비유컨대 요술로 된 사람의 식과 같이 안에 있지 않고, 또한 밖에 있지 않고, 또 중간에도 있지 않다. 식의 성품 또한 이와 같아서 환()의 성품과 같이 허망한 연()에서 생기고 생각과 분별로부터 일어난다. 실다운 일[實事]이 없으며 인형[機關木人]과 같다.譬如幻所化人識不在內亦不在外亦不在中閒識性亦如是如幻性虛妄緣生從憶想分別起無有實事如機關木人

 

식은 또 이와 같이 전도됨으로부터 일어나고 허망한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할 때, 식은 모두가 무상(無常)하고 고()이고 부정(不淨)하고 무아(無我)라고 알며, 식의 상은 환과 같다고 알며, 식의 성품은 환과 같다고 관한다. 識亦如是從顚倒起虛妄因緣和合故有如是觀時知識皆無常苦不淨無我知識相如幻觀識性如幻

 

보살은 이때 이 같은 생각을 한다.

세간은 매우 어지럽고 어리석다. 이른바 생각과 분별로부터 세간에 식을 일으켜 마음과 뜻과 식과 합한 3()는 다만 식일 뿐이다. 菩薩爾時作是念世閒甚爲狂癡所謂從憶想分別識起於世閒與心意識合三界但皆是識

 

이 마음()과 뜻()과 식()은 또한 형상[]이 없고, 방위[]도 없으며, 법 안에 있지 않고 법 밖에 있지 않으며, 범부는 허망함에 상응하여 묶였기 때문에 식의 쌓임 가운데서 혹은 , 혹은 내 것이라고 탐착한다. 是心意識亦無形無方不在法內不在法外凡夫爲虛妄相應所縛故於識陰中貪著若我若我所

 

이 사람은 식의 쌓임은 안에 있다고 탐착하며, 식의 쌓임은 밖에 있다고 탐착하며, 식의 쌓임은 안팎에 있다고 탐착하며, 식의 쌓임은 그와 나에게 있다고 탐착한다. 是人貪著識陰在內貪著識陰在外貪著識陰在內外貪著識陰在彼我

 

이 사람은 식의 쌓임을 귀하게 여겨 식의 쌓임에 얽매인다. 식의 쌓임의 맛을 느껴 식이 쌓인 상()을 설한다. 이른바 혹은 마음과, 혹은 뜻과, 혹은 식과 그 맛의 행을 따르는 까닭에 식의 쌓임을 탐착하여 받는다. 是人貴此識陰爲識陰所縛受識陰味說識陰相所謂若心若意若識隨味行故貪受識陰

 

이 사람은 식에 얽매인다. 식의 쌓임과 합하는 까닭에 마음과 뜻과 식에 끌린다. 마음과 뜻과 식은 인연의 힘인 까닭에 이 범부를 낳는다. 是人爲識所縛識陰合故爲心意識所牽以心意識因緣力故生是凡夫

 

만약 아래 생각을 일으키면, 아래 몸(下身; 지옥, 아귀, 축생계)을 얻고, 혹은 위의 생각을 일으키면, 위의 몸(上身; 천상계)을 얻으며, 만일 중간의 생각을 일으키면 중간의 몸(中身; 아수리, 인간계)을 얻는다. 若起下思得下身若起上思得上身若起中思得中身

 

이 사람은 마음과 뜻과 식의 힘에 따르는 까닭에 생하여 모든 6근과 6()에 의지하고, 식의 쌓임에 탐착하는 까닭에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다.是人隨心意識力故生依止諸入貪著識陰故不脫生老病死憂悲苦惱

 

보살은 이 안에서 여실히 바르게 식의 쌓임을 관하고 선택한다. 여실하고 바르게 식의 쌓임의 무상한 상()을 관하는 까닭에 과거의 식의 쌓임을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식의 쌓임이라고 안다. 菩薩於此中如實正觀選擇識陰如實正觀識陰無常相故過去識陰不貪不著不念知非陰是識陰

 

미래세(未來世)의 식의 쌓임도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식의 쌓임이라고 안다. 현재의 식의 쌓임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여실하게 식의 쌓임의 무상한 상을 알며, 여실하게 식의 쌓임이 생하고 멸하는 상을 안다. 未來世識陰亦不貪不著不念知非陰是識陰現在識陰亦不依止如實知識陰無常相如實知識陰生滅相

 

만약 이와 같이 사유하여 바르게 식의 쌓임을 관하면, 이를 바르게 관하여 식의 쌓임의 길에 든다고 한다. 이른바 여실하게 식을 알고, 여실하게 식의 모임을 알고, 여실하게 식의 멸()을 알고, 여실하게 식이 멸하는 길을 안다. 若如是思惟正觀識陰是名正觀入識陰道所謂如實知識如實知識集如實知識滅如實知識滅道

 

이 사람은 여실하게 식의 쌓임이 모이고 멸하는 상을 관하여 능히 식의 쌓임을 무너뜨리고, 능히 일체의 상()을 끊어 식의 쌓임이 모이고 멸하는 상을 알며, 또 식의 쌓임이 모이고 멸하는 상에 통달한다.是人如實觀識陰集滅相能壞識陰能斷一切相知識陰集滅相亦通達識陰集滅相

 

보살은 이때 또한 식의 쌓임을 생하지 않는다. 또 식의 쌓임을 멸하지도 않는다. 이 식의 쌓임은 본래부터 생함이 없다. 이와 같이 관할 때, 식의 멸하는 상을 분별하지 않고, 식의 쌓임이 생함이 없는 상에 통달한다. 무슨 까닭인가? 菩薩爾時亦不生識陰亦不滅識陰是識陰從本已來無生如是觀時不分別識滅相通達識陰無生相何以故

 

지세야, 이 식의 쌓임은 생함이 없고 상이 없으며 이루는 것도 없다. 이 식의 쌓임이 생하는 성품이 허망하기 때문에 생함이 없는 상()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이다. 持世是識陰無生無相無成是識陰生性虛妄故入在無生相中

 

지세야, 식의 쌓임은 마침내 생멸하는 상이 있지 않다. 이 식의 쌓임의 상은 뭇 인연으로부터 생한다.持世識陰終不有生成相是識陰相從衆因緣生

지세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인연의 법을 관함에 쌓임이 아닌 것은 곧 식의 쌓임인 것이다. 관찰하고 선택하여 믿고 이해하며 깨달아 알아서 모든 있는 바 식에 통달하여 모두 그 진실을 안다. 보살은 식의 쌓임의 진실을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일체 반연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안다.持世菩薩摩訶薩如是觀因緣法非陰是識陰觀察選擇信解證知通達諸所有識悉皆知實菩薩知識陰實故如是一切所緣知皆破壞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식의 쌓임을 관하고, 이 식의 쌓임은 생함이 없는 것이며, 지음이 없는 것이며, 일어남이 없는 것이며, 받음이 없는 것이며, 느끼는 것도 없는 것이라고 안다. 持世菩薩摩訶薩如是觀識陰知是識陰無生者無作者無起者無受者無所受者

 

다만 모든 연[衆緣]으로써 생하며, 뭇 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있으며,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을 연하는 까닭에 유(有情)에 묶이며, 본래부터 항상 필경공(畢竟空; 절대 부정하는 까지도 )한 것)인 것이다.但以衆緣生衆緣合故有緣見聞覺識法故繫有從本已來常畢竟空

 

이와 같이 식의 쌓임을 관할 때, 즉 식의 쌓임은 곧 지음이 없으며 일어남이 없는[無起; 선악(善惡)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상이라고 알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如是觀識陰時卽知識陰是無作無起相不貴不著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바르게 관찰하고 선택하여 식의 쌓임에 든다. 持世菩薩摩訶薩如是正觀察選擇入識陰

 

만약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은 방편으로 다섯 가지(5;색수상행식) 쌓임에 들고, 능히 이와 같은 방편으로 바르게 다섯 가지 쌓임을 관하면 이를 통달하여 다섯 가지 쌓임이 모이고 멸하고 멸하는 길에 든다라고 한다. 若菩薩能如是方便入五陰能如是方便正觀五陰是名通達入五陰集滅道

 

모두가 능히 모든 쌓임의 상()을 끊고 참답게 다섯 가지 쌓임의 방편을 안다. 이 방편 때문으로 해서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五受陰] 중에서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다. 皆能斷諸陰相眞知五陰方便以是方便故於五受陰中不貪不著不縛不繫

 

여실하게 색의 무상(無常)의 상을 안다. 如實知色無常相

 

이 보살이 만약 색()에 대해서 탐욕의 물듦이 있다면 곧 능히 끊어 없앤다. 또 여실하게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을 알고, 또 여실하게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의 무상의 상()을 알며, 혹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 가운데서 탐욕의 물듦이 있으면 곧 능히 끊어 없앤다. 是菩薩若於色有欲染則能除斷亦如實知受想行識亦如實知受想行識無常相若於受想行識中有欲染則能除斷

 

보살은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 중에서 탐욕의 물듦을 끊어 없애는 까닭에, 수순하여 결정적인 다섯 가지 쌓임의 방편에 통달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생멸의 상을 알 수 있다.菩薩於五受陰中除斷欲染故隨順通達決定五陰方便如是觀時能知五受陰細微生滅相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능히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생멸의 상()을 관찰하여 선택한다고 말하는가? 持世何謂菩薩摩訶薩能觀察選擇五受陰細微生滅相

 

<태내 5위>

 

보살마하살은 중생이 처음 태()에 드는 가라라 <歌羅羅; kālala. 태내(胎內)의 5위(位) 중의 하나. 잉태한 첫 7일간의 상태(生有).>의 때를 관한다. 菩薩摩訶薩觀衆生初入胎歌羅羅時

<태내 5위>

가라라
Kalala
(迦邏邏, Kalala / 응 : 凝)시기: 잉태 직후의 7일 상태: 어머니의 피와 아버지의 정액이 결합한 상태로, 마치 맑은 물방울이나 엉긴 젖과 같이 매우 미세한 형태
알부다
Abbuda
(頞部曇, Abbuda / 포 : 疱)시기: 두 번째 7(8~14)상태: '물집'이라는 뜻으로, 가라라 단계에서 조금 더 부풀어 올라 얇은 피부에 싸인 물집이나 거품 같은 형태
폐시
Pesi
(閉尸, Pesi / 굴 : 軟肉)시기: 세 번째 7(15~21)상태: '살덩어리'라는 뜻으로, 물집 형태가 응고되어 굳어지며 만지면 부드러운 살덩어리 형태
건타
Ghana
(鍵南, Ghana / 견 : 堅肉)시기: 네 번째 7(22~28)상태: '단단한 덩어리'라는 뜻으로, 굳어진 살덩어리가 더욱 단단해져서 형태
바라사하
Pasakha
(鉢羅奢羅, Pasakha / 지체 : 肢節)시기: 다섯 번째 7일 이후 (29~출생)상태: '팔다리'라는 뜻으로, 이 단계에서 팔, 다리, 머리 등 인체의 완전한 지체(머리카락, 손발톱 등 포함)가 비로소 뚜렷하게 자라나며 태아의 형태

 

먼저의 다섯 가지 쌓임은 멸하고 곧 다시 다섯 가지 쌓임이 생한다. 이로부터 다섯 가지 쌓임의 생멸의 상을 관한다. 비록 먼저의 식이 멸한다 하여도 또한 다섯 가지 쌓임은 끊어 없어지는 상의 식이 아님을 안다. 가라라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또한 다섯 가지 쌓임은 이르지 않고 항상하지 않음을 안다. 先五陰滅卽更有五陰生從是已來觀五陰生滅相雖先識滅亦知五陰非斷滅相識雖依止歌羅羅亦知五陰不至不常

 

이와 같이 처음 태에 드는 한 생각[一念]과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 생멸하는 상과 가라라로부터 나아가 출생함과 뒤에 증장함과 나아가 죽는 때를 관하여, 이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 생각마다 생멸하는 상을 관한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생멸의 상을 관찰하고 선택한다. 如是觀初入胎一念五受陰生滅相從歌羅羅乃至出生及後增長乃至死時觀此五受陰念念生滅相如是觀察選擇五受陰微細生滅相

 

지세야, 이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생멸의 상이라는 것은 이른바 먼저의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 멸하면 차례로 물()로서 태에 이르는 것이 없으며, 식이 처음으로 합할 때 다섯 가지 쌓임 즉 생멸이 있는 것이다. 是五受陰微細生滅相者所謂先五受陰滅次第無物有至胎識初合時五陰卽有生滅

 

가라라로 인한 다섯 가지 느낌이 쌓인 것을 임시로 이름하여 사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세야, 식은 의지하는 바가 없으면 능히 머물지 못하며 식의 의지하는 바는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 이것이다.因歌羅羅五受陰假名爲人所以者何持世識無所依則不能住識所依者五受陰是

 

지세야, 또 무색계(無色界) 중의 여러 하늘[]의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생멸의 상도 마땅히 이와 같다고 알아라. 持持世又無色界中諸天五受陰細微生滅相亦應如是知

 

지세야, 이와 같이 미세한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 생멸하는 상은 벽지불(辟支佛)의 지혜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 하물며 성문(聲聞)의 지혜에 있어서이겠느냐? 持世如是細微五受陰生滅相辟支佛智慧所不能及何況聲聞智慧

 

오직 모든 부처님 여래만이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을 잘 아시고, 처음 태에 든 미세한 생멸의 상으로부터 무색천(無色天)의 여러 가지 쌓임이 생각마다 생멸하는 것에 미친다. 惟諸佛如來善知五受陰從初入胎細微生滅相及無色天諸陰念念生滅

 

이른바 일체의 지혜와 일체의 세간을 뛰어넘은 지혜인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부처님 지혜의 경계에 이른다. 이 사람이 비록 이와 같이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상을 관찰하고 선택한다 하여도, 처음 태에 든 것으로부터 나아가 무색천까지,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다 알 수는 없다.所謂一切智慧出一切世閒智慧菩薩摩訶薩得無生法忍至佛慧境界是人雖如是觀察選擇五受陰細微相從初入胎乃至無色天亦不能究盡如諸佛所知

 

지세야,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남을 따르는 지혜가 없으며, 자연히 모든 지혜와 방편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 持世諸佛如來無有隨他智慧自然得一切智慧方便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은 걸림이 없는 지혜로 일체의 법 가운데서 결정적인 지혜를 얻었으며, 일체의 법 중에서 자재한 힘을 얻으셨다. 諸佛智慧無所不達諸佛無㝵智慧於一切法中得決定慧於一切法中得自在力

 

무슨 까닭인가? 무량하고 무수한 천만억(千萬億)의 아승기겁 동안 깊은 법을 행하셨기 때문이다.何以故於無量無數千萬億阿僧祇劫行於深法故

 

지세야, 모든 범부는 이와 같은 방편으로 다섯 가지 느낌이 쌓인 것을 관할 수가 없다. 하물며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미세한 생멸의 상에 있어서이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持世一切凡夫不能如是方便觀五受陰何況觀五受陰細微生滅相何以故

 

모든 범부의 사람은 다섯 가지 느낌이 쌓인 것을 여실하게 알지 못하며, 범부는 ()를 모르며, 느낌의 쌓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諸凡夫人不能知五受陰如實凡夫不知取不知受陰

 

지세야, 무엇을 말하여 취()라고 하는가?

취란 나의 취[我取]와 중생의 취[衆生取]와 생각의 취[見取]와 계의 취[戒取]와 다섯 가지 쌓임의 취[五陰取]와 열여덟 가지 성품[十八性18]의 취와 열두 가지 인연의 취를 이른다. 이것을 일러 취라고 한다. 持世何謂爲取取名我取衆生取見取戒取五陰取十八性取十二因緣取是名爲取

 

나아가 소유(所有)의 법과 혹은 안, 혹은 밖의 이른바

탐욕의 취[欲取; 물질 욕망에 대한 집착]

존재의 취[有取/見取]

 

보고 듣고 깨닫고 인식하는 취(戒禁取)

나와 내 것의 취(我語取;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乃至所有法若內若外所謂欲取有取見聞覺識取我我所取

 

지세야, 범부는 이 허망한 취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전도된 인연으로 여러 가지 법을 취한다. 持世凡夫於此虛妄取不知不見顚倒因緣而取諸法

 

이 사람은 취에 얽매이고 무명(無明)의 인연으로 여러 가지 행()을 취하며, 여러 가지 행의 인연으로 식()을 취하며, 是人爲取所繫無明因緣取諸行諸行因緣取識

 

식의 인연으로 명색(名色)을 취하며, 명색의 거친 상[麤相]에 중생은 물들고 집착하여 돌아간다. 識因緣取名色名色麤相衆生染著歸趣

 

이른바 색은 색의 화합으로 색에 얽매이는 것을 취하고, 및 네 가지 색이 없는 쌓임과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을 취하고 분별해서 이름[]을 삼은 것이다. 所謂色取色合色縛及取四無色陰受想行識分別爲名

 

지세야, 만약 모든 부처님이 없으면 중생은 곧 아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어 바르게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을 관할 수가 없다. 모든 부처님은 세간에 나와 중생이 의지하는 색을 깨뜨리고, 의지하는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을 깨뜨리며, 화합한 하나의 상까지도 깨뜨리는 까닭에 모든 부처님 여래는 이와 같이 분별하여 설하신다.持世若無諸佛衆生則無所知無所見不能正觀五受陰諸佛出於世閒壞衆生依止色壞依止受想行識壞和合一相故諸佛如來作如是分別說:,

 

너희들이 의지하는 곳과 돌아가는 곳, 이를 색이라 한다. 이 색은 다만 네 가지 요소[四大]로 화합된 것이다. 汝等所依所歸是名爲色是色但以四大和合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은 다만 명자(名字)만 있을 뿐이다. 명색의 상을 성취하는 까닭에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라고 설한다. 너희들 중생은 이 굳고 튼튼하지 않은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에 탐착하여 돌아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受想行識但有名字名色相成就故說五受陰汝等衆生莫貪歸此不牢堅五受陰

 

지세야, 여래는 무슨 까닭으로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을 설하시는가? 持世如來何故說五受陰

 

지세야, 이 범부의 사람은 전도됨으로부터 생하여 무명의 그물에 들고 분주히 뛰어서 오가는데 어디 돌아갈 곳이 있어서이겠느냐.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의 상을 탐하고 받아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

나는 이에 의지하여 마땅히 즐거움을 얻으리라.’持世是凡夫人從顚倒生入無明網馳走往來何所歸趣貪受五受陰相作是念我依止此當以得樂

 

이 사람은 이 즐거움의 생각으로써 다섯 가지 쌓임에 탐하여 돌아간다. 괴로움의 생각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생각으로써 다섯 가지 쌓임에 탐하여 돌아간다. 범부의 사람이 돌아가는 곳과 의지하는 곳, 이를 다섯 가지 쌓임(5)이라고 한다.是人以是樂想貪歸五陰以苦想以不苦不樂想貪歸五陰凡夫人所歸所依止處是名五陰

 

지세야, 모든 범부의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눈이 멀어 다섯 가지 쌓임이 곧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다섯 가지 쌓임이 어느 곳으로부터 오는가를 알지 못하며, 다섯 가지 쌓임을 여실하게 알지 못하는 까닭에 다섯 가지 쌓임을 탐하고 받는다. 持世諸凡夫人從生以來盲不知五陰爲是何等不知五陰從何所來不知五陰如實故貪受五陰

 

이러한 까닭에 설하여 느낌의 쌓임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받는 자 누가 있겠느냐. 이 중에 받는 자는 불가득(不可得)이다. 是故說名受陰於此中誰有受者此中受者不可得

 

다만 전도됨과 탐착함과 분별함과 허망함과 스스로 얽매이는 것과 무명과 어리석음의 어둠 때문에 나를 취하고 내 것을 취하고 이것과 저것을 취한다. 이런 까닭에 느낌의 쌓임이 곧 다섯 가지 쌓임이라고 설한다. 但以顚倒貪著分別虛妄自縛無明癡闇故取我取我所取此彼是故說受陰是五陰

 

취함이 없는 것은 또한 결정된 상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지혜로운 자는 쌓임이 아닌 것은 곧 다섯 가지 느낌이 쌓인 것이며, 전도된 것의 쌓임은 곧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며, 무명의 쌓임은 곧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라고 안다. 無有取者亦無決定相是故智者知非陰是五受陰顚倒陰是五受陰無明陰是五受陰

 

범부는 이 때문에 얽매여 다섯 가지 취()의 쌓임을 탐하여 돌아간다. 탐하여 돌아가기 때문에 어떠한 것들이 취인지, 어떠한 것들이 취()의 쌓임인지를 모른다. 다만 돌아가는바 다섯 가지 쌓임에 탐착하기 때문에 생사에 왕래하여, 이 다섯 가지 쌓임에 탐착하는 까닭에 여러 갈림길[諸趣; 6]을 분주히 뛰어다닌다. 凡夫於此爲所繫縛貪歸五取陰以貪歸故不知何等是取何等是取陰但爲貪著所歸五陰往來生死貪著是五陰故馳走諸趣

 

어떤 것들에게로 탐하여 돌아가는가?

보는 것에게로 탐하여 돌아가고, 듣는 것에 탐하여 돌아가며, 깨달은 것에게로 탐하여 돌아가며, 인식하는 것에게로 탐하여 돌아가며, ()에게로 탐하여 돌아가며, 무명에게로 탐하여 돌아간다. 貪歸何等貪歸見貪歸聞貪歸覺貪歸識貪歸愛貪歸無明

 

이 여러 범부는 애의 결박에 묶여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을 탐애(貪愛)하며, 여러 가지 번뇌[]에 가려져서 무명의 어둠속에 든다. 우리가 지금 어느 곳으로 탐하여 돌아가고, 어느 곳에 얽매어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是諸凡夫爲愛縛所縛貪愛五受陰爲諸蓋所覆入無明闇冥不知不覺我等今爲貪歸何處繫縛何處

 

알지 못하는 까닭에 지옥과 축생과 아귀와 인간과 하늘의 길을 왕래하며 생사에 얽매여 생사에 탐하여 돌아가면서 버리지 못하고 놓아버리지 못하며, 다섯 가지 쌓임을 끊지 못하고, 또 다섯 가지 쌓임의 여실한 상을 알지 못한다. 以不知故往來地獄畜生餓鬼人天道中生死所縛貪歸生死不放不捨不斷五陰亦不能知五陰如實相

 

여실하게 알지 못하는 까닭에 갖가지 고뇌로 인하여 해를 입고 허공의 지옥에 떨어져 나올 곳을 모른다. 이 사람은 나오는 길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생사의 길 가운데서 모든 생사를 받고, 이런 까닭에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다. 不如實知故爲種種苦惱所害墮虛空獄不知出處是人不見出道故於無始生死道中受諸生死是故不能得脫生老病死憂悲苦惱

 

또 무량한 생사의 험한 길을 건널 수가 없다. 또한 모든 큰 괴로움의 무더기[苦聚]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도리어 다시 괴로움으로 돌아가 괴로움에 탐착하고 괴로움에 부림을 당한다. 어떠한 것을 괴로움이라 하는가?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이 그것이다. 생할 때는 다만 괴로움이 생기며 멸할 때는 다만 괴로움의 멸인 것이다.亦不得度無量生死險道亦不得脫諸大苦聚還復歸趣於苦貪著於苦爲苦所使何等爲苦五受陰是生時但苦生滅時但苦滅

 

지세야, 나는 이 인연으로 해서 제자들을 위하여 법을 설한다. 너희들 비구는 마땅히 바르게 색의 쌓임을 관해야 한다. 또 마땅히 여실하게 색의 무상한 상을 알아야 한다. 持世我以是因緣故爲弟子說法汝等比丘當正觀色陰亦當如實知色無常相

너희들이 만약 색 가운데서 탐욕의 물듦이 있으면 마땅히 빨리 끊어 없애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을 바르게 관해야 한다. 또 마땅히 여실하게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의 무상한 상을 알아야 한다. 汝等若於色中有欲染者當疾除斷汝等當正觀受想行識亦當如實知受想行識無常相

만약 느낌과 생각과 행과 식 가운데서 탐욕의 물듦이 있으면 마땅히 빨리 끊어 없애야 한다. 탐욕의 물듦을 끊어 없애기 때문에 마음이 바른 해탈을 얻는 것이다.若於受想行識中有欲染者當疾除斷除斷欲染故心得正解脫

지세야,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설하는 법의 뜻을 알고서 이와 같이 능히 설함과 같이 수행하면 마땅히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에서 벗어남을 얻는다. 持世若有人知我所說法義如是能如說修行當得脫生老病死憂悲苦惱

 

만약 사람이 설함과 같이 수행하지 못하면 색의 결박에 얽매이고 애()의 결박에 얽매여 무명의 어둠속으로 들어가 다섯 가지 쌓임을 탐하여 취한다. 이 사람은 다섯 가지 쌓임을 탐하여 취하기 때문에 생사의 험한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若人不能如說修行爲色縛所縛爲愛繫所繫入無明闇冥貪取五陰是人貪取五陰故不能得脫生死險道

 

지세야, 이 뜻의 까닭으로 해서 내가 설하는 세간(世間)이 나와 다투어도 나는 세간과 다투지 않는다. 持世以是義故我說世閒與我諍我不與世閒諍

 

무엇을 세간이라 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느낌이 쌓인 것을 탐착하는 자는 세간이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 사람은 다섯 가지 쌓임에 탐하여 돌아가 다섯 가지 쌓임에 묶이고 다섯 가지 쌓임의 성품을 알지 못하여 다섯 가지 쌓임의 공()한 상을 알지 못하여서 나와 다툰다. 이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고 거슬러 부처님과 함께 다투는 까닭에 큰 쇠뇌(衰惱;지옥)에 떨어진다. 何等爲世閒所謂貪著五受陰者爲世閒所攝是人貪歸五陰爲五陰所縛不知五陰性不知五陰空相而與我諍是人違逆佛語與佛共諍故墮大衰惱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나, 혹은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 능히 이와 같이 허망한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은 공하고 소유가 없으며, 전도됨과 무명의 어둠으로부터 일어났으며, 허망하고 거짓된 망상은 다만 범부를 속이며, 다섯 가지 쌓임이 아닌 것을 다섯 가지 쌓임을 닮았다고 관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부처님과 다투지 않는다. 부처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는 까닭에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고뇌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若有人於佛在世若佛滅後能如是觀虛妄五受陰空無所有從顚倒無明闇冥起虛誑妄想但誑凡夫非五陰似五陰如是之人不與佛諍不逆佛語故得脫地獄畜生餓鬼苦惱

 

지세야, 모든 부처님은 사람과 다투지 않는다. 일체의 다툼을 끊는다. 이를 일러 부처라고 한다. 다만 중생을 위해 진실한 법을 연설하여 이렇게 말을 한다.  持世諸佛不與人諍斷一切諍訟名之爲佛但爲衆生演說實法作是言

 

너희들이 이전에 취한 것은 모두 전도된 것이다. 일체의 중생은 전도된 힘 때문에 다섯 가지 쌓임에 탐하여 돌아가서 세간에 왕래한다.’ 汝等先所取者皆是顚倒一切衆生顚倒力故貪歸五陰往來世閒

 

이러한 사람은 다섯 가지 쌓임에 탐하여 돌아가서는 갖가지 삿된 소견을 일으키고 갖가지 명자(名字)에 탐하여 돌아가고, 갖가지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에 탐하여 돌아간다. 이런 사람은 갖가지 삿된 소견과 번뇌와 갖가지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 때문에 해를 입어 능히 구제함을 짓고 집을 짓고 돌아감을 짓고 나아가는 길을 짓는 일이 있을 수 없다.是人貪歸五陰已起種種邪見貪歸種種名字貪歸種種憂悲苦惱是人爲種種邪見煩惱種種憂悲苦惱之所殘害無有能爲作救作舍作歸作趣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구제할 수 있다. 범부는 마음이 작고 지혜가 적은 까닭에 다섯 가지 욕망[五欲]을 탐하여 좋아하고 너무 지나치게 다섯 가지 쌓임에 의지한다. 이 범부의 사람은 구제해 주는 자와 돌아가는 자와 의지하는 자와 일체의 고뇌를 벗어난 자와 함께 다툰다.唯佛能救凡夫小心小智慧故貪嗜五欲依止多過五陰是凡夫人與救者歸者依者脫一切苦惱者而共諍訟

 

지세야, 나는 지금 손을 들어 그 다섯 가지 쌓임을 보는 자와 쌓임의 상을 보는 자와 다섯 가지 쌓임을 탐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곧 이 사람을 위하여 스승이 되지 않을 것이다. 持世我今擧手其有見五陰者見陰相者貪五陰者我則不與是人爲師

 

이 사람은 또한 나의 제자가 아니다. 나를 따라서 출가한 것이 아니며, 나를 따라서 행하지 않으며, 나에게 귀의하지 않는다. 是人亦非我弟子不隨我出家不隨我行不歸依我

 

이 사람은 삿된 길에 들고 허망한 길에 들어서 진실하지 않은 것을 취한다. 이는 전도되어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서 마땅함을 따라 설하시는 다섯 가지 쌓임을 알지 못하며, 부처님의 제일의(第一義)를 알지 못한다. 是人入於邪道入虛妄道取不實者是爲顚倒不知佛意不知佛隨宜說五陰不知佛第一義

 

이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며, 공양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아서 나는 이 사람의 출가를 아직 허락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의 공양을 마땅히 받을 수 있음이겠는가. 是人不受佛教不應受供養而受是人我尚不聽出家何況當得受人供養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은 사람은 곧 외도(外道)의 무리이다. 이른바 다섯 가지 쌓임의 상을 낳는 자이며, 다섯 가지 쌓임에 탐착하여 돌아가는 자이다.何以故如是之人是外道徒黨所謂生五陰相者貪著歸趣五陰者

 

지세야, 장차 오는 세상의 뒤의 5백 세[後五百世]에 법이 멸하려고 할 때, 나의 법 안에 출가한 많은 자는 이 다섯 가지 쌓임의 상을 낳는 자로서 결정적으로 다섯 가지 쌓임의 상()을 설하고 깊이 다섯 가지 쌓임에 집착하여 허망한 삿된 길에 들고, 持世當來之世後五百歲法欲滅時於我法中出家多是生五陰相者決定說五陰相深著五陰入虛妄邪道

 

나의 법 안에서 출가함을 얻어서는 가사로 목을 두르고[袈裟繞咽] 늘 속인[白衣]의 집을 왕래하기를 즐긴다.於我法中而得出家袈裟繞咽常樂往來白衣居家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외도와 다름이 없으며, 또 나의 법으로 해서 많은 무리의 사람에게 공경과 공양을 받는다.當知是人與外道無異亦以我法多爲衆人恭敬供養

 

지세야, 나는 설한다. 이 다섯 가지의 쌓임을 보는 자와 결정적으로 다섯 가지 쌓임을 설하는 자와 다섯 가지 쌓임을 탐착하는 자는 사람에게서 한 그릇의 물을 받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持世我說是見五陰者決定說五陰者貪著五陰者不聽受人一㮎之水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나의 법 가운데서, 나아가 유순하게 따르는 법인[柔順法忍]이 없고, 이 사람은 나의 법을 어겨 거슬러서 거룩한 행을 등지고 버리기 때문이다.所以者何是人於我法中乃至無有柔順法忍是人違逆我法背捨聖行

 

지세야,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뒤의 나쁜 세상에서 마땅히 이와 같이 큰 서원(誓願)을 내어야 한다.持世是故菩薩摩訶薩於後惡世應如是發大誓願

 

나는 이와 같이 깊고 깊은 경전을 마땅히 함께 지켜 지니고, 또 중생에게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한 견해[五陰見]를 끊게 하는 까닭에 이를 위하여 설법할 것이다.於我如是甚深經典當共護持亦斷衆生五陰見故而爲說法

 

지세야, 나는 이 경 중에서 모든 쌓임[]의 상을 깨뜨리고 탐착을 떠난 쌓임의 상을 설한다. 이때 많은 재가(在家)와 출가(出家)가 있어 이와 같은 경을 듣고서 다툼을 일으켜 진실한 상()을 낳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은 이 가운데서 마땅히 큰 서원을 내야 한다.持世我是經中說破一切陰相離貪著陰相爾時多有在家出家聞如是等經起於諍訟不生實相菩薩摩訶薩於此中應發大誓願

 

우리들은 뒤의 나쁜 세상에서 다섯 가지 쌓임에 탐착하는 삿된 소견을 가진 중생에게 큰 이익을 짓고자 한다. 이른바 탐착하여 다섯 가지 쌓임을 보는 중생을 건지고 해탈하게 하는 마땅함에 따른 방편의 법으로 이익되게 하리라.’我等於後惡世貪著五陰邪見衆生作大利益所謂度脫貪著見五陰衆生隨宜方便以法利益

 

이런 까닭에 지세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잘 알고 또 모든 법의 글귀[長句]를 잘 분별하는 일을 얻고자 하며, 염력(念力)을 얻고자 하며, 몸을 변하여 끊이지 않는 생각[]을 성취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면, 是故持世菩薩摩訶薩若欲得善知諸法實相亦善分別諸法章句欲得念力欲得轉身成就不斷念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마땅히 항상 이 다섯 가지 쌓임의 무상(無常)한 상과 괴로운 상과 내가 없는 상과 허망한 상과 튼튼하고 굳지 않은 상과 필경엔 공한 상을 본래부터 낳지 않는 상이라고 관해야 한다. 應常觀是五陰無常相苦相無我相虛妄相不堅牢相畢竟空相從本已來不生相

 

항상 바르게 관할 때, 다섯 가지 느낌의 쌓임 안에 있는 탐욕의 물듦[欲染번뇌]은 곧 능히 끊어 없어지고, 또 이와 같은 깊은 법 안에 있는 방편을 얻는다.常正觀時五受陰中所有欲染則能除斷亦得如是等深法中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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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경 1권-5음 - 색수상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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