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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비타민

연중22주일 설교(십자가의 길)

작성자전노아|작성시간14.08.30|조회수52 목록 댓글 0

오랜 기다림 끝에 주님께서 유성교회 유낙준 신부님을 대전교구 주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기도해주신 교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교를 중심으로 대전교구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와 ‘예수를 따르는 길’, 십자가의 길 이 두 가지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머리는 좀 나쁘지만 충직했던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머리도 좋고 부지런했던 유다 같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머리는 좀 나쁘지만 충직했던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 즉 교회의 수장권을 주었습니다.

 

오늘 머리가 좋지 못해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적절하게 하지 못한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이라는 욕을 듣고 야단을 맞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미워서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연민과 내 말을 그렇게도 못 알아듣는 안타까움이 더 배어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머리가 나쁜 베드로를 그가 세운 교회의 수장으로 그를 택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생활, 우리 신앙에 있어서 머리가 좋고 나쁘고, 잘 나고 못 나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베드로에 대한 책망이 있은 후에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께서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음의 길을 택하신 것과 같이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들의 희생만이 하느님과 하느님나라를 섬기는 진정한 길이라는 예수님의 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방어하고 아끼는 사람은 결국 그것과 함께 더 중요한 것도 잃게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마 이 말이 진정 뜻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나 이익이나 안위만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훼손하고 버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명이나 안전에 위협을 받으면 겁이 나죠. 무섭습니다. 또 내 위치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위협을 받는다면 불안해합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자신이 직접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택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해결방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수난을 통해서 고통스러워했고, 그 고통에 피를 흘렸고 신음소리를 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이 주신 용기는 그 고통과 두려움을 못 느끼고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과 똑같이 무섭고 아프고 겁이 나지만 그래도 그것을 행하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용기입니다.

 

예수님은 최소한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의 모습은 슈퍼맨도 아니었고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한 분도 아니셨습니다. 그저 나약하고 힘없는 보통 우리들과 같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말없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졌던 희생의 용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의 종교적 의미에 대해서는 몇 차례 말씀드렸듯이, 자기의 죄(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가 살지 못하는 것, 지음대로 받은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입니다. 행복하게 살라고 했는데 그렇게 못사는 것이 죄입니다. 신나게 살라고 했는데 신나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당당하게 살라고 했는데 쭈뼛거리며 사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 죄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것은 그런 죄와 함께 죽고 다시 새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큰 십자가를 짊어진다 함은 나의 버릴 불행요소들을 많이 갖다버린다는 것이고 작은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것은 내 불행요소 중 일부분만을 버리고 대부분은 껴안고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대부분은 갖다버려도 되는 불행요소들을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살면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나를 옭죄는 삶의 굴레들을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버리나. 첫째,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보통 이 경우에 자제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렇게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이는 언제나 나에게는 ‘아니(no)'요, 하느님에게는 '예(yes)'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활 속에서 나의 편견이나 나의 주의나 원칙들은 모두 버리고 하느님으로 원칙을 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거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반대로 하면 거의 맞습니다.

 

둘째 그리고 나서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이죠. 순종은 말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또는 교회나 제도나 법에 복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의 가르침대로 행하며 사는 것이 순종입니다.

 

결국 한 마디로 말하면 나를 비우고, 버리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이 예수님이 오늘 가르쳐준 우리 제자들의 길, 도리입니다. 그럴 때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즉 심판의 날에, 다시 말해서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이 말대로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손아귀에서 전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듣거나 말거나 하는 그런 충고로 받아들이면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제자의 길을 따르든지 아니면 따르지 않든지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면 잃을 것이며, 반대로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길이 천 갈래 만 갈래인 것 같지만 결국 하느님 앞에서는 두 갈래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그냥 살거냐.

 

이 둘 길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각자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롭게 내가 합니다.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하느님의 축복인 것은 그 선택에 의해서 바로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 참 자유, 참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경건한 종교적 충고도 아니고 어떤 그럴듯한 교리도 아니고, 바로 하느님의 진리입니다. 우주적 진리입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의 친구가 되기까지는 우정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것을 버리지 않고는 하느님의 것을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택함은 내 자유지만 그 결과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여러분, 참 쉽고도 어려운 것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거 다 알겠는데 행함에 있어서 자꾸 걸림이 생깁니다. 이 일만 끝나면 그렇게 살아야지, 은퇴하면 정말 걸림 없이 살아야지, 돈이 얼마 모아지면 정말 도우면서 살아야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살지 못하는데 결국 따지고 보면 그렇게 살 생각이 없다는 거죠. 나의 삶을 결국 버리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각자 행한 대로 갚음을 받겠죠.

 

저나 여러분이나 역시 다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우리가 다행인 것은 우리의 그 잘못을 알고 그것에 대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전례 초반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이미 용서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주신다고 하신 것은 끝까지 우리를 용서해주신다는 말씀 아닙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 나의 삶 속에서 나를 옭아매고 있는 많은 것들 중의 작은 것 하나만이라도 손가락만한 십자가에 매달아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런 한 주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주일에 또 하나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아서 버리고 또 그 다음 주일에 하나 매달아서 버리고 그렇게 1년 지내다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라야 하는 도리, 길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제 8월도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바람기도 느껴집니다. 이제 내일이면 9월입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힘차고 즐겁게 수확의 계절을 향해서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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