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 중에 최고신은 마르둑(Marduk)이었다. 마르둑을 히브리어로 기록하면 므로닥이라고 한다. 폭풍과 창조의 신 엔릴(Ennlil)의 기능과 공적을 물려받았다는 마르둑 신은 바벨로니아의 민족신이었다.
바벨로니아의 신들 중에는 벨로스(Belos)라는 신이 있었는데 이는 벨(Bel)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리스식으로는 제우스(Zeus)라 불려지는 신이었다. 일반적으로 신화가 발달한 나라는 그리스와 로마이지만 그 기원은 거의가 다 바벨론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바벨론이나 그리스의 신화들은 사실 신화(神話)라기 보다는 인화(人話)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신들 중 상당수가 사람을 신격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로니아 사람들의 신들 중에는 여신(女神)도 있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여신(女神)은 밀릿타(Milita)라는 여신인데 이 여신을 앗수르 사람들은 이쉬타르(Ishtar)라고 했고 페니키아 사람들은 아스다롯(Ashtaroth)이라고 불렀으며 로마 사람들은 비너스(Venus)라고 불렀다. 이 여신은 온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아프로디테( Aphrodite)라고 불렀다. 에베소에서는 이 여신을 아르테미스(Atremis) 즉 아데미 여신이라 불렀다.
바벨로니아 여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밀릿타(Milita)여신의 신전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바벨로니아의 모든 여인들이 일생에 단 한 번이지만 이러한 망칙한 종교 행위를 가지게 했는데 그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인들은 신전에 앉아 자기를 지명하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무릎에 은화를 던지며 "밀릿타(Milita)여신의 이름으로 !"라고 하는 음성이 들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에게는 금방 남자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들 중에는 이렇게 앉아서 4년간이나 기다린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는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경우는 그야말로 혹독한 형벌이었다.
이러한 풍속을 소개하는 헤로도토스(Herodotus)도 바벨론의 풍속들 중에 아주 고약한 풍속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밀릿타(Milita)신을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에서 섬길 때는 그런 풍속은 없어지고 대신 신전에 바쳐진 여자 사제(司祭)들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인 역사에서 다루는 밀릿타(Milita)여신의 기원을 유대인 백과사전(The Jewish Encyclopedia)에서는 니므롯(NImrod)의 아내는 세미라미스(Semiramis)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프스도 니므롯을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창10:8-9)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9:7) 사람들이 온 세계로 편만하게 흩어져서 땅을 관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니므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흩어 보내시는 목적은 세력을 꺾어 통치하기 쉽게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흩어지지 말자고 주장했다. 니므롯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게 했고 바벨탑을 쌓았다.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에 건설된 바벨탑과 함께 바벨론은 하나님을 반역하게 된 기원이 되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 성경에서 악령을 숭배하는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다.(창11:2) 니므롯의 아내는 세미라미스(Semiramis)였다. 그녀는 남편 니므롯이 죽고 나자 남편의 시체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각 지방으로 보내었다. (삿19:29 ,삼상 11:7 참조)
세미라미스는 그 후 사생자를 낳았는데 그녀는 이를 자기 남편 니므롯의 환생(還生)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담무즈(Tammuz)라 하였고 그를 태양신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담무즈가 바로 여인의 후손 곧 구세주(창 3:15)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몸에서 난 자기 아들 담무즈와 결혼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신의 아내요 신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담무즈를 신(神)으로 섬기게 되었고 세미라미스를 신의 어머니 곧 여신(女神)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은 음녀(淫女)요 여신의 기원이며 어머니 신 아들 신, 남신 여신의 기원이 된 것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지면서도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을 섬기는 것에는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온 세상에 어머니 신과 아들 신 곧 여신과 남신의 사상이 일반화된 것이다.
1. 바벨론에서는 여신을 세미라미스(Semiramis)라 하였고 남신을 담무즈(Tammuz)라 하였던 것이다. 2. 중국에서는 어머니 신 곧 여신을 성모(聖母)를 싱무라 하였다. 3. 독일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처녀 신을 헤르타(Hertha)라 하였다. 4.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디사(Disa)라 하였다. 5. 에투리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누트리아(Nutria)라고 했다. 6. 드루이드 교에서는 여신을 비르가 파티튜라(Virga-Patitura)라고 했다. 7. 인도 지방에서는 어머니 신을 인드라니(Indrani)라고 했다. 8. 인도의 다른 지방에서는 여신을 데바키(Devaki), 아들을 크리쉬나(Chrishina)라고 불렀다. 9. 슈메르인들은 여신을 나나(Nana)라고 불렀다. 9. 로마에서는 여신을 비너스(Venus)라 하였고 아들 신을 쥬피터(Jupeter)라 한다. 10.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여신을 키벨레(Cybele)라 하고 아들은 데이오스(Deoius)라고 했다. 11. 가나안 지방에서는 여신 아스다롯(Ashtharot)을 섬겼다. 12. 에베소 지방에서는 여신을 아데미(Ardemis)라고 하였다. 혹은 다이아나(Diana)라고 했다. 13. 고린도 지방에서는 여신을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 하였다. 14. 애굽에서는 여신을 아이시스(Isis)라 하였고 그 여신의 아들은 호루스(Horus)라고 불렀다.
이렇게 여신 혹은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을 섬기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서 성모 마리아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것이 카톨릭의 착상이다. 처음에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가 없었다. 그러나 AD. 431 년 에베소 회의(The Council of Ephesus)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냐 그리스도의 어머니냐 하는 논쟁이 있었지만 확정을 지우지 못하고 지나오다가 최근에 와서 완전히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확정을 지웠다. (1931년 데오토코스 논쟁 종결 확정)
1854년에는 교황 비오 9세가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을 발표하였다. 그 기념 축제일이 12월 8일이다.
그 이후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라고 확정지었다. (1917)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은총의 중재자는 한 분 곧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딤전 2:5)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고도 기발한 것이었다. 유명한 카톨릭 저술가 알폰수스 리큐오리(Alphonsus Riquuori)는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 보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가 하는 이론을 써서 교황 그레고리 14세로부터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고 교황비오 9세는 리큐오리를 카톨릭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였다.
1950년에는 마리아 부활 승천설을 발표하였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몸이 썩지 않고 하늘로 올리어졌다고 발표하였다.
1962마리아 종신 처녀설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미 십계명 중 제 2계명을 없앴다. 반면에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카톨릭은 성경을 절대적인 권위로 믿는 기독교회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성도들은 잘 분별하여 양의 옷을 입고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 볼일이다
바빌론 종교
"그리고 어두움에 속한 열매없는 일들과 교제를 갖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여라. 이는 그들에게서 비밀 속에 행하여진 그것들에 관하여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망되어진 모든 것들은 빛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이는 그 무엇이든지 드러나게 만드는 것은 빛이기 때문이다(에베소서5:11-13, 킹 제임스 성경 직역).
비록 바빌론의 비밀종교가 비밀의 베일에 쌓여 있지만, 우리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 내야만 한다. 그 정체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그들과의 교제를 멀리할 수 있겠으며, 그들을 책망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도 못하였는데 어떻게 악을 떠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있기에, 그 빛으로써 그들을 분별해 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며,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는 것이다(고린도후서 6:17-18; 에베소서5:11-12).
정체를 드러내는 일에 있어서 때로는 객관적인 자료들이나 논리적인 추리,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지지만, 인간이 만든 자료들은 언제든지 조작이 가능하고, 논리적인 추리나 목격자들의 증언 역시 주관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에 지나치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더군다나 거대한 바빌론 조직이 은폐하고 있는 것을 얄팍한 객관적 자료들로써 파헤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객관적 자료'란 개념 자체도 이미 그들에 의해 오염된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최종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최종적인 신뢰의 닻"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은 그 말씀을 진실로 믿는 성경신자들의 정직한 증거들이다. 객관적 자료들이란 기껏해야 세 번째 서열에 속한 신뢰의 근거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바른 분별의 빛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분별의 빛으로써 객관적 자료들이나 증거들을 평가할 때, 오히려 그러한 자료들이나 증거들도 빛이 나게 될 것이다.
특성
바빌론 비밀종교가 가지고 있는 두드러진 특성은 "모방성"과 "혼합성" 그리고 "파괴성" 이다. 사탄은 창조주가 아니므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하나님께옵서 이루어 놓으신 것들을 모방하고 응용하는 것밖에 없다.
바빌론 비밀종교도, 사탄이 이스라엘과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아채고는, 모방하여 만든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그는 유월절을 모방하여 "이스터"(Easter)의 절기를 만들어내었고 , 속죄를 위한 희생을 모방하여 "인신제물의 의식"을 만들어냈으며, 밥티슴(세례)을 모방하여 "유아세례"(infant baptism, 유아밥티슴)를 만들어 냈다.
또한 성직자 체제(priesthood)를 모방하여 "바알의 제사장 체계"를 만들어 냈으며, 주님의 만찬을 모방하여 "미사"(mass, 축제일이란 뜻)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사탄의 이같은 모방 행위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오염시키고 세속화시키며 변질시켜서, 궁극적으로는 바빌론 종교와 혼합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원래 위조품이란 참된 것과 혼동케 함으로써, 참된 것을 대체하려고 만들어지는 법이다. 사실 바빌론 종교의 혼합성은 이 세상의 모든 잡신들을 포용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들의 분별력을 효과적으로 둔화시키기 위해, 어쩌면 필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바빌론' 이란 이름 자체가 '혼합'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바빌론은 그리이스어의 음역이며, 히브리어로는 바벨(Babel)에 해당한다. 그 뜻은 "혼란"(confusion)을 의미하는데, 원래의 의미의 '신의 입구'(gate of god)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바빌론 비밀종교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 "잔인성"과 "파괴성"에 있었다. 가령 인신제물 의식에는 주로 어린 아이들이 제물로 바쳐졌는데, 그렇게 해서 죽인 어린 아이들을 바알의 제사장들이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카나-발"(Cahna-Bal) 즉 "바알의 제사장" (Priest of Baal)이란 단어는 "식인종"이란 뜻을 가진 '카니발'(cannibal)의 어원이 되었다.
'카나' (Cahna)란 단어는 '제사장'(a priest)이고, '카나'(Cahna)는 '그 제사장'(the priest)을 지칭한다 (Alexander Hislop). 그 밖에도 바빌론 비밀종교에는 신전 매음을 비롯하여 온갖 가증한 의식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 모든 혐오스런 행습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럽히며, 창조의 아름다운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탄의 작품들이다.
숭배의 대상
바빌론 비밀종교의 숭배 대상은 창3:15의 "그 여자"(the woman)와 "그녀의 씨"(her seed)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창3:15에서 말하는 "그 여자"는 "이브"(Eve - 킹제임스성경, 하와 - 히브리어, 이와 - 헬라어, '참고')였고, "그녀의 씨"는 "크리스트"(Christ) 곧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메시아에 대한 이 약속의 말씀을 도용하여 "거짓 메시아 체계"를 만들어 냈다.
즉 "니므롯"(혹은 님로드Nimrod)를 거짓 메시아로 세워 적크리스트가 되게 하였고, 니므롯의 어미이자 후에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Semiramis)를 메시아의 어머니라 하여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등극시켜 놓았다.
최초의 적크리스트인 니므롯은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님처럼 경배하게 했다. 그의 이름은 노아의 아들들 가운데서 "포로네우스"(Phoroneus)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 말은 "배도자"(Apostate)를 뜻하는 것이었다.
"배도자의 시조"인 니므롯은 모든 거짓 종교들의 뿌리인 가증한 바빌론 비밀종교를 만들어 무수한 사람들의 혼들을 도적질했으며 온갖 끔찍한 만행들을 저질렀다. 문헌들에 의하면 그는 마침내 "셈"에 의해 처참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며, 경고의 표시로서 그의 시체가 토막내어져서 각 족속들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같은 경고의 표시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셈의 자손)에게 족장들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가게 되었다(사사기19:29; 사무엘상11:7).
한편, 최초의 여신이 된 세미라미스는 원래 함의 아들 구스(Cush)의 아내였는데 당대의 절세미인이면서도 가장 음란하고 사악한 여자였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 니므롯(창세기10:8)이 바빌론의 군주가 되자, 그와 결혼하여 바빌론 군주의 어미이자 황후가 되었다.
그러다가 님로드가 샘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자, 자신의 입지가 위태해짐을 느낀 그녀는 재빨리 그녀가 낳은 니므롯의 아들을 죽은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라고 전파하기 시작했다.(소위 동양종교의 "윤회설"이 여기에서 기원하고 있다.).
그녀는 니므롯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태양신(sun-god)으로 신격화하여 "바알"(Baal, 주인이란 뜻) 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하루 아침에 "신의 어머니"가 된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바알티"(Baalti, 여주인) 혹은 "레아"(Rhea, 위대한 '어머니' 여신)라 하여 "월신"(mood-god)으로 숭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숭배자들이 죽은 니므롯(탐무즈 혹은 박쿠스라고도 함)을 위해 애곡하는 것을 바빌론 비밀종교의 중요한 예배의식으로 정해 놓았다(에스겔8:14). 성경 욥기 31장 26-28에 보면 이미 족장 시대인 욥의 시대에 태양신과 월신 숭배가 성행했었던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바빌론 비밀종교가 바벨 탑 사건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세미라미스와 니므롯의 이름도 다양하게 불려지게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로 불려졌는데, 오시리스는 호루스(Horus)로 더 많이 일컬어졌다.
인도에서는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로 불려졌고, 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oius)로, 로마에서는 포르츄나( Fortuna)와 쥬피터(Jupiter)로, 그리이스에서는 위대한 어머니 케레스(Ceres)와 그녀의 품의 아기로, 이레네 지방에서는 평화의 여신과 그녀의 팔에 있는 소년 플루투스(Plutus)로, 그리고 중국에서는 슁무(Shing Moo, 성모)와 그녀의 팔에 있는 아기로 불려졌다.
로마 카톨릭의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도 세미라미스와 니므롯을 위장시켜 놓은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이 흔히 '처녀'를 지칭할 때 부르는 "마돈나"(Madonna)란 이름도 실상 바빌론의 여신의 칭호 중 하나를 번역한 것이다.
바빌론 비밀종교에서는 니므롯을 바알(Baal) 혹은 벨루스(Belus)라 칭했고 세미라미스를 바알티(Baalti) 혹은 벨티스(Beltis)라 칭했는데, 벨티스는 "여주인"이란 뜻으로서 영어의 "마이 레이디"(My Lady), 라틴어의 "메아 도미나"(MeaDomina)에 해당되며, 이 말을 이탈리아인들이 "마돈나"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니므롯은 니누스(Ninus), 솔(Sol, 태양신), 탐무즈(Tammuz), 아도니스(Adonis), 박쿠스(Bacchus), 야누스(Janus), 제우스(Zeus), 아폴로(Apollo) 등으로 불리웠고; 세미라미스는 비너스(Venus), 다이아나(Diana), 쥬노(Juno), 시벨레(Cybele), 아스타르테(Astarte, 아스다롯), 오로라(Aurora), 헬라(Hela, 지옥의 여신), 이쉬타르(Ishtar, 이스터) 등으로 불리웠다.
이렇듯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니므롯과 세미라미스 숭배가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되어 세계 각처로 퍼지면서 각 나라의 언어에 따라 변천된 이유도 있지만, 원래 바빌론 비밀종교가 "혼합주의"와 "토착화"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나라들과 민족들의 고유문화와 적절히 혼합되면서 그들의 토착 신들 중의 최고 신으로 숭배되어진 데 기인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천의 얼굴"을 가지고 변신하는 미혹의 종교가 바로 바빌론 비밀종교임이 이로써 입증되는 것이다.
바빌론 비밀종교는 사탄이 이 땅 위에 이뤄 놓은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사탄은 바빌론의 바알 종교체제를 통해 전 인류가 자신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도록 치밀한 그물을 쳐 놓았다. 모방과 혼합의 명수인 사탄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방하여 바빌론 비밀종교의 숭배대상도 삼위일체로 만들어서 하나님을 모방하여 바빌론 비밀종교의 숭배대상도 삼위일체로 만들어서 온 세상에 퍼뜨렸다.
바빌론의 삼위일체는 한 몸 위에 세 개의 머리가 달린 신의 형상으로 상징되었는데, 이와 유사한 우상이 세계 각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우상마다 원(circle, 동그라미)이 그려져 있는 것이 공통점인데, 흔히들 원은 '끝없는 시간'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바빌론 종교에서의 원(동그라미)은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상형문자에서의 원은 칼대아어로 "제로"(zero)라고 부르는데 "그 씨"(the seed)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씨"란 "여자의 씨"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태양신으로 상징되는 "님로드"를 지칭하는 것이다. 불을 숭배하는 자들의 위대한 신(神)인 "조로아스터"(Zoroaster)도 실상은 님로드의 다른 이름으로서 원래는 제로-아쉬타(Zero-Ashta, 아쉬타는 그 여자란 뜻으로 '그 여자의 씨'를 말함)가 그리이스어로 넘어가면서 조로아스터(Zoroaster)로 변천된 것이었다.
바빌론 비밀종교에서의 가증한 삼위일체는 영원한 아버지, 한 인간 어머니로 성육신 된 하나님의 영, 그리고 그같은 성육신의 열매인 신의 아들로 구성된다. 물론 영원한 아버지의 자리에는 루시퍼 사탄이 앉고, 성육신 된 어머니의 자리는 하늘의 여왕 세미라미스가, 그리고 신의 아들 자리는 느므롯이 차지하도록 각본이 짜여져 있다.
주요 교리 및 숭배 방법
바빌론 비밀종교의 교리들은 대홍수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노아는 500세가 되고 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고(창세기5:32), 홍수가 난 것은 노아의 나이 600세 일 때였다(7:6). 따라서 니므롯의 할아버지인 함(Ham)이 100세 되던 해에 대홍수가 났고, 함은 노아와 함께 방주에 들어가서 물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다(7:7; 9:18).
노아와 함께 옛 세상으로부터 새 세상으로 옮겨지는 체험을 한 함은 자기 아비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형들에게 고함으로써 노아의 저주를 받게 되었고(9:21-27), 함의 아들인 구스(Cush)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사악한 음녀 세미라미스와 결혼하였으며,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은 자기 어미인 세미라미스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적으로 문란한 가정을 이룬 바로 이 함(Ham)의 가정에서 그 가증한 바빌론 비밀종교가 시작된 것이다.
바빌론 비밀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밥티슴(세례)에 의한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의 교리인데 그것은 노아의 대홍수 사건과 세미라미스 및 님로드의 숭배를 적절히 혼합한 것이었다. 바빌론의 유물 가운데 "디푸에이스"(Diphueis)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두 번 태어난"(twice-born) 이란 뜻이며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얼굴을 가진 한 신(god)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서 바다의 사람 야누스(Janus)의 신화가 있는데 그의 존재를 세상의 아버지(Father of the world)와 '배들의 발명자'(the inventor of ships)로 보는 두 기원설이 말해 주듯이 역시 "노아의 대홍수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즉 홍수 이전 세대의 의인이었던 노아가 방주 안에서 대홍수를 거침으로써 홍수 이후 세대의 의인이 된 사실을(창세기6:9) "두 번 태어난"(twice-born) 혹은 "중생한"(regenerate)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것을 두 얼굴로 묘사하되 그 두얼굴을 쿠쉬와 님로드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같은 중생(regeneration)의 교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중생의 교리와 매우 흡사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바빌론 비밀 종교는 "밥티슴(세례)에 의한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을 가르치지만 성경은 "믿는 자에게 주는 밥티슴(세례)"(Believer's Baptism)을 말씀하고 있다(사도행전8:37), "
그리고 필립이 말했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다하여 믿으신다면, 그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여 말했다, 제가 예수스 크리스트님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 킹 제임스 성경 직역" <증거I>. 즉 바빌론의 교리는 밥티슴 자체를 중생의 수단으로 보았지만, 성경은 이미 믿은 자 곧 중생한 자에게 밥티슴(세례)을 주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28:19).
먼저 말씀을 가르치면 그 말씀을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고(베드로전서 1:23), 그 때에야 비로소 밥티슴을 주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노아가 홍수를 거침으로써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의인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홍수를 거칠 수 있었듯이, 세례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듭난 자가 새로와진 양심을 가지고 세례를 받아 새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21).
바빌론의 "세례에 의한 중생"의 교리는 바벨 탑 때 흩어진 민족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들에서 밥티슴에 의한 중생의 교리를 찾아볼 수 있음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나 혁거세 신화, 주몽신화 등에도 이 밥티슴 의식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바빌론의 괴수 니므롯은 밥티슴의 교리를 변질시켰을 뿐 아니라 이 교리를 속죄를 위한 희생물의 교리와 교묘히 혼합하여 더욱 사악한 교리를 만들어냈다. 즉 짐승대신 사람을 희생물로 바치게 하는 인신제물의 종교 의식을 창안해 낸 것이다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The Reformation (vol. 6),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44-1977, 741 쪽; James Hastings, Hasting's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New York, Chas. Scribner's Sons, 1928. 에서 "신을 먹는 것"에 대한 항목 참조;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0, New York, Robert Applet!!on Co., 1911, 401 쪽. - 각주).
니므롯이 죽은 이후 바빌론 종교의 실권을 부여잡은 하늘의 여왕 세미라미스는 바알의 제사장들(사제들)을 통해 이 흉악한 종교의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인신제물 중에서도 어린아이를 불에 구워 바치게 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바쳐진 어린아이의 고기를 바알의 제사장들이 먹게 하였다.
어린아이를 바치기 전에 먼저 세례의 의식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었다. 그래야만 신에게 거룩히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위 "유아세례"(Infant Baptism, 유아 밥티슴)라는 것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Alexander Hislopo).
아마도 어른들보다도 유아들을 희생물로 바치게 했던 것은 그 인육을 바알의 제사장들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유아들의 연한 살을 즐기는 식인종들이다). 바알의 제사장들이 먹었다면 하물며 그들의 수장인 세미라미스가 먹지 않을 수 없다. 실로 바빌론의 비밀종교는 끔찍한 식인종들의 종교라 아니할 수 없다.
원래 식인종이란 뜻의 칸니발(Cannibal)이 바알의 제사장(Cahna-Bal, Priest of Baal) 이란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오늘날 아프리카의 식인종들도 그들이 원래부터 사람을 잡아먹는 야만인이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의식으로서 그렇게 한다는 사실이 선교사들에 의해 밝혀졌듯이, 이 흉측한 인신제물의 종교의식도 바벨 탑 사건 이후 바빌론 비밀종교에 의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청전"에서 읽을 수 있듯이 바다의 "용왕"(사탄)에게 인신제물을 바치는 것이 미화되어 있고, 심지어는 불교 설화에서 어린아이를 불에 녹여 종을 만들었다는 "에밀레 종"의 이야기가 미화되어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가 되었다.
어린아이를 불로 지나가게 하고 인신제물로 바치는 풍습은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교(Druids)와 벨타인 데이(5월 첫째 날) 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이집트, 로마, 인도, 멕시코, 중국 등등 세계 각처의 종교들과 풍습 속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선민이라 하는 이스라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레위기20:2-5; 열왕기하23:10; 역대하33:6; 예레미야32:35, 여기서 몰렉은 니므롯의 다른 이름임). 아마도 아프리카의 경우는 함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풍습이 성행하였는지도 모른다.
바빌론 비밀종교가 바알숭배 종교이며 태양신과 월신숭배 종교임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사탄은 바빌론의 어둠의 종교를 그의 뛰어난 모방 기술과 혼합기술을 통해 기독교와 혼합해 버렸고, 그리하여 기독교의 탈을 쓰고 나타난 로마의 바알종교(카톨릭)를 면밀히 살펴 보면 바빌론 비밀종교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스며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바빌론을 연구하려면 로마를 연구하면 될 정도이다. 로마 카톨릭의 모든 의식과 절기들, 행사들은 이중성을 갖고 있는데, 실상은 태양신인 바알의 가증한 상징들과 전승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명칭들은 대부분 성경의 용어들을 도용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속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바른 성경을 붙들고 자세히 살피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 또 하나를 살펴 보면, 미사(mass)와 관련된 행습을 들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바알 종교는 적크리스트에게 바치는 인신제물(특히 유아들)을 바알의 제사장들이 먹게 했는데, 여기서 희생자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인 미사가 유래되어 나왔다. 비록 그것을 로마 카톨릭이 성경의 주님의 만찬과 혼동시켜 버렸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의 주님의 만찬은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희생되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것이지만, 바알 종교인 로마 카톨릭의 경우는 태양신인 느므롯에게 바쳐진 인신제물의 피와 살을 먹는 의식인 것이다. 주님께옵서는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this do in remembrance of me, 눅22:19)고 말씀하신 반면, 그들은 성병(wafer, 밀로 만든 과자)과 포도주가 신비적인 방법에 의해 실제로 살과 포도주로 변한다는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을 주장하면서 미사 때마다 "호쎄스트 코르푸스 메우스"(Hocest Corpus meus, 이것은 나의 몸이요)라고 주문을 외운다.
여기에서 "호쿠스 포쿠스"(hocus-pocus, 마술사)란 말이 유래되었다. 그 의미는 신부의 신비술(마술)에 의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몸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그 주님의 몸을 가지고 다시 희생제를 드린다는 것이다. 즉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다시 죽여서 희생제로 드리고 그 살과 피를 먹는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가증한 행위인가! 실로 로마 카톨릭은 미사를 행할 때마다 (수 천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우리 주 예수스님을 신부들의 마술로 살려 내 다음, 다시 죽여서 바알에게 희생제로 드리는 끔찍한 행위를 일삼아 오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종교집단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주님의 만찬에서는 빵을 손으로 떼어서 나눌 뿐 아니라 빵 조각의 모양이 찢긴 모습인 반면, 바알종교의 미사에서 먹는 성병(聖餠)은 둥그런 원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둥그런 원은 태양 원반(Solar disk)으로서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러한 태양 원반은 로마 주교들이 머리를 둥글게 체발한 것이나 로마 교회의 각종 성화에 나타나 있는 둥근 후광들에서, 그리고 성당들의 유리창에 장식한 수레바퀴 형태의 모자이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7, 489-492 쪽; Thomas Imman, 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 Bristol, 1874, 34 쪽; W.R. Lethaby, Architecture, Nature, And Magic, London, Duckworth, 1956, 29 쪽. - 각주).
또한 그 성병에는 "I. H. S."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비록 그들이 그 의미를 "Iesus Hominum Salvator" (사람들의 구주이신 예수스님)에서 도용하여 설명하려 하지만, 실상은 "Isis Horus Sebs"(이시스 호루스 셉스)를 의미한다. 즉 바빌론의 태양신인 이시스와 하늘의 여왕인 호루스, 그리고 신들의 아버지라고 하는 셉스로 구성되는 바빌론 비밀종교의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Alexander Hislop).
바빌론 태양신에게 바쳐진 인신제물을 먹는 이같은 가증한 의식은 로마의 미사에서 뿐 아니라 세계 각처의 종교들과 풍습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월 초하루인 설날에 먹는 "흰 떡국"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흰색은 태양의 밝음을 상징하고 둥글게 써는 것도 태양의 원반을 상징하는 것이다. 동짓날 먹는 팥죽 속의 새알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불교를 비롯한 세계의 유명한 종교들에서 승려들이 머리를 둥그렇게 미는 것이라든지 부처 상 같은 우상의 머리 뒤에 둥그런 후광이 있는 것 등도 바빌론의 태양신 숭배가 바벨 탑 이후에 전세계로 퍼진 또 다른 증거들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지하게도 예수님의 머리 뒤에 후광이 나타나 있는 성화들을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 놓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성화 자체도 성경에서 어떤 형상이든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출애굽기20:4).
로마 카톨릭의 고해성사 역시 바빌론의 바알체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비밀서약을 통해 세미라미스의 심복들이 되었고, 세미라미스는 고해성사를 창안하여 그녀의 추종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환히 알게 됨으로써 그들을 빈틈없이 통제할 수 있었다. 연옥의 교리 역시 바빌론 종교의 발명품이었다.
바알 숭배자들이 죽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 가게 될 지옥에 대한 공포로 인해 절망과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이하곤 했다. 사후의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회의가 짙어감에 따라 하늘의 여왕은 추종자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연옥의 교리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창안해 냈다.
그리고 연옥의 교리를 이용하여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기는 권세가 자신에게 있다고 속여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했고, 사람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 연옥의 교리를 훗날 로마 카톨릭으로 옮기는 데 다리 역할을 한 자들 중에는 유명한 철학자들이 끼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그리이스의 플라톤을 들 수 있다.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바알숭배 종교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십자가 상징"이다. 이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상징으로 혹은 예수스 크리스트님의 상징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성경에서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으로 혹은 죽음의 사형틀로서 묘사되어 있으며 (갈라디아 3:13; 6:14; 히브리12:2),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형상을 포함하여 그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어 숭배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다(출애굽기 20:4).
따라서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범죄행위이며 우상숭배인 것이다. 성경에서 크리스트님의 십자가를 강조하는 것은 "크리스트님의 죽으심"을 강조하는 것이지, 십자가의 형상을 숭배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 어린 양으로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것은 십자가 숭배를 포함한 모든 헛된 우상숭배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어 정결케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베드로전서 1:18). (참고로, 칼빈도 서부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역할 때 십자가를 달지 않았으며, 영국 청교도들도 예배당 안에서 십자가를 사용한다든가 하는 로마 카톨릭의 잔재를 깨끗이 청결하라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 참고).
원래 십자가의 상징물은 고대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바알 숭배의 표시로서 그것이 앗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이스를 거쳐 로마로 전래된 것이었다. 고대 바빌론의 십자가 상징은 니므롯의 다른 이름인 탐무즈(Tammuz)의 첫 글자 "T" 자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갈대아어와 이집트어의 '타우'(Tau)에 해당하는 이 글자는 히브리어와도 정확히 일치하는데, 십자가 모양의 이 글자는 고대 갈대아의 목판과 주조물에서 발견되었다 (William Wood Sevmour, The Cross In Tradition, History, And Art, New York, G.P. Putnam's Sons, 1897, 22-26 쪽.).
고대 이집트의 유적에서 토쓰(Thoth) 신의 손에 들고 있는 "앵크"(Ankh) 혹은 "안사타 십자가"(Crux Ansata)는 "생명"(life)과 "성"(sex, 생명을 준다는 의미에서)을 상징하며, 십자가 위의 둥근 원은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Funk & Wagnall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286).
신좌(Master's Seat) 위의 안사타 십자가 위에 새겨진 "INRI"란 글자는 고대 현인들이 자연의 위대한 비밀과 연관지어 "Igne Natura Renovatur Integra" (모든 자연이 불에 의해 새롭게 된다.)로 설명하였다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291 쪽. 여기서 불은 태양신 숭배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스토아 철학자들은 '불'을 우주의 근본 원리라 하여 '로고스'라고 불렀다. - 각주).
이에 반해, 우리 주님께옵서 달리신 십자가 위에는 "INRI"가 쓰여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님께옵서 달리신 십자가 위에 "INRI"가 쓰여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면 전혀 근거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 말씀 마태복음 27장 37절과 마가복음 15장 26절, 누가복음 23장 34절, 요한복음 19장 24절 등의 네 구절이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분은 유다인들의 왕 예수님이시다." (THIS IS JESUS THE KING OF THE JEWS) 라고 했고, 마가복음에서는 "유다인들의 왕"(THE KING OF THE JEWS) 이라 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이 분은 유다인들의 왕이시다" (THIS IS THE KING OF THE JEWS)고 했고, 요한복음에서는 "나자렛의 예수님 유다인들의 왕"(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 이라고 했다.
특히 요한복음19:20에서는 이 문구가 히브리어와 그리이스어, 그리고 라틴어의 3개 국어로 기록되었음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약자인 "INRI"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이 자기들의 바빌론 십자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며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들의 바빌론 십자가 위에 새겼던 "INRI"에 맞추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나자렛 예수님은 유다인들의 왕이시다.)의 약자인 "INRI"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바른 성경에서는 오히려 "이 분은"(THIS IS)이란 첫 마디가 맨 앞에 붙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우리 주님의 십자가 위에 기록된 문구는, 당시의 재판관이었던 필라테(Pilate, 빌라도)가 "법적 선고문"의 성격으로 "이 분은 유다인들의 왕 나자렛 예수님 이시다."(THIS IS 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라고 기록한 것이었으며, 그것도 전 세계 모든 언어의 대표어인 히브리어, 그리이스어, 라틴어의 3개 국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the Jesuits 참고로, 제수이트 수도회는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1534년 8월 15일 창설했으며, 실질적으로 전 세계를 조종하는 어마어마한 세력이라고 에드몽 파리가 폭로하다가 순교 했으며, (우리나라 서강대 교수들 대부분은 예수회 신부들입니다.)에서는 이 "INRI"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다: 즉 "Iustum Necare Reges Impios"(경건치 않은 이교도 통치자들을 멸절시켜라)의 약자로서 로마 카톨릭에 반대하는 개신교도 왕이나 권력자들을 복수하고 죽이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창조적 지혜" 혹은 "로고스"(Logos)를 상징하는데, 플라톤은 "최고의 신 다음가는 힘"(the next Power to the Supreme God)을 우주 안에서 "X"로 상징한다고 말했다 (윗 글, 291, 292 쪽. 이 "X"자 상징에 대해서는 본서 제5장 로마 중에서 콘스탄틴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기 바란다. - 각주).
미쓰라스(Mithras)는 그의 군대에 속한 군인들의 이마 위에 "X"자 모양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T"(타우)에다 "P"(로우)를 결합한 모노그램은 이집트의 태양신 "오시리스"(Osiris)의 모노그램이며, "오시리스의 지팡이"(the Staff of Osiris)라고도 부른다. 로마 카톨릭이 "X"와 "P"를 결합한 모양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교황이 오시리스의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 등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신 카노부스(Canobus)의 상징으로 "T"자 모양의 십자가와 "+"자 모양의 십자가를 구분없이 사용하였다. 인도의 바쉬나바스 (Vashnavas)는 "T"자 모양의 십자가를 신성시 할 뿐 아니라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겹쳐진 모양과 네 끝이 꺽어진 십자가 모양(불교의 십자가나 히틀러의 나치당의 십자가) 등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국가를 상징한다고 하여 국기에 새겨 놓은 "다비드의 별"(삼각형과 역삼각형이 겹쳐진 모양)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성경에 "야코브의 별"(우리 주 예수스 크리스트님)은 있어도(민24:17) 다비드의 별이란 것은 없다. 그들이 말하는 "다비드의 별"이란 사실상 그들이 옛적에 광야에서 섬겼던 "렘판" (Remphan, 바빌론 신으로서 로마의 쥬피터에 해당)의 별이다(사도행전7:43; 아모스5:26). 이스라엘은 아직도 바빌론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Horus)의 사제들이 입는 사제복에는 장미 모양의 말타 십자가(Maltese cross)들이 둘러져 있는데 티벳의 라마승들의 의상도 마찬가지이며, 로마 카톨릭의 사제복도 동일하다.
장미(the Rose)는 오로라 (Aurora, 세미라미스의 다른 이름)와 태양신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 "빛의 부활"과 "생명의 갱신"을 가져다 주는 "동녘"(Dawn)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장미가 십자가와 결합한 말타 십자가는 "영원한 새벽의 동녘"(the Dawn of Eternal Life)을 의미하면서 "모든 민족들이 소망하는 구원자"를 상징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구원자는 다름 아닌 "적크리스트"를 말한다. 이 말타 십자가는 오늘날 로마 카톨릭의 주교단(Bishop's committee)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인쇄물에 찍히는 "출판허가"(Imprimatur)의 상징이기도 하다(성경에 이 표시가 찍혀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모든 성경들에는 이 "출판허가"(Imprimatur) 표시가 붙게 되어 있는데, 동일한 성경이 개신교 용으로 나올 때는 은닉하는 수단으로 직접적인 표시 대신에 변형된 도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단 성경이나 출판물에 십자가 형태의 도안이 나와 있는 것은 모두 로마 카톨릭과 연계되어 있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바빌론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기 위하여 십자가의 네 끝에 세 개의 잎사귀 모양을 첨가한 십자가도 있었는데 그것을 세 잎(trefoil)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로마 카톨릭의 십자가는 네 끝에 세 개의 원을 첨가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태양신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15세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에 퍼져 있었던 이 십자가의 상징은 분명 바알종교의 태양신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가증한 바빌론의 삼위일체에 대한 헌신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바알종교의 비밀입교식 때에 밥티슴(세례)를 받은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하였고 (Tertullian, De praescript. Haeret. cap. 40), 심지어는 어린이를 제물로 바칠 때에도 가슴을 십자 모양으로 도려내어 심장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십자가는 이같은 인신제물의 상징으로도 사용된 것이었다. 또한 바빌론의 이 가증한 십자가는 '생명과 지식의 나무'(the tree of life and knowledge)로도 불려졌는데,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와도 연관성이 있는 듯하며, 십자가를 나무와 잎사귀에 연관시킴으로써 십자가를 치유와 주술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저의도 있었다 (Alexander Hislop).
오늘날 이교도들 가운데서 십자가의 상징이 없는 종파가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바빌론의 십자가가 바벨 탑 이후에 전 세계로 퍼졌기 때문이다. 가령 붓다(Buddha, 부처)는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고 전해지며, 드루이드교에서는 오크 나무를 잘라 십자 모양을 한 다음 그것을 신성시했고 자기들의 사원도 십자 모양으로 건축하였다 한다.
크리슈나(Chrishna)가 화살에 맞아 죽은 곳도 십자형의 나무 위에서였다고 하며, 멕시코 (참고로,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남미, 미국 남부 등등은 대부분 카톨릭 국가입니다 - 참고) 에서도 십자가를 신성시하여 숭배하고 있고, 아무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이단 종파들이 이 십자가 상징물을 신비와 주술, 미신적 부적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이같은 바빌론의 미신과 기만의 도구인 십자가 상징물을 크리스챤들이 기독교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영원히 단 한 번만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우리 주 예수스 크리스트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매달아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시게 하는, 극악한 배도 행위가 아닐지 실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히브리6:6; 9:26-28).
바알 종교의 소위 성육신한 태양신(Sun-god)의 숭배에서 "타오르는 등불"(burning lamps)과 "켜진 촛불"(lighted candles)은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사탄은 말씀이신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빛이 되실 것을(요한복음1:1-5,14) 알고는 그것을 적크리스트인 니므롯에게 적용시키려고 또 하나의 위조품을 발명해 내었다.
태양신인 님로드는 미쓰라 (Mithra, 위대한 계시자)라는 이름 하에 사자상으로 상징되었고, 사자의 입에는 벌(Bee)이 물려져 있었는데 그 벌은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갈대아어에서 '벌'은 '말씀'이란 뜻도 된다. (Alexander Hislop). 이 미쓰라는 '우라노스'(Ouranos, 빛을 비추는 자)로도 불리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빛으로 오신 말씀이신 크리스트님을 모방한 것이었다.
이 우라노스는 '크로노스'(Kronos)와 동의어로서 크로노스는 '광선을 보내는 자' 혹은 '뿔이 나온 자'란 뜻을 가지고 있어서 바빌론의 힘센 왕 님로드가 빛을 주는 태양신으로 숭배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태양신이 빛을 준다는 것을 타오르는 등불과 켜진 밀랍초로써 상징하게 하였던 것이다. 특히 밀랍초(wax-candle)를 사용토록 한 것은 밀랍이 벌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바빌론 비밀종교의 모든 의식에는 타오르는 등불과 밀랍 촛불의 행렬이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같은 행습이 로마 카톨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모든 종교들(특히 비밀 종교들) 가운데서 중요한 요소로 발견되고 있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 부처 앞에 밀랍 초를 켜 놓는 것이라든지 연등회와 같은 것이 여기서 유래하며, 우리나라 풍습 중에서 연등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결혼식 때 화촉을 밝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빌론 비밀종교의 위조품들은 이 밖에도 유물숭배, 사제복, 화관, 삼엽(trefoil) 왕관, 야누스의 열쇠, 로자리(Rosary), 거룩한 심장과 목걸이, 로마의 인장, 이스터 제, 성탄절, 만성절, 레이디 데이…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실로 이 세상의 모든 가증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이 다 바빌론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빌론 비밀 종교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으니 비밀이라, 거대한 바빌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요한계시록계17:5). And upon her forehead was a name written, MYSTERY, BABYLON THE GREAT, THE MOTHER OF HARLOTS AND ABOMINATIONS OF THE EARTH (A.V.) "그리고 어두움에 속한 열매없는 일들과 교제를 갖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여라. 이는 그들에게서 비밀 속에 행하여진 그것들에 관하여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망되어진 모든 것들은 빛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이는 그 무엇이든지 드러나게 만드는 것은 빛이기 때문이다(에베소서5:11-13, 킹 제임스 성경 직역).
And have no fellowship with the unfruitful works of darkness, but rather reprove them. For it is a shame even to speak of those things which are done of them in secret. But all things that are reproved are made manifest by the light: for whatsoever doth make manifest is light (A.V.).
비록 바빌론의 비밀종교가 비밀의 베일에 쌓여 있지만, 우리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 내야만 한다. 그 정체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그들과의 교제를 멀리할 수 있겠으며, 그들을 책망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도 못하였는데 어떻게 악을 떠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있기에, 그 빛으로써 그들을 분별해 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며,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는 것이다(고린도후서 6:17-18; 에베소서5:11-12).
정체를 드러내는 일에 있어서 때로는 객관적인 자료들이나 논리적인 추리,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지지만, 인간이 만든 자료들은 언제든지 조작이 가능하고, 논리적인 추리나 목격자들의 증언 역시 주관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에 지나치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더군다나 거대한 바빌론 조직이 은폐하고 있는 것을 얄팍한 객관적 자료들로써 파헤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객관적 자료'란 개념 자체도 이미 그들에 의해 오염된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최종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최종적인 신뢰의 닻"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은 그 말씀을 진실로 믿는 성경신자들의 정직한 증거들이다. 객관적 자료들이란 기껏해야 세 번째 서열에 속한 신뢰의 근거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바른 분별의 빛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분별의 빛으로써 객관적 자료들이나 증거들을 평가할 때, 오히려 그러한 자료들이나 증거들도 빛이 나게 될 것이다.
님롯과 바벨탑
로마 카톨릭 교회는 뿌리부터 열매까지 전부 다 악한 한 그루의 나무와도 같다. 마태복음 13:31,32의 "겨자씨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 나무는 원래 푸성귀 같은 나물이 되었어야 했음에도,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과 긴 세월의 망각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숲 전체를 뒤덮을 만한 거대한 나무로 자라 "공중의 새들"(마귀들)(마 13:4,19)이 깃들이는 보금자리가 되고야 말았다. 우리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그 뿌리와 몇몇 줄기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나무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힘센 사냥꾼 님롯과 바벨 탑 (참고도서:두개의 바빌론)
홍수 후에 사람들은 {동쪽으로부터 여행을 하여 시날 땅에서 평원을 만나니, 거기에서 거하였}다(창 11:2).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 흘러 비옥한 대지에서 풍부한 곡식이 산출되는 곳이었지만, 반면 번식력이 강한 들짐승으로 인해 계속적으로 안전을 위협받아 왔다(출 23:29,30 참조).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힘센 사냥꾼 님롯(Nymrod)이었다. {쿠스가 또 님롯을 낳았으니,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힘센 자가 되었더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 앞에 님롯 같은 힘센 사냥꾼이라." 하더라.}(창 10:8,9) 사람들로부터 명성을 얻은 님롯은 사람들을 모아 성읍을 세우고 성벽을 만들어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창 10:10-12).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왕국이다. 님롯이란 이름은 "반역자"라는 뜻이다. 님롯이 왕국을 세웠던 바로 그 시날 땅에서 사람들은 주를 거역하여 바벨 탑을 쌓았던 것이다. 그들은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탑을 쌓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란케 하셔서 그들을 온 지면에 멀리 흩으셨다(창 11:1-9). 바벨탑은 무너졌지만 바벨의 종교는 전세계로 흩어져 이방 종교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하늘의 여왕 세미라미스와 태양 신의 아들 탐무스
전설에 의하면 바빌론 왕국의 왕 겸 제사장이었던 님롯이 죽자, 그의 시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여러 지역에 보내졌다고 한다(판 19:29, 삼상 11:7 참조). 님롯이 죽자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음란한 아들을 낳아 탐무스(겔 8:14)라 이름붙이고 그가 부활한 님롯이며 초인간적으로 잉태된 "구주"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아이뿐 아니라 어머니까지도 함께 숭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모자 숭배 사상"이 발전되었다. 바빌론의 유물 가운데는 여신 세미라미스(Semiramis)가 아들 탐무스(Tammuz)를 안고 있는 신상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이러한 모자 숭배는 독일, 스칸디나비아, 에투루리아, 드루이드, 그리스, 수메르, 영국, 중국,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로마 시대에는 비너스(Venus)와 쥬피터(Jupiter), 인도에서는 이쉬(Ish)와 이스와라(Iswara), 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디오이우스(Deoius), 이집트에서는 이시스와 호러스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도 이 "하늘의 여왕"(렘 7:18-20, 44:17-19)을 여신 아스타롯(판 2:13, 10:6, 삼상 7:3,4, 12:10, 왕상 11:5, 왕하 23:13)으로 섬겼고, 신약 시대에 와서는 "에베소"에서 다이애나(Diana)를 숭배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행19:27).
또한 마리아 숭배 교리가 A.D. 431년 "에베소" 종교 회의에서 채택되었다는 것은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바빌론 여신의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마돈나(Madonna)로, 페니키아에서는 "바다의 여신"으로 불리는데, 그 이름 가운데는 태양 신 바알에서 붙여진 바알티(Baalti)와 중보자(Mediatrix)란 뜻의 밀리타(Mylitta)도 있다. 바빌론의 숭배는 신비한 상징물과 함께 점점 발전되어 갔다. 사람들은 님롯을 태양 신 곧 바알로 믿었고, 그를 불, 물고기, 나무, 기둥, 여러 동물 등으로 상징하였는데, 금 송아지는 바로 태양 신의 아들인 탐무스의 상징이었다.
미카의 종교
재판관기 17,18장에 보면 미카의 종교가 등장하는데, 에프라임인 미카가 새긴 형상과 부어 만든 형상을 만들고 한 레위인을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세워 그를 "아버지"(신부)라고 부른다(마 23:9). 이 때 미카가 레위인에게 준 은 열 세켈과 옷 한 벌은 콘스탄틴이 성직 계급에 면세 혜택을 주고(A.D. 313), 모든 개종자들에게 금화 20냥과 흰 옷 한 벌씩을 선물로 준 것(A.D. 324)과 흡사하다. 그런데 단 지파에서 이 신들과 제사장을 뺏어 자기 족속의 제사장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바빌론의 신비 종교를 취해 기독교와 융합하여 자기들의 새로운 국가 종교를 만들어 낸 로마의 거짓 종교를 연상시킨다.
콘스탄틴의 십자가
로마 카톨릭이 국가 종교적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콘스탄틴 황제 때의 일이었다. 밀비안 브리지(Milvian Bridge) 전투 하루 전날 콘스탄틴은 태양 신에게 기도했을 때 석양 너머로 십자가와 함께 "In hoc signo Vinces" 곧 이 표로 정복하라(In this sign conquer)는 글씨를 보았다. 그 다음날 십자가를 앞세우고 진군했을 때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회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유일한 출처는 유세비우스인데, "역사의 날조자"로 규탄받은 인물로 신뢰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 기독교의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표가 아니라 칼데아와 이집트의 문자로 신비의 타우(Tau)란 글자였다. 이것은 탐무스(Tammuz)란 이름의 머릿글자이기도 하다. 십자가는 라틴(Latin), 타우(Egyptian), 갈보리(Calvary), 켈틱(Celtic), 성 안드레(St. Andrew), 그리스(Greek), 말타(Maltese) 십자가 등으로 여러 형태로 사용되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십자가는 이교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십자가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의 상징"이었다(갈 3:13).
님롯을 신격화한 바알의 상징물인 오벨리스크 역시 마찬가지로 이교의 산물이다. 뉴욕 센트럴 공원과 런던에서 볼 수 있는 이 주상은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데, 이것들은 주상이 가장 발전돼 있던 이집트로부터 옮겨 온 것들이다. 성 베드로 성당의 기둥들을 평면도로 보면, 예 다이애나 신전을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들은 남자의 성기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헬라폴리스에 있는 여신 신전의 현관에는 기둥들에 대한 비명이 이렇게 적혀 있다. "나 디오니수스(Dionysus)는 나의 계모인 여신에게 이들 음경들을 헌납하노라." 카톨릭 모교회의 위치인 바티칸은 원래 "점으로 예언하는 곳"(Vaticinia)으로서 바티카누스(Vaticanu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미신적이어서 유품들을 찾아다녔다. 수세기 동안 교황들이 인정한 유품들은 가지각색이다. 십자가에 박혔던 못, 그리스도께서 입을 댄 해면(spunge), 예수님께 입혔던 주홍색 겉옷, 가시 면류관, 최후에 만찬 때 쓰던 잔, 마리아의 머리카락(어떤 것은 갈색, 고수머리, 빨간 머리, 검정색 등 종류가 다양하다), 동정녀가 입던 스커트와 결혼 반지, 아기 예수의 강보, 목수 요셉의 작업 도구들, 예수님을 판 30개의 은전 가운데 하나, 유다의 돈주머니, 빌라도의 세수 대야,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탔던 어린 나귀의 뼈들. 이런 것들은 부적으로 팔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성당의 땅과 건물이 거룩하다고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에, 787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는 유물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주교도 성당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으로 인해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걸었던 비텐베르그의 캐슬 교회는 19,000개의 성인 유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로마 교황 제도
로마가 세계를 정복한 이후 바빌론으로부터 퍼져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된 이교주의가 로마 종교 제도 속으로 흡수됐는데, 그 가운데는 "최고 교황"이라는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율리어스 시저가 공식적으로 신비 종교의 "최고 사제"(Pontifix Maximus)로 인정된 것은 기원전 63년이었다. 아우구스투스 시저(B.C. 27-A.D.14년)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옛 로마의 주화에는 "폰트 막스"(최고 사제)라는 칭호가 새겨져 있다. 모든 로마 황제들은 A.D. 376년까지 이 직무를 수행해 왔었다. 그러나 그라티안 황제는 이런 칭호가 우상 숭배의 사상을 담은 것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최고 사제가 되기를 거절했다. 로마 황제가 종교적인 제사장의 직무도 겸하였는데다가, 로마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에, 로마의 감독이 "모든 감독들의 감독" 곧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었고, 마침내 378년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 1세(A.D. 366-384년)가 "최고 사제"로 선임되었던 것이다.
시저에게 사용된 "폰트 막스"(Pont Max)라는 칭호는 교황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 입구에도, 베드로 동상 위에도, 돔 안에도, 희년에만 열리는 "성년의 문" 위에도, 종교 개혁 직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만들어진 매달에도 새겨져 있었다. 로마로 들어온 바빌론 신비 종교의 한 분파 가운데 태양 신 숭배교에서는 제사장의 우두머리를 페이터 파트룸(Pater Patrum) 곧 "모든 아버지들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이 칭호에서 로마 교황의 칭호인 "Papa" 또는 "Pope"라는 말이 나왔다. 신비 종교의 우두머리는 기독교 시대 이전에 벌써 로마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교황이 쓰고 있는 티아라(Tiara: 관)는 시대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르게 만들어졌지만, 고대 앗시리아 서판에 그려진 신들이 쓰고 있던 것과 같은 형상이다. 교황이 쓰고 있는 마이터(Mitre: 사교관, 물고기 머리 모양을 한 어두관)은 님롯이 "물고기 신"으로 형상화된 다곤(Dagon: "Dag"란 물고기란 뜻이다.)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다곤 숭배 사상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판 16:21-30, 삼상 5:5,6). 다곤은 옛 기념비에 반인반어의 형상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고대 바빌론의 칼데아 제사장들도 물고기 모양의 관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야누스의 열쇠가 베드로의 천국의 열쇠와 연관되고, 우상을 운반하던 종교적인 행렬이 교황의 행렬로 바뀌고, 이집트의 왕 겸 제사장이 사용하던 깃털로 만든 커다란 부채 "파벨룸"(박카스의 신비의 부채로 알려짐)이 교황의 행렬에서도 등장하듯이, 이교의 숭배 의식과 제도가 기독교식으로 둔갑했을 뿐 로마 카톨릭은 이교 숭배와 하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수백년 전의 이교도의 신인 쥬피터(탐무스의 로마식 이름) 상이 로마에서 발견되었는데, 흉측한 모습을 한 이 거대한 청동 신상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성 베드로 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상에게 절하고 입맞추는 것은 바알 숭배의 표시였다(왕상 19:18). 님롯의 신비로운 모형 중의 하나는 금 송아지로 표시되는데, 구약에서도 이런 우상 숭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호 13:2). 이 동상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최대의 존경을 받아 발이 다 닳아질 정도지만, 실상 이 동상은 이교도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교와 기독교의 혼합은 너무나도 교활하게 이루어져 갔다.
콘스탄틴 종교 회의 기간 중에는 3명에서 4명의 교황들이 매일 아침 서로 상대방을 저주하며 저마다 그들의 대적을 "적그리스도, 마귀, 행음자, 하나님의 원수"라고 불러 대기도 했으며, 교황 레오 4세가 죽은 후에는 남장한 여자가 2년 1개월 4일 동안 교황 행세를 하던 적이 있었는데, 미사를 집전하다 어린 아이를 해산함으로써 여자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틴 루터가 카톨릭 교회의 사제로서 로마의 여행하다가 여자 교황의 동상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여자 교황이 아이를 해산한 자리에 바로 이 동상이 세워졌던 것이다. 15세기 말까지도 파페사(Papessa: 여자 교황)를 방지하기 위해서 검사를 해야만 했다. 여자 교황은 "사도 계승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빌론의 이교 전통은 전세계로 전파되어 이집트와 로마에서 그 꽃을 피웠다. A.D. 633년 토레토에서 열렸던 종교 회의에서는 모든 성직자들이 머리 뒤를 둥글게 체발하여야 한다는 엄격한 규례를 만들었다. 체발이란 사제 서품식에서 사제의 뒷머리를 둥글게 밀거나 깎는 것을 말하는 데, 이것은 태양 신의 상징으로, 태양 신을 숭배하는 이방 종교의 예식이었다. 바커스(Bacchus)의 제사장이나 이집트 오시리스의 제사장도 체발을 했고, 중국이나 로마에서도 행해졌다. 구약은 머리 가를 둥글게 깎는 것을 금하고 있다(레 19:27, 21:5).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카톨릭은 둥근 체발을 미사 때 사용하는 둥근 성찬용 빵과 연관시켰다. 또 다른 태양의 상징은 마치 살이 달린 마차 바퀴 모양으로 선들을 가로질러서 둥글게 만든 원이었다. 고대인들은 태양에 대하여 매일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태양 신이 몰고가는 거대한 수레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알 숭배를 들여왔을 때에도 태양신에게 바친 수레 곧 "태양의 병거들"을 갖고 있었다(왕하 23:4-11). 많은 성당에서 이런 상징들을 붙여 놓고 있는데, 이것은 초기 바빌론의 성전과 이집트의 성전 입구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카톨릭 당국에 의하면 "성인"이란 순교자들이거나 "교회"에서 이름난 죽은 사람들로서 교황이 성인으로 선언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성도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죽은 자들과 접촉하려는 것은 신접하는 것으로서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데도(사 8:19,20), 개신교도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공회와"(I believe in ∼ the Holy Universal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을 믿사옵나이다." 하는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다. 여기서 성도란 살아 있는 성도들뿐 아니라 카톨릭이 정한 죽은 성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과 함께 도움과 만족과 기도와 다른 선행과 상호 교통을 나눈다는 것이다.(신카톨릭 백과사전 4권 41p.)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도 신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욥 15:15, 5:1). 이교도들 가운데서 개종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옛 신들의 이름을 부르기를 꺼려 하자, "Venus"(비너스)를 "Vesta"(성 베스타)로, "브리힛트"(태양 신의 딸)를 "성 브리겟트"로, "빅토리아"(알페스의 여신)를 "성 빅토이레"로, "오시리스"를 "성 오누푸리스"로, "디오니수스"를 "성 디오니수스"로, "아폴로"를 "성 아폴리나니스"로, "마스"를 "성 마르틴"으로 부르는 것처럼, 기독교에서 그 신들에 해당하는 비슷한 발음의 다른 이름을 찾게 되었고, 그들을 성인으로 시성하여 공경하였던 것이다(A.D. 313년 밀라노 칙령).
종교 재판 (참고도서: 폭스의 순교사)
교황 이노센트 4세(1243-1254)는 "Ad Exstripanda"라는 문서를 발표해 "이단 사냥"을 명령했는데, 이 문서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어떠한 재산도 합법적 소유로 인정해 주고 이단을 한 명이라도 죽이기만 한다면 그들의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약속과 함께 고문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사지를 밧줄로 당겨 손발을 탈골시켜 심한 고통을 주는 고문대, 날카로운 칼날과 못이 박힌 로울러, 다리와 발을 부수는 데 사용된 "스페인식 장화", 무서운 칼날이 박혀 있는 마리아 형상을 한 "철 동정녀" 형틀 등 이들은 "이단들"이 자기들을 주장을 굽히게 할 목적을 잔인한 고문 기구들을 고안해 내었다. 이 밖에도 귀와 입에 끓는 납물을 붓는다든가, 눈과 혀를 도려 낸다든가, 눈과 온몸을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진다든다, 똥과 오줌 속에 넣어 질식시킨다든가, 사람들을 벌거벗긴 채 발에는 무거운 추를 달고 팔을 등 뒤로 묶어 도르래로 공중에 끌어올려 매달았다가 줄이 살을 뚫고 뼈에까지 닿으면 땅으로 떨어뜨려 손발의 관절을 비틀어 버린다든가 하는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개인이나 집단을 고문하고 죽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주의의 교리를 거절하는 도시 전체를 박해하기도 하였다. 1209년 베치아 시에서는 6만 명이 칼로 희생되어 그 피가 거리에 흘러넘쳤는데, 교황은 이단을 박멸하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죽는 즉시 연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으로 이들을 고무하였던 것이다. 1211년 라바르 시에서는 400명을 산 채로 화형시켰고, 어떤 지역에서는 하루에 10만이 넘는 알비겐스(Albigenses)를 죽여 그 시체를 산더미처럼 쌓아 불로 태우고 "교회"를 위한 큰 승리에 감사하여 특별 찬송을 불렀으며, 메린돌에서는 왈덴스의 부녀자 500여 명을 헛간에 가두고 불을 지르기도 했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 아이들을 끔찍하게 죽이기도 하였다. 1562년에는 교황 피우스 4세가 이탈리아 군대를 동원해 남녀노소를 닥치는 대로 죽이도록 명령했으며, 1572년 "성 바돌로매의 날"에는 파리에서 10만여 명의 위그노들이 살해되었다. 교황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572년 위그노들의 학살"(Ugonottorum Strages 1572)이라고 적힌 주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결론
요컨대, 로마 카톨릭은 바빌론의 신비 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 바빌론 종교는 님롯과 세미라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탐무스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바빌론에서 흩어지면서 이 종교를 가지고 나왔고, 이것이 각 민족과 언어에 따라 각 형태와 이름으로 발전되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했을 때 피지배국에 있던 여러 신들과 바빌론의 종교 제도들이 로마 제국 속으로 흡수되었고, 기독교와 혼합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큰 바빌론의 신비이다.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계 17:5) 종교 개혁자들의 개혁에 의해서 로마주의의 이교적인 요소들이 일정 부분 제거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카톨릭의 전통이 개신 교회 내에 많이 잔재되어 있다. 이로 인해 오늘날 기독교는 바빌론의 음녀에게 속아 에큐메니즘으로 향한 배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발은 죽음으로 내려가고, 그녀의 걸음은 지옥으로 접어드는도다.}(잠 5:5
바빌론 종교-2
바빌론 종교와 로마 카톨릭의 유사점
바알숭배
로마카톨릭
1. 담무즈의 탄생일 12월 25일
1. 예수 그리스도 탄신일,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지킴. 마스는 미사를 뜻함. (개신교에서도 지키는 12월 25일은 본래 태양神의 생일이었음)
2. 성하(盛夏)축제 6월 24일
2. 침례 요한의 탄생일로 6월 24일을 지킴
3. 세미라미스를 여신으로 숭배
3. 성모 마리아의 몽소 승천을 믿음
4. 이교도의 여신을 하늘의 황후로 숭배(렘7:18)
4. 동정녀 마리아를 하늘의 황후, 여신으로 숭배
5. 하늘 여신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봉헌 (렘44:17,19)
5. 십자가 무늬가 찍힌 과자를 성 금요일에 먹음
6. 담무즈를 위해 40일을 금식(겔8:16)
6. 40일간의 사순절 금욕기간
7. 이스터 여신 축제(겔8:16)
7. 이스터 여신 축제
8. 담무즈가 환생하여 이스터 여신이 된 것과 성주간 동안의 우상 행렬 의식
8. 부활절의 전 주인 성주간 동안에 예수님과 마리아와 베드로의 상을 만들어 행렬의식을 거행함
9. 바알과 이스타르 여신과 담무즈 숭배
9.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와 베드로와 여러 사람들의 상(像)을 만들어 숭배
10. 연옥을 믿음
10. 연옥의 존재를 믿음
11. 연옥에 대해 가르침
11. 연옥에 대한 교리가 있음
12. 사자(死者)가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온다는 것을 믿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영혼제일을 11월 2일로 지킴
21. 로마 교황에 대한 최고의 명칭들 중에 폰티펙스 막시무스 (최고신관)라는 명칭이 있음
22. 주중에서 첫날인 일요일을 바알신을 숭배하는 신성한 날로 지킴
22. 일요일과 태양신 날짜를 혼합함
23. 야뉴스와 퀴벨레가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믿음
23. 베드로가 가졌던 천국 열쇠를 로마 교황이 양도 받았다고 주장
24. 대제사장이자 제왕인 이교도 왕이 태양신께 예배하기 위해 이동식 왕좌에 들려가는 제도
24. 로마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의 바실리카로 가기 위해 이동식 왕좌에 들려가는 제도가 있음
25. 이교도의 대제사장이자 제왕인 파라오가 육신의 모습을 한 태양신이라고 믿음
25. 로마 교황은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한다.
26. 많은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제물을 바침
26. 인간의 행위로써 희생하고 구원받을수 있다고 믿음. 고해성사제도 있음
27. 이교도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들을 수용하는 집이 있음
27. 수녀들과 수녀원 있음
28. 태양신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인간을 번제물로 바침
28. 로마 카톨릭의 교의(敎義)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음
크리스마스, ‘성경에 없는 기독교 최대 명절’
성탄절의 기원과 역사, 알고 즐기자
▲ 예수 탄생에 대한 루벤스의 그림. 화려한 르네상스/바로크풍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리에 화려한 트리에 전구가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면, 크리스천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뜨곤 한다. 교회에서도 세속화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가장 떠들썩한 축제이다.
그런데 정작 예수의 탄생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그 유래가 이교도의 풍습과 닿아있다는 점은 성탄의 의미에 대한 회의론까지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이 성탄절을 그저 즐거운 명절로 보내더라도, 크리스천들은 진정한 성탄의 의미에 대해 알고 기념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 제기되고 있다.
왜 ‘12월 25일’ 일까
그렇다면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비판거리가 되는 성탄의 유래에 얽힌 진실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이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이 언제인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목동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는 등의 기록을 들어 한겨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아직 예수 탄생시기에 대한 학술적인 증거가 발견되고 있지 않다. 이 상황에서 성탄절이 12월 25일로 된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배경에는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에 퍼져있던 미트라교의 영향이 있다. 고대 근동의 종교였던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교와 합쳐지게 된다.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확장에 따라 로마 헬레니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이전에도 로마에는 태양신 숭배사상이 있었고,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농경의 신을 섬기는 축제가 있었다.
▲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사세타의 예수 탄생과 관련된 그림
3세기 후반, 로마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는 미트라교 신봉자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빛의 신 미트라는 로마에 넘어와서 태양신 숭배와 혼합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태양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이후의 날인 12월 25일을 태양신이 재생하는 날로 기념해, 축제를 열었다.
이러한 때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며 로마 카톨릭이 태동한다. 이어 카톨릭은 태양신 숭배 사상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이 날을 성탄절로 정했다고 한다.
바꿔야 해, 말아야 해
핍박받던 종교에서 어느덧 지배종교로 부상하게 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탄절에 이미 널리 펴져있던 더 많은 이교도적 풍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일종의 토착화 선교 전략이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성탄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시 근동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탄생일이 부적절하게 기념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고 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기독교인들은 “서방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며 “태양숭배를 기독교 축제로 받아들였다”고 비난했다.
이후에도 로마 카톨릭은 비성경적인 풍습을 받아들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마스트리’인데, 이는 고대의 성목(聖木)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트리로 사용되는 상록수 뿐 아니라, 장식용인 호랑가시나무와 겨우살이도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신앙의 상징물이다.
이러한 변질에 대해 종교개혁 이후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적극 반대했다. 영국 청교도들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은 1664년 크롬웰의 의회 장악 때 성탄절을 금지하고 이를 지키는지 감시했다.
이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간 후, 미국 청교도들도 동일한 기준을 택했다. 1659년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금지했다.
이러던 것이 1836년 앨라배마 주에서부터 다시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하기 시작해 남북전쟁이후에는 미국 전지역으로 확산됐다.
오늘날 성탄절은 또다른 이교도적 풍습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의미는 없어지고 상업문화만 팽배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와 목회자들은 많은 비판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이 날이 ‘성육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성탄의 본질을 저해하는 것들을 차츰 제거해가며, 건전하고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성탄절을 폐지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구굿뉴스
비성경적인 크리스마스
1. 크리스마스의 유래
"크리스마스"(christmas)란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뜻입니다. 미사란 라틴어 "MASSA"에서 온 말인데, 이것은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미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제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릴뿐입니다(요4:23~24).
장로교회의 창시자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주의 만찬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살하는 모독적인 행위로 그런 행위는 곧 미신이며 우상숭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성탄절'(聖誕節)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도 오히려 좋지 않은 단어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어원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비롯되었음을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그것의 비성경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냥 교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날은 바빌론의 태양신의 날입니다. 12월 21일은 동지로, 지구가 태양의 영향력에서 가장 멀어지는 날이며, 24일부터 태양의 영향력은 커지기 시작합니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자들은 여기에 생명이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부여했는데,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태양신인 바알의 생일이 12월 25일이 되었습니다. 태양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며 경배되었는데, 그 이름은 탐무즈, 호러스, 이시스, 솔 등으로 불리웁니다. 그래서 태양신의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마시고 즐기며 술 취하고 아기들을 바알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날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4세기까지의 어떤 성도도 이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였지만, 탄생을 기념하지는 않았습니다(고전11:26) 대영백과사전」도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의 축제들 중에는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카톨릭 백과사전」(1911년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 이레니우스와 터둘리안은 축제일 목록에서 크리스마스를 삭제하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카톨릭이 이교도들을 무조건적으로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함께 수용한 이교도의 문화였던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4세기 후반에 고대 로마의 태양신 솔(Sol)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영구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영백과사전」도 그 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기독교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 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 축제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신제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데 합쳐서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 세계에서는 농경신 사투른을 기념하는 축일 '사투르날리아'(12월 17일)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또한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여긴다.
로마력 설날(1월 1일)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튜튼족이 갈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들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식과 교제, 크리스마스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나무들과 전나무들,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교도에게나 기독교도에게나 겨울 축제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 등불들과 관련되었다."
「카톨릭 백과사전」 또한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12월 25일에 지켜 온 잘 알려진 나탈리스 인빅티의 태양 축제(즉,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탄생)는 우리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에 대한 좋은 근거가 된다"(제3권, p. 727, Christmas).
카톨릭의 무지와 타락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도의 명절이 그들의 주장과 논리대로 오늘날의 개신교회들안에 전승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만큼은 무신론자들인 공산권 국가들과 회교 국가들과 힌두교 국가 등 타종교와 문화권에서도 그토록 관대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곧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의미하는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연중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술 마시고 음행하며 더 많이 흥청거리는 날이 된 것은 바로 이날이 이 세상의 신을 경배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2.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여러 증거들
○ 성경의 증거
(들판에 있던 양떼들) 우리는 누가복음 2:8에서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그분의 탄생을 알려주었던 때에, 목자들이 넓은 들판에서 밤까지 양떼들에게 풀을 먹였으며, 밤에 들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겨울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상당히 추우며 비가 오는 계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0월 말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 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모든 양떼를 집으로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습니다. 에스라10:9-13을 보면,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다 월력-우리 월력으로는 11월 중순경 이후임)에 비로 인해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 사실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늦어도 10월말 또는 11월초 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여관에 그들이 묵을 방이 없었음) 유대인들은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출 23:14-17, 참고 - 출 34:24; 시 50:5).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는 유다인의 7대 절기 중에서 나팔절,속죄절, 장막절을 지키러 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그 시기에 예루살렘 근교에는 각처에서 올라온 많은 순례자들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날 저녁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조차도 거할 장소가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마리아와 요셉이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의해 호적을 등록하려했을 뿐 만 아니라 이 유다인의 절기 중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상경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예루살렘의 총독을 통해 유대인들의 이러한 풍습이 있음을 듣고 이 시기에 맞춰 호적등록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위력은 정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요1:14)라고 쓰고 있습니다. "거하시니" 라는 말은 영어로는 "dwelt"이고 그리스어로는 "tabernacled"로서, 이 "tabernacl"이라는 단어가 바로 장막절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께서 장막절에 출생하셨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의 장막절은 지금의 월력으로는 대략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경에 해당합니다.
( 만삭된 여인이 한겨울에 여행?)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에 모든 여인과 아이들도 자기들이 속한 도시에 조세등록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길고 오랜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한겨울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만삭의 몸인 여인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지방의 겨울이 그렇게 혹독하게 춥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
겨울이 유대인들에게 있어 도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면, 아이들이나 여인들이, 특히 아기를 밴 여인이 여행을 한다거나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 여러 문서들의 증거
또한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 이외의 다른 여러 문서들에서도 증명됩니다.
아가페 성경사전(1991)은 "그 날짜는 분명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로마인들의 축제(Natalis Solis Invicti,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에 맞서서 선택되었다."라고 말하며, 카톨릭 백과사전(1991)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라고 말합니다. 삼성문화사에서 출간한 국어사전(1993)에도 "크리스마스는 로마의 농신제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 성경신자들의 실행을 통한 증거
1620년대 미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나 인사를 주고받거나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먹는 행위를 사탄의 관습으로 간주하여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였고, 그것을 위반할 경우에는 5실링의 벌금을 물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날이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620년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 이민에 관한 기록을 보면 메사추세츠 법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것까지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 크리스마스 때 행하는 여러 풍습들에 대한 고찰
○ 크리스마스 트리
고대 바빌론 전설에서는 한 푸른 나무가 죽은 그루터기에서 솟아날 때 새 푸른 나무는 님롯이 탐무즈를 통해 부활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농신제 기간 중 붉은 열매들로 전나무를 장식했습니다 (월쉬의 <대중관습의 진경>).
성경에는 이방인들이 푸른 나무를 경배했다는 내용들이 나옵니다(왕상 14:23).
"그 백성들의 관습은 헛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숲에서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기술자가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 그들이 그것을 은과 금으로 꾸미고, 못과 망치로 고정시켜 움직이지 않게 하는도다. 그것들은 종려나무처럼 곧게 서 있으나 말을 못하고, 걸을 수도 없으니, 꼭 붙들어 주어야 하느니라.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것들이 악을 행할 수도 없고, 또 선을 행함도 그들 안에 없음이라"(렘 10:3-5).
위 성경구절들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도 사실상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나무를 잘라 장식들을 꾸며 이를 즐거워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선물교환
"친구들과 어울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크리스마스와 농신제가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에게서 받아들인 일임이 틀림없다" (대영백과사전 12권 pp.153-155).
"크리스마스 시즌과 관련된 상당한 것들, 즉 휴일들, 선물교환 및 일반적인 온정은 이교주의의 잔존물인 로마의 겨울 농신 축제가 계승된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다"(베일리의 <로마의 유산>).
○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4세기 경 네덜란드의 대주교인 "성 니콜라스"를 따라 부른 것입니다. 그가 결혼을 못한 가난한 새 여인에게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여 준 것이 전설이 되어 신발 또는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는 풍습이 생겨났으며, 이교도의 사랑의 신인 베스(Bes)가 겨울에 북극에서 썰매를 타고 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전설과 혼합되어 오늘날 썰매를 타고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가 된 것입니다(대영백과사전 19권 pp.648-649).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볼 때 크리스마스는 인간이 만든 전통이며, 오히려 사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신의 날이나 농신제의 축제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4. 죽은 종교와 산 신앙
어떤 이들은 우리가 12월 25일이라는 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그 특별한 탄생의 의미를 기리는 것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기념하고 싶다면 정확한 날을 알고 기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아 계신 부모님의 생신 상을 차려 드리면서 제 날짜도 아닌 날에 요란을 떤다면 좀 우습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기념되기를 원하셨다면, 그 날짜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놓으셨을 것이건만 성경은 그 날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탄생일을 강조하는 것은 죽은 종교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공자, 맹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마르크스, 레닌은 모두 유교, 불교, 회교, 인본주의, 공산주의 등 인간적인 발상으로 종교와 이념을 만들었지만, 태어난 날만을 자랑할 뿐,지금도 무덤에 묻혀서 그 가르침은 그들의 죽음과 함께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탄생일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함으로써 그분의 신성을 제거하려는 인간적이며 마귀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4대 성인 중의 한 분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2천년 전 육신을 입으셨지만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전통의 편에 설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너희가 얼마나 더 두 의견 사이에서 지체하려느냐? 주가 하나님이시면 그를 따르라. 그러나 만일 바알이면 그를 따르라"(왕상 18:21).
그래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는 것을 성경적인 교리로 믿고 실행하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전통"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비춰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니, 단지와 잔을 물로 씻는 것과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자행하는도다."라고 하시니라.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는도다"(막 7:8-9).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라고 하시더라"(막 7:13).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알려졌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다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종노릇하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도다. 나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9-11).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고 선포해야 할 것은 바로 그분의 죽으심일 뿐 날이나 절기가 아닌 것입니다(고전11:24~26).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4~26)
부활절(Easter)에 대한 바른 이해
지난번에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배경과 그 이교적인 유래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이제부터는 부활절이 과연 주님께서 명하신 주님의 절기인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전통에 따른 사람의 절기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부활절(Easter)의 기원
부활절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과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 달걀에 색칠을 했을까요? 부활절을 언제부터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서머나의 감독인 폴리갑과 로마의 감독 안티케투스가 서로 주고받은 서신에 "부활절 논쟁"이 있었다는 불확실한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기타 문서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 축제를 지켰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부활절을 축제의 날로 잡아 기념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영백과사전」초판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경이나 사도적 교부들의 저술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을 지켰다는 암시는 없다. 특정한 날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이 축제일이나 기타 다른 어떤 축제일도 지키라고 명한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3세기경, 교회에서 지킨 부활 축일은 오늘날 '이스터'(Easter)란 이름으로 지켜지는 부활절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또 이 기념일은 그 당시에 '이스터'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습니다. 이 기념일은 파스카 즉 유월절로 불렸고, 이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전해질 따름입니다(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 그런데 이 '파스카'를 '이스터'라 불러 '춘분 뒤에 오는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에 축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습니다. 주후 325년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 공회에서 부활절을 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카톨릭 백과사전」, p. 505).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로마 카톨릭주의에서 나온 '이스터'(부활절)를 '춘분 뒤에 오는 만월 직후 일요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단어는 'Resurrection' (성경에서 총 41회 언급)인데, 왜 '이스터'(Easter)를 부활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유다인들의 유월절주간(유월절은 니산월 14일에 있었으며 이것은 유다 민력으로 7월에 해당하며 우리 달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고, 그 주간에 무교절, 초실절 등이 동시에 있음)에 있었는데, 왜 부활절을 '춘분 뒤에 오는 만월 직후 일요일'에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의문점을 풀기 위해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영어사전과 신학사전에서 '이스터'(Easter) 항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웹스터의 신국제 사전 제3판」(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1. 고대 이교도들의 봄 축제,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서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뒤에 오는 만월을 기준으로 해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거행된다. 부활절은 춘분과 음력이 연결된 일자이기 때문에, 그 날짜는 매해 달라진다.
「펑크와 와그날의 대학표준사전」(Funk & Wagnalls'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1.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제, 혹은 부활제가 거행되는 날
「시사 엘리트 사전, 1987년판」
"부활절(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 3월21일 이후의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
「현대 영한 사전, 1994년판」
"그리스도의 부활절, 춘분(春分) 3월 21일의 만월. 그 날이 만월이 아니면, 그 뒤의 만월 후 최초의 일요일이며 그 날짜는 정해진 것이 아님. 이 날을 '부활절'(Easter Day)이라고 말하며 기독교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중요한 축제일임. 원래는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Eostre)의 제일(祭日)임."
「성서대백과, 정인찬 편, 기독지혜사 1979」
"이스터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드(Bede)에 의하면, 이 명칭은 고대 튜우튼 족이 4월에 희생제물을 바쳤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천 의식은 아마도 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사탄을 숭배하는 신비 종교들이 극도로 성행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태양신 숭배' 혹은 '바알 숭배' 그리고 '월신 숭배' 등이었습니다. 태양신(솔, 호루스)은 최초의 적그리스도이자 바빌론 왕국을 세운 '니므롯'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창10:8,9). 그의 이름은 '담무스'(Tammuz)라고도 하는데(겔 8:14) 그는 원래 니므롯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는 자기 남편 니므롯이 죽자, 그 니므롯이 환생하여 담무스가 되었다고 사람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이 담무스는 바알이라고도 불리며(렘 19:5), 마르둑, 벨, 오시리스, 쥬피터, 오리온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담무스의 어미이면서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는 월신으로 알려졌고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25)이라 불렸으며, 여러 고대 국가에서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다롯(삿 2:13), 아스타르테, 다이아나(아데미, 행 19:24), 시벨레, 비너스, 마리아, 이쉬타르(Ishtar)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특히 고대 영국의 색슨족은 이 '이쉬타르'란 이름을 취해 이스터(Easter, 빛과 봄의 여신)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터'(Easter)는 에오스트레, 오스테라, 아스타르테, 또는 이쉬타르 등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부활절 풍습: 부활절 계란, 부활절 토끼, 사순절 등
원래의 이스터는 하늘의 여왕을 기념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로서, 이것을 상징하는 심벌로는 플레이보이지의 심벌인 '토끼'와 하늘의 여왕인 비너스 혹은 이스터의 탄생을 상징하는 달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스터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기간 중에 행해지는 관습들 역시 이교도들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활절 달걀을 삶아 색칠하여 먹는 것 등은 비기독교적인 이교도의 관습입니다. 어떤 이들은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듯 그리스도께서 무덤으로부터 나오셨다는 의미로 부활절 달걀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결코 성경이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고대 바빌론 신화에는 하늘로부터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굉장히 큰 전설상의 달걀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달걀에서 여신 아스타르테가 부화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고대 바빌론 사람들 사이에서 달걀은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여신 아스타르테(혹은 이스터)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 교도들은 달걀을 자기들 종교의 거룩한 상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바카스의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알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한편 힌두교도들은 금빛을 띤 창조의 알을 숭배했으며 중국인들은 종교축제 때에 염색하거나 색칠한 달걀을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종교의식에서 알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목적을 위해 자기들의 사원에 알의 형상을 만들어 비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로마에서는 풍작의 여신 케레스를 섬기는 행렬이 지나갈 때 계란을 앞세워 갔으며, 일본에서는 거룩한 달걀을 봄의 여신의 상징으로 색칠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달걀이 태양 즉, '황금달걀'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들은 염색한 달걀을 거룩한 제물로서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바빌론의 알 숭배 사상의 자취는 우리 나라에도 유입되어 '박혁거세 신화'에서도 발견됩니다.
「대영백과사전」은 달걀을 채색하여 먹는 이런 '알 숭배 사상'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인과 페르시아인까지로 소급하여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이교도들의 관습이 기독교와 연관을 맺게 되었을까요? 「카톨릭백과사전」에 나오는 다음 인용문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달걀 사용이 금지된 까닭에 사람들은 부활절 날 부활의 기쁨을 상징하는 붉게 칠한 달걀을 상에 가져 왔다. … 이 관습은 그 기원을 이교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경축하는 많은 이교 관습들이 부활절과 접목되었기 때문이다"(「카톨릭백과사전」제5권 p. 227, '부활절' 항목).
부활절과 관련되어 이교로부터 유입된 부활절 관습에는 부활절 달걀 외에도 부활절 초, 부활절 토끼, 부활절 백합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부활절 토끼의 경우를 들어보면, 「대영백과사전」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 이교로부터 기독교화 된 것이다. 토끼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에 해당되는 이집트 말 'um'이 '열린'(open)이란 의미와 '기간'(period)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이 토끼는 어떤 주기성 사상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달과 인간에게,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토끼는 부활절 … 달걀과 관련되어 있다."
또 위에서 인용한 「카톨릭백과사전」은 "토끼가 이교의 상징으로 항상 다산의 상징이 되어왔다"고 말하며,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진쿠퍼 지음, 이윤기 옮김, 까치」은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부활절 달걀 혹은 토끼는 춘분에 즈음하여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갱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다. 야생토끼나 집토끼는 게르만의 여신 오스타라(중세 영국의 에오스트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여신의 이름이 이스터의 어원일 것이다."
부활절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일출예배에 참석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절 일요일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태양이 떠오를 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무덤이 이미 비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아직 어두울 때였습니다. 한편 이 일출 예배의 모형은 해돋이 때 해맞이를 하던 고대 태양 숭배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해가 뜰 때 부활예배를 드리는 것이 결코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관습은 성경에 없는 것이며 이교에서 비롯된 혼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언자 에스겔 시대에 참 하나님을 아는 자들도 태양숭배에 빠졌고, 그것을 자기들 종교의 일부분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주의 집 안뜰로 들어가기로, 보니, 주의 전 문 앞 현관과 희생단 사이에서 약 스물 다섯 명이 주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 경배하더라"(겔 8:16).
백성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곧 해돋이 때의 의식임을 보여줍니다. 대언자 엘리야 시대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습니다. 바알은 태양신도 되고 불의 신도 됩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했을 때, 그는 단도 직입적으로 바알 숭배와 맞섰던 것입니다. 이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가 하루 중 어느 때였습니까? 그것은 바알, 즉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였습니다. 그 시간은 '아침'(왕상 18:25,26) 즉, '동틀 때'였습니다(「로마 카톨릭의 어제와 오늘」, 랄프 E. 우드로우, 기독교문서선교회)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관련한 의식들은 여러 형태로 많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위치를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지산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례자들은 산기슭을 오르는 동안 떠오르는 태양에 기도를 한다.... 종종 흰 예복을 입은 수백 명의 신토 순례자들이 그들의 거처에서 나와 떠오르는 태양에 시를 읊는 것을 볼 수 있다"(도빈스,「 세계 예배 이야기」).
고대 로마의 미트라 교도들도 태양신을 경배하기 위해 동틀 녘에 함께 만났습니다. 이스터란 이름에서 비롯된 봄의 여신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심지어 'East-er'(동쪽-사람)이란 단어 자체도 이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쪽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과 부활절이란 이름 그리고 봄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담무스는 죽임을 당한 뒤 지하세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이쉬타르(세미라미스)가 애곡함으로 인하여 그는 봄에 신비하게 소생하였다고 합니다.
"이쉬타르의 슬픔을 통한 담무스의 부활은 농작물의 다수확과 사람들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해 매년마다 극적으로 재현되었다. 해마다 사람들은 이쉬타르의 은총과 은전을 얻기 위해 이쉬타르와 함께 담무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이 신의 귀환을 축하해야 했다"(스미스,「인간과 그의 신들」).
새로운 식물이 움트고 나올 때, 고대인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지하세계로부터 나와 겨울을 끝내고 새롭게 봄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우르딘,「축제와 성일과 성인의 날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해마다 이교도의 봄축제 의식과 교리들을 받아드렸는데, 이에 대해 에스겔 대언자는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겔8:14)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연계의 소생이나 또는 봄에 새로운 식물이 소생하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년 중 봄에 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믿음에서 떠나 세상과 결탁한 4세기의 교회가 이교도들의 봄축제를 받아들여 기독교와 혼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영백과사전」은 이같은 혼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큰 축제일을 기념하는 데에 있어서 이교도들의 많은 의식과 관습을 통합시켰다."(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기독교는 천주교를 말하는 것임)
이제 사순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주후 5세기에 그 당시 교회와 초대 교회를 비교하는 글을 쓰면서 마르세이유 수도원의 수사였던 카시아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수함이 변질되기까지는 사순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순절 행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순절에 사십일 간 금식하는 관행 역시 바빌론 여신을 섬기는 자들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담무스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고 합니다. 히슬롭은 이 사순절의 '40'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40일의 하루는 담무스가 지상에서 살았던 한 해를 말하며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날'로 정해 놓은 날이다."
고대에는 40일이라는 기간을 우는 날로, 금식하는 날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이는 담무스의 은총을 얻어 지하세계로부터 나와 봄을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의 준수는 바빌론에서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멕시코인, 그리고 한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히슬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에게 이 사순절은 담무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에 없어서는 아니 될 예비기간이 되었던 것 같다"(「두 개의 바빌론」, 도서출판 안티오크).
쿠르드족 중 사탄 숭배자들은 지금도 매년 봄에 40일 동안 금식을 합니다. 쿠르드족은 이같은 관행을 일찍이 그들을 지배했던 바빌로니아인들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멕시코인들도 봄에 40일간 계속되는 축제를 엽니다. 멕시코의 이런 관습에 대해 험볼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합니다.
"춘분이 지난 지 삼일 후부터 태양신을 위한 40일 간의 종교적인 금식이 시작된다."
이집트에서도 오시리스를 위해 40일간의 금식을 행했는데, 이것은 윌킨슨의 책「이집트인들」을 참고하면 알 수 있습니다.
봄축제와 관련된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관습이 이미 카톨릭 교회 안에 유입된 고로, 이 축제에 앞서 행해지던 이교도의 "금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일 뿐이었습니다.「카톨릭백과사전」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4세기의 저술가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길만한 주장이 없는 이 사도적 제도에 관하여 많은 관행들(예를 들면 사순절의 40일간의 금식)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교황이 공식적으로 고기나 그 밖의 다른 몇 가지 음식들을 먹지 않는 기간, 즉 "거룩한 금식기간"이라고 부르는 사순절을 준수할 것을 명령한 것은 6세기경이었습니다. 카톨릭 학자들은 이교주의로부터 받아들인 관습들이 교회 내에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 이를 시인하고 있습니다(「카톨릭 백과사전」, 제11권, p.390. '이교주의' 항목). 그러나 그들은 비록 이교도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많은 것들을 기독교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이교도가 이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40일간 금식을 했다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자 이와 같은 동일한 방법을 취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록 이교도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역시 해 뜰 때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이교도들이 달걀을 사용했지만 무덤 앞에 놓인 큰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이교도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한다해도 무슨 상관이 있단 밀인가?"
이 모든 주장이 합리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안전한 지침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너는 스스로 조심하여 그들이 네 앞에서 멸망한 뒤에 그들을 따라감으로 올무에 걸려들지 말며 또 그들의 신들을 좇으며 물어 말하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리라, 하지 말라.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그와 같이 행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주께서 미워하시는 일 곧 그분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자기 신들에게 행하되 심지어 자기 아들딸들을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음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거기에 더하거나 빼지 말지니라."(신12:30-32).
끝맺음의 말
부활절 문제 역시 크리스마스 문제와 비슷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결코 제 아이들에게 계란을 만들게 하거나 부활절 토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고, 물론 사순절이니, 재 수요일이니 하는 카톨릭 전통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이 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주간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고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물론 미국과 같은 경우는 이 날이 휴일이므로 집에서 쉬면서 몸과 마음에 재충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리스천의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는, 이 세상이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세상이 무어라 하든지, 이제는 내 마음에서 정한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런 명절들의 유래에 대해 살펴본 것입니다. 이제 이런 것을 알게 된 독자께서는 자신과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행하면 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이 일년 내내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넘쳐나기를 기도 드립니다. 오직 이것만이 성탄절과 부활절의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