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평화여행을 다녀온 며칠 후에 저는 보리샘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민중미술 판화가, 반전운동가인 케터 콜비츠의 도록이었습니다.
오키나와의 사키마 미술관에서 본 도록이었는데, 다른 그림책을 산다고 도록은 사지 않았습니다.
몇시간 후 바로 후회했습니다. 그림책 내용이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보리샘한테 이 책을 선물 받은 것입니다.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리
케테 콜비츠를 울림샘들과 공유하고 싶어졌습니다.
케테 콜비츠의 자화상입니다. 이 판화(석판화라고합니다)는 콜비츠 말년의 작품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유명한 다른 것들보다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많은 고통과 고비를 품고 넘어 어느덧 내려놓을 때라고 느끼고 있는 황혼의 영혼이 깊은 생각에 침잠되어 있는 듯 응시하고 있는 저 모습이 너무 좋아서요.
케테 슈미트 콜비츠(1857~1945)는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기아와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특유의 판화기법으로 표현했는데 그녀의 표현기법은 1930년대 중국 루쉰의 민중판화운동으로 1980년대 한국의 민중판화운동으로 연결되어 독일의 민중미술의 어머니라 불리우고 동아시아 민중미술의 어머니라 불리울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합니다.
"나의 작품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구제 받을 길 없는 이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인간들을 위해
나의 예술이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담당했으면 싶다."
-케테 콜비츠
빈곤 죽음
모의 봉기
콜비츠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위의 <직조공들> 6개 연작 판화 시리즈라고합니다. 산업혁명후 일자리를 뺏긴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과 기아에 내몰렸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묘사한 희곡 <직조공들>을 주제로한 판화 작품인데 베를린 살롱에 출품하여 금상을 수여하였으나 프로이센 정부가 반대하여 황제로하여금 취소하게 했다고합니다.
<부모>
콜비츠는 1차 대전에서 둘째 아들을 잃고 2차 대전에서 손자를 잃었습니다. 위의 작품은 1차 대전후 반전 운동을 하며 전쟁을 참상을 알리는 <전쟁> 시리즈 작품들을 제작하였는데 위의 <부모> 는 자식을 잃는 부모를 묘사한 연작품의 하나로 전쟁이 끝나고 반전 박물관 개관 기념 작품으로 전시되었다고합니다.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된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작품이지요. 콜비츠의 마지막 석판화인데요, 1942년 둘째아들의 이름을 딴 손자 페터가 러시아에서 전사하고 유언처럼 완성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에 내보내려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다"
전쟁, 기아, 질병 등으로 죽어가는 아이와 비탄에 빠진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의 작품에서 일관된 주제였습니다.
나치가 콜비츠 부부를 체포. 반나치 혐의로 조사했으나 국제적 명성때문에 구속을 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판화는 특이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녀를 안지는 얼마 안됐지만 민중 판화가로서 알려져있는데 그 그림은 투쟁이나 격렬한 구호가 아니라 호소이고 나눔이고 공감대의 형성이라는 생각이요.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냥 내가 느낀 것을 말하라면 예술성도 있더라, 감성도 있더라...뭐 이런거. 보통 약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들이 깊이있게 들어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