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단

번제단
하나님께서도 예수의 피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를 원치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 우리가 성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제단이 보이고, 그 제단 위에는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은 어린 양이 보이며, 어린 양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제단에서 불 타고 있는 어린 양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 미하고 있다 인간들은 범죄한 이후에 계속하여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왔다. 인간들이 처음에는 죄를 미워하다가, 죄와 더불어 오래 사는 동안 죄와 친숙해져서 죄와 더불어 먹고 마시는 데에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기보다는 범죄나 불의한 방법으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한다. 인간들이 즐거워하는 모든 곳에는 불의가 역사하고 있다. 우리가 죄와 더불어 먹고 마실 때는 부담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할 때는 그 죄가 우리 양심 속에서 우리를 정죄하고 괴롭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담대함을 잃게 만든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죄에 눌려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죄와 더불어 사는 것을 마음 아파하시며 안타깝게 여기셔서, 우리가 속히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든지 어떠한 어둠 속에 있든지 간에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 하셨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쏟아야 할 모든 진노, 우리에게 내려야 할 심판과 형벌을 전부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은 곧바로 우리의 죽음이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곧바로 우리의 못박힘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고 죽어 불타고 있는 어린 양이 바로 우리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복되고 기쁜 삶을 살 수가 있다.
분리된 번제단(사각 모서리의 뾰족한 부분이 "단뿔") ▶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출 27:1,2) 이 말씀에 보면 제단 사각 모퉁이에다가 뿔을 만들어 연하게 하라고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은 성막의 뿔들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성경에서는 무엇보다 단뿔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죄를 지어 두려움 속에 빠졌을 때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제단뿔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발견할 수 있다.
레위기 4장을 보면,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나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향단 뿔에, 족장이 죄를 범했을 때나 평민이 죄를 범했을 때에는 번제단 뿔에 짐승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바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아 17장 1절,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이 제단뿔에는 우리 죄를 기록해 놓았다고 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안에 거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 건너편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경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제단뿔이 가로놓여 있어서, 평상시에는 그들의 죄를 기억지 않다가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기만 하면 제단뿔에 새겨진 죄가 생각나 마음에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속죄 제사를 드릴 때에는 죄를 범한 사람이 어린 양에게 안수한 뒤 그 어린 양이 죽음으로써 죄가 사해졌는데, 마지막으로 죄의 기록을 지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제단뿔에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우리 보기에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가 전혀 보이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 자신이 경건치 않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번제물인 소에게 안수를 하는 모습
성경에 나타난 모든 숫자에는 깊은 뜻이 있다. 예를 들어, 3은 하나님을, 4는 고난을, 6은 인간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으며, 완전을 나타내실 때는 7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셨다. 5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낼 때 사용하셨다. 오순절에 성령을 값없이 은혜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7장에는 500데나리온 빚진 자와 50데나리온 빚진 가 탕감을 받는 부분에 대하여 5라는 숫자를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그들을 탕감해 주셨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요한 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행각 다섯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섯 행각이라는 부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나타낼 때는 항상 5라는 숫자를 사용하셨는데, 제단의 사면 길이가 오 규빗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단을 통해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단은 동쪽에서 보든 서쪽에서 보든 어느 면에서 보든지 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복을 주실 때에는 우리가 수고한 대가를 따라서 주는 것이 아니라, 값없는 은혜로써 우리들에게 베풀어주기를 원하신다. 이 제단은 십자가를 가리키는데, 그 십자가를 볼 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과 은혜를 받는 인간 사이에 받는 자가 아무 대가없이 받도록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 편에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주셨다. 즉,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려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측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죄 씻음을 받을 때 우리가 무엇를 열심히 하고 눈물을 흘리고 각오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측인 하나님 편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번제 드리는 장면▶
제단에서 양이 피를 흘리며 죽어 불태워지고, 그 피가 제단 밑에 뿌려지는 것을 보면, 바로 어린 양 되신 에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며 죽으시는 보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셔야 하는가? 가장 먼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은혜, 죄 사함을 뱓는 은혜를 베풀어야 했다. 그렿기 때문에 우리 죄를 쌧기 위하여 100% 하나님께서 일을 해야만 우리가 온전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구원뱓는 일은 1%라도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포함된 것이 아니라, 100%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번제' 는 양이나 소의 가죽을 다 벗기고 각을 떠서 그 각 뜬 고기를 불에 태우고, 그 피는 단 사면에 뿌리는데, 짐승의 내장은 전부 물로 씻어서 제단 위에 태워 버리는 제사를 말한다. 이 번제가 바로 제단 위에서 드려지는데, 양이나 소의 고기가 불태워져 재만 남고, 그 피가 뿌려지는 부분을 제단이라고 말한다. 이 번제는 제단 사면에다 피를 뿌리게 되어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도 ,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고 말씀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심을 입은 귀한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자신의 흔적을 남김없이 온전하게 불태워 드리셨는데, 그 모습을 이 제단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번제 드리는 장면(하나님의 임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살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구약의 말씀(뜻)에 따라서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을 당하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말씀에서도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던 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구약시대에 제단에서 수없이 많은 양들이 희생을 당했을 때에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당신의 생각이나 뜻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의 뜻은 모두 사라져 버렸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귀한 뜻을 알려면 예수님처럼 자기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 자기의 소욕이 꺽여지고 죽임을 당해야만 '내뜻대로 마옵시고 ‥‥' 하는 고백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그 손에 피가 있어야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만일, 그 손에 피가 없으면 지성소에 들어가는 즉시 그는 죽고 만다. 제사장이 살기 위해서는 어린 양이 죽어서 흘린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살리시려고 피를 흘려 주신 것이다. 그 피가 제단 사면에 고여 있고, 단뿔에 발리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담력을 얻는 것이다. 만일, 어린 양이 제단에서 죽임을 당해서 흘린 피와 불태워진 재가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으실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희생 당한 어린 양이 우리를 위하여 흘린 피와 불타 없어진 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받으시는 것이다. 십자가 밑에서 주님의 육신의 모든 소욕이나 생각이 불타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 세워졌듯이, 우리 육신의 모든 소욕이나 생각이 불타 없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으신다. 우리 육신의 제물은 빈약하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드려진 어린 양의 피와 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가득히 쌓여 있는 심판과 모든 진노를 쏟아버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주는 장소가 바로 제단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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