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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EBS 인문학 특강] 니체 3강 <권력에의 의지,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2014년 7월 21일 방영

작성자HERA|작성시간14.08.18|조회수785 목록 댓글 0

 

[EBS 인문학 특강] 니체 3강

<권력에의 의지,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2014년 7월 21일 방영

 

[출처 : http://metalenigma.blog.me/220071087283]

 

 

니체 3강 정리이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는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다. 이 역시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PROLOGUE>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에는 의지가 있다.  

- 니체 

 

 

여기서 의지는 많은 함의를 지닌다. 쇼펜하우어의 '삶의 의지', 찰스 다윈의 '생존 & 경쟁'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니체는 신이 죽은 시대에서 '권력에의 의지'를 사유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권력(POWER)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고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살아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권력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85 - 

 

  

 

1. 권력은 악한 것인가?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를 살펴볼 때 우리는 전치사 'to'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방향성을 의미하며 우리의 의지는 언제나 권력을 향해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정치적 프레임에서 바라보면 이 세상은 지배하는 자(명령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복종하는 자)로 나뉜다. 얼마 전에 벌어진 Occupy Wall Street 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구조는 99% 대 1%의 대결구도로 인식이 되었다. 영국의 사상가였던 데이비드 흄은 "1%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왜 다수를 지배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이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였다. 약자의 입장에서 권력이라는 것은 늘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로드 액튼(Lord Acton)이라는 사람은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니체는 이를 뒤집는다. 괜히 전복의 사상가가 아니다. 판깨는 데는 선수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 겪는 인간관계에서도 권력투쟁이 존재한다. 특히 부부 사이에 이러한 권력투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보면 공감이 갈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이란 세계를 움직이는 사물의 실제적 진리라고 정의를 내렸다. 내 생각도 이에 찬동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까지 이해하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바로 권력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돌게 하는 힘인 금권력도 이러한 권력 중의 하나인 셈이다. 

 

 

 

 

 

권력에의 의지는 전지전능한 신(최고의 권력자)과 생명으로부터 잉태되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지식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는 일화가 등장하는데 이는 인류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을 스스로 갖추게 됨을 말한다. 먹지 말라는 신의 금기를 어기고 이윽고 지식의 달콤한 맛의 유혹에 빠져든 것이다.  이를 통해, 신의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인간은 해방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권력을 악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겼던 기존 철학자들과 달리, 

니체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권력에의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아메바부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욕망, 충동, 생존으로 시작되는 권력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권력의 동기는 힘, 에너지, 세력 등의 요인이 존재한다. 이는 내면적 요소와 외면적 요소가 있는데 내면적 요소는 '의지와 충동'을 말하며, 외면적 요소는 '힘의 작용(Force, 자연과학적 인식)'을 말한다. 당연하게도 권력에의 의지에서는 권력에 대한 내면적 요소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진정한 힘은 내면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의 본질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내적 세계를 추가해야 한다. 

 

 

욕망, 충동, 생존, 소유. 이러한 요소들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권력에의 의지다. 원초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메바(위의 그림 참조)조차 권력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에의 의지, 나는 그곳에서 항상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하였다." 

 

따라서 권력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적인 표현이며 발현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2. 권력의 간계, 약자도 권력을 추구한다. 

 


 

 


도덕의 차원에는 2가지가 있는데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이 그것이다. 주인도덕은 명령하는 자의 가치를 창조하는 근본으로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강자의 가치규범을 일컫는다. 따라서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Active한 개념이다. 역사는 항상 승자가 쓴다라는 말과 상통한다. 반면에 노예도덕은 복종하는 자의 가치창조를 말한다. 노예들도 가치를 만드는데 이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꾀를 부리기 때문이다. 노예도덕은 반동적(Reactive)인 특성을 지니는데 이것이 심화되면 원한감정(Ressentiment)으로 발전한다. 급기야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개념이 창조되는데 니체는 "원한은 반동적 힘들의 승리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Ressentiment)

 

자체가 창조적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

 

이 원한은 실제적인 반응, 즉 행위에 의한 반응을 포기하고,

 

오로지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스스로 해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복수이다.

 

- 『즐거운 학문』, 1882 -

그렇다면 무능의 간계는 무엇인가? 이는 약자의 가치를 보편화시켜 무기로 삼는 간계로 무능력의 계략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즉, 노예들이 권력은 강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를 수단화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반드시 존재하며 주인이 주인이기 위해서는 피지배자(하수인)가 필요하다. 영화 <버틀러>를 보면 알겠지만 하인이 없다면 주인의 일상은 무너지게 된다. 주인은 하인이 없는 순간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하인과 노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호의존적인 권력의 속성이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데 노예는 이러한 속성을 자신의 무기로 삼게 된다. 바로 이것이 '무능의 간계'다. 

 

 

약자에게도 권력에의 의지가 있다. 노예는 주인에 대한 반작용으로 약자의 논리를 만들고 

가치를 뒤집어서 정신적 승리를 얻어낸다. 그것을 니체는 ‘무능의 간계’라고 이름 붙였다.

 

 

3. 권력은 생산적 힘이다. 

 

우리는 권력이 그 자체로 악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면밀히 파악해보자. 

 

 

모든 물질적인 것은 미지의 사건에 대한 일종의 운동 징후다.

 

운동들은 징후들이다.

 

그리고 근본욕구는 권력에의 의지다.

 

- 『유고』, 1887. -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누구나 원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저 자유롭기보다는 권력을 통제할 힘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위의 그림에서 권력에의 의지의 운동구조를 한번 살펴보자. 우선, 권력정도의 확인을 보면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밀당(협상)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부부사이에서 설거지를 피하기 위한 계략(내가 손에 쥐고 있는 협상카드)으로 사용될 수 있다. 권력정도를 확인했으면 권력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는 어떠한 심리적/물리적 저항이 있을 때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어떠한 저항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뒤에 느끼는 희열을 떠올리면 된다. 이러한 권력감정이 없다면 뒤의 권력증대의 욕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권력증대의 욕망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욕구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우리 삶의 모습이다. 자기계발의 욕구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통해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이러한 운동구조를 바탕으로 권력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이란 에너지다. 

개인과 주변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권력은 생산적인 힘이다.

 

 

그렇다면 권력의 본질은 무엇일까? 권력은 생명의 근본적인 현상이며 자기극복의 의지이다. 즉,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어원을 살펴보면 Dynamis(뒤나미스, 다이나미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영어의 Dynamics의 어원도 된다. Potentia는 잠재력(Potential)을 말하며, Energy는 Energeia라는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기업에서 신입사원(젊은 피)의 영입을 통해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도 일종의 권력의 응용사례라고 볼 수 있다. 즉, 권력은 무언가를 일어나게 하는 힘(Cause Something to Happen)이다. 

 

권력은 우선 어떠한 저항이 있어야 실현된다. 권력은 다양한 세력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둘 이상의 관계에서만 작동한다. 권력은 통일적인 질서이다. 여기서 통일적 질서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가치를 말한다. 권력은 항상 새롭게 해석되고 생성된다. 권력을 한번 가진 자가 그 권력을 늘 가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해석되야 지속가능해진다. 


 

<EPILOGUE>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바로 권력이 흘러넘쳐서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자이다. 진정한 권력자는 '사랑할 줄 아는 자'이다. 여기서 니체의 반전철학이 빛을 발한다. 즉, 남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서로 비등비등한 관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이며 기독교적 세계관에서의 사랑과는 개념이 다르다. 

 

 

니체는 "삶은 부정할 수 없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허무를 의욕하고자 한다"라고 이야기 한다. 즉, 무욕을 희망한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끊임 없이 갈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설령 그것이 허무라할지라도 말이다.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바로 이러한 인간본성에 내재된 내면의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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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1. 약자의 자유와 강자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가?

 

약자의 자유는 권력의 정도를 측정할 때, 능력이 결여되어 있을 때, 남의 뒤를 그저 따라다닐 때, 나에게 명령을 가하고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할 경우에 수동적 자유(Freedom from Something)로부터 시작한다. 반면에 능동적 자유(Freedom to Something)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어떠한 방향성을 지닌 능동의 자유다. 이것이 바로 강자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2. 니체는 사회적 소통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는가?

 

Communication 이라는 말은 사회적 공동체를 의미하는 Commune에서 파생된 단어다. 따라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합의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통은 우선 Consensus(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니체는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길은 권력을 가진 세력들 사이의 평형상태에 불과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권력에의 의지 차이로 발생하는 갈등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이를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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