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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돈을 쓸어 담고 있다(2) / 진정한 진보에 대하여

작성자정임표|작성시간26.06.05|조회수81 목록 댓글 0

기술이 돈을 쓸어 담고 있다(2)

- 진정한 진보에 대하여

수필가 정임표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농촌은 고요하고 평온했으나, 그 이면에는 뼈골을 쑤시게 하는 노동의 고단함이 숨어 있었다. 당시의 보편적인 운반 도구는 사람의 등을 빌려 쓰는 ‘지게’였다. 문명의 이기라 할 만한 자전거와 우마차는 한 마을에 겨우 한 대 있을까 말까 했고, 지금은 흔하디흔한 리어카조차 구경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소는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집안의 귀한 재산이자 보물이었으며, 모든 농사일은 오직 사람의 손길로만 움직였다.

모내기는 못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온 동민이 함께 모여 손가락으로 모를 심었으며, 김매기는 대나무 토시를 양팔에 끼고 손톱이 다 닳도록 무논을 기어 다니며 논매기를 해야 했다. 낫 한 자루에 의지해 온종일 나락을 베고 나면 허리 한번 제대로 펴기 어려웠다. 탈곡 과정은 더욱 원시적이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물푸레나무로 만든 도리깨를 내리치며 곡식을 털어냈다. 온 동네 남정네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리깨질을 해도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탈곡의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생산성이 올라갈 리가 만무했고, 수확의 기쁨 뒤에는 늘 육체적 피로와 충분히 배부르지 못한 허기가 무겁게 짓눌렀다.

 

도리깨에서 발로 밟아 드럼을 돌리는 수동식 탈곡기가 나온 것은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페달을 밟아야 했지만, 도리깨에 비하면 엄청난 진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 마을에 마침내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기의 등장은 농촌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탈곡기에 모터를 달기 시작했다. 둥근 풀리(Pulley)를 맞추고 단단한 피대(벨트)를 걸어 모터를 작동시키자,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탈곡이 되었다. 발로 밟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가는 탈곡기의 등장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인간의 근력이 아닌, 기계의 동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첫 기억이었다.

 

이후 국내 농기계 산업의 거두인 대동공업과 아세아텍(아세아농기계) 같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농촌에는 거대한 기계화 바람이 불어닥쳤다. 경운기의 보급으로 우마차가 사라졌고, 모를 자동으로 심어주는 이앙기가 논을 누비기 시작했다. 트랙터와 콤바인이 나왔다. 농촌 기계화는 농민들의 일손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었다. 기계화와 더불어 육종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씨앗이 개량되자, 농업 생산량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바야흐로 굶주림의 시대가 저물고, 기술이 풍요를 견인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제조공정의 혁명과 공장 자동화 기계가 주는 편리함의 맛을 본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농촌을 바꾼 그 편리한 기계들을 만드는 공장 자체를 자동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조 공장마다 기업부설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사람이 일일이 깎고 다듬던 제조 공정에 컴퓨터와 전자 제어 기술이 융합되었다. 수치제어(NC)와 컴퓨터 수치제어(CNC) 방식이 기계와 결합되면서 금속을 깎고 가공하는 정밀도가 극대화되었고, 생산성은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불량률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LC) 기술이 추가되면서, 공장의 라인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스스로 짜여진 명령어(프로그램된 로직)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었다. 제조공정의 혁명이었다. 이러한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기계 장비들은 1980년대부터 시행된 공장자동화 관세감면 제도와 기업부설연구소 관세감면 제도의 힘을 입어 급속도로 수입되었다. 산업 전 분야에서 기계가 기계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자동화된 공장에서 물건을 쏟아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단계에서 기술은 엄청난 기술과 자본을 스스로 창출하며 ‘돈을 쓸어 담는’ 강력한 엔진이 되었다. 이제 이 기술의 진보는 오늘날 마침내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과거 공장 라인에 고정되어 단조로운 반복 작업만 수행하던 자동화 기술과 다관절화된 로봇 팔이, 이제는 인간의 형태를 닮은 '하나의 로봇'으로 결합되고 있다. 그리고 그 로봇의 두뇌에다 인간의 지능을 그대로 모방한 인공지능(AI)이 탑재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최근 등장하고 있는 다목적 휴머노이드(인조 인간) 로봇이다. 이들은 단순히 정해진 명령어(로직)대로 움직이는 것을 넘어서, 시각과 청각 등 인간의 감각 정보를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하며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 농촌의 이앙기가 논 위만 시속 몇 킬로미터로 경작할 수 있었다면, AI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장, 재난 현장, 가정, 건설 현장 등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 투입되어 24시간 다목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기술의 결합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예고하고 있다.

 

지게를 지던 시대의 생산성을 1이라고 한다면, AI 로봇 시대의 생산성은 측정 불가능한 무한대에 가깝다. 노동의 한계, 시간의 한계, 공간의 한계, 그리고 비용의 한계가 무너지면서 사회 전 분야에서 대량 생산의 단가가 제로(0)에 수렴하게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기술의 진화는 인류를 '물질적 궁핍'과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술이 인간의 손발을 편하게 해주는 수준이었다면, 새롭게 등장하는 AI와 로봇이 융합된 기술은 인류 전체 부(富)의 파이를 전례 없는 크기로 키우며 전 세계의 돈과 자원을 쓸어 담게 될 것이다. 변화의 속도 역시 과거의 10년이 단 1년으로 단축되는 초고속의 변화를 몰고 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신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게에서 시작해 AI 로봇에 이른 이 경이로운 여정은, 결국 인류 모두가 노동의 고단함과 물질의 결핍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풍요를 누리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문을 아주 빠른 속도로 열어젖히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화 시대에 우리가 빠르게 올라탔듯이, 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나라가 총력을 기울여 빨리 편승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가 된다. 노동자와 농민을 해방시키고 빈곤을 해방시키는 진정한 진보는 오직 '기술의 발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청년 시절 세관에 근무하면서 이런 첨단 장비가 수입되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했고, 관세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모든 산업에서 기술의 진보를 평생토록 눈으로 보아온 사람이다. 바보 같은 정치인들만이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과거에 집착하는 무의미한 싸움질만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를 그런 싸움판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제는 전 국민이 정신을 차리고 기술혁신과 규제혁파를 요구하며 인공지능 시대의 문을 하루빨리 열어가길 바란다. 

 

진보란 무엇인가?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누구보다도 빨리 편승하는 일이 진짜 진보다. 기술 진보, 사상 진보, 의식 진보, 금융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 나는 일론 머스크가 추구하는 스페이스X 같은 고고도 기술기업을 우리나라에서도 설립할 수 있도록 '국민 펀드'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전 국민이 각자 지닌 모든 여윳돈을 이 기술 개발에 투자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이 우리 대한민국에서 창조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그 주식을 담보로 필요한 돈을 편리하게 빌려 쓰는 마이너스 통장 제도 같은 선진 금융( '주식연계 신용한도 대출(Stock-backed Line of Credit' 또는 줄여서 SBL이라고 부름)이 도입되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나의 의식은 보수가 아니고 '급진 진보'다. 인간과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골수 보수'이지만, 혁명적 기술진보 시대로 달려가야 한다는 면에서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급진 진보'다. 부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호롱불을 켜고 살아내야 했던 내 시대에 환하게 열리는 것을 꼭 눈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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