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전 문학실

이화우 흣뿌릴제 - 계랑(매창)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11.09.30|조회수918 목록 댓글 0

 

 

이화우 흣뿌릴제

계랑(매창)

▣ 전문 풀이

배꽃이 흩날리던 무렵에 손잡고 울며불며 하다가 헤어진 임,

가을 바람에 낙엽 지는 가을이 되었으니, 그 임이 나를 생각하여 주실까?

천 리 길 머나먼 곳에 외로운 굼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 핵심 정리

◁ 작자 : 계랑(1513~1550)

◁ 출전 : <진본 청구영언>

◁ 종류 : 평시조

◁ 성격 : 기녀 연정가, 애상적

◁ 제재 : 이별과 그리움

◁ 주제 : 고독과 그리움

◁ 특징 :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의 적절한 표현

▲ 정서 : 슬픔과 외로움

▣ 해설

'梨花雨(이화우)'와 '秋風落葉(추풍 낙엽)'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대비법이며, 지은이의 쓸쓸한 심정을 더해 주고 있다. 종장의 '꿈'은 그리움의 표상이다.

▣ 감상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화사하던 그 배꽃이 봄날 내리는 비처럼 어지러이 날릴 때, 서로 손잡고 못내 이별을 아쉬워했던 임이건만, 벌써 계절은 바뀌어 낙엽 지는 가을이 되어도 소식 한번 전하지 않고 있구나. 기녀이기에 겪어야 했던 인고(忍苦)의 나날도 헛되이 무너지는 듯한 가슴 아픔에 외로운 꿈만 임을 좇을 뿐이다.

▣ 작가 계랑

조선 명종 때의 시인(1573~1610). 성은 이(李 ). 이름은 계생(桂生). 호는 매창(梅窓). 부안(扶安)의 명기(名妓)로 시, 노래, 거문고에 뛰어났다.

◘ 유희경(劉希慶)과 기생 매창(梅窓)의 사랑 이야기

출처 http://kr.blog.yahoo.com/psljjh/4325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 -2년전 어느 봄날이었다.

전라북도 부안 사또가 한양에서 온 친구를 위해 향연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 훗날 조선 3대 여성문인으로 불릴 부안 기생 매창(梅窓)도 있었다.

그녀는 오늘 잔치의 초대 손님이 당대 최고의 위항시인이란 말만 들었다.

서자 출신으로 예학의 최고봉이자 대시인이 된 유희경(劉希慶)과 서녀 출신의 명기 매창(梅窓)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매창이 큰 절을 올리고 잔에 술을 따르니 유희경은 시 한 수로 응대했다.

贈癸娘(증계랑)

계랑에게 주다

我有一仙藥(아유일선약) 나에게 선약이 하나 있는데

能醫玉頰嚬(능의옥협빈) 고운 얼굴 찡그린 것도 고칠 수 있다네

深藏錦囊裏(심장금낭리) 비단 주머니에 감추어 두었다가

欲與有情人(욕여유정인) 정다운 사람 생기면 나누어 주고 싶어라.

유희경이 멋진 음율로 작업을 걸어오자,

매창이 거문고를 타며 화답했다. 그녀의 대답 역시 멋들어졌다.

我有古奏箏(아유고주쟁) 내게는 옛날의 거문고 있어

一彈百感生(일탄백감생) 한번 타면 백가지 감회가 생긴다오.

世無知此曲(세무지차곡) 세상사람 이 곡조 몰라주니

遙和구山笙(요화구산생) 먼 옛적 생황에나 맞추어 보리.

예학에 몰두하다 40중반까지 여색을 몰랐던 유희경과 꽃다운 십대 후반의 매창이 차원 높은 시적 교감은 뜨거운 사랑으로 깊어 갔으나, 유희경은 임진왜란과 더불어 권율 휘하에서 의병을 모아 적진을 누비게 된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패전 소식만 잇달았다. 애타게 그리는 님은 무사한지..... 그때 매창이 지은 시조가 '이화우 흩뿌릴 제'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난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두 사람의 사랑은 기생과 서얼이라는 신분적인 교감에 문학적인 공통분모까지 곁들여져 애절함을 더했다.

❃ 매창(梅窓1513-1550)

성(姓) 이(李),

본명 향금(香今).

자 천향(天香),

호 매창(梅窓)·계생(桂生)·계랑(桂娘). 16세기 명종 때의 전북 부안의 현리 이양종의 서녀로서 당시 명기(名妓)로 노래, 거문고, 한시, 시조에 능한 여류 예술인으로 가사(歌詞)·한시(漢詩)·시조(時調)·가무(歌舞)·현금(玄琴)에 이르기까지 다재 다능했다.

작품으로 가사와 한시 등 70여 수 이외에도 금석문(金石文)까지 전함

작품집 매창집(梅窓集)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1668년(현종)에 구전해 오던 시 58수를 모아 판각한 것이 현재전하고 있다.

매창(梅窓)은 전북 부안의 유명한 기생인데,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는데 워낙 재주가 뛰어나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촌은집(村隱集)에는 이 둘은 유희경이 젊었을 때 남도를 여행하던 중 처음 만났는데 둘은 28살의 나이 차이가 났다고 한다. 유희경을 만나기 전까지 어느 남자에게도 정을 주지 않던 매창(梅窓)과 매창(梅窓)을 만나기 전까지 여자를 멀리 했던 유희경은 문학이라는 공통분모에 의해 서로 맺어진 연인이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기생을 가까이 하지 않던 유희경(劉希慶)은 이 때 비로소 파계(破戒)를 하였고, 자신의 호를 고결하고 품위있는 매화에서 따올 정도로 절개를 중시하던 매창(梅窓) 또한 기생이면서도 수절하였다. 매창은 나이 스무 살이 채 못돼 만난 28살 연상의 유부남 유희경(劉希慶)을 평생토록 가슴에 담고 살았다. 멀리 서울 사는 유희경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이토록 사랑이 애절하였던 둘 사이는 서얼과 기생이라는 신분도 어느 정도 둘을 맺어주는 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유희경(劉希慶 1545∼1636)

본관은 강화(江華)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村隱)으로 아버지는 종7품 계공랑(啓功郞)이었다고만 전한다.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서울 대묘동(大廟洞 지금의 종묘(宗廟) 부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종로구 원서동에서 살았다. 허균(許筠)의 성수시화(惺馬詩靴8)에서 천인으로 한시에 능통한 사람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위장 소서원(衛將所書員)으로 왕비를 호위하여 황해도 수안(遂安)에 머물렀다. 이러한 공으로 선조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다. 사신들의 잦은 왕래로 인하여 호조의 비용이 고갈되자 그 계책을 제시하여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계되었다. 광해군 때에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출의론이 일어나자 이이첨(李爾瞻)이 폐출의 소(疏)를 올리도록 청하였으나 거절하며 따르지 않았다. 인조가 즉위하자 절의를 칭송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를 올렸으며, 80세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승계되었다.그는 시(詩)와 예문(禮文)에 뛰어났다. 박정(朴渟)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한시(漢詩)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하였는데, 자기 집 뒤(창덕궁 서쪽 원동(院洞) 지금의 원서동)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 하고 차천로(車天輅) · 이수광(李邈光) 신흠(申欽) 김현성(金玄成) 홍경신(洪慶臣) 임숙영(任叔英) 조우인(曺友仁) 성여학(成汝學) 등과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같은 천인신분으로 시에 능하였던 백대붕(白大鵬)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하였는데, 박계강(朴繼姜) 정치(鄭致) 최기남(崔奇男) 등 중인신분 시인의 모임이었다.그의 시는 한가롭고 담담하여 당시풍(唐詩風)이라는 평을 듣는다. 한편 그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었던 남언경(南彦經)에게서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상례(喪禮)에 정통하여 왕궁은 물론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상(喪)의 집례(執禮)를 청하였다. 그의 묘는 도봉산 아래에 있었다.후에 아들 유일민(劉逸民)의 원종훈(原從勳)으로 자헌대부 한성부 판윤(資憲大夫漢城府判尹)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촌은집(村隱集) 3권과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산중추우(山中秋雨) - 유희경(劉希慶)

白露下秋空 (백로하추공) 이슬 내리는 가을 하늘

山中桂花發 (산중계화발) 산속에 계수나무 꽃이 피었네

折得最高枝(절득최고지) 한 가지 꺽어 들고

歸來伴明月(귀래반명월) 돌아오니 달빛이 따라오네.

그리움이 낳은 것은 결국 이별의 절창. 현실에서는 맺어지지 못할 사랑에 몸부림치던 불운한 연인으로 매김한 것은 매창(梅窓)의 이별시다.유희경(劉希慶)도 매창(梅窓)에게 주는 시 10여 편을 남겼다. 다음 시도 그 중 하나가. 회계낭(懷癸娘)이다.

懷癸娘(회계낭) 계랑(매창)을 그리워 하며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낭자의 집은 물가 낭주(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우리 집은 경구(서울.경기도)에 있지요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서로가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고오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동나무에 비 내리면, 애간장 다 타지요

열 살 되던 해 하루는 백운사(白雲寺)에서 시 짓기 대회가 열려 부안의 내노라는 시인 묵객이 모두 모였다. 구경삼아 절에 간 매창(梅窓)은 실로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시를 지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시는

步上白雲寺(보상백운사) 걸어서 백운사에 오르니

寺在白雲間(사재백운간)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백운승막소) 스님이여 흰 구름을 쓸지 마소

心與白雲閑(심여백운한)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