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전 문학실

고산구곡가( 高山九曲歌) - 이이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11.09.21|조회수1,455 목록 댓글 0

 

 

고산구곡가( 高山九曲歌)

■ 핵심 정리 ■

▰작자 : 이이(李珥)

▰연대 : 선조 10년(1577), 지은이 42세 때

▰종류 : 총 10수의 평시조로 된 연시조

▰성격 : 교훈적, 유교적

▰제재 : 석담(石潭) 수양산(首陽山)의 풍광(風光)으로 高山九曲潭(고산구곡담), 冠巖(관암), 花巖(화암), 翠屛(취병), 松崖(송애), 隱屛(은병), 釣峽(조협), 楓巖(풍암), 琴灘(금탄), 文山(문산)

▰내용 : 고산(高山)의 아홉 굽이 경치를 읊은 것으로, 서시(序詩)에 이어 관암(冠巖), 화암(花巖), 취병(翠屛), 송암(松巖), 은병(隱屛), 조협(釣峽), 풍암(風巖), 금탄(琴灘), 문산(文山)의 구곡을 노래하였는데, 그것은 지명이자 그에 대한 경관도 아울러 나타내어 중의적(重義的)인 수법이 되게 하였다.

▰주제 : 강학(講學)의 즐거움과 고산(高山)의 아름다운 경치

▰의의 :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함께 성리학의 대가가 지은 작품으로 쌍벽을 이룬다.

▰기타 : 주자(朱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떠 만들었다.

▰출전 : <청구영언(靑丘永言)>

전체 구성

주제

핵심어

서사

주자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결의

학주자

1곡

관암의 아침 경치

글림이로다

2곡

화암의 늦은 봄의 경치

알게 들 엇더리

3곡

취병의 여름 경치

여름 景이 업세라

4곡

송애의 황혼녘의 경치

흥을 겨워 하노라

5곡

수변정사에서의 강학과 영월음풍

강학 / 영월 음풍

6곡

조협의 야경

대월귀(帶月歸)

7곡

풍암에서의 자연 도취

혼자 앉아 집을 잊고 있노라

8곡

물소리 흥겨운 여울목

자 즑여 노라

9곡

문산에 세모가 닥침

문산에 세모커다

<제1곡>

高山九曲潭(고산구곡담)을 사람이 몰으든이,

誅茅卜居(주모복거)하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즙어, 武夷(무이)를 想像(상상)하고 學朱子(학주자)를 호리라.

☞고산의 아홉 굽이 도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모르더니

풀을 베고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사니 벗님네 모두들 찾아오는구나.

아, 무이산에서 후학을 가르친 주자를 생각하고 주자를 배우리라.

■고산 : 황해도 해주에 있는 산의 이름

■구곡담 : 아홉 번을 굽이 도는 계곡으로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무이산에 있는 구곡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구곡가'를 본받아, 고산의 구곡담을 가려낸 것.

■몰으든이 : 모르더니

■주모복거 : 풀을 베어내고 집지어 살 곳을 정함, 터를 닦아 집을 지음.

■어즙어 : 아!

■무이 : 중국 복건성에 있는 산, 주자가 여기에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았음.

■학주자 : 주자학을 배움

▮제재 :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

▮핵심어 : 학주자(學朱子).

▮주제 : 고산구곡가를 짓게 된 동기(學朱子)

▮해설 :

"고산구곡가"의 서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자연을 벗하며 주자학을 연찬(硏鑽)하겠다는 학구적 열의가 강하게 나타난 노래이다. 초장 고산구곡담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말은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즉 학문의 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고산구곡가에 나오는 지명들은 아름다운 경치나 혹은 학문의 길, 양쪽을 의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산(高山)에 있는 석담(石潭)의 승경을 노래하고자 한 고산구곡가는, 그 서시에서는 성리학의 대가로서의 학문 수양이 그 첫째의 의지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벗님네는 풍류객으로서의 찾아오는 벗들이 아니라, 학문에 뜻을 품고 모여드는 후학(後學)들을 이르는 것이라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또한, '武夷(무이)를 想像(상상)?고'는 무이산에서 후학을 가르친 주자(朱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떴음을 의미한다.

■ 이해와 감상 ▣◤

1연은 고산구곡가의 서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며 주자학을 연찬하겠다는 학구적 열의를 노래한 것이다. 고산에 있는 석담 구곡을 사람들이 몰랐는데, 내가 풀을 베고 집터를 닦아 정사를 지어 놓으니 그제야 많 제자들이 모여든다. 옛날 주자가 무이산에서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았듯이 나도 여기서 주자의 학문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중장의 '벗님네 다 오신다'의 '벗님네'는 학문에 뜻을 두고 모여둔 '후학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무이를 상상하고'는 무이산에서 정사를 짓고 후학을 가르친 주자를 생각한다는 것으로 이 작품이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본떠 지은 것임을 암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주자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결의

<제2곡>

一曲(일곡)은 어디인고 冠巖(관암)에 해 빗쵠다.

平蕪(평무)에 내거든이 遠近(원근)이 글림이로다.

松間(송간)에 綠樽(녹준)을 녹코 벗 온 양 보노라

☞첫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관암에 해가 비친다.

잡초가 우거진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원근의 경치가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소나무 사이에 술통을 놓고 벗이 찾아온 것처럼 바라보노라.

■일곡 : 첫 번 째 굽이

■어드매고 : 어디인가? 어드매(대명사)+고(의문조사)

■관암 : 바위 봉우리의 이름. 갓바위. 갓같이 우뚝 솟은 데서 붙인 이름

■평무 : 잡초가 무성한 벌판

■글림이로다 : 그림과 같이 아름답도다. 도다>로다는 ㄷ의 유음화

■녹준 : 좋은 술동이

▮제재 : 관암(冠巖).

▮핵심어 : 글림이로다.

▮주제 : 관암(冠巖)의 아침 경치

▮해설 :

관암(冠巖)의 늦봄 경치를 묘사하고 이를 즐기는 심회를 읊었다. 관암의 아침 해가 솟은 후의 절경, 계절은 봄이라 산골짜기를 휘감았던 안개마저 걷힌 원근(遠近)의 경치는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도를 펼쳐 놓은 듯하리라. 이 중에 찾아오는 후학을 맞이하는 지은이의 풍류스러운 운치는 '송간(松間)의 녹준(綠樽)'이리라.

■이해와 감상▣◤

2연은 고산구곡가의 둘 째 수로 관암의 아침 경치를 묘사하고 이를 즐기는 심회를 노래한 것이다. 관암에 아침 해가 돋고 아침 안개가 걷히니 온 들판에 울굿불굿 피어난 꽃동산이 한눈에 들어와 원근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정경을 이룬다(원근이 그림이로다). 이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맛있는 술을 마련하고 벗이 오기를 기다리는 지은이의 풍류와 운치가 잘 나타나 있다.

- 관암의 아침 경치

<제3곡>

이곡(二曲)은 어드메고 화암(花巖)에 춘만(春晩)커다.

벽파(碧波)에 곳츨 띄워 야외(野外)에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勝地)를 몰온이 알게 한들 엇더리.

☞ 두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꽃핀 바위에 봄이 늦었구나

푸른 물에 꽃을 띄워 멀리 들판 밖으로 보내노라

사람들이 이 경치 좋은 곳을 모르니, 알게 하여 찾아오게 한들 어떠리.

화암 : 바위 이름. 꽃바위

■춘만커다 : 봄이 저물었도다.

■벽파 : 푸른 물결

■승지 : 명승지의 준말. 경치 좋기로 소문난 곳. 학문하는 즐거운 곳

▮제재 : 화암(花巖).

▮핵심 : 알게 한들 엇더리.

▮주제 : 화암(花巖)의 늦봄 경치

▮해설 :

화암(花巖)의 늦봄 승경(勝景)을 묘사하고 이를 혼자 즐기기에 아까워 널리 알리고 싶은 심정을 읊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속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연상하게 하는 노래이다. 꽃으로 수놓은 듯 바위를 감싸고 있는 늦봄의 경치, 계곡으로는 맑은 물이 흘러 산석 유수(山石流水)의 절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아름다운 곳을 어찌 나 혼자만의 것으로 즐기기만 할 것인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찾아오게 하면 어떠리.

■이해와 감상▣◤

3연은 '고산구곡가'의 셋째 수로 화암의 늦봄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고, 이 아름다운 승지를 널리 알리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부분이다. 화암의 늦봄은 온갖 꽃이 만발하고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 그야말로 선경과 같은 절경을 이룬다. 이 아름다운 곳을 어찌 나 혼자서만 즐길 수 있겠는가? 벽파에 꽃을 띄워 야외에 보내어서 세상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는 내용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 화암의 늦봄의 아름다운 경치

<제4곡>

삼곡(三曲)은 어디메오 취병(翠屛)에 잎 퍼졌다

녹수(綠樹)에 춘조(春鳥)는 하상 기음(下上 其音)하는데

반송(盤松)이 바람을 받으니 여름 경(景)이 없세라

☞세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푸른 병풍 같은 절벽에 녹음이 짙게 퍼졌다

푸른 나무 사이로 봄새는 아래 위에서 지저귀는데

키 작고 가로로 퍼진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니 여름 풍경이 아니구나

■취병 : 푸른 빛 병풍같이 나무와 풀로 덮인 절벽

■퍼졋다 : 우거졌다

■녹수 : 맑은 시냇물

■하상기음 : 소리를 낮추었다 높였다 함

■반송 : 키가 작고 가지가 가로 퍼진 소나무

■녀름 경 : 여름 기분. 여름의 흥

▮제재 : 취병(翠屛).

▮핵심 : 여름 景이 업세라.

▮주제 : 취병(翠屛)의 여름 경치

▮해설 :

소나무 가지에 맑은 바람이 부는 취병(翠屛)의 여름 같지 않은 시원한 정경을 읊었다. 맑은 물에 산새의 지저귐은 그대로 한정(閑情)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녹음은 짙어가며 솔바람은 마음까지 씻어 내릴 듯하니, 그 무더운 여름철이건만 이 곳만은 여름의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선경이다.

■이해와 감상▣◤

4연은 '고산구곡가'의 넷째 수로 소나무 가지에 맑은 바람이 부는 취병의 시원한 정경을 읊은 부분이다. 푸른 병풍을 둘러친 듯한 절벽에 녹음이 우거졌다, 우거진 녹음 속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물 소리를 들으며 여름을 시원하게 보낸다는 것이다. '반송이 수청풍한이 녀름 경이 업세'라는 여름도 여름 같지 않은 시원한 선경임을 자랑한 것이다.

- 반송에 맑은 바람이 부는 절벽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여름을 보내는 한가로운 정경

<제5곡>

사곡(四曲)은 어디메오 송애(松崖)에 해 넘는다

담심 암영(潭心 巖影)은 온갖 빛이 잠겼세라

임천(林泉)이 깊도록 좋으니 흥을 겨워 하노라

☞네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소나무 절벽 위로 해가 넘어가는 구나

깊은 물 가운데의 바위 그림자에는 온갖 빛이 잠겨 있구나

세상을 벗어난 선비가 숨어 사는 곳은 깊을수록 좋으니, 흥겨워 하노라.

■송애 : 소나무가 선 물가의 낭떠러지

■넘거다 : 넘었다. '거다'는 현재 완료 서술형

■담심암영 : 못처럼 물이 고인 가운데 비친 바위 그림자

■임천 : 숲속의 샘

■깁도록 : 깊을 수록

▮제재 : 송애(松崖).

▮핵심 : 흥을 겨워.

▮주제 : 송애(松崖)의 저물 무렵 못에 비친 아름다운 음영(陰影)

▮해설 :

맑은 물에 산 그림자가 잠기는 송애(松崖)의 저녁 경치를 읊었다. 해 저물 무렵 못에 비친 암영(暗影)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깊은 숲 속에 흐르는 샘물은 바로 명경지수(明鏡止水)이리라. 이를 보며 지은이는 '인자 요산 지자 요수(仁者樂山 知者樂山)'의 심경을 나타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

5연은 '고산구곡가'의 다섯째 수로 맑은 물에 산 그림자가 잠기는 송애의 저녁 경치를 읊었다. '담심암영은 온갖 빗치 잠겻셰라'의 '온갖 빛'은 무엇일까? 우거진 푸른 소나무, 만산을 수놓은 단풍, 첩첩이 겹쳐진 바위, 넘어가는 저녁 햇빛, 푸르른 하늘···'이런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어 어려있는 모습일 것이다. 임천은 깊을수록 좋으니 흥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흥취를 노래하고 있다.

- 소나무가 늘어선 낭떠러지의 저녁 풍경을 묘사

<제6곡>

오곡(五曲)은 어디메오 은병(隱屛)이 보기 좋의

수변 정사 (水邊 精舍) 소쇄(蕭灑)함도 가이없다

이 중에 강학(講學)도 하려니와 영월 음풍(詠月 吟風)하오리라.

☞다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굽이 지고 눈에 띄지 않는 병 같은 절벽이 보기도 좋구나

물가에 세워진 배우고 가르침을 위한 집은 맑고 깨끗하여 좋구나

여기서 글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시도 지어 읊으면서 흥겹게 지내리라.

■은병 : 으슥한 병풍처럼 되어 있는 낭떠러지

■좋의 : 좋도다

■수변정사 : 물가에 세워진 정사. 정사의 본디 뜻은 불교 절이었으나, 도사가 거처하는 곳, 학문을 닦는 곳 등의 뜻으로 쓰였다.

■소쇄 : 맑고 깨끗함. 속세를 떠난 듯함

■강학 :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함

■영월음풍 : 자연을 시로 읊은 시를 짓고 읊으며 즐겁게 노는 것

▮제재 : 은병(隱屛).

▮핵심 : 강학(講學), 영월 음풍(詠月吟風).

▮주제 : 수변정사(水邊精舍)에서의 강학(講學)과 영월음풍(詠月吟風)

▮해설 :

물가에 정사(精舍)를 짓고 강학(講學)하는 풍류 어린 정경을 읊었다. 지은이가 거처하고 있는 물가의 정사(精舍)의 주변과 생활이 나타나고 있다. 물소리만이 들리는 정사(精舍)의 분위기는 유학자로서의 학구적 열의를 불러 일으키는가 하면, 시심(詩心)에 겨워 시를 읊조리는 풍류의 멋도 함께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

6연은 '고산구곡가'의 여섯째 수로 작자가 거처하는 석담정사의 주변과 거기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바위가 병풍같이 늘어선 은병의 아름다운 경치를 뒤로 하고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조촐한 모옥인 석담정사-여기서 강학도하고 영월음풍도 하는 유학자다운 풍류 생활의 운치를 읊은 것이다.

- 물가에서 정사를 짓고 학문을 가르치면서 음풍영월하는 생활을 그림

<제7곡>

육곡(六曲)은 어디메오 조협(釣峽)에 물이 넓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즐기는고

황혼에 낚대를 메고 대월귀(帶月歸)를 하노라

여섯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이 어디인가, 낚시질하기 좋은 좁은 골짜기에는 물이 많이 고여 있다.

이 골짜기에 나와서 고기와 내가 누가 더욱 즐길 수 있으랴.

해가 저물거든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받으며 돌아가리라.

■조협 :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

■넙다 : 넓다. 넙다> 넓다에 ㄹ첨가

■뉘야 : 누가

■즑인는고 : 즐기는고

■대월귀 : 달을 데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감. 즉,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옴.

▮제재 : 조협(釣峽).

▮핵심 : 대월귀(帶月歸).

▮주제 : 조협(釣峽)의 야경(夜景)

▮해설 :

조협(釣峽)에서의 낚시질을 그리되, 고기와 더불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풍류객으로서의 낚시질은 처음부터 생활의 방편으로서의 고기잡이가 아니라, 강심(江心)을 바라보며 그 속의 고기들과 즐기는 가운데 청한(淸閑)을 낚고 사색(思索)을 낚는 것이다. 종장의 '대월귀(帶月歸)를 하노라'에서는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시조에서 보인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와 같은 심경을 읊은 것이라 하겠다.

■이해와 감상▣◤

7연은 '고산구곡가'의 일곱째 수로 도협에서 낚시질을 하며 유유자적으로 하는 생활의 운치를 읊은 것이다. 조협깊은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유유히 강심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모습은 고기 잡는 어옹의 모습이 아니라 고기와 더불어 장난치며 즐기는 물심일여의 무심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작자는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즑이는고'라고 읊고 있는 것이다. 황혼에 달빛을 받으며 정사로 돌아오는 종장에서는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유유자적하는 풍모가 한 폭의 그림자처럼 그려졌다.

- 저녁에 낚시대를 메고 달빛을 받으면서 돌아오는 유유자적한 모습

<제8곡>

칠곡(七曲)은 어디메오 풍암(楓巖)에 추색(秋色)좋다

청상(淸霜)이 엷게 치니 절벽(絶壁)이 금수(錦繡)ㅣ로다

한암(寒巖)에 혼자 앉아 집을 잊고 있노라

☞칠곡은 어디인가? 단풍으로 둘러싸인 바위에 가을빛이 좋구나.

맑은 서리가 엷게 내리니 단풍에 둘러싸인 바위가 비단처럼 아름답구나.

차가운 바위에 혼자 앉아 집(속세)의 일을 잊어버리고 있도다.

■풍암 : 단풍으로 둘러싸인 바위

■청상 : 맑은 서리

■금수 : 수놓은 비단

■한암 : 차가운 바위

▮제재 : 풍암(楓巖)

▮핵심 : 혼자 앉아 집을 잊고 있노라

▮주제 : 풍암에서의 자연 도취로 집을 망각

▮해설 :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에 빠져 무아(無我)지경에 빠져 있다. 그 무아지경은 집안 혹은 속세의 일조차 잊게 하는 황홀경( 惚境) 그 자체이다. 단풍 우거진 가을산을 바라보는 시인은 인간사를 망각하고 있다. 경치가 그 정도면 선계(仙界)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해와 감상▣◤

8연은 '고산구곡가'의 여덟 번 째 수로 가을빛이 무르익은 풍암의 경치와 찬 바위에 혼자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자연에 몰입하는 생활을 보여준다.

-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자연에 몰입하는 생활을 보여준다.

<제9곡>

八曲(팔곡)은 어드메고 琴灘(금탄)에 달이밝다.

玉軫金徽(옥진금휘)로 數三曲(수삼곡)을 노론 말이,

古調(고조)를 알 리 업쓴이 혼자 즑여하노라.

☞팔곡은 어디인가? 악기를 연주하며 흐르는 시냇가에 달이 밝구나.

좋은 거문고로 몇 곡조를 연주했지만,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 듣고 즐기노라.

■금탄 : 악기를 연주하며 노는 시냇가

■옥진금휘 : 아주 좋은 거문고

■수삼곡 : 여러 곡조

■고조 : 옛곡조

■알이 : 알 사람이

■즑여 : 즐겨

▮제재 : 달, 옥진금휘

▮핵심 : 혼자 듣고 즐기노라.

▮주제 : 자연의 소리에 빠져 즐기고 있음

▮해설 :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인위적인 소리가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이다. 그 자연의 소리를 옛사람들의 거문고로 알고 그러기에 이런 깊은 음악을 아는 이 없어서 혼자서 자연의 소리에 도취되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해와 감상▣◤

9연은 '고산구곡가'의 아홉 번째 수로 가야금 소리 같은 물소리로 흐르는 계곡의 달밤을 노래하고 있다. 썩 좋은 거문고로 타는 노래와 같이 극 곡조를 듣고 있으면 옛 노래를 듣고 있는 듯하다는 작자의 풍류와 운치가 잘 나타나 있다.

- 금탄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맞추어 노래 부르며 혼자 즐기는 멋을 자랑

<제10곡>

九曲(구곡)은 어드메고 文山(문산)에 歲暮(세모)커다.

奇巖怪石(기암괴석)이 눈 쏙에 뭇쳤셰라.

遊人(유인)은 오지 안이하고 볼것 업다 하드라.

곡은 어디인가? 문산에 한 해가 저무는구나.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돌인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묻혀 버렸구나.

놀러 다니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세모커다 : 한 해가 저물도다.

■기암괴석 : 아름다운 경치, 기묘하게 생긴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

■유인 : 놀러다니는 사람. 세상 사람

▮제재 : 세모

▮핵심 : 문산에 세모커다

▮주제 : 아름다움을 모르는 세인에 대한 안타까움

▮해설 :

'고산구곡가'의 열 번째의 수로 기암 괴석이 뒤섞인 흰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이 경치를 보지 않고는 그 아름다움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묘미를 깨닫지 못하는 세인을 안타까워한다. 초장의 문산은 중의적 표현으로 지명일 수도 있고, 또는 학문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중장 '奇巖怪石(기암괴석)이 눈 속에 묻혔어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문산의 아름다운 자연이 눈 속에 묻혀,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암괴석은 문산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동시에 학문 세계의 깊고, 오묘한 즐거움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여기서 유인은 학문에 힘쓰지 않고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사람을 말하며, 학문의 깊고 오묘함을 모르는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10연은 '고산구곡가'의 열 번째의 수로 기암 괴석이 뒤섞인 흰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이 경치를 보지 않고는 그 아름다움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묘미를 깨닫지 못하는 세인을 안타까워 한다.

- 아름다운 경치의 묘미를 깨닫지 못하는 세인들을 안타까워함

■심화 자료

▰이이 (李珥)

1536(중종 31)∼1584(선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강릉 출생. 아버지는 증 좌찬성 원수(元秀)이며,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사표로 추앙받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이다.

아명을 현룡(見龍)이라 했는데, 어머니 사임당이 그를 낳던 날 흑룡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와 서리는 꿈을 꾸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 산실(産室)은 몽룡실(夢龍室)이라 하여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8세 때에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에 올라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 났다. 1548년(명종 3) 13세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세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자,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장례하고 3년간 시묘(侍墓)하였다, 그 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고 다음해 20세에 하산해 다시 유학에 전심하였다.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였다. 23세가 되던 봄에 예안(禮安)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했고, 그 해 겨울의 별시에서 〈천도책 天道策〉을 지어 장원하였다. 전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26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9세에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예조좌랑·이조좌랑 등을 역임, 33세(1568)에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부교리로 춘추기사관을 겸임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 해에 19세 때부터 교분을 맺은 성혼과 ‘지선여중(至善與中)’ 및 ‘안자격치성정지설(顔子格致誠正之說)’ 등 주자학의 근본문제들을 논하였다. 34세에 임금에게 〈동호문답 東湖問答〉을 지어올렸다.

37세에 파주 율곡리에서 성혼과 이기(理氣)·사단칠정(四端七情)·인심도심(人心道心) 등을 논하였다. 39세(1574)에 우부승지에 임명되고, 재해로 인해 〈만언봉사 萬言封事〉를 올렸다.

40세 때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聖學輯要≫를 편찬했다. 42세에는 아동교육서인 ≪격몽요결 擊蒙要訣≫를, 45세에는 기자의 행적을 정리한 ≪기자실기 箕子實記≫를 편찬했다.

47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고, 어명으로 〈인심도심설 人心道心說〉을 지어 올렸다. 이 해에 〈김시습전 金時習傳〉을 쓰고, ≪학교모범 學校模範≫을 지었으며, 48세에 〈시무육조 時務六條〉를 올려 외적의 침입을 대비해 십만양병을 주청하였다.

49세에 서울 대사동(大寺洞)에서 영면,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되었다. 문묘에 종향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紫雲書院),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 풍덕의 구암서원(龜巖書院), 황주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등 20여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1545년 을사사화가 발생해 수많은 사류(士類)가 죽고 유배되었다. 사림은 출사(出仕)를 포기하고 물러서서 학문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1565년(명종 20) 문정대비(文定大妃)의 죽음과 20년간 정사를 전횡하던 권신 윤원형(尹元衡)의 실각으로 나라 안의 정세가 바뀌었다.

을사사화 이후 죄를 입은 사람들이 풀려나고, 사림은 다시 정계로 복귀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이이는 30세로서 출사 1년째 되는 해였다. 1567년에는 이황이 상경하였다. 그 해 6월, 명종이 죽고 선조가 즉위하면서 8월에는 을사사화 이후 피죄되었던 노수신(盧守愼)·유희춘(柳希春) 등이 서용(敍用)되었다.

선조 즉위 다음해인 1568년에는 조광조(趙光祖)에게 영의정을 추서, 이황이 일시에 대제학에 취임하고 남곤(南袞)의 관작을 삭탈하였다. 이황은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지어 올렸고, 1569년(선조 2)에는 이이가 〈동호문답〉을 지어 올렸다.

1570년에는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의 신원이 이루어지는 등 정국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면서 사림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오랜 구습이나 폐풍은 일시에 시정될 수 없었고 유림의 활동은 떨쳐 일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1575년부터는 동서의 분당으로 사림이 분열되고 정쟁이 심각해졌다. 연산군 이래의 폐법은 고쳐지지 않은 채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민생의 곤고는 극도에 달하였으며, 군사적으로도 무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1565년부터 1592년(선조 26)까지의 약 30년 간은 국정을 쇄신해 민생과 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이는 16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를 ‘중쇠기(中衰期)’로 판단해 일대 경장(更張)이 요구되는 시대라 보았다.

이이는 〈만언봉사〉에서 “시의(時宜)라는 것은 때에 따라 변통(變通)하여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도 “우리 태조가 창업했고, 세종이 수성(守成)해 ≪경제육전 經濟六典≫을 비로소 제정하였다. 세조가 그 일을 계승해 ≪경국대전≫을 제정했으니, 이것은 모두 ‘시의(時宜)에 따라 제도를 개혁한(因時而制宜)’ 것이요, 조종(祖宗)의 법도를 변란(變亂)함이 아니었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른 법의 개정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이에게 성리학은 단순한 사변적 관상철학(觀想哲學)이 아니었다. 그는 성리학의 이론을 전개함에 있어 시세(時勢)를 알아서 옳게 처리해야 한다는 ‘실공(實功)’과 ‘실효(實效)’를 항상 강조하였다.

그는 〈만언봉사〉에서, “정치는 시세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일에는 실지의 일을 힘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정치를 하면서 시의)를 알지 못하고 일에 당해 실공을 힘쓰지 않는다면, 비록 성현이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다스림의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이는 항상 위에서부터 바르게 하여 기강을 바로잡고 실효를 거두며, 시의에 맞도록 폐법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사화로 입은 선비들의 원을 풀어주고, 위훈(僞勳)을 삭탈함으로써 정의를 밝히며, 붕당의 폐를 씻어서 화합할 것 등 구체적 사항을 논의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기(國基)를 튼튼히 하고 국맥(國脈)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이는 성현의 도는 ‘시의와 실공’을 떠나서 있지 않으므로 현실을 파악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요(堯)·순(舜)·공(孔)·맹(孟)이 있더라도 시폐(時弊)를 고침이 없이는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이는 진리란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그것을 떠나서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여기서 이(理)와 기(氣)를 불리(不離)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이이 성리설의 특징을 보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