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류문학
Ⅰ. 閨房文學의 産室, 강릉
한국 여류 문학은 영성(英聖)하기 그지없다. 워낙 문학이 사회
심상,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 인간 심상을 문자 매체로 표출해 내
는 그릇인데, 우리네 고유 문자의 창제는 선진한 중국 한자를 보
편문자로 통용하는 식자층의 우월성, 혹은 독점의식으로 큰 불편
을 느끼지 않다보니 조선조에 와서야, 그도 세종대왕 같은 성군
을 만나서야 가능했다. 그러나 조선조는 사대부 본위의 사회제도,
남성 위주의 문화 체제였다. 따라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물론, ʻ사
내는 가르치되, 딸자식은 가르치지 않는다. 男敎 而不敎女ʼ는 이
른바 남녀유별의식으로 교육의 기회조차 허여되지 아니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국문 창제 이후에도 양가에서나 사대부의 진서(眞書) 대신 언문
[암클]을 익혀 언문서나 읽고, 내간에나 통용 하는 것으로 문자생
활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므로 많은 수필류 및 규방가사가
쏟아지던 조선조 후기에도 여류문학은 부도(婦道), 혹은 한(恨)이라
는 천편일률 성을 면치 못했다. 그런 중에도 특별히, 혹은 ʻ어깨
너머 글ʼ로 익힌 사대부가의 규원(閨苑)에 의한 규방문학(閨房文學)
과, 사대부의 풍류에 짝하기 위해 타고난 자질을 갈고 닦은 해어
류(解語類), 곧 기방문학(妓房文學)으로 크게 구분되어 왔다.
규방문학의 대표라면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일러 온 강릉 북평
[죽헌동의 옛 이름] 출생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과, 상상의
세계를 초월한 초당 출신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으로 우리
문학사는 정리해 왔고, 이 두 작가는 강릉 경포 호수를 사이해 이
웃했을 뿐만 아니라, 약 59년을 전후한 동시대인들이다.
❚ 현모양처의 귀감, 신사임당
조선조의 대표적인 여류 시 ․ 서 ․ 화가로, 기묘명신 신명화(申命
和)의 따님이시며, 이원수(李元秀)의 부인이자,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의 모부인이다. 침공과 자수는 물론, 경문과 시서를 익혀 사
대부 부녀자로서의 덕행과 재능을 두루 갖춘 현모양처의 귀감이
었다.
그림은 안견(安堅)의 화법에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곁들여 동
국 제일의 여류화가로 받들리며, 특히 산수 ․ 포도 ․ 꽃 ․ 곤충도로
유명하다.
먼저 예시할 시는 「대관령에서 친정을 바라보며」다.
慈자
親친
鶴학
髮발
在재
臨임
嬴영
늙으신 어머님 임영에 계신데
身신
向향
長장
安안
獨독
去거
情정
홀로 서울로 가고 있는 이 마음
回회
首수
北북
坪평
時시
一일
望망
머리 돌려 북평을 자주 바라보노라니
白백
雲운
飛비
下하
暮모
山산
靑청
흰 구름 흩나는 저 아래 저문 산마을
<李栗谷先生全書․ 18, 先妣行狀. 踰大關嶺望親庭>
친정을 다녀가며 늙으신 모친을 홀로 두고 대관령 마루를 넘으
며 쓴 시다. 임영은 강릉의 옛 이름이요, 북평은 친정이 있는 현
죽헌동의 옛 이름이다. 1 ․ 2구에서 이별의 정으로 임영과 장안에
로 공간을 벌려놓고, 3 ․ 4구에서는 마음 두고 몸만 가는 정을 저
무는 고향 산하의 어둠 속에 재워둔 정감 어린 7언 절구시다. 한편,
千천
里리
家가
山산
萬만
疊첩
峰봉
아득한 고향 산천 첩첩한 산 봉우리,
歸귀
心심
長장
在재
夢몽
魂혼
中중
가고픈 마음 길이 꿈길로나 간다오.
寒한
松송
亭정
畔반
雙쌍
輪윤
月월
한송정 물가엔 어리비친 두 달이요
鏡경
浦포
臺대
前전
一일
陳진
風풍
경포대 앞으론 한바탕 이는 바람.
沙사
上상
白백
鷺로
恒항
聚취
散산
모래 벌엔 백로가 늘 모였다 흩어지고
波파
頭두
魚어
艇정
各각
西서
東동
파랑에 일렁이는 고깃배 동서로 떠가네.
何하
時시
重중
踏답
臨임
贏영
路로
언제쯤 고향의 친정 길 다시 밟아
綵채
複복
班반
衣의
膝슬
下하
縫봉
색동옷 입고 슬하에서 마름 해 볼꼬.
<大東詩選․ 12, 思親>
가고파도 꿈으로밖에 갈 수 없기에 그려본 함련[3 ․ 4구]과 경련
[5 ․ 6구]은, 그러니 눈에 삼삼한 고향 풍경이다. 하늘에 가득한
진신(眞身)의 달이 한송정 물에 어리비쳐 쌍월이 뛰놀고, 광활한
동해를 달려온 일진광풍이 경포대 앞 물안개를 쓸어간다. 절로
갔다 절로 오는 무심한 갈매기며, 뱃전을 부딪는 파도를 더불어
유유히 떠도는 고깃배, 이 모두는 꿈에도 잊지 못할 동심의 자장
가였다. 거기 계신 부모님, ʻ언제쯤 다시 찾아 색동옷 입고 슬하
에 앉아 바느질 솜씨 뽐내며 늙으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ʼ라 했으니, 앞의 시와 함께 효를 주제로 한 시정이 규원
의 현숙함 그대로인 칠언율시이다. 3 ․ 4, 5 ․ 6구는 철저히 대를
이뤘고, 결련은 예의 용사법으로 초나라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원용했다.
두루 아시겠지만, 한시 5 ․ 7언 율시의 감상법을 잠간 짚고 가
야 이후 한시 독해에 도움이 될 듯해 부질없는 체언을 삽한다.
예컨대
3 寒松亭畔雙輪月 5 沙上白鷗恒聚散
∥ ↕ ∥ ↕ ∥ ↕ ∥ 와 같은 수식상의
상관성이 관건이다.
4 鏡浦臺前一陳風 6 波頭魚艇各東西
앞의 절구시와 달리 8구로 된 율시는 5 ․ 7언 공히 안구와 바깥
구가 짝[對偶]을 이뤄야 하고, 얼마만큼 적실하냐에 따라 시의 격
이 매져진다. 이른바 율시 작법의 요체다.
❚상상의 한계를 초월한 허난설헌
당호 난설헌으로 잘 알려진 초희(楚姬)의 자는 경번(景樊)이며,
초당 허엽(許曄)의 딸이자, 허균의 누이로, 신사임당과 함께 강릉
초당 출생이다. 그러니 부 허엽은 주거지 초당을 호로 삼았고, 당
시 세평은 3남 1녀[長子 許筬․ 次子 篈․ 女 경번 ․ 季子 筠]와 함께
초당(草堂) 오보수(五寶樹)로 통칭된 문벌(文閥)인 셈이다. 특히 난설
헌은 삼당(三唐)의 칭을 받던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해 우리 한시문학사상 열 손가락에 드는 대
한국의 여류문학 35
시인이다. 그의 문집 허난설헌집은 사후 동생 균에 의해 정리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중국에서 간행하여 지가를 올
렸고, 1711년에는 분다이야(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되
었으며, 명시종(明詩綜)에도 5수나 선시(選詩)되는 영예를 입었다.
안동 김성립(金誠立)에게 출가했으나, 고부 및 부부간이 불화한
데다, 자녀마저 해 걸러 잃는 등 불운 속에 210여 수의 독특한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여성의
섬세함이 아롱진 순수시, 시가의 불화와 친가의 몰락, 겹치는 불
운에 따른 애상적 시, 그리고 현실적 좌절과 질곡으로부터 초극
하려는 유선시(遊仙詩)로 나눌 수 있다.
蹴축
罷파
鞦추
韆천
整정
綉수
鞋혜
그네 타기 마치자 꽃당혜 신고,
下하
來래
無무
語어
立입
瑤요
階계
말없이 내려와 구슬 섬돌에 섰네.
蟬선
衫삼
細세
濕습
輕경
輕경
汗한
하늘한 적삼엔 촉촉이 땀이 배었고
忘망
却각
敎교
人인
拾습
墮타
釵채
떨어뜨린 비녀 주어달란 말도 잊었나봐.
<許蘭雪軒集․ 鞦韆詞>
막 그네 타기를 마치고 내려선 수줍은 아가씨의, 그러나 교태
롭고 가녀린 자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네 타기 2수 鞦韆詞二
首」 중 그 2다. 가쁜 숨, 나른한 자태, 떨어진 비녀조차 챙기지
못하는 정경이 눈에 삼삼하여, 단오절 마실 앞 그네 터를 연상케
한다. 특히 「봉선화 물 드리는 노래 染脂鳳仙花歌」, 「지아비에게
寄夫江舍牘書」, 「자식을 곡하며 哭子」 등은 그의 순수시 중 대표
작이라 할 것이다. 차례로 감상하며 강릉 규방문학의 문예미를
감미해 보자.
金금
盆분
夕석
露로
凝응
紅홍
房방
금분에 저녁이슬 각시 방에 내리니
佳가
人인
十십
指지
繊섬
纖섬
長장
미인의 열 손가락 가녀리고 매끈해.
竹죽
碾년
搗도
出출
捲권
崧숭
葉엽
대 절구에 찧어 장다리 잎으로 말아
燈등
前전
勤근
護호
雙쌍
鳴명
瑭당
귀고리 울리며 등불 앞에서 동여맸지.
粧장
樓루
曉효
起기
簾렴
初초
捲권
새벽에 일어나 막 발 걷으려다 보니
熹희
看간
火화
星성
抛포
鏡경
面면
반가워라, 붉은 별 거울에 비치누나.
拾습
草초
疑의
飛비
紅홍
蛺협
蝶접
풀잎을 뜯을 때는 호랑나비 날아온 듯
彈탄
箏쟁
驚경
落낙
桃도
花화
片편
가야금 탈 때는 복사꽃잎 떨어진 듯.
徐서
勻균
粉분
頰협
整정
羅라
鬟환
토닥토닥 분 바르고 큰머리 만지자니
湘상
竹죽
臨임
江강
淚루
血혈
斑반
소상반죽의 피눈물 자국인 듯 고와라
時시
把파
彩채
毫호
描묘
却각
月월
이따금 붓을 잡고 눈썹 그리노라면
只지
疑의
紅홍
雨우
過과
春춘
山산
자못 붉은 빗방울 눈썹 스치는 가 싶네.
<仝上․ 染脂鳳仙花歌>
ʻ봉선화 물들이기 노래ʼ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야 않겠지만, 형
형색색도 모자라, 형광이 찬란한 매니큐어 세대에겐 상상도 안
되는 과장으로 매도되리라. 예컨대 ʻ거울에 비친 붉은 별 ․ 날아온
호랑나비 ․ 가야금 시울에 떨어진 복사꽃잎 ․ 소상반죽의 핏자국ʼ 같
이 선명하고 아름답게 물든 손톱이어서, 혹 ʻ붓으로 눈썹을 그리
다 보면 붉은 빗물이 눈썹 위를 지나는 듯싶다.ʼ니 분명 과장적
미화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전달심상이 독자의 수용심상과 일치
되는 것으로 시어(詩語)는 그 사명을 다한다. 곧 작자와 독자의 정
서적 공감대, 이른바 의회(意會)로 충분한 것이다.
아무튼 여성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자, 난설헌이기에 규방문학
의 순수문예미를 배가할 수 있었다 하겠다.
다음은 지아비 김성립을 기다리다 지친 정한의 시정이다.
燕연
掠략
斜사
簷첨
兩양
兩양
飛비
처마를 지치며 제비 쌍쌍이 날자,
落낙
花화
撩료
亂란
撲박
羅라
衣의
요란히 흩지는 꽃잎 제비 날개 스치네.
洞동
房방
極극
目목
傷상
心심
處처
기다림에 지친 신방, 애타는 마음이건만
草초
綠록
江강
南남
人인
未미
歸귀
강남이라, 주색에 빠진 님 오실 줄 모르네.
<仝上․ 奇夫江舍讀書>
복사꽃 화창한 신혼, 돌아온 강남 제비는 홀로 처한 신방의 청
상을 놀리기나 하듯 쌍쌍이 춘정을 희롱하고, 독서를 핑계한 지
아비는 강남(지금의 노량진)에 독서당을 마련하고 춘색에 빠졌다. 야
속한 님이기에, ʻ이제나 저제나 눈이 빠져라[極目傷心]ʼ 기다리는 난
설헌의, 너무나 인간적 상심을 이수광(李晬光)은 어찌 음탕하다고
만 폄하했을까?
다음 오언고시는 지아비로부터 받은 상심보다 더 큰 모성 본능
적 비애의 시편 「두 아이를 묻고」이다.
去거
年년
喪상
愛애
女녀
지난해엔 귀여운 딸아이를
今금
年년
喪상
愛애
子자
금년엔 사랑하는 아들 잃어.
哀애
哀애
廣광
陵릉
土토
서럽고 서러워라, 광릉 땅에
雙쌍
墳분
相상
對대
起기
두 무덤 마주하고 섰구나.
蕭소
蕭소
白백
楊양
風풍
스산한 바람 백양나무 가지서 일고
鬼귀
火화
明명
松송
楸추
귀신 불 솔숲에서 번쩍번쩍 빛나네.
紙지
錢전
招초
汝여
魂혼
지전으로 너희들 혼 불러놓고
玄현
酒주
奠전
汝여
丘구
맹물 한 잔 무덤에 붓는다.
應응
知지
弟제
兄형
魂혼
어찌 모르랴, 오누이의 넋이
夜야
夜야
相상
追추
遊유
밤마다 서로 따라 노닐 줄을.
從종
有유
腹복
中중
孩해
비록 뱃속에 어린 생명 있다만
安안
可가
冀기
長장
成성
어찌 무탈히 자라길 바라리오.
浪랑
吟음
黃황
臺대
詞사
부질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血혈
泣읍
悲비
呑탄
聲성
피눈물로 울음마저 삼키노라.
<仝上․ 哭子>
해 걸러 오누이를 가슴에 묻고, 슬피 우는 어미의 통한이다. 특
히 ʻ어찌 모르랴, 오누이의 넋이 밤마다 서로 따라 노닐 줄을ʼ에
서 우리는 ʻ절조의 비장미ʼ를 읽을 수 있다. 생과 사의 갈림에서
산 어미가 죽은 자식에게 이 말밖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
가! 그나마 가여운 두 넋이 서로 의지할 것이니, 그걸로 나마 위
안삼아야 하는 어미, 울음조차 피눈물과 함께 삼킬 뿐이라 했으
니, ʻ한(恨)으로 통념된 민족정서ʼ의 절정인 셈이다.
한편, 그녀의 유선시(遊仙詩)는 연작 87수 외에도 「망선요」 「보
허사」 등 양적으로 우선 절대적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현
실적 좌절과 질곡으로부터의 의지적 초극을 위해 설정한 이상경
이리니 「몽유광상산시」 1수로 대신한다.
碧벽
海해
侵침
瑤요
海해
푸른 바다는 요지에 번져가고
靑청
鸞란
依의
彩채
鸞란
청란은 채란에 의지해 있구나.
芙부
蓉용
三삼
九구
朶타
아리따운 연꽃 스물일곱 송이
紅홍
墮타
月월
霜상
寒한
붉은 꽃 져 서리 달만 싸늘해.
<仝上․ 夢遊廣桑山詩>
광상산은 신선이 산다는 산이다. 그 「서」에 의하면 ʻ꿈에 광상
산에서 노닐다, 두 선녀를 만나 시 짖기를 부탁 받고 지었다.ʼ 하
며, 허균은 ʻ우리 누님이 기축 년(1589) 봄에 돌아가시니, 때에 나
이 27이었다. ʻ삼구홍타(三九紅墮)ʼ의 말은 그 증험이다.ʼ라 한 이
래, 시참(詩讖)으로 일컫는 시다. 아마도 그미는 전생의 선연이 있
었던가. 구슬같이 영롱한 선어는 인간 상상의 한계를 넘나는 바
있다.
이상에서 우리 고향 강릉이 낳아 한국 규방문학의 대가로 문학
사를 빛낸 두 규원의 시정을 알고, 이어받아 현재 활약 중이신 여
류문사는 물론, 더욱 많은 신인들이 한국문단을 빛내 주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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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기(金甲起) 문학박사. 전 동국대학교 교수
강릉상고 제23회 졸업.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상명여자고등학교 근무.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동 박사학위취득.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학과 교수, 학장.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2004. 3∼2011. 8).
저서 漢詩로 읽는 우리 文學史(새문사), 漢文學史[공저(새문사)]. 우리 古典詩歌 바로 읽기(지식과 교양), 譯註 三韓詩龜鑑(서예문인화), 詩로 읽는 寺刹文化(지식과 교양) 외 다수.
E-mail: kgk00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