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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봄은 마음이 먼저 온다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5.12.26|조회수18 목록 댓글 0

봄은 마음에 먼저 온다

봄은 언제나 풍경보다 먼저 마음에 온다.
꽃이 피기 전부터, 색이 분명해지기 전부터 이미 우리는 안다.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숨을 쉬는 방식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그림 속 봄도 그렇다. 분홍빛으로 가득하지만 선명하지 않고, 형체가 있지만 붙잡히지 않는다. 마치 기억 속에서 막 떠오르는 어떤 장면처럼.

꽃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으나, 이곳에서는 가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선들은 흐르고 겹치며 사라진다. 분홍과 연두, 노랑과 하늘빛이 서로의 경계를 허문다. 이 풍경은 자연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던 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옮겨놓은 듯하다.

나는 이런 봄 앞에서 늘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너무 환하면 오히려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봄은 그래서 좋다. 화사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풍성하지만 고요하다. 축제의 봄이 아니라, 혼자 걷는 오후의 봄이다.

봄날의 기억은 대개 이렇게 흐릿하다. 분명 꽃은 피어 있었고, 바람은 불었고, 누군가와 함께였거나 혼자였지만, 정확한 장면은 남지 않는다. 대신 감정만 남는다. 따뜻했다는 것, 조금 설렜다는 것, 그리고 어쩐지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 같았다는 예감.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기억들이 겹겹이 떠오른다. 이미 지나간 봄과 아직 오지 않은 봄이 한 화면에 겹쳐 있다. 그래서 이 봄은 특정한 해의 봄이 아니다. 누구의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의 것도 아니다.

꽃이 만개하면 사람은 기뻐하지만, 자연은 그때부터 이미 다음을 준비한다. 피어나는 순간은 짧고, 흩어지는 시간은 빠르다. 그래서 봄은 늘 아쉽다. 아름다움이 클수록 머무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림 속 색들은 서로 기대어 있다. 분홍은 혼자 빛나지 않고, 연두와 섞이며 부드러워진다. 노랑은 튀지 않고 스며든다. 마치 감정도 혼자서는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는 늘 누군가의 색과 섞이며 살아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봄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봄은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흐릿해도, 아직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계절. 그림은 그 허락을 조용히 건넨다. 서두르지 말라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봄이라고.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고,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한동안 그림 앞에 머물며 내 마음의 색을 들여다본다. 어떤 날은 분홍이 많고, 어떤 날은 연두가 많다. 기쁨이 앞설 때도 있고, 아쉬움이 먼저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봄을 닮았다.

봄은 늘 불완전한 상태로 온다. 꽃이 피는 동안에도 바람은 차고, 햇살이 따뜻한 날에도 그늘은 서늘하다. 이 모순이 봄을 살아 있게 만든다. 완벽한 계절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그림 속 봄도 그렇다. 조금 흐트러져 있고, 조금 번져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된다. 정답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느끼면 된다.

봄은 이렇게 마음에 먼저 온다. 풍경으로 오기 전에, 사진으로 남기기 전에, 말로 설명되기 전에. 조용히 스며들어, 어느 날 문득 우리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그림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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