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이 전하는 안부(문화산책)
여름이 되면 담장 곁에 접시꽃이 피어난다. 연분홍 꽃잎이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곧게 뻗은 줄기는 하늘을 향해 조용히 자란다. 화려한 꽃들이 앞다투어 시선을 끄는 계절이지만, 접시꽃은 늘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에는 접시꽃이 있었다. 장독대 옆에 서 있던 꽃은 키가 사람보다 컸고, 여름바람이 불 때마다 고개를 흔들며 마당을 지켰다. 그 곁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다. 꽃에 물을 주고, 풀을 뽑고, 피어난 꽃송이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오래된 집도, 마당도, 그 시절의 풍경도 사라졌지만 접시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기억은 다시 살아난다.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접시꽃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긴 줄기를 따라 아래에서 위로 차례로 피어나는 모습에는 삶의 순서가 담겨 있다. 태어남과 성장, 그리고 이별까지. 꽃 한 줄기 안에 한 사람의 생애가 담겨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접시꽃 앞에 서면 문득 그리운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람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꽃잎 사이로 떠오른다. 그리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가 계절을 만나 다시 피어나는 것인지 모른다.
올여름, 담장 곁 접시꽃 한 송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본다. 꽃은 아무 말 없이 바람에 흔들리지만, 그 침묵 속에는 긴 세월을 건너온 위로가 담겨 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잘 지내고 있느냐.”
접시꽃은 오늘도 그렇게, 그리운 사람들의 안부를 대신 전하며 여름 뜨락을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