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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그늘진 횡단보도 위의 노인 13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1|조회수9 목록 댓글 0

그늘진 횡단보도 위의 노인(문화 산책)

한낮의 도시는 분주하다. 자동차는 쉼 없이 오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신호등은 초 단위로 시간을 재촉하고, 거리의 간판들은 더 밝고 더 크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바쁜 풍경 속에서도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있다.

횡단보도 한가운데,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밀고 가는 한 노인의 뒷모습이다.

허리는 세월의 무게만큼 굽어 있고, 손수레는 노인의 몸집보다 더 커 보인다. 종이상자와 폐지가 높이 쌓여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노인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뜨거운 햇살 아래 횡단보도의 흰 줄은 더욱 선명한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는 밝음보다 그늘이 먼저 드리워진다.

우리는 흔히 노년을 인생의 황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황혼은 단순히 해가 지는 시간이 아니다. 하루 동안 세상을 밝히던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해 빛을 내는 시간이다. 노인의 손수레 역시 그렇다. 누군가는 폐지 수집이라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노동이며 스스로 삶을 책임지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을 만나는 일도 낯설지 않다. 통계로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한 사람의 삶은 결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 손수레에는 종이상자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과 인내, 책임과 자존심, 그리고 긴 세월이 함께 실려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나 가끔은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나치는 풍경 속에는 사회의 민낯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건물과 번쩍이는 간판 뒤편에서 누군가는 하루 생계를 위해 무거운 수레를 밀고 있다.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진정한 복지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저 손수레의 무게를 함께 느끼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약한 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늙음이 가난의 다른 이름이 되지 않는 사회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신호등이 바뀌고 노인은 천천히 길 건너편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다시 바쁜 일상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그날의 횡단보도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햇빛은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내가 본 것은 빛이 아니라 그늘이었다. 그리고 그 그늘은 한 노인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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