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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정박(碇泊)의 시간 20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4|조회수14 목록 댓글 0

정박(碇泊)의 시간( 문화 산책)

멈춤 속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갯벌 위에 작은 배 한 척이 고요히 멈추어 있다. 밀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배는 움직일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초라하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사색에 잠긴 사람처럼 평온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운다. 멈추면 뒤처지는 것 같고, 쉬면 게으른 것 같아 불안해한다. 그래서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다는 하루에도 두 번씩 물러난다. 썰물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다시 밀려올 밀물을 준비하는 자연의 호흡이다. 갯벌 위에 정박한 배 역시 마찬가지다. 항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음 출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도 정박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리 애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을 탓하며 조급해진다. 하지만 어쩌면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배는 물이 들어오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계절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새벽을 기다리는 밤처럼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자연의 질서는 기다림 속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우리 삶의 중요한 변화도 대부분 멈춤의 시간에서 시작된다.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며 길을 다시 찾는다.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멈추어 서 있을 때 비로소 보이기도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갯벌 위의 작은 배는 말없이 묻는다. 지금 당신의 정박은 끝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은 아닌지. 삶은 항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멈추어 쉬고, 기다리고,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정박은 멈춤이 아니다.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떠나기 위한 가장 깊은 준비다. 그래서 오늘의 고요도 언젠가 시작될 새로운 항해의 첫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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