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담장을 타고 흐르는 여름 23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5|조회수10 목록 댓글 0

담장을 타고 흐르는 여름

여름이 깊어질 무렵이면 도시의 담장과 골목 어귀에 주황빛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능소화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지치지 않고 피어나는 능소화는 여름을 대표하는 꽃 가운데 하나다. 덩굴을 따라 하늘로 오르고 담장을 타고 흐르며 마치 꽃으로 만든 폭포를 연상시킨다.

능소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삶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꽃은 처음부터 높은 곳에 피어 있지 않다. 작은 줄기 하나로 시작해 벽을 오르고, 비바람을 견디며 조금씩 위로 향한다.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딘 뒤에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의 벽을 만나고,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멈춰 서지만 결국 다시 일어나 자신의 꽃을 피워 낸다.

예로부터 능소화는 양반집 담장 너머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능소화에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가 함께 담겨 있다. 담장 안과 밖을 이어 주는 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 주는 꽃인 셈이다.

최근 대구 대봉동의 한 건물을 가득 덮은 능소화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회색 콘크리트 벽을 뒤덮은 꽃들은 삭막한 도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걸음을 멈춘다. 꽃 한 송이가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간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계절이 바뀌는 것도 놓칠 때가 많다. 그러나 능소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에 맞춰 천천히 자라고 피어난다. 그리고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선물한다.

능소화 아래에 서면 알게 된다. 인생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름 담장을 타고 흐르는 주황빛 꽃들이 오늘도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리고 삶의 스승처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