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화가 가르쳐 준 기다림
여름이면 마당가에 봉숭화가 피어난다. 크고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봉숭화에는 다른 꽃이 흉내 낼 수 없는 힘이 있다. 꽃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추억 속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봉숭화 꽃잎을 따 손톱에 물을 들였다. 꽃잎을 찧어 손톱 위에 올리고 잎사귀로 감싼 채 하룻밤을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붉게 물든 손톱을 보며 기뻐하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첫눈이 올 때까지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박한 믿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봉숭화 물들이기는 기다림의 문화였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즉시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하룻밤을 견디고 아침을 맞아야 비로소 꽃빛이 손끝에 스며들었다. 기다림 속에서 설렘을 배우고, 느림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오늘의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간다. 결과를 재촉하고, 답을 서두르며, 기다림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봉숭화 물처럼 서서히 스며들 때 깊어진다. 사랑도 우정도 신뢰도 오랜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색을 얻는다.
봉숭화는 매년 여름 다시 피어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마음 깊이 스며든 시간이라고. 봉숭화 필 무렵, 잠시 걸음을 늦추고 기다림의 가치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그 느린 시간이야말로 삶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이는 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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