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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미주알 고주알

고정희씨의 관계

작성자workingmonk|작성시간16.03.15|조회수1,255 목록 댓글 1

봄을 부르는 저녁비에 문득 작고한 고정희씨가 생각나는 군요...

그녀의 시집에서 공유하고픈 시 한수 올려 봅니다.

 

= 관계 =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번째 회신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거다 천기를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 고정희 시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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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윈 | 작성시간 16.03.15 오래전 해남마을 다녀온 기억. 고정희 시인...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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