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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글

섭씨 100도와 0도

작성자박종근|작성시간15.07.25|조회수85 목록 댓글 1

물이 끓는 온도도 있지만 물이 얼어 붙는 온도가 있다. 그것은 섭씨

0도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미우라 아야꼬는 그의 저서 이름에서

"빙점"이라고 했다. 끓는 100도가  있는가 하면 얼음이 되는 0도가 있다.

나는 섭씨 100도 이고 싶다. 얼음이 되는 섭씨 0도는 난 싫다.

내 인생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지쳐 나자빠지는 상황이 온다 해도

난 얼어붙는 0 도는 원하지도 않고 그런 자리에 가본 적도 없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난다. 아주 꽉 막힌 사람들이다. 보통때에는

펄펄 끓는 100도 임에 틀림이 없는데 자신의 영역이 침해당하는 일

앞에서는 언제나 영하의 온도다. 인생을 살아도 그렇게 차디찬

얼음처럼 얼어 붙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 자기 욕망이나 자기 욕심

으로 인하여 얼어붙는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 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놀랍게도 자기 안에 자기 만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온수

조절기가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목욕을 하고 해가 뜨면 다시 일을 한다.

이게  인간이다.

 

인간이 빙점의 자리로 가는 이유중에 하나는 자기 욕심때문이다.

그리고 욕심의 가장 큰 원흉은 자기 자아이다. 그래서 자기 편리한대로

자주 옷을 갈아입는다. 이름하여 표리부동이다. 순전히 자기만을

위한 보호막을 사용한다. 인생의 삶을 뜨겁게 100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중에는 차겁고 맥없이 살아가는

0도의 군상들을 대신해서 자기의 몸과 시간과 물질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훌륭한 사람들이다. 이타적인 사람들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두말할 것도 없이

섭씨100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삶속에서도

여전히 다른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여전히 차디찬 죽음같은 음지에

있는 이들을 살려내는 생명수가 되기 때문이다. 빙점에서 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자리, 생명력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서릿발내리는 자리, 거기에선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

 

물론 불가피하게 빙점의 자리에서 꼼짝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 까? 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의 100을 나누는 것이다.

얼음도 녹이고 차가운 손도 만져주고 무엇보다 막힌 가슴을 열어주는

사랑의 불씨를 던져주어야 한다. 이 땅에는 빙점아래에 사는 이들이 많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식의 유무를 떠나서 얼음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제 그들에게 끓는 섭씨100도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되는 일을

해야겠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람이 바로 섭씨 100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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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권영훈 | 작성시간 15.07.25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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