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休暇 , vacation)는 쉼(rest)이다. 그러면 쉼은 무엇인가?
쉼의 문자적 의미는 내려놓고 잊어버리고 거리를 두고 몸의 자유로움
정신과 마음이 일(직업과 노동)을 잠시나마 떨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물리적이고 일정한 시간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세상에
자영업을 한다든가,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라고 해서 휴가와 쉼을
무계획으로 원할 땐 언제나 한달이고 반년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본래 휴가와 쉼이란 recreation(재충전)이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휴가와 쉼이 좋은 것이다.
휴가 두번째날 나의 영적 순례로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경부선
전도여행의 날이다. 성경전달을 위한 "존 로스선교사를 따라하기"
는 매우 드라마틱한 하루였다. 하루 이야기를 긴이야기지만 하겠다.
아침 6시 전에 예배당에 와서 새벽예배를 인도하신 권사님과
집사님을 만났다. 그리고 서재실에 올라가 준비된 성경 약 55권을
백팩에 넣어가지고 수서역에 갔다. 가는 중에 잠깐 기도하는 중
하나님께서 "애, 오늘 나와 놀자"라고 하시는 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러죠 하나님 오늘은 하나님과 재밋게 놀지요 라고 하면서
역에 도착했는데 내 스마트폰이 잠적을 했다. 생각도 안나고 포기
하고 수서역파출소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집에 전화를 하고 출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부산에서 저의 전도를 도와주실 '이상현박사'
님과 통화를 하지 못해 결국 부산역에서 35분을 헤매고 마침내
부산역 소포(짐부치는 곳)사무실에서 전화사용허락을 받고 이박사
님과 통화가 되어 만났다.
이박사님의 말씀에 70된 미아?를 찾느라 무척고생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희한한 경험을 했다. 참고로 수서역이나
부산역이나 역무원들은 나의 형편을 이야기하고 전화기 사용부탁을
했는데 일어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결국 역안에 있는 파출소의 도움
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박사님과 함께 출입구와 지하철이 이어
지는 곳을 찾아 1시간가량 성경전도를 시작했다. 특이했던 점은
성경을 전달할 때 그분들의 표정이 매우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100이면 100 모두 핸드폰을 보고 다녀서 사실은 내가 눈치
를 보면 "성경입니다. 외국인을 만나면 good news Bible"이라고
전하면서 성경을 전달했다.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던지 단기선교
첫날 넬교회에서 전도집회 한 것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작지만 성경전달운동을 하게 된 것은 10여년전 중국심양의 동관교회를
방문하고 그 교회를 세운 스코틀랜드의 죤 로스목사님의 사역과
성경번역소식을 접하다가 그분의 행적을 찾다가 그 고귀한 정신을
잇고 싶어 하게 되었다. 참고로 심양은 한국교회사적으로 1877년부터
로스 목사가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선생등고 함께 번역한
한글 성경을 발행한 문광서원이 있던 곳이다. 1881년 7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로부터의 지원으로 문광서원을 세운 로스 목사는 그해 10월
한국최초의 기독교문서인 '예수셩교문답'과 '예수셩교요령'을 출간했다.
이듬해 첫 한글 성경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와 예수셩교요한복음
전서'를 발간했다.이를 시작으로 사도행전(1883년), 마가복음과 마태
복음(1884년), 에베소서(1885년)에 이어 최초의 한글 신약젼서 '예수
셩교전서'(1887년)를 발행했 다.
이응찬과 백홍준 서상륜을 만나기 바로 전, 존 로스는 고려문(심양과
단동의중간지점, 옛 마차역) 광장에서 성경가방을 들고 조선인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첫번 째는 실패했다. 조선인을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고 두번째 왔을 때 고려문에서 조선인들을 만났다.
그들이 바로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이다. 이들이 조선인 상인으로서
당시에는 일반인들과 달리 중국을 다니며 무역을 했던 이들이다.
이들을 만나 맨 처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한글로 번역하고 출판하여
한국인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는 공식적으로
선교사(언더우드 아펜셀러)가 1885년 들어오기전 먼저 성경이 들어온
나라이다. 놀랍고 경이로운 사건이다. 사람이 오기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들어온 나라! 세계가 주목할 일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사람이 알 수 없는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고 교훈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2년전 로스 선교사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 아주 짧은
일정이었는데 그곳에서 로스선교사가 묻힌 묘지를 찾았다. 버스시간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우리 일행은 (GMP 선교회 이사들)등에 백팩을 메고
뛰어가 존 로스선교사님의 묘를 방문했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잠깐 우리는 묵상기도를 하고 기념사진 정도를 찍고 늘 마음에 그리고
보고싶던 로스선교사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는 동북삼성의 사명자를
위해 동북신학교를 건립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셨고, 특히 연변지역의
한인교회등에도 보이지 않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대부분 학자
들의 견해다.
나는 부산역에서서 고려문에서 조선인을 기다리던 죤 로스의 마음을 담은
채로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 로스는 아무도 모르는 고려문에서 조선인을 기다려
야 했다. 키가 큰 외국인, 그 넓은 고려문 역의 마당에서 숱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비웃고 그랬을 텐데, 그는 조선인의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하는 열망때문에 부끄러움이나 그러한 것들을 다
물리차고 성경가방을 든채로 하루를 기다렸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을 만나
그는 성경번역에 박차를 가했고 중국의 동북삼성에 복음의 씨앗이 강력
하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로스의 성경번역은 적어도 우리 대한민국으로로는 매우 놀랄만한 사역
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해다. 휴가 둘째 날은
이렇게 이렇게 부산역에서 성경전달을 하고 저녁에 귀경했다.
하나님과 잘 놀았다.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