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맥'에서의 대전투(!)를 앞둔 시점에서 타사우프님께서 앞으로 전개될 장면이 수양제의 고구
려 원정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코멘트에서 언급하셨더군요.
그러다보니 수(隋)란 나라를 두고 몇 가지 재미있는 기억이 나서요.
원래 수(隋)는 제국명을 수(隨)로 하려고 했지만 수(隨)의 받침으로 들어간 '달릴 주(走)'의 뜻이
국가명에 안 어울린다고 봐서 아예 받침으로 들어간 변을 빼버리고 국가 이름으로 새로이
수(隋)라는 글자 하나를 만들었죠.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빨리 달린다란 뜻 그대로 단명해버린 왕조가 되었지만요.
또 하나는 고구려 원정실패에다 무리한 토역(대운하 공사)으로 왕조를 단명시킨 수양제의 아버
지인 수문제는 의외로 꽤 탁월한 정치가였단 점입니다. 수 이후에 들어선 당(唐) 초기 연간 태종
의 치세를 두고 "정관의 치"라며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로 추켜세우지만, 사실 아들 양제
의 어처구니 없는 짓만 아니었어도 아버지 문제의 치세는 "정관의 치"를 넘어서는 엄청난 성세
였다고들 합니다. 사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唐) 제국의 초기 성세가 양제의 치부 덕을 봤다고
들도 하구요.
특히나 수문제는 가정사가 상당히 불운했었는데요.
비록 야사(野史)이긴 해도, 아들인 양제에 의해 독살 내지는 교살 되었다는게 거의 정설이구요.
(그러니까 자식 농사가 중요하죠)
또 한가지 재미있는건 중국의 황제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 아닌 특권(?)을 못 누린 거의 유
일한 황제가 아닌가 싶다는거죠.
다름아닌 바로 '하렘' 이야기입니다.
수양제의 어머니이자, 문제의 부인이었던 독고황후는 가히 여장부라할 수 있었는데(주변에서
많이들 써먹는 사자성어인 '기호지세'란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죠), 문제는 독고황후에
게 쩔쩔 맸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황제임에도 후궁을 두는데 엄청나게 눈치를 봤다는군요.
첩을 두는데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한 건 황제인 문제뿐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조야의 대신들 모두가 그 영향을 받아서 공공연히 '첩'을 두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청(淸)의 조익이란 학자가 쓴 "이십이사차기"란 역사서(상당히 재미
있고 역사적 가치도 있는 훌륭한 저서인데 죽어도 번역본이 안 나오더군요)에 보면 독고황후에
대한 절 하나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원서로 읽은데다 하도 오래되어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수 문제 휘하의 고관중 하나
가 상처(喪妻)했다고 합니다. 이를 딱히 여긴 독고황후가 중매를 서겠다고 했는데, 이 고관
이 '조강지처'의 고사를 들먹거리며 사양했다고 하더군요. 황후가 이를 평소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얼마후에 그 고관의 집에서 첩 하나가 아이를 낳았단 얘기를 듣고 이 공포의 황후는
그 다음날로 그 고관의 목을 "댕강~" 했다는군요.
그건 그렇고, 주말 특별연참같은건 없을까요?
일종의 신년 이벤트랄까... 뭐 그런거요.. 헤헤...(비굴한 웃음)
려 원정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코멘트에서 언급하셨더군요.
그러다보니 수(隋)란 나라를 두고 몇 가지 재미있는 기억이 나서요.
원래 수(隋)는 제국명을 수(隨)로 하려고 했지만 수(隨)의 받침으로 들어간 '달릴 주(走)'의 뜻이
국가명에 안 어울린다고 봐서 아예 받침으로 들어간 변을 빼버리고 국가 이름으로 새로이
수(隋)라는 글자 하나를 만들었죠.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빨리 달린다란 뜻 그대로 단명해버린 왕조가 되었지만요.
또 하나는 고구려 원정실패에다 무리한 토역(대운하 공사)으로 왕조를 단명시킨 수양제의 아버
지인 수문제는 의외로 꽤 탁월한 정치가였단 점입니다. 수 이후에 들어선 당(唐) 초기 연간 태종
의 치세를 두고 "정관의 치"라며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로 추켜세우지만, 사실 아들 양제
의 어처구니 없는 짓만 아니었어도 아버지 문제의 치세는 "정관의 치"를 넘어서는 엄청난 성세
였다고들 합니다. 사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唐) 제국의 초기 성세가 양제의 치부 덕을 봤다고
들도 하구요.
특히나 수문제는 가정사가 상당히 불운했었는데요.
비록 야사(野史)이긴 해도, 아들인 양제에 의해 독살 내지는 교살 되었다는게 거의 정설이구요.
(그러니까 자식 농사가 중요하죠)
또 한가지 재미있는건 중국의 황제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 아닌 특권(?)을 못 누린 거의 유
일한 황제가 아닌가 싶다는거죠.
다름아닌 바로 '하렘' 이야기입니다.
수양제의 어머니이자, 문제의 부인이었던 독고황후는 가히 여장부라할 수 있었는데(주변에서
많이들 써먹는 사자성어인 '기호지세'란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죠), 문제는 독고황후에
게 쩔쩔 맸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황제임에도 후궁을 두는데 엄청나게 눈치를 봤다는군요.
첩을 두는데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한 건 황제인 문제뿐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조야의 대신들 모두가 그 영향을 받아서 공공연히 '첩'을 두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청(淸)의 조익이란 학자가 쓴 "이십이사차기"란 역사서(상당히 재미
있고 역사적 가치도 있는 훌륭한 저서인데 죽어도 번역본이 안 나오더군요)에 보면 독고황후에
대한 절 하나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원서로 읽은데다 하도 오래되어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수 문제 휘하의 고관중 하나
가 상처(喪妻)했다고 합니다. 이를 딱히 여긴 독고황후가 중매를 서겠다고 했는데, 이 고관
이 '조강지처'의 고사를 들먹거리며 사양했다고 하더군요. 황후가 이를 평소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얼마후에 그 고관의 집에서 첩 하나가 아이를 낳았단 얘기를 듣고 이 공포의 황후는
그 다음날로 그 고관의 목을 "댕강~" 했다는군요.
그건 그렇고, 주말 특별연참같은건 없을까요?
일종의 신년 이벤트랄까... 뭐 그런거요.. 헤헤...(비굴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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