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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렀던 자리도 아름답다.

작성자금산|작성시간11.02.24|조회수36 목록 댓글 3

나는 지하철을 탈 일이 있을 때는 무료한 시간을 잊을 겸하여 역사와 화장실에 걸려 있는 글과 시를 읽기도 하고, 글이 없을 때는 광고물을 읽기도 한다.

 

그런 글들 중에는 말이 되지도 않고, 문맥이 맞지도 않는 유치한 글도 많이 있어서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좋은 글을 만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화장실에서 읽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렀던 자리도 아름답다.”는 짧은 글이었다. 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어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자격도 없고 꺼리도 없지만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똥 싼 종이에서는 똥내가 난다.”는 말도 있어서 가끔씩은 흉내를 내려고도 한다.

 

나는 마포의 연립주택에서 세들어서 살고 있었는데 집이 팔리게 되었다. 집을 산 사람이 들어와 살겠다면서 이사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하여 얼마 살지도 못하고 신정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마포로 이사를 올 때 새로 도배를 했는데 내가 사는 동안에 2층에서 난방용 배관이 터지는 바람에 천정과 벽이 보기 흉하게 얼룩이 지기도 하고, 벽지가 바퀴벌레들이 싼 똥과 습기로 새카맣게 곰팡이가 군데군데 슬어서 도배를 새로 해야 하지만 바닥은 말짱했다.

 

그런데 내가 책상을 옮기다가 책상다리가 장판지에 걸린 것을 모르고 힘을 주는 바람에 7cm 정도 찢겨진 부위가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찢겨진 부위가 없다면 천정과 벽은 어쩔 수 없지만 바닥은 새것과 다를 것이 없어서 도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찢겨진 부위 위에 여분의 장판지를 무늬에 맞춰 올려놓고 2장의 장판지를 함께 칼로 오려내어 조각이 떨어지지 않도록 본드풀(205)로 갖다 붙였다. 바닥을 땜질한 것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바닥의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신정등으로 이사를 와서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포장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화장실에 걸려 있는 수건걸이를 떼어온 것이 발견되었다. 마포집은 지은지 40년이 넘은 구옥으로 수건걸이가 없어서 내가 설치를 했기 때문에 떼어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신정동에는 있는 것이어서 2개까지는 필요가 없었다.

 

내가 설치한 수건걸이는 압축으로 타일에 붙이는 것이었는데 압축 힘이 약해서 곧잘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수건걸이의 부착부위를 드릴로 구멍을 뚫고, 타일 2곳을 구멍을 내어 구멍에 플라스틱 암나사를 박고 긴 나사못으로 조여서 붙였다.

 

집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도록 단단하게 부착했는데 그런 것을 필요도 없이 떼어 왔던 것이다. 물정 없는 사람이 수건걸이를 설치하려면 돈을 들여야 할 것 같아서 마포집에 들려서 수건걸이를 박아주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고 시간과 힘과 능력이 없어서 남들처럼 기부와 봉사를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머물렀던 자리만이라도 향내를 내고 싶은데 그것이 바로 만물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정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바퀴벌레와의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신정동에서는 바퀴와 전쟁을 치를 것 같지는 않은데 신정동은 마포보다 새 집이고 계단을 8개 올라야 하는 1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퀴들이 살겠다면 생포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작전을 또 다시 펼치게 될 것이다.

 

201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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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늘그물 | 작성시간 11.02.24 ()
  • 작성자대조영 | 작성시간 11.02.24 지극히 당연한 마음씀씀이입니다. 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하지 않다보니 관련 경구가 나올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이사를 가는 사람이 이사를 오는 사람처럼 뒷정리를 깔끔하게 해놓으면 이사오는 사람도 첫인장부터 좋을 것입니다. 비롯 사소한 것 같지만 그 마음이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저도 여러 번의 이사 경험이 있는데 머물렀던 자리를 깨끗하게 해놓으면 스스로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금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2.25 맞습니다.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은 그 일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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