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4. 큐티
여호수아 6:12 ~ 21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관찰 :
1) 둘쨋날 ~ 여섯쨋날
- 12절.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 첫날 여리고성을 한바퀴 행진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둘쨋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일어나서 제사장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궤를 메웠습니다. 다시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 13절.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 첫째날의 행진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계속 행진했습니다. 나팔도 계속 불었고, 무장한 자들은 비장한 모습으로 여리고의 난공불락의 성벽 주위를 돌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리고성 사람들은 화살을 날리지도 않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두려움으로 이들의 행진을 관찰했습니다. 성벽 위에 있기에 이러한 정황을 누구보다 잘 관찰하고 있었을 라합의 집에서는 그 온 가족들이 모여서 갑론을박 의견이 분분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쳐들어온다더니 이게 뭐냐고 하는 이들이 있었을 수 있고, 또 기묘한 하나님의 방식에 더욱 믿음이 간다고, 끝까지 지켜보자고 하는 이들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도 장차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침을 꼴딱 삼키며 이 시간들을 침묵하며 지내고 있었으리라는 것입니다.
- 14절.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한 바퀴 돌때마다 성벽에 균열이 점점 심해지고 했다면, 그들의 행진은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시험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침묵하며 오직 제사장들에 의해서 나팔만 불어졌을 뿐입니다. 여리고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여리고성 사람들도 처음에는 하도 이상해서 두려웠을 수 있으나 다섯째, 여섯째 날 즈음에는 조롱하고, 우습게 여겼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여섯째 날이 지나갔습니다.
3) 일곱째 날
- 15절.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 일곱째 날이 밝았습니다. 이날은 다른 날 보다 매우 일찍, 새벽에 모든 백성들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울려퍼지는 나팔소리는 다른 날과는 분명히 사뭇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방식은 전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이 날까지 여리고성 사람들의 어떤 비아냥거림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준행하여 여리고 성을 행진했습니다. 이 날이 안식일이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날이 안식일일 수도 있고, 아니라면 엿새의 기간 중에 안식일이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정황상 이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여하튼 하나님의 명령에 이스라엘은 ‘말씀대로’ 준행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와 가나안 족속들에게,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사건이 이제 일어났습니다.
- 16절.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었습니다. 만일 그가 일곱 번째 여리고성을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순간, 그 다음 일에 대해서 의심이 일어났다면 백성들에게 담대함으로 소리치라 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하게 믿었고, 그 믿음으로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소리치며 외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주셨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조건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이었습니다.
3) 여리고성을 점령함에 있어서 반드시 준행해야 하는 사항들
- 17절.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성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는 기정사실로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도 이스라엘이 취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기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즐거움으로 전쟁을 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에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엄히 그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기생 라합과 라합의 집에 동거하고 있는 자들은 살려주라 명령했습니다. 라합이 자신이 보낸 정탐꾼들을 살려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라합이 하나님 여호와를 간절히 소망한 결과이고,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시고자 섭리하심이었습니다.
- 18절.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칠 것을 명령했습니다. 여리고성의 어떤 것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것이라도 취하게 되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호수아가 대언을 했기에, 이번에도 그 ‘말씀대로’ 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아간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순종하고자 했을 것인데, 재물을 보고 눈이 뒤집혀 욕심에 의해 불순종을 하게 되는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다른 백성들도 그런 욕심에 타올랐겠지만, 하나님의 크신 일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 욕심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극복하였던 것인데, 그렇지 못한 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악독한지 눈으로 보고, 또 체험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분명함에도 여호수아와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여리고성은 가나안의 첫 번째 점령하는 도성이고, 그렇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는 도성이었습니다. 그 어느 것이라도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자가 되는 것임을 여호수아는 분명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 19절.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모두 다 여호와께 구별되어 드려지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확정된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해야 하는 영역들을 여호수아는 엄위하게 매우 긴장된 순간에 분명하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이에 백성은 외치고
- 20절.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 5절에 주어진 말씀에 이스라엘은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성벽을 향하여 온 힘으로 외치고, 제사장들은 양뿔 나팔을 있는 힘껏 불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의 견고한 성벽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여리고성이 큰 진동에 의해서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지진이었을 것으로 예상을 하는데, 지진이었을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피해가 갔을 것이고, 지진 상황에서 성을 침공하고 노략한다는 것은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에 여리고성의 성벽을 흔들어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마도 일곱 번 돈 뒤에 여리고성을 빙 둘러 에워싼 뒤에 소리를 지르게 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왜냐하면 여리고성의 모든 이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한쪽으로만 밀고 들어갔다면 반대편 쪽으로 적은 수라도 탈출하는 생존자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21절.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고자 했습니다. 남녀 노소, 소, 양, 나귀 그 모두를 칼날로 죽였습니다. 물론 라합과 그 가정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제외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잔인한 하나님이어서가 아니라 가나안 족속들의 뿌리 깊은 육적, 영적 음란으로 말미암은 죄성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오염되지 않도록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때의 믿음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유지했어야 했습니다.
가르침 :
1)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를 주시고, 또 복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강조한 것이 그것이었고, 역사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2)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의심이 발생하고, 여리고성 사람들의 조롱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무너뜨린 여리고성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 성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첫 번째 도성이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온전히 드려져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는 신신당부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모두 죽이고, 모든 가축도 다 죽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재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곳간에 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노략물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물건들로 드려지는 것이었습니다.
4) 하나님은 이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동역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이 일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견고한 여리고성을 공략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시며 일해주시고, 이스라엘의 믿음 훈련을 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남녀노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의 양상이 이렇듯 영적인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하나님은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적용 :
1)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말씀대로’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그 초점을 흩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어떻게 지켜지게 되는가 하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오늘날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지, 내 판단이 우선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여리고성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것이 남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실 바를 다 하셨기에 이제 남은 것은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야 하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바를 다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백성인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할 바를 또한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양식입니다. 그것을 묶어주고 엮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