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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나눔

2025. 5. 1. 이사야 16:1 ~ 5 "모압이 패망을 면할 두 가지 방법"

작성자팀2813|작성시간25.05.01|조회수44 목록 댓글 0

2025. 5. 1. 큐티

이사야 16:1 ~ 5

모압이 패망을 면할 두 가지 방법

관찰 :

1) 남유다에 조공을 바치라

- 1절.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a.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패망을 면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도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유다와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 중에서 모압에 대해서만 이처럼 예외적으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는 것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모압을 향하여 세심한 관심을 가지시고 자비를 베풀고 계시는 것입니다.

b.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첫 번째 방도는 남유다에 대하여 조공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전쟁의 참화로 인해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든 자들에게 남유다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가혹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공의 요구는 물질적인 측면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정신적 연대를 이룩하라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신앙적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을 굳건히 의뢰하라는 요구로 이해되어야 하는 방법입니다. 즉 모압의 구원이 이방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c. "셀라"는 문자적으로는 ‘바위’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모압의 남방에 위치한 에돔 땅의 한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곳은 크고 견고한 바위가 많은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모압의 피난민들이 남방 경계를 넘어 에돔으로 피난해 와 있는 상태라면 그곳에서 남방 광야 지대를 지나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조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에돔으로 건너가지 않고 남방 광야 지역을 거쳐 산악 지역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유다로 피난해서 여호와를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돔으로 먼저 건너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를 끝까지 거부하고 무시하는 그들의 집요한 불신앙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 2절.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a. 여기서 “모압의 딸들”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모압 족속의 딸들, 즉 여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멸망할 모압의 마을과 성읍과 그 성읍들에 거주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경을 헤매고 있는 모압의 피난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을 맞을 것입니다.

b. "아르논 나루“는 아라비아의 북부에서부터 발원한 작은 물줄기가 약 32km 흘러 사해에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곳입니다. 모압과 에돔의 국경을 형성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교통의 요지로서 여러 곳으로 갈 수 있는 길목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모압의 피난민들은 에돔의 북쪽 국경인 ”아르논 나루“에 모여들게 도리 것이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에돔으로 피난해 올 것이지만 그곳이 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c. "떠다니는 새“,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라는 표현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모압의 피난민들의 불쌍한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남유다의 피난민을 보호하라

- 3절.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

a. 모압이 환란을 피할 두 번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유다 피난민들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은 전쟁의 패배로 인해 유리 방황하며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앗수르의 공격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유다 사람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압의 피난민들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b.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라는 표현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이들은 충분이 쉽게 이해하는 표현입니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그 지역에서 어두운 밤 같은 그늘을 만들라는 것은 피난한 자들에게 좋은 피난처를 제공하라는 의미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크고 견고한 바위들이 많은데, 그 바위들은 들짐승들의 공격을 피하게 하는 역할과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그늘을 제공했습니다. 이사야는 바로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모압의 피할 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쫓겨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서 쫓겨난 방황하는 유다의 피난민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모압으로 피난한 상황인데 피난한 곳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하루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d. "도망한 자들“은 집과 삶의 근거지를 잃고 이리저리 쫓기는 자들을 보금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새처럼 애처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4절.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a. 비록 쫓겨나고, 도망한 자와 같은 신세가 된 유다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쫓겨난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비록 징계를 당하며 고난 가운데 있지만 여전히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시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계십니다.

b. 그리고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어떤 처지에 있고, 어떤 형편을 당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피난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적 상황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 그들의 실상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란 가운데 있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유다 백성들의 피난처의 역할을 모압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모압 사람들이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형제 나라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감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선민을 향한 의로운 행위를 통해 모압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d. 남유다의 피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압이 패망하는 것을 막는 방도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들을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e. 유다는 비록 이방의 침략자들에게 압제와 노략을 당할 것이지만, 그 침략자의 세력이 물러갈 것이며 장차 안정을 찾을 것임을 예언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예언대로 히스기야 때에 있었던 산헤립의 예루살렘 원정 실패 이후 앗수르는 더 이상 유다를 침공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바니팔이 므낫세 통치 시기에 한 차례 침공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미미한 것이었기 때문에 취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의 왕권이 회복될 것이다

- 5절.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a. 모압이 살 길을 제시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 왕권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 왕권의 회복은 메시야 대망 사상과 연결됩니다.

b.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 족속 뿐만 아니라 모압 등 이방의 고난 당하는 자들을 완전한 팔로 품으시고 그들 삶의 근원적 문제까지 완전히 해결할 구원자 메시야를 마음에 품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 메시야에 대한 계획을 밝히시고 있습니다.

c. "다윗의 장막“은 다윗의 혈통으로 오실 메시야의 비하와 겸손하신 면모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집이나 궁전이 아닌 장막으로 굳이 표현한 이유입니다. 메시야는 베들레헴이라는 시골에서 탄생하시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나사렛이라고 하는 천대받고 소외된 곳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그 육신의 부모를 받들어 섬기며 목수로 고된 일을 하셨습니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매우 초라한 삶을 사신 것입니다. 메시야는 궁전도 아니고, 판벽한 집도 아닌 장막과 같이 낮은 곳에 처하시며 낮고 천한 사람들을 섬기시며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만큼 kw은 자리인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기꺼이 낮아지신 것입니다.

d. 메시야의 왕위는 견고하게 세워질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상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메시야의 통치는 정치적 측면이 아닌 영적인 측면에서 구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왕권은 그가 죽은 후 부활 승천한 후에 하늘로부터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왕위는 눈에 보이는 왕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육적인 왕권이 아닌 영원하며 결코 다함이 없으며 결코 진동하지 않으며 누구도 침노하여 빼앗을 수 없는 견고하고 든든한 왕위인 것입니다.

e.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동일하게 가진 자는 성자 하나님이신 메시야뿐이십니다. 이러한 메시야의 판결이 진실하다는 것은 그의 판단이 완전한 지혜와 공의에 근거한 것으로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떠한 편벽도 없고, 허위도 없는 이와 같은 메시야의 진실한 판결은 이 세상의 낮은 자들, 눌린 자들, 포로된 자들에게 커다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f. 메시야의 통치가 고난 당하는 자들에게 소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통치 행위가 오직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기 떄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의를 신속히 행하실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어보지 못했던 의의 통치가 행해짐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고, 빠르지도 늦어지지도 않게 가장 정확하게 통치되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통치 판단 기준은 “의”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통치하는 세상은 정의와 공의가 충만하여 의인이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불의한 자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g. 유다가 비록 모압에게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질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완벽한 통치자이신 메시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의의 나라의 도래를 맛보며 그의 보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에 되어질 일로 인하여 모압은 유다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놀라운 예언을 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모압이 망하는데 살 길은 유다를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장차 오실 메시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바라본다면 유다를 도움으로 메시야의 은혜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처음과 끝을 보시는 분이 말씀하실 수 있는 무게가 담긴 해결책입니다.

2) 모압이 남유다에 조공을 바치지도, 남유다의 백성들을 선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야의 통치가 어떤 성격일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성취되었고, 장차 다시 오셔서 행하실 의의 통치를 통해서 또한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3) 오늘날도 하나님의 백성들, 즉 성도에게 선대해야 하는 이유가 장차 오실 메시야가 의로 통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꼭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나라의 백성이 된 이들을 선대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입니다. 특별히 환란을 당하는 이들을 선대하는 것은 그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는 비결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 통치는 망설임이 없고 가장 정확한 카이로스의 때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일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자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들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은 주님의 관점에서 일하십니다. 그렇기에 온전하시고, 가장 지혜로우시며, 완전히 의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2) 우리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미얀마와 중국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한 미국을 위해서, 온 열방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고 너무 속상하고 기도 중에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왕의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통치하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죄악과 완악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구부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바르게 통치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장막으로 겸손하게 오신 분이시기에 감사 또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 다시 오실 것이기에 더더욱 소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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