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6. 큐티
에스겔 32:17 ~ 32
죽은 자들의 세계
관찰 :
1) B.C. 585년 모월 보름에 계시된 예언을 시작하는 말
- 17절.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a. 열두째 해는 유다의 제19대 왕 여호야긴과 에스겔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 온 B.C. 597년으로부터 12년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해는 여섯 번째 계시가 주어진 해와 동일한 해로서 B.C. 585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계시가 주어진 달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b. 몇째 달인지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여섯 번째 예언이 주어진 때가 다섯 번째 예언이 주어진 때와 연도만 열두째 해로 동일한 것이 아니라 월도 열두째 달로 동일하기 때문에 생략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예언의 내용은 여섯 번째 예언이 주어진 열두째 해 열둘째 달 초하루로부터 2주가 지난 뒤에 주어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2) 바로와 애굽 및 동맹국 군사들의 스올 입장과 기존 스올의 무리들과의 공동 운명 일차 예언
- 18절.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위하여 슬피 울고 그와 유명한 나라의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a. 바로와 애굽 및 애굽의 동맹국의 군사들이 스올에 내려가게 될 것과 스올에 이미 던짐 받은 무리들이 동일한 운명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b. 16절에서는 애굽의 멸망에 대해 슬픈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애굽의 멸망에 대해 슬퍼하며 울부짖으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c.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져질 것’이라는 표현은 31:14, 16에서도 사용된 표현입니다. 31장은 애굽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면서도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멸망을 당한 사건이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했습니다. 즉 31장에서는 앗수르가 구덩이에 던져지고 지하로 내려갈 것이라는 내용을 통해 액숩의 멸망을 간접적으로 비유했고, 본 절에서는 애굽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여 애굽도 앗수르와 똑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d. 에스겔은 애굽과 동맹국들의 멸망에 대해 슬퍼하며 울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멸망하여 음부에 던져지도록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는 어ᄄᅠᆫ 나라가 자신이 예언한 대로 그의 죄악으로 인해 멸망한다 할지라도 그 나라의 멸망을 보고 기뻐하기 보다는 불쌍히 여기며 애통해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또한 어떤 나라가 아무리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는 멸망을 선포하여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뼈저리게 뉘우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의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멸망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사명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합니다.
- 19절.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어떤 사람들보다도 뛰어나도다 너는 내려가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와 함께 누울지어다”
a. 표준새번역은 “도대체 네가 누구보다 더 아름답다는 거냐”라고 의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을 향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진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비웃는 표현인 것입니다.
b. 애굽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등 뛰어난 건축물들을 세우고 고유의 문자를 갖는 등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해 마다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나일강의 범람은 애굽 땅을 기름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예측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기하학과 천문학 등을 발전시켰습니다. 애굽의 문명은 고대 인류의 4대 문명의 하나로 여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애굽의 찬란한 문명은 에스겔이 살던 고대 중근동에도 널리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햐앟여 네가 다른 나라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c. 본 절의 내용은 애굽이 음부로 내려가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누울 것이라는 내용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한 때는 강한 나라를 이루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앗수르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먼저 가서 누워있는 음부(스올)를 염두에 둔 표현인 것입니다.
- 20절. “그들이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넘겨진 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지어다”
a. 애굽이 멸망당하여 음부로 내려가 이미 멸망한 나라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b. 19절이 애굽이라는 나라에 대한 심판을 강조했다면 본 절에서는 애굽과 애굽의 백성들 모두를 심판의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 절의 “그들”은 ‘애굽과 애굽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에 단행될 것이며, 애굽이 이미 멸망을 당한 나라들처럼 동일하게 전쟁을 통해 처참한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과장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 21절. “용사 가운데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스올 가운데에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낼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a.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스올에 내려온 애굽과 애굽의 백성이 스올에 먼저 와 있는 자들에게 조롱의 말을 듣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b. “용사 가운데에 강한 자”는 애굽보다 먼저 멸망을 당하여 음부에 내려온 나라들이나 위정자들로서 살아 있는 동안 막강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본 절 이후에 소개되는 앗수르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c. 애굽은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군사력과 권력을 바탕으로 교만하게 행했지만, 결국 멸망을 당해 먼저 죽은 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자’, ‘칼에 죽임을 당한 자’라는 조롱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d. 애굽인들은 오래 전부터 할례를 시행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들이 애굽인들을 가리켜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한 것은 육체적인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스올에서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받는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e.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죽은 자라 할지라도 그가 지상에 살았을 때 누렸던 지위나 그의 시신이 처리되는 방식에 따라 그의 죽은 뒤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사후 세계관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므로 매장되지 못한 채로 시신이 버려지거나 불구가 되거나 할례 받지 않은 자롸 함께 묻힌 자는 그와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본 절에서 애굽이 칼에 맞아 죽은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터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영예롭게 전사한 것이 아니라 칼에 처형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죄 때문에 나쁜 운명의 판결을 받아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애굽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죄 있는 것으로 판결을 받아 죽었기 때문에 칼에 죽은 자들로 취급된 것입니다. 애굽이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누렸다는 이유로 스올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스올의 기존 주변 열국 무리들의 열거와 애굽의 무리와 기존 스올의 무리의 공동 운명 중간 예언
- 22절. “거기에 앗수르와 그 온 무리가 있음이여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라 그 무덤이 그 사방에 있도다”
a. 먼저 스올에 내려 와 있는 나라들인 앗수르와 엘람과 메섹과 두발과 에돔과 시돈 등의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이고, 음부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애굽 역시 이들과 동일한 운명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b. "칼에 엎드러진 자“라는 표현은 21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꼭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앗수르는 B.C. 612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했습니다.
c.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 앗수르가 처한 모습에 대해 “그 무덤이 사방에 있도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올에 앗수르 혹은 앗수르 왕의 무덤이 있고 그 주변으로 앗수르 군사들이 무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죽음의 세계인 스올에 주검을 안치하는 무덤이 있다는 표현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는데, 죽음의 세계에서조차도 무덤과 같은 비참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교만하고 다른 나라들에 대해 잔인했던 앗수르는 결국 죽어서 음부에 떨어져서도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무덤밖에는 제공할 것이 없다는 비참한 상황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 23절. “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a. 앗수르가 스올에서 거하는 무덤의 위치와 그에 따른 양상을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 매우 공포스러운 존재들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임으로 앗수르의 과거의 모습과 스올에서의 모습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b. 본 절은 앗수르의 무리들이 거하는 장소로 무덤이 있는 장소를 “구덩이 깊은 곳”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 최초로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하고 공포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웃 나라들에게 잔인한 일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멸망을 받아 죽은 자들이 거하는 음부의 세계에 떨어졌고, 그 음부의 세계에서도 가장 외딴 곳에 자신들의 무덤을 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다.
c. 사후의 세계에 거하는 제국의 비참한 모습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통해 본 서의 일차 독자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온 유다 백성들에게 애굽과 같은 대제국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직 유다 백성들이 의지할 분은 이런 모든 제국들까지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 24절. “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a. 스올에는 엘람의 할례받지 못하고 살육당한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창 10:22에 의하면 엘람은 셈의 맏아들인 엘람이 이룬 나라입니다. 티그리스강 동편에 위치한 엘람의 서쪽에는 바벨론이 있고, 북쪽에는 메데와 앗수르가 있었습니다. 즉 엘람은 강대국으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창 14:1-11에서는 아브라함 시대에 엘람의 왕이 바벨론 지역에 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B.C. 7, 8세기에 엘람은 앗수르와 경쟁하며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으나 결국 앗수르 왕 앗수르바니팔에 의해 B.C.645년에 수도 수산성을 점령당했습니다. 이 후 엘람은 세력을 잃었고 앗수르의 식민 국가로 지냈으나 앗수르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자 다시 바벨론 편에 붙었습니다. 결국 엘람은 바사에 의해 멸망하여 완전히 흡수되었고 그들의 수도 수산은 바라 왕들의 겨울 궁전이 되었습니다.
b. 엘람은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거대 제국은 형성하지 못했으나 렘 49:35에 기록된 것처럼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고, 전쟁을 좋아하여 강대국들의 편에 붙어서 수없이 다른 나라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악행을 일삼던 엘람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여 스올에 떨어진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c.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라는 표현이 음부의 세계에 내려온 애굽과 애굽이 만나 나다들에 대해, 또는 그 나라들이 함께 거하게 될 다른 나라들에 대해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생식기에 행하는 외적인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애굽은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일을 시작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칼에 죽임을 받지 못한 자라는 표현은 이 나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하게 멸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 25절. “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침상을 놓았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뉘었도다”
a. 앞 절에서 엘람은 과거에는 다른 나라들을 두렵게 하는 무서운 존재였지만, 지금은 스올에서 수치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묘사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음부가 그들의 침상이 되었다는 내용을 더하고 있습니다.
b. 엘람이 과거 지상 세계에서 지낼 때의 강대함과 현재 스올에서 지낼 때의 비참한 신세에 대하여 할례 받지 못한 자, 칼에 죽이을 당한 자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 26절. “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a. 메섹과 두발이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b. 메섹과 두발에 대한 소개는 엘람에 대한 소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 이름 소개 -> 거주 장소 -> 비참한 죽음 -> 죽기 전 모습 -> 2-4의 내용 반복 -> 현재의 비참한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c. 나라의 이름을 그의 백성들과 함께 소개한 뒤에 그들이 있는 장소를 무덤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똘한 그들이 얼마나 비참한 죽음을 당했는지를 언급한 뒤에 이를 죽기 전 다른 나라들을 두려움에 빠뜨리던 그들의 위상과 대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6절에서는 앞의 내용의 일부분을 다시 반복한 뒤에 당시 그들이 처한 모습은 얼마나 비참한지를 대조적으로 강조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순서가 다소 바뀌거나 내용의 비중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22-30절에 등장하는 모든 나라들에 적용되었습니다. 이같은 일정한 형식을 따른 본 단락의 예언은 고대 중근동의 여러 나라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했던지 하지 않았던지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었으며 세싱에서 그들이 어떠한 권세와 영광을 누렸는지에 상관없이 결국은 자신들의 불의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d. 메섹과 두발은 소아시아의 국가들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지역이나 타우르스 산맥과 관련된 지역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두 나라는 두로와 사람을 상품으로 교역한 자들로 언급했으며(27:13), 특별히 메섹은 시편에서 혼란과 불의의 국가로 언급되었습니다(시 120:5).
- 27절.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가운데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a. 두발과 메섹의 군사들이 스올에 가서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하게 되는 여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b. 메섹과 두발의 군사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음부로 내려갔으며 다른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동일한 천한 자리에 눕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c. 칼을 숭배하던 고대 스키티안의 관습에 의하면 죽음을 당한 용사가 칼을 베개로 하여 누웠다는 표현은 그가 일종의 형벌을 받아 죽었다는 의미로 간주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백골이 자기의 죄악을 졌다고 하는 내용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이 용사들은 음부에 내려가서도 아주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 28절. “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a. 본 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스올에 가서 눕게 된다는 26, 27절 내용의 반복입니다.
b. 본 절의 예언은 이미 멸망하여 음부에 가 있는 두발과 메섹에 대한 예언이 아니고 앞으로 심판을 받아 음부에 가게 될 애굽에 대한 저주의 명령이자 예언입니다.
- 29절. “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a. 에돔에 대한 예언은 본 절 단 한 절로 짧게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 나오는 시돈과 한 단락을 이룹니다.
b. 앞선 앗수르나 엘람 또는 메섹과 두발에 대한 예언에서는 나라 이름과 그 나라의 백성이나 군사를 가리키는 용어만이 사용되었는데, 에돔에 대한 예언에서는 왕들과 고관이 등장합니다.
c. 왕들과 고관의 등장은 “강성하였으나”라는 용어와 함께 에돔의 군사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에돔이 과거 이스라엘에게 악한 군사적 행위를 임삼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군사적 강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작은 나라인 에돔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음부에 내려간 강대한 나라들 중 하나로 제시된 것입니다.
- 30절. “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가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a. 시돈과 북쪽의 모든 방백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여기서의 “북쪽의 모든 방백”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북수리아지역의 왕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여기에는 다메섹, 하맛, 아르맛 등의 통치차들이 포함됩니다.
b. 시돈이나 북수리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여 음부로 내려가 수치를 당했다는 내용으로 다른 민족들에 대한 심판 내용과 거의 유사합니다.
4) 바로와 그의 군대의 스올 입 장과 기존 스올의 무리와의 공동 운명 최종 예언
- 31절.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a. 다시 애굽에 대한 예언으로 돌아왔습니다.
b. 애굽의 바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스올에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앗수르와 엘람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무리가 와 있는 것을 보고 위로를 받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이러한 정황을 강조하기 위해 “이미 거기에 와 있는 군대를 모두 보고서는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바로의 비참한 처지에 데힌 통렬한 풍자적 표현입니다.
c. 육적 생명을 잃고 스올에 들어간 이후에는 과거의 잘못을 돌이킬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후회밖에 없습니다.
d. 애굽이 바벨론과의 전쟁을 통해 멸망할 것이라는 본 예언은 본서를 읽는 일차 독자들인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애굽이 유다를 바벨론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의하는 것입니다.
- 32절. “내가 바로로 하여금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게 하셨으나 이제는 그가 그 모든 무리와 더불어 할혜를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이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a. 29-32장이 기록한 애굽에 대한 심판의 내용 중에서 마지막 구절인 본 절은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애굽을 강대하게 하셨으나 이제는 심판하셔서 스올로 내려가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b. 하나님께서 애굽을 강대하게 하시는 방법은 다른 나라로 하여금 애굽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지배당하면 그를 두려워하고, 권력자는 사람들을 지배하며 교만해집니다. 본 절은 권력자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권력자를 심판하여 낮아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고 그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c. 25장에 기록된 암몬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26-28장에 기록된 막강한 부와 지혜로 유명했던 두로와 시돈이나 29-32장에 기록된 강한 군대와 비옥한 토지로 유명했던 애굽과 같은 강대국들의 운명과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표현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들의 흥망성쇠는 일면 각 나라의 경제적, 군사적 힘의 역학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고, 특별히 더 부하고 강한 나라가 이 세상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역사하심, 섭리하심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애굽에 대한 여섯 번의 예언과 스올에서 만나는 자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알리시고 있습니다. 제국의 역사가 가장 길고 강력했던 앗수르도, 앗수르를 무너뜨린 바벨론도, 유구한 역사와 문명과 부를 다 가졌던 애굽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에스겔 선지자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 에스겔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들이 일차 독자였습니다. 나라를 잃고, 자신들이 섬기는 여호와가 바벨론의 마르두크에 패배했다고 주장하는 바벨론 사람들 사이에 포로와 같은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는 자유민들이 우상을 섬기라는 강압에 저항해야 했고, 그들이 우상을 섬김으로 누리는 모든 유익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가능하도록 믿음을 공급해 준 것이 에스겔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있었겠지만,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이신가를 분명하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은 열방의 멸망을 예언하셨고, 그 말씀대로 다 이루어 졌습니다. 두로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두로 역시 망했고, 애굽만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지만, 애굽이 망하는 과정과 설명이 가장 길게 설명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설명이 되었기에 바벨론에 의해 애굽이 멸망당했들 때, 바벨론에 유수된 유대인들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4) 구약에서 드물게 애굽의 멸망을 예언하는 막바지에 스올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스올에 대한 표현도 앗수르와 같이 망하게 되어 비참한 지경에 이른 애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 스올 자체를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 스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곳이 드뭅니다. 본문의 말씀 만으로는 스올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천국과 지옥을 분명히 구분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이 가르쳐준 지옥을 알기에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스올의 개념이 보다 선명하게 들어오게 됩니다. 분명한 심판이 있는 곳이고, 이 땅에서 살았던 공로가 이어지는 곳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참한 지경에 처해, 오직 후회만 가득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5) 여호와 하나님이 만군의 주님이시오,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의 나라들을, 민족들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적용 :
1) 여호와가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늘과 땅을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오늘도 모든 열방을, 나라들을, 민족들을 다스리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2) 이 세상의 강력한 나라들로 인해서 주변 국가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가운데 거했지만, 그 강력한 자들이 스올에 내려가서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없이 살 수 있을 것처럼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하게 떵떵거리고 사는 모든 자들은 그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횡행하는 모든 악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자로서 반드시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면 이 세상은 정말 소망이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모든 소망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3) 몇 가지 일로 어제 하루 종일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 마음이 안정을 찾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