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큐티 나눔

2026. 6. 11. 에스겔 33 : 30 ~ 33 "선지자의 말과 백성"

작성자팀2813|작성시간26.06.11|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 6. 11. 큐티

에스겔 33:30 ~ 33

선지자의 말과 백성

관찰 :

1) 바벨론 이주민들의 표리부동한 신앙 행태 지적

- 30절.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a. 바벨론 포로로 끌려 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탐욕으로 인해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표리부동함을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여호와의 모든 심판 예언이 성취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악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말씀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완악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해도 깨닫지 못하며 실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c. 본 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에스겔의 예언이 성취된 이후에 바벨론의 유다 포로 공동체가 그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d. 에스겔은 유다에 남은 백성들보다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 온 백성들을 참 이스라엘의 실체로 본 것이 사실입니다. 에스겔의 시각은 예레미야서 24장에서 두 개의 무화과 광주리 비유를 통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을 좋은 무화과로 제시한 것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겔 33:30-33절에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귀로 듣고 입술로는 인정하지만 실제 삶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벨론의 유다 백성들은 에스겔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겨 그의 말을 경청하려 하기보다는 마치 앞 일을 잘 맞추는 주술가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 31절.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a. 바벨론의 유다 백성들이 에스겔에게 나와 말씀을 경청했지만 그 말씀대로 숝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이주민들의 표리부동한 신앙 형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b.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대로 순종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이 입으로만 사랑을 나타내고 마음 속으로는 이익을 따랐기 때문임을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을 나타냈다는 표현은 에스겔을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호감을 의미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좋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기는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이익을 쫓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c. 에스겔에게 나아온 바벨론 유다 공동체를 향해 들려진 말씀은 15, 16절처럼 불의하게 모든 재무레 대한 환원, 이웃대 대한 강압적 태도의 금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촉구하는 의미의 표현이었던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까지 끌려왔고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이라는 에스겔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불의를 고집하며 살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거의 죄악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외면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2) 바벨론 이주민들의 표리부동에 대한 비판과 경고

- 32절.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a. 바벨론에 거하는 유다 공동체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에스겔의 예언이 성취되자 그의 예언에 대해 매우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본 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영적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이야기나 노래 정도로 여기며 즐겼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 절은 유다 백성이 에스겔이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를 사랑의 노래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b.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노래를 부르는 것에 비유하거나 실제 음악 연주와 함께 예언 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삼상 10:5에서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비파와 소고를 연주하며 예언을 하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날 때에 사울도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예언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본 절은 예언 행위에 수반되는 연주나 노래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선지자의 말씀 선포를 감각적이고세속적인 사랑의 노래처럼 아무런 영적 자각 없이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악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자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말씀을 듣고 마땅히 행해야 할 회개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구원과 회복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에스겔의 선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면 회개하여 삶의 변화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들은 말씀을 들은 뒤에도 말씀대로 전혀 행하지 않았습니다.

- 33절.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a. 본 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미래의 특정한 사건을 점치는 주술가 정도로 여기며 몰려들었던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 백성에게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주지시키는 말씀입니다.

b. 에스겔 33장은 선지자직을 전쟁의 위험을 알리는 파수꾼의 직임에 빗대어 묘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본 장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선지자의 선포를 한 귀로 듣고 자기 귀에 유익하게 들리는 소리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른 귀로 흘려버림으로써 선지자를 한낱 사람의 감정이나 돋우는 노래하는 자 정도로 취급하는 백성들의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감안 할 때 바벨론에 포로된 선민 공동체의 운명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파수군이 전쟁이 임박한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 경고했으나 듣지 않고 아무렇게나 흘려버림으로 닥치는 대적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패망하는 자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입니다.

c.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이루어진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여호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바벨론에 끌려온 백성들은 에스겔이 선지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d. 예레미야의 증언에 따르면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 백성들은 좋은 무화과에 빗대어지며 유다 땅에 잔류한 자들은 상해서 먹을 수 없는 무화과에 빗대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 잔류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통해 다시금 약속의 땅에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를 세우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본장을 보면 유다 잔류민들이나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 백성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증거가 충돌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의 지적처럼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 백성들 역시 가나안 땅에 거하는 유다 잔류민들처럼 패역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로 돌이키게 할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장차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칭의의 역사가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된 유다 백성들에게 임하게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가르침 :

1)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의 표리부동한 신앙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스겔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황폐하게 된 소식을 듣게 되자 에스겔의 예언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에스겔을 통해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다른 박수들이 받는 신탁 정도로 여겨 신기해 하고 듣고자 했을 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와서 관심을 보였지만, 에스겔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 33장은 파수꾼된 에스겔에 대한 사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하는 선지자의 책임이 막중했는데,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의 책임도 막중한 것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에스겔을 향해 사랑의 노래를 하느 광대와 같이 대우한 자들의 행태는 정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그와 같이 취급하는 자들에 대해서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며, 에스겔이 참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 본 장의 말씀을 보면 유다 땅에 남은 잔류민들이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선민들이나 대동소이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을 하나님의 신적 은혜를 베푸심으로 마음이 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의 끝자락에서 언급한 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존재하던 유다 백성들이 의롭다 여김을 받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회복케 하심과 전적인 은혜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적용 :

1)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 에스겔을 무당이나 광대 취급을 했습니다. 그저 미래의 예언을 맞춘 기이한 존재로 여겨 그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신탁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랬을지라도 에스겔을 존중해 주어야 했는데 그들은 에스겔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에스겔을 통해 대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 참된 하나님의 메신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는 척 하는 자들은 더더욱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메신저를 너무나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그런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2) 홍수에는 물이 많아도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게 됩니다. 오늘날의 시대에 생수를 퍼 올리는 말씀 사역자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여 삶을 맡길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품는 하난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바벨론 포로로 존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롭다 칭하여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여호와의 열심이 오늘날도 동일하게 나를 변화시키시고 의롭게 이끌어 주실 것을 소망하고 간구드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