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3. 큐티
에스겔 34:7 ~ 16
여호와께서 양 떼를 구원하시리라 - 1
관찰 :
1) 양떼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수난에 대한 목자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파면하다
- 7절.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a. 이제 양떼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수난에 대해 목자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그들을 파멸하는 내용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양떼를 맡기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에게 더 이상 양떼들이 고통을 받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b. 유다 말기에 세워졌던 왕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왕하 24:8, 12을 보면 유다의 제19대 왕 여호야긴은 18세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선왕의 악행을 따라 범죄하다가 석 달 만에 왕위에서 폐위를 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목도해야 했고, 바벨론 왕 앞에서 눈알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왕들만 맞이한 운명이 아닙니다. 당시 유다의 고관들도 이와 대동소이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선민의 목자로 세움을 입었던 유다의 왕들과 고관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성실하게 감당하기보다 자기들의 소위대로 권력을 남용하여 악을 자행하다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c.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은 악한 목자들을 향하여 책임을 추궁하기에 앞서 지금부터 주어지는 선언은 에스겔의 인간적인 말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므로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는 촉구의 의미입니다.
- 8절.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a. 유다 백성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목자가 없었고, 그로 인해 그들이 고통과 죽임을 당했다고 고박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사실임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까지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b. 본 절은 유다 백성이 멸망한 원인이 참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참 목자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친히 유다의 참 목자가 되어 유리하고 방황하며 고통을 받고 있는 양들을 찾아내고 먹여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c. 본 절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맹세는 당신의 양인 유다 백성들이 악한 지도자들 때문에 흩어짐과 수난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악한 목자들인 유다 지도자들을 파면하실 뿐만 아니라 친히 유다 백성들의 참 목자가 되어 그들을 먹이시고 복락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말씀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d.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고 표현하신 것은 고대 근동의 맹세 습관관 관련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통상적으로 맹세자가 말하는 내용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높은 권위, 더 큰 능력을 소유한 존재의 이름을 두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자신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셨다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맹세의 주체이자 보증자가 되신다는 것으로 그 말씀하신 바가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e. 하나님은 악한 목자들을 향해서도 “내 목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악한 목자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아직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가 아닙니다. 악한 목자들을 향해 “내 목자들”이라는 표현은 본 절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악한 목자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들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이는 목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즉 본 절의 “내 목자들”이란 표현은 목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양이 자신들의 양이 아니고 자신들을 목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양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양을 잘 먹이고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성실하게 감당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목자의 직책이 그들의 직무유기에 대한 고발을 통해 해고당할 수 있는 암묵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f. 반면에 ‘내 양’이란 표현은 하나님과 유다 백성과의 관계의 지속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 9절.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a. 하나님께서는 이제 악한 목자들을 향해 파면을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b. 양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전혀 실행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의 죄를 추궁하는 8절의 내용이 마무리되고 그들의 죄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하나님의 양 떼를 그들에게서 구출하시고 악한 목자들을 파멸하시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본 절을 기준으로 양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묘사가 끝나고 양들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이 발표되는 것입니다.
- 10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a. 본 절이 기록된 시점은 33:21, 22에 밝혀진 것처럼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된 이후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을 함락케 하고 유다를 멸망케 하신 것은 유다의 죄를 징벌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은 유다 백성을 거짓 목자인 유다 지도자들의 손, 그들의 불의한 권력과 압제로부터 구해냄으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순종하게 하는 공동체의 나라로 세우시려는 것에 있었습니다.
b. 이것을 감안하면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 떼인 유다 백성을 거짓 목자들의 손에서 구하시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이란 비참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행할 구원 사역이 완료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후에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의 고레스 왕의 조서에 의해 유다 백성들이 귀환하여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일을 통하여 완성되어 갈 것이었습니다.
c. 하반절의 내용은 목자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도 먹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짓 목자들에게 있어 양을 치는 일은 자신의 생계유지 내지는 자기 배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자기 배를 채우는 일 또한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d. 양을 돌보는 것을 밥벌이 정도로 생각하는 거짓 목자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소중한 양 떼를 맡기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하나님의 양 떼들이 거짓 목자들의 탐욕이나 채우는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직접 목양하실 것과 그로 인해 양들의 복락을 누릴 것을 예언
- 11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a.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라는 표현은 본 절부터 새로운 주제의 단락이 시작됨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 표현을 기점으로 거짓 목자의 직무 유기로 인해 양들이 입은 피해를 열거하고 거짓 목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그들에게 파멸을 선언하는 7-10절의 내용과 하나님께서 직접 양 떼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찾으시고 돌보시겠다는 11-16절의 내용이 구분되게 되는 것입니다.
b. 본 절은 여호와의 직접 목양과 양들의 복락을 예언하는 11-16절의 첫 번째 단락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양을 찾으러 나서시는 목자의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들을 찾아나서는 모습은 자기가 먹는 일에만 급급한 거짓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지 않는 게으르고 악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 12절.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a. 11절이 참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양들을 찾으시겠다는 선언을 기록했다면, 본 절은 구체적으로 그 양을 언제 찾을 것인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양들을 찾을 때는 본 절에 기록된 것처럼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입니다.
b.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은 몇 가지로 생각해 볼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다가 멸망하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온 정황만을 두고 보았을 때에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받은 것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 절의 표현에 의하면 목자이신 하나님은 양인 유다 백성 가운데 아직 계시며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양들을 찾으시는 날은 ”흐리고 캄캄한 날“입니다. 이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주권을 잃어버린 유다 백성을 정치적으로 회복시키셔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의미와 심판이 행해질 종말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모두 모아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의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멸망과 회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유다를 정치적으로 새로운 나라로 만드는 일을 행하실 뿐 아니라 온전히 회복된 종말론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완성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다윗의 가지로 오셔서 온 인류의 참 목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 13절.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a. 본 절은 유다 백성을 구원하시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로부터 나와야 했습니다.
b. 참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꼴을 먹기 위해서는 지금 유다 백성들이 거하는 나라에서 나와야 하며, 그들이 교제하는 사람들과 구별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지리적으로는 애굽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며 민족적으로는 그들을 노예로 삼고 부리던 애굽 민족과 결별해야 했던 상황과 같습니다. 특별히 본서의 일차 독자라 할 수 있는 바벨론 포로된 유다 백성에게 있어 본 절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자신들을 바벨론의 압제에서 해방하실 것이며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로부터 구별하시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c. 유다 백성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떠나 이방 민족과 결별하여 들어갈 장소에서 그들은 회복될 것이고, 풍성한 소산을 내고 평안한 삶을 사는 물질적 풍요로움만을 맛보는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과계가 온전히 회복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체험하며 사는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거주지가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 14절. “좋은 꼴을 먹이고 그 무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a. 하나님께서 선민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말씀에서 이처럼 먹을 것의 풍성함에 대해 강조하시는 것은 본 장이 유다 백성을 양에 비유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드를 먹이시는 목자로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바벨론 과의 전쟁을 겪고 식민 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칼에 죽는 사람이 굶주려 죽는 사람보다 복되다고 할 정도로 먹을 것이 없어서 자녀는 잡아먹는 참혹한 상황을 겪었던 뼈 속 깊숙이 박힌 기억때문이었을 것입니다.
b. "높은 산“이라는 표현에는 대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높은 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즉 유다 백성에게 주어질 높은 산은 좋으 우리가 되는 것은 지형적인 안정성 때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전능하신 힘과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c. 과거 그곳에서 이스라엘 족속은 우상을 섬겼지만, ᄒᆞ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심판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신 후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변화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15절.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a. 양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고 안전한 우리에서 쉬게 할 것이라는 14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4절에서는 양들이 먹을 꼴이 좋고 기름지다는 것과 양들이 쉬게 될 우리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었다면 본 절에서는 양들을 이렇게 잘 보살피는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b. 하나님께서 직접 목자가 되셔서 유다 백성들을 양떼처럼 기르시고 양떼처럼 편안하게 쉬게 하신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죄악의 길로 유혹하거나 완력으로 괴롭게 하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된 것입니다.
c. 선한 목사로서의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 16절.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a.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 쫓기는 자, 상한 자, 병든 자는 먹이시고 돌보실 것이지만, 살진 자와 강한 자는 없애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악한 목자들이 자행한 탐욕과 방임을 지적하신 4절의 내용과 선명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b. 병들고 상한 양들에 대한 치유와 회복에 대한 약속을 이미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절에서 다시 반복하는 이유는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괴롭게 하고, 백성들에게서 착취한 부로 자신의 배를 불린 자들에 대한 심판과 대조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c. “살진 자”와 “강한 자”는 거짓 목자인 유다 왕들의 권력을 의지하여 백성들을 착취하는 일에 앞장서서 사리사욕을 챙겼던 대지주나 거상들을 가리킵니다.
d. 거짓 목자들을 파면시키시고 자신의 양을 직접 돌보실 참 목자로 소개되는 하나님은 자기 양을 돌보는 선한 목자로서의 이미지가 주로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 처으으로 백성들을 괴롭혔던 자들에 대한 심판자로 등장하시고 있습니다.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는 표현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더욱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본서를 접하는 바벨론에 머무는 유다 포로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괴롭게 한 자들에게 심판을 단행하시는 분이시란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불의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짓 목자들에 의해 수탈당하고 유리 방황하는 양들을 선한 목자가 거두고 돌보듯이 하나님은 악한 지도자인 유다 왕들과 고관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유다 백성들을 친히 돌보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이 친히 돌보셨습니다.
2)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선한 목자이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알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주님의 선한 목자 되심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실 뿐만 아니라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의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선한 목자이시기에 직접 쉴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는 그 팍팍하고 괴로운 시절을 지내면서도,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먹을 것이 없어 자녀를 삶아먹는 비참함을 경험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넉넉히 공급해 주시겠다고 선한 목자로 자신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는 진정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2)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라는 사실은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3) 더불어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이 심판주이시기에 말씀에 순종하여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손해보게 만들고 괴롭히는 삶은 반드시 주님께서 친히 심판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