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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나눔

2026. 6. 14. 주일 큐티. 요한일서 2:1 ~ 6 "주님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

작성자팀2813|작성시간26.06.14|조회수19 목록 댓글 0

2026. 6. 14. 주일 큐티

요한일서 2:1 ~ 6

주님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

관찰 :

1) 죄를 범하지 않게 하고자 함

- 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a.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쓰는 목적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b. 성도가 되어서 산다는 것은 죄를 여전히 짓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구분되는 거룩이 없다는 것은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초대교회 상황에서 로마의 다신교적인 세계관 속에서, 음란한 세대 속에서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백성이 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자 하는 노사도의 간절한 마음을 엿보게 되는 말씀입니다.

c. 사도 요한의 의도는 죄를 범해도 예수님이 대언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죄를 지라는 의도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d. “대언자”(παράκλητος, 파라클레토스)는 ‘파라칼레오’(곁으로 부르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곁에서 위로하며 권면의 말씀을 주시는 분, 즉 보혜사 성령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의 죄를 대언하심은 우리로 죄짓지 않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시지 우리의 뒤치다꺼리를 하시는 분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본래 자신이 보혜사이시기에 ‘다른 보혜사’ 곧 성령을 소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주시는 대언자이십니다. 주님만이 그것이 가능하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표현은 우리 역시 주님을 따라서 필연적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내포하는 표현입니다.

-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a. “화목제물”(ἱλασμός, 힐라스모스)은 ‘힐라스코마이’(ἱλάσκομαι, 부드럽게 하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부르럽게 하는 제물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화목제물의 영향력은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b. 그러나 이 말씀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이들의 죄에 대해서 다 사해주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그 믿음의 증거로서 주님을 닮아가며,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를 아는 것이다.

- 3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a. 이 말씀은 1:6~7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에 이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b. 우리 성도들이 계명을 지켜야 하는 종교적인 윤리는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신자들의 ‘사귐’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자연히 우리도 하나님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c. 요한일서에는 “안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듣고, 보고, 만지기까지 하면서 예수님과 교제를 했기 때문에 성도들의 신앙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과 근거를 갖춘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성도들이 자신이 알고 믿고 있는 신앙의 자리에 올 것을 명함에 있어서 “안다”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한일서는 성도들 각자의 영적 상황을 재확인 시켜주게 됩니다.

d.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바로 서지 못했음에도 바로 서있는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인격이어야 합니다. 참된 사귐이 없는데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인격적 지식은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지식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킴으로 비로소 주님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는 자는 사도 요한이 말씀하는 것과 같이 말씀을 지키는 행위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 4절.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a.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비(心碑)에 새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도덕폐기론을 주장하고 성도들의 죄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고,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주장하는 이단이 됨을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b. “진리”(ἀλήθεια, 아레데이아)는 사도 요한이 ‘구원의 복음’, ‘참된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사도 요한이 언급하는 이 ‘진리’는 사변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행위가 따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은 그 삶속에 하나님의 계명이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짐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명백하게 영지주의자들의 도덕폐기론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3) 예수 안에 사는 자

- 5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a. 헬라어 “δ”(드, 그러나)가 번역과정에서 생략되었습니다. 즉, 5절이 4절과 연결되며 상반된 측면의 진술을 하고 있음이 생략된 것입니다.

b. “그의 말씀”에서 ‘그의’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앞절의 계명 대신 말씀으로 강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신 도덕적인 계명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계시하신 모든 복음의 내용에 대한 순종을 해야하는 것으로 의미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c. “하나님의 사랑”(ἤ ἀγάπη τοῦ θεου, 헤 아가페 투 데우)은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그 사랑’입니다. 이것은 계명을 지키는 성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을 사랑을 의미합니다.

d. "온전하게 되었나니”(τελειοωται, 테텔레이오타이)는 완전과 성숙을 의미하는 의미로서 현재완료분사적 표현입니다. 즉, 완전과 성숙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지속되어 성숙의 과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순종하여 그 사랑이 성도 안에서 성숙되고 온전해 질 때, 성도들이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고 있음을 알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a.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되는 하나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b. 이 내주는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신비한 지식을 획득함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사귐,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c.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요 13:34~35과 같이 우리가 주님의 본을 따라 사랑해야 함을 주님이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르침 :

1)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교묘하게 비틀어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예수님을 주로 모셨다고 하면서 주님이 본을 보이신 사랑이 없는 것.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사탄의 궤계에 의해서 초대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분명한 어조로, 아니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돌직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2)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그가 진짜 예수님의 제자이고,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다 거짓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말만 화려하게 해서 해결되는 진리가 아닙니다.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고, 제국을 변모시키는 것이기에 진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거하고자 하는 자는 주님의 말씀으로 지어져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매 끼니마다 먹지 말아야 했듯이, 우리는 주님의 계명을, 그 말씀을 날마다 지속적으로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지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내주함을 확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회적으로 지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매순간, 언제나,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4) 주님이 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하신 일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신대로 자신도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자는 보혜사이신 예수님을 따라 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고자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하는 자이며, 그는 성령님의 내주하시고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을 통하여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매순간, 쉼이 없이 깨닫고 순종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적용 :

1) 변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일에 대해서는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내 안의 죄성은 언제나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말씀을 적용하고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이 과정이 지루한 듯이 보이지만 내안에서 끊임이 없이 일어나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기는 자가 진짜 승리자입니다. 이것을 지속해 가는 과정에서 성령의 은혜로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이루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의 일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 21:22 “~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적 차원의 앎을 의미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 길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말씀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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