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7. 큐티
에스겔 35:1 ~ 9
세일 산과 에돔이 황무하리라 - 1
관찰 :
1) 에돔을 향한 심판 선언을 시작하는 말
- 1절.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a. 갑자기 이방 족속인 에돔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에돔에 대한 심판 예언은 25:11-14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다루는 에돔 심판 예언은 이방 민족으로서의 에돔 족속의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보다는 선민 유다의 회복을 위한 장애물 제거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민의 회복을 예언한 34장의 연장선상에서 에돔에 대한 심판이 예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b. 35장은 34:25에서 유다 백성이 회복되기 위해 유다 땅에서 악한 짐승이 그쳐질 것이라는 예언과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심판하시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하셨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회복시키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10절 상반절을 보면 에돔 백성들은 주인이 없어진 틈을 타 유다 백성의 땅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이는 33:24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은 유다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영토에 대해 소유권을 행사하려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33:25에 언급된 것처럼 사람이 없는 빈들의 악한 짐승과 같은 에돔은 유다의 회복을 위해 먼저 제거되어야만 했습니다.
c. 유다의 남은 백성이나 에돔의 백성들이 유다의 땅에 대해 탐욕을 가진 것은 그 땅이 주인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절 하반절을 보면 유다 땅에는 여호와께서 계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 땅을 차지하려고 한 에돔의 시도가 단지 유다에 대한 공격이나 약탈만이 아니며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며 반역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땅을 강점하려고 한 에돔은 유다 백성의 고토 귀환을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d. 하나님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에스겔에게 다시금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 2절.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a. 세일 산을 향하여 예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본장이 언급하는 심판의 대상이 에돔 족속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일 산”이라는 표현은 본 절과 3절과 7절에서 세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돔이라는 표현은 15절에서 단 한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본장에서 에돔을 세일 산이라고 표현한 것은 36장에서 유다 백성을 “이스라엘 산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병행되는 표현입니다. 또한 12절에서 세일 산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저 산들이 황폐하였으므로 차지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유다와 에돔을 각각 산으로 표현하는 수사법을 통해 본장의 핵심 주제가 땅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준비하신 땅에 대해 부당한 탐욕을 가진 에돔 백성을 향한 심판의 내용이 본장의 중심 주제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b. "세일 산“은 에돔 족속이 거하는 지리적 환경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에돔 족속이 거하던 땅은 이스라엘과 사해의 동남쪽이자 아카바만 서쪽에 위치한 아라비아 광야 동편의 세일 산 지역이었습니다. 창 14:6을 보면 세일 산에 거하는 원주민은 호리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더 이상 거할 수 없었던 야곱의 형 에서가 호리 족속을 쫓아내고 세일 산악 지대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c. "세일"에 해당하는 ‘세이르’는 ‘털이 많은’ 혹은 ‘나무가 많은’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닙니다. 에돔 족속이 거주하던 세일의 산악 지대가 나무가 많은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형적 특성을 더 고려한 의미를 반영한 지명인 것입니다.
d. 선지자가 그 얼굴을 예언의 대상에게로 향하는 경우는 주로 심판을 예언하는 경우입니다. 25:2의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 예언에서 이 표현이 사용되었고, 애굽에 대한 심판을 다룬 29:2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선지자가 얼굴을 향해야 하는 대상으로는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에돔 족속이 단지 선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듣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공격을 받았을 때에 침략자의 편에 섰고, 10절에 기록된 것처럼 유다 백성의 땅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 12-15절에 기록된 것처럼 유다 백성의 패망을 즐거워하는 말로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선민의 원수의 대표격으로 제시되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 3절.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
a.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에돔을 항하여 어떤 심판을 내리실 것인지 주목하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에돔을 부르는 내용보다 하나님 자신을 먼저 주목하게 하는 이유는 심판의 대상보다 심판의 주체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b. 본 서의 일차 독자 혹은 청중이라 할 수 있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의 관점에서 볼 때 심판의 대상을 강조하는 경우 심판을 당한 나라에 대한 동정심이나 적개심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지만 심판의 주체를 강조하는 경우 심판자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족속을 괴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한 이후 그들의 땅을 넘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에돔의 도발적인 태도와 행동은 그들이 유다 백성을 돌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 분의 능력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c. 손을 다른 대상을 향하여 올리는 행위는 축복이나 저주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심판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대상을 향해 손을 펴셔서 그를 심판하신다는 표현은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으로 인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섭리와 개입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내 손을 네 위에 펴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에돔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것으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도록 철저한 파멸을 경험하게 할 것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d.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에 따른 대적의 공격을 당해 황폐해지고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어 사막과 같은 지역이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e.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에돔 땅이 끔찍한 공격을 당한 에돔 사람들이나 처참한 피해를 입은 에돔을 찾은 사람들에게 공포스러운 마음을 주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 선민 살육에 동참한 범죄에 대한 심판 선언
- 4절.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네가 황폐하게 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a. 건물이 무너진 것은 다시 세워 복구할 수 있지만 무너뜨려 황폐하게 된다는 것은 성읍의 외형적인 파괴만이 아니라 성읍에 거하는 자들이 사라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고 모든 제도와 문화까지도 말살된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즉 에돔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펴서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에돔이 완전하게 파괴되고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b.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는 선민의 대적을 파멸에 던짐으로 선민을 구원하고 평한케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감안하면 에돔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궁극적으로 그들 역시도 여호와께서 진정하고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c. 하나님의 여호와 도심에 대한 인정과 경험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도 요구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병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통해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여호와되심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5절.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
a. 에돔이 심판을 받게 된 이유, 즉 에돔의 죄목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에돔의 죄는 그가 이스라엘에 대한 적의를 품어 오다가 “죄악의 마지막 때"인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는 시기를 틈타 유다가 멸망하돌고 무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환난을 받아 멸망한 때를 ”죄악의 마지막 때“라고 표현한 것은 유다가 멸망한 것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정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더 이상 죄악된 삶을 살지 못하도록 그 마지막 때를 정하사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고 심판을 경유하여 그들의 삶을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c.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으로 진입 할 때 칼로 그들을 위협했고, 그 뒤로도 적대 행위는 계속 되어졌습니다. 왕상 11:14에서 솔로몬의 시대에 에돔 왕 하닷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고, 암 1:11을 보면 에돔은 이스라엘에 대해 맹렬한 화를 거두지 않고 분을 끝없이 품어 칼로 그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습니다. 삼하 8:13, 14을 보면 다윗 때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벌의 대상이 되었고, 왕하 14:7을 보면 다윗 때에 이스라엘의 정벌의 대상이 되었고, 왕하 14:7을 보면 아마샤 왕 때에 많은 에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등 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당한 피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결정적으로 본절 하반절과 욥 1:10 - 14에 언급된 대로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할 때에 바벨론의 편에 서서 도왔고, 유다의 멸망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에돔이 유다의 멸망을 기뻐한 이유는 12절에 기록된 것처럼 유다가 멸망하여 주인이 없어진 땅을 차지하려는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 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에게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a. 에돔이 당할 살육과 영원한 파멸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에돔이 이스라엘에게 폭력을 행하사여 피를 흘리게 한 죄에 대한 형벌로 에돔 자신도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인과응보적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b. "에돔"이라는 단어는 ‘붉다’ 혹은 ‘붉게 되다’라는 뜻을 지닌 ‘아돔’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땀’이 의미하는 피의 붉은 색과 같습니다. 또한 피의 붉은 색은 에돔 족속이 주로 거주하던 세일 산의 바위의 색과도 동일합니다. 이처럼 여기서 붉은 색은 에돔이라는 고유 명사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에돔의 거주지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폭력적 행동으로 피를 흘린 것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본 절은 에돔과 그의 폭력과 학살을 강조하는 ‘피’(땀)이라는 표현을 네 번이나 사용하여 에돔의 죄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릴 것이라는 심판을 강조한 것입니다.
c. 에돔 족속은 유다 멸망 이후 다른 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다가 B.C. 126년에 하스몬 왕조의 힐카누스에 의해 침략을 받아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고, 로마에 의해 지배를 당할 때에는 민족 국가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 7절. “내가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며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a. “세일 산”으로 대변되는 에돔의 영토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b. 에돔 족속이 거주하는 땅을 황폐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은 이미 3절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 본 절에서 이를 반복하는 것은 에돔 족속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이룰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절의 표현에 더해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는 내용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땅이 황폐하게 된 뒤에 따라오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에돔 땅이 철저히 황폐화될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사람들이 왕래하기 힘들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 지역이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파괴 정도가 심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에돔은 적국의 침략을 받을 때에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도 재건하여 정착하기 힘들 정도로 성읍이 철저히 황무하게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8절. “내가 그 죽임 당한 자를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죽임 당한 자를 네 여러 멧부리와, 골짜기와,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a. 본 절에 예언하는 에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내용에는 사람들의 주검에 대한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b. 하나님께서는 에돔 주민의 시체로 세일 산악 지대를 가득 채우실 것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노아 홍수 이전에 강포로 가득했다는 표현에서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세일 지역이 문자 그대로 시체로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외부 세력의 잦은 침입과 그로 인한 폭력과 살상 행위가 끊이지 않게 되므로 그 피해 역시 처참할 정도로 극심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 9절. “너를 영원히 황폐하게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a. 에돔 땅에 대한 심판의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b. "황폐하게 하여“는 3, 4, 7절에서 다섯 차례나 사용되었습니다. 에돔이 다시는 재건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파괴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c. "영원히"(올람)은 5절 “옛날부터”에 해당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즉 5절에 언급된 에돔이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 과거부터 지녀왔고, 구체적으로 적대 행위로 표현화된 원한의 지속성이 본 절에서는 하나님의 에돔 족속에 대한 심판 행위의 지속성으로 바뀌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죄벌에 따른 철저한 공의로운 판결을 함이하는 ‘이에는 이로 갚고 눈에는 눈으로 갚는다’는 ‘통해보복법’(痛駭報復法)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는 에돔 사람에 대한 심판의 결론입니다. 에돔의 영토를 황폐하게 하는 목적이 사람들을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 내용을 통해 3, 4절의 에돔의 영토에 대한 심판과 7, 8절의 에돔의 거주민에 대한 심판은 각각 분리된 심판이 아니고 서로 연결된 심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 절의 두 동사는 모두 미완료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미완료형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동작, 계속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에돔의 땅이 황폐화되어 거기에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본 절의 예언은 앞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미래적 의미도 있지만 그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지속성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e. 본 절은 에돔이 이스라엘을 과거부터 이제까지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괴롭혔던 것처럼 에돔도 하나님의 의해 심판을 받고 그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그들의 땅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그 안에는 어떤 사람도 살 수 없게 될 것이란 표현을 통해 에돔 심판의 결론을 매듭짓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에돔을 심판하실 것을 다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미 에돔에 대한 심판 예언을 했지만 다시 말씀하시는 이유는 에돔이 유다 땅을 넘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인데, 그 사이에 그 땅을 차지하려는 탐욕을 에돔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갔어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주리라 한 약속을 잊지 않고 그 땅을 유다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2) 에돔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스라엘 족속을 괴롭혀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적과 손을 잡기도 하고, 본인들이 주도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하기도 하고, 결국 바벨론이 유다 백성들을 끌고 가자 그 땅을 무주공산으로 여겨 차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에돔의 행태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족속들이 세일 산으로 침략하게 하시고, 결국 에돔 족속이 세일 산을 버리고 도망갈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 너무 황폐하게 되어 에돔 족속이 세일 산으로 돌아와도 그 땅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이미 에스겔을 통해 예언된 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에돔 족속에 대한 예언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의 하나의 샘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는 매우 세밀하며, 불법과 불의에 대해 결코 그냥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에돔 족속의 모든 죄과는 과거부터 쌓아온 것이고, 결국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이 시시비비를 공의로 분별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방 종교의 강력한 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통치하신다는 것이 참된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우리 주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통치에 감사드리게 됩니다. 주님이 통치하지 않으시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통치하시기에 참 소망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 유다 백성들을 돌보시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잘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스스로 참 회개에 이르지 못했어도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에돔도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겠다 하십니다. 오늘날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다 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살아내게 하십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놀랍고 넘치는 은혜입니까!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