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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나눔

2026. 6. 19. 에스겔 36:1 ~ 8 "이스라엘이 받을 복 - 1"

작성자팀2813|작성시간26.06.19|조회수27 목록 댓글 0

2026. 6. 19. 큐티

에스겔 36:1 ~ 8

이스라엘이 받을 복 - 1

관찰 :

1) 빼앗긴 땅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을 시작하는 말

- 1절.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a. 앞 장 35:1-15의 에돔 심판 예언은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선민의 회복을 매우 강하게 암시한 것이었습니다. 36:1-15은 앞 선 35:1-15과 짝을 이루어 선민의 회복에 대해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36:1-15이 35:1-15과 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내용을 시작하는 전형적인 문구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라는 문구가 생략되고 있다는 점과 동일한 1-15절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이스라엘 산을 2인칭으로 호칭하며 시작하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에 대한 심판 예언에 이어 야곱의 후손인 선민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짝을 이루어 이어가게 되는 것은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와 은총을 부각시키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민을 회복시키시리라는 확신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b. 본 단락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힌 현재의 선민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c. "이스라엘의 산들“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땅을 가리키는 뜻으로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35:1-15에서 사용된 ”세일 산“과 대조를 이루어 이스라엘 땅과 백성들을 가리키며 선민의 회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산“이라는 표현은 최근의 군사적 재앙에서 살아남았고 현재 번영 가운데 있는 에돔의 다가오는 멸망과, 현재 황폐해져 있으나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회복과 선민의 번영을 대로하고 있습니다.

d. "이스라엘의 산들“은 6:1-7에서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우상 숭배의 죄악이 자행되는 장소로 언급하고 그곳이 멸망되고 황폐화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본장에서 ”이스라엘의 산들“은 그 예언이 성취되어 산들이 황폐화된 상황을 전제로 해서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회복케 하심과 번영을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이미 황폐해진 산들 너머에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영의 시대를 내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비현실적이고 공상에 가까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약속을 믿고 고국으로 귀환하는 선민들에게 재건의 소망과 의지를 갖게 하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줄 수 있었던 소망이었습니다.

- 2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원수들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아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a. 유다의 멸망을 자신의 탐욕을 채울 기회로 삼은 악한 이방의 무리들의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원수가 선민을 대하여 자신들이 선민의 땅을 차지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경우 원수들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모든 재산을 빼앗길 것이라는 신명기 28장의 경고의 말씀을 상기하게 됩니다. 실제로 선민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이방인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잃고 종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b. "원수“라는 표현은 나라와 국토를 잃어버린 상황이 선민의 불순종과 죄악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감안해서 보면 선민의 현재 상황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처지에 빠진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c. "아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라는 것은 선민에 대한 대적의 적의에 찬 언급입니다. “아하”는 기쁨의 탄성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놓은 곳”이란 표현은 창 49:25의 ‘영원한 산’이나 신 33:215에 기록된 ‘옛 산이나 작은 언덕’등이 상징하는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소유’, ‘상속 재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자손대대로 물려주는 영구한 기업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 절의 표현은 이방인들이 선민의 멸망을 매우 크게 기뻐하면서 선민들의 영토가 영원히 자신들의 소유가 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에돔을 포함한 유다의 대적들은 바벨론이라는 거대 제국에 의해 유다가 멸망하자 이스라엘의 땅을 직접 점령하거나 그 땅의 멸망을 통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간접적 이익에 대한 계산으로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질렀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적들의 악의에 찬 말은 25:3에서 여호와의 성소가 더럽혀지고 이스라엘의 땅이 더럽혀진 것을 즐거워한 암몬 족속의 조롱이 섞인 말이나 예루살렘의 문이 깨어졌다고 좋아하며 더 많은 상업적 이윤을 볼 것으로 즐거워한 두로의 악담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d. 선민들은 때떄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열방과의 우호 관계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열방은 결코 믿을만한 존재들이 되지 못하며 선민들의 불행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 3절. “그러므로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너희를 황폐하게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 너희가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 거리와 백성의 비방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a. 선민이 패망한 것은 사실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지만 자비하신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애끓는 사랑이 그들을 회복케 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b. 선민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황폐하게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 거리와 백성의 비방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라는 표현을 통해 선민의 파멸에 대한 여러 측면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이 일들을 결코 두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이 암묵적으로 담겨있는 것입니다.

- 4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산들이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 황폐한 사막들과 사방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 거리와 조롱 거리가 되어 버린 성읍들에게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a. 에스겔은 이제 앞으로 선포하는 말씀에 대해 경청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의 말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앞선 1, 2절에서도 제시되었지만 다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b.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으로 언급되는 이스라엘의 산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황폐한 사막들과 사방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 거리와 조롱 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에게”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겪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주권적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도저치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있는 선민의 모습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고 보실 수 없기 떄문에, 또한 이러한 선민들을 조롱하고 노략하는 대적들을 여호와께서 좌시할 수 없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선민들을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산하를 노략하고 차지한 주변 원수들의 패망 약속

- 5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기기를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질투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라”

a. 하나님께서 열정과 투기의 불을 품으시면서 에돔을 향해 심판을 선고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땅”을 뺴앗아 “자기 소유”를 삼았기 때문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이방인들을 대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방인들을 대조하심으로써 가나안 땅의 진정한 소유자가 자신임을 밝히시고, 이에 따라 유다 백성의 땅이 자신들의 것이 되었다고 즐거워하고 그들을 멸시하는 이방의 태도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도전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b. 이는 이방에 대한 심판과 선민에 대한 구원과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6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에 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질투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치를 당하였음이라”

a. 본 절은 이방에 대한 심판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대한 심판과 분노는 단순히 죄악에 대한 심판과 분노의 의미를 넘어서 선민의 회복과 사랑하심을 의미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은 질투하며 분노한 자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며 심판을 선언한 자가 당신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선민에 대한 열정과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계심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 7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이 자신들의 수치를 반드시 당하리라”

a. “내가 맹세하였은즉”은 히브리어 원어에서 ‘내가 나의 손을 들었다’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손을 드는 행위가 갖는 의미 중의 하나는 20:5, 6에 기록된 것처럼 ‘맹세를 하다’입니다.

b.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는 이방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손을 들어 맹세까지 하신 것은 이 일이 당대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맹세의 구문을 사용하셔서 선민들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고 대적의 보응과 선민의 회복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c.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소식에 낙망한 바벨론의 유다 포로 공동체에게 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희망은 자신의 멸망을 즐거워하고 조롱하는 대적이 멸망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이 예언은 미래에 이루어질 고토 귀환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큰 모욕감과 정신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치유의 선포였습니다.

3) 이스라엘의 재건 약속

- 8절.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a. 이제 하나님은 선민의 회복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b. "너희"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산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확장하면 이스라엘의 전 영토와 선민 전체를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산들은 주인을 잃고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혔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것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산들을 노략한 이방인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에돔의 산이 황무지가 폐허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산에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이스라엘 산은 수치와 만민의 비방을 영원히 받지 않게 될 것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c. 이스라엘 산들에게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으라는 명령은 옛 땅으로 돌아와 정착할 유다 백성들의 온전한 삶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추라는 명령입니다.

d. 이스라엘의 땅은 원래 비옥했고 이스라엘의 나무는 물가에 심은 포도나무 같아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열매는 동풍으로 마르고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르게 하신 포도나무의 열매가 다시 맺히고, 꺾이고 말라 불에 탄 가지들에게 다시 뻗으라고 하신 본 절의 명령은 단지 물질적 회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결되고 영적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e. 선민에게 주어진 유업의 땅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에 따라 황폐한 사막과 같이 되기도 하고 풍성하고 기름진 옥토와 같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동산에 쫓겨났을 때에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를 내고 땀을 흘린 만큼 정장한 열매를 맺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이나 물질적 축복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f. 산들이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 절의 시간적 배경은 35:3에 기록된 유다 백성이 여호야긴 왕과 에스겔 선지자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온 지 12년째 되는 해 즉 B.C. 585년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한 예언의 시발점을 첫 번째 포수가 이루어진 B.C. 605년을 기준해 본다면 70년 중에서 20년이 이미 지난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기 까지는 아직 50년이나 남은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고 에스겔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회복의 약속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한 강조적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을 괴롭히고 멸망하게 만든 이방 나라들을 멸망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백성의 귀환을 위해 이스라엘 땅에게 지금 당장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준비가 실제 귀환이 이루어지기까지 걸릴 시간의 길이를 뛰어넘어 미래의 축복을 강한 믿음을 통해 현재적 축복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멸망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에 대한 너무나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매우 자세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멸망을 선언했습니다. 그래야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은 정말 망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힘만으로는 대적들과 상대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시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멸하실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에스겔에게 임했기 때문에 에스겔은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당당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2) 유다가 떠난 가나안 땅을 넘본 에돔과 유다의 패망을 기뻐 소리친 자들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에스겔은 단호하게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것은 에스겔 자신의 사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탁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예언은 완전히 다 성취되었습니다. 에스겔이 당당하게 선포할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3)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때론 눈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에스겔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말로 회복하실 것임에 대한 너무나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50년이나 남은 회복의 역사를 뛰어 남어 이스라엘의 회복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에스겔에게 있어서 앞으로 있을 일은 너무나 분명했기에 가까이 있는 것이 맞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지금 여기서 누리며 선포하는 것이 선지자의 역할이자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기도 할 것입니다.

적용 :

1)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이고 평화의 나라이고 사랑의 나라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너무나 확실한 예언이기에 그것을 오늘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일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2) 이 세상은 악하고 온갖 어두움과 사기꾼들이 판을 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목사, 장로, 선교사라 하고, 자신들이 거짓을 말하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도 있습니다. 혼란한 상황일지라도 그 가운데 분명히 일하시고 궁극적으로 공의의 나라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분명히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함이 모든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GCM이라는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복음(Gospel), 도시(City), 운동(Movement)이라는 팀 켈러의 핵심가치를 연구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한국에서는 10년째 하고 있는 모임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개척에 뜻을 둔 200여명의 젊은 목회자들과의 만남이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한국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접했던 제가 한국 교회의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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