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1. 주일 큐티
요한일서 2:7 ~ 11
새 계명 안에 거한다는 것
관찰 :
1) 새 계명의 본질
- 7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a. “사랑하는 자들아”는 사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사랑의 대상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밝히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b.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더불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폐기론, 사랑을 실천하는 부분마저도 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사도 요한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초대 교회의 거의 최종 권위를 가진 자로서 없었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계명은 구약의 말씀으로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밝혀진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계명으로서는 옛 계명이 될지 모르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밝혀지고 드러나게 되어 완전히 실현된 의미로서는 새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 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a. “다시”(πάλιν, 팔린) ‘다른 의미에서’, ‘다른 관점에서’라는 의미로 종류의 차이라기 보다는 인식의 다른 측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이해하는 것이 더 분명한 뜻을 전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위에서 언급하는 옛 계명은 동시에 새 계명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b. 이 계명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에게 모두 참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셨다는 것, 둘째, 예수님께서 순종으로 모든 계명을 완성인 사랑을 행하셨다는 것, 셋째,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심으로 자신이 행하신 바의 사랑의 계명을 행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 넷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사랑의 계명을 깨닫게 되고 성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존 스토트).
c.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추었다는 것은 복음의 빛이 새 시대를 가져왔다는 의미입니다. 새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새 계명을 지켜야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2) 새 계명을 준수한다는 것은
-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a.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라는 말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이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b.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그는 결코 하나님과의 진짜 사귐을 사귀어 본적이 없는 존재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말만 무성하게 늘어놓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미워하게 되어있습니다. 미워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자 애쓰게 되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 10절.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a.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빛이 그 안에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사랑을 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b. 우리는 진정한 의미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주하심으로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c. “거리낌”(σκάνδαλον, 스칸달론)은 배교나 범죄하도록 만드는 유혹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고전 1:23).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 거리낌이 없다는 말은 성도가 아닌 자가 주님의 복음으로 들어오는데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d. 성도가 빛 가운데 거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 11절.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a. 누구든지 형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이를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은 그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b. 그런 자는 실질적으로는 어둠에 있고, 진리를 따르는 힘을 상실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에 눈이 멀어졌고, 그 어두운데서 행하는 습관으로 인해서 진리를 분변하지 못하게 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c. 형제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이렇듯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사도 요한은 새 계명이란 원래부터 있던 구약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주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완성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변만 늘어놓고 말만 무성한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들을 순종하여 좇아 행하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처럼 타인의 발을 씻고, 섬기고 낮아지는 행위가 있어야 새 계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새 계명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지주의의 도덕폐기론과 행위가 없어도 신령한 지식을 통해서 거룩해 진다는 말은 모두가 거짓임을 강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2) 새 계명은 필연적으로 성도를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미워하면 그는 결코 빛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진리 가운데 거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는 멸망에 속한 자입니다.
3)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습관적이 되어버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없이 말만 하는 꼴이 되어버리면 결국은 눈이 어두워져서 진리를 분간할 수 없게 되고 어두움이 그 눈을 멀게 만들어서 다시는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그토록 치명적인 것입니다. 내가 비록 정당하다 할지라도 나를 핍박하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그것은 시나브로 영적 어두움으로 끌고 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제를 사랑하는 길을 선택해야 하며, 그것이 결국은 남는 일입니다. 소망스러운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진리에 속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적용 :
1) 새 계명을 계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구약과 신약의 성경을 읽는 관점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실력을 배양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만이 구약을 바르게 해석하는 길이고,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구약을 통하여 신약을 바라봄이 바른 신약 해석의 길입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지리한 것 같은 과정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참 빛에 거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2) 형제를 미워함은 참 빛 안에 거하고 있는 이의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하거나 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속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계기판의 눈금과 같은 것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죄를 미워해야지 형제를 미워함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심판자가 되어서는 아니될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은 바 된 사울을 공격하지 않으려는 다윗의 노력이 합당한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아들되고 딸이 된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게 되면 세상의 어두움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존재가 다시 지옥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경우에는 이미 받았다고 생각했던 구원이 사실은 참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도 배워서 순종하기가 어려운데, 판단과 정죄와 미움을 좇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다애교회의 디아스포라 모임에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