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2. 큐티
에스겔 36:16 ~ 23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다 - 1
관찰 :
1) 범죄한 선민에 대한 심판으로 인한 여호와의 이름의 명예 실추 지적
-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a.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다시금 지적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실 것을 천명하고자 에스겔에게 신탁을 주셨습니다. 선민 곧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드높이는 자로 부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선민은 반드시 회복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선민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b.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다시 언급하신 이유는 선민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까닭이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를 따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여호와를 무능한 신이라고 말하는 이방인에 의해 더럽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정함을 강조하신 것은 그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변증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신탁의 내용을 전개하며 이것이 에스겔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적 생각이 아니라 여호와의 계시이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계시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다시금 밝히고 있습니다.
- 17절.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a. 약속의 땅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땅을 더럽힌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민 35: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종에 있음이니라”는 명령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더럽히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땅에 그들과 함께 거주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더러움은 도덕적, 윤리적 더러움을 의미합니다.
b. 본절에서 제의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월경 중의 여인 혹은 유출병이 있는 여인의 실례를 들어서 선민의 더러움, 즉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수 없는 선민의 윤리적, 도덕적, 신앙적 타락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여인이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하게 되었는데, 이와 유사하게 선민들이 타락하여 그들이 거하는 땅이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 없도록 더렵혀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민들의 타락이 매우 컸으며 그들의 타락이 삶 전반에 걸쳐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c. 이 더러움, 즉 선민들의 죄악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구체적으로 두 가지로 언급됩니다. 하나는 불의의 피를 흘리게 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상들과 더불어 행음했다는 것입니다.
d. 여인이 월경 중에 흘린 피로 인한 더러움은 불의의 피를 흘리는 것으로 인한 더러움으로 직접 연결되며 또한 여성의 부정함은 성적 더러움이라는 이미지와 연결되어 우상 숭배의 죄악을 고발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민의 사회적 불의와 더불어 우상 숭배의 죄악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선민들이 약속의 땅에 거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끝내 쫓겨나는 심판을 내리시기까지 한 것입니다.
- 18절.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a. 이스라엘 백성이 피를 쏟고 있는 장면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위에서 심판을 쏟으시는 장면이 서로 겹쳐지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셨다는 심판의 정당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백성들의 행위에 따른 인과응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b. 선민들은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제사하여 자신들을 정결케 하는 제사 동물의 피만을 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악행의 피를 흘림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것입니다.
c. 약속의 땅을 더러운 범죄의 장소로 만들어 버린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진 진노는 모세 오경을 근거로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레 18:25에 기록된 것처럼 죄로 인해 더렵혀진 땅은 주민들을 토해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B.C. 586년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감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둘째, 13절과 민 13:33에 기록된 것처럼 더럽혀진 땅은 주민을 삼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비롯한 이방 나라들과의 전쟁을 통해 수없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3절과 레 25:2, 4에 기록된 것처럼 더럽혀진 땅은 그 땅의 백성들에게 소출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과의 전쟁을 전후로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은 사건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신학자 아이흐로트의 주장입니다.
d.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상징인 가나안 땅을 범죄의 장소로 만들어 오염시키고 다시 더럽혀진 그 땅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악순환의 내용은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와 도구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와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19절.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a.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나라를 잃고 여러 나라에 흩어지도록 심판하신 이유가 바로 그들 자신의 행위에 있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b.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심판은 선민들의 행위에 따라서 정당하게 심판하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20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a. 선민의 죄를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선민의 죄를 지적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선민을 정죄하고자 하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자비와 은혜에 근거하여 선민을 회복케 하신다는 내용을 전개하기 위해 언급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b.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받는 내용을 제의적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럽히다”, “부정하다”, “월경 중의 여인”, “남자의 유출병” 등은 모두 더러움을 표현하는 제의적 용어입니다. 이렇게 부정한 병에 걸린 것으로 판명된 자들은 레 13:45, 46에 기록된 것처럼 공동체의 거주지로부터 그 병이 다 나을 때까지 떠나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에스겔은 오세 오경의 부정함의 의미를 차용하여 이스라엘의 범죄라는 질병이 약속의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으므로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하나님 심판의 공의로움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c.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역 신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역 신 개념’이란 특정한 신은 일정한 지역 내에서만 신으로 인정을 받거나 통치를 할 수 있으며, 그 지역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으로 가면 다른 신이 다스린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지역 신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들이 보기에 나라가 망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그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바벨론의 신인 마르두크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지역 신 개념에 따르면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 그 나라의 신을 섬기게 한 신은 무능한 신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본 절의 내용은 이러한 지역 신 개념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렵혔다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d. 여호와를 일개 지역 신 개념의 우상들과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 것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욕한 이방인들보다는 범죄를 행하여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이방 땅으로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근본적인 잘못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선민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이방 민족이 그들을 조롱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선민들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따라 약속하신 유업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쫓아 내셨으나, 여전히 그들을 당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여기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선민의 회복을 통한 당신의 이름의 명예 회복 시도 의지의 표명
- 21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a.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그들의 돌이킴이나 혹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b. "아꼈노라“(외에흐몰)은 ‘가엽게 생각하다’, ‘가엾다’,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당해 고통과 슬픔을 당해도 절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문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보지’ 않으실 것이라는 내용에서 사용된 동사가 분 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신다’는 의미로 다시 사용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범죄한 선민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당신의 이름이 더럽혀졌던 사실을 통분히 여기심은 물론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회복시키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스라엘이 가진 어떤 공로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c.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주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기 이전에 하나님을 통해 받은 선민으로서의 혜택과 축복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사랑을 받았고, 모든 민족들보다 앞설 수 있었다고 해서 자신들의 안녕과 번영 자체를 목표로 삼아 지내온 과거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또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d. 앞으로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해방과 속죄라는 온전한 구원은 절대로 이스라엘의 인간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하고 거룩한 뜻을 위한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22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a.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뒤에 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어 온전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행해질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b. "내가 이렇게 행함은“이란 표현은 본 절 이전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본 절 이후에 기록된 앞으로 하실 일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 내용은 24-38절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c.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이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다 공동체를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이 회복의 이유와 목적이 이스라엘 족속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d.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 이방인들의 사고에 의하면 ‘지역 신 개념’에 의해 어느 백성의 신이란 그 백성의 땅에 국한된 신이고, 자신의 백성을 지키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백성이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멸망하는 것은 곧 그들이 믿는 신의 패배와 멸망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른 나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경우는 그들의 신이 자신의 백성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신이 아닌 그들이 끌려간 땅의 신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그들의 이런 잘못된 신관에 의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백성을 빼앗기고 자신의 땅은 다른 백성들에 의해 더럽힘을 당한 신으로 조롱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어 바벨론으로부터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방 민족들의 잘못된 지역 신 개념에 부합하거나 그들로부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신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곧 명예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그 이름을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부터 불러내시는 구원 사역은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의 생각처럼 이스라엘의 땅에서만 힘을 행사하는 지역 신이 아니고 바벨론과 온 세계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라도 죄를 지으면 다른 나라로 쫓아냈다가 다시 데려올 수 있는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홀로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열방 가운데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 23절.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a.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회복하시는 목적이 여러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 위함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b.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다시 거룩을 회복해야 하는 목적은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란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알리라’는 ‘야다’에서 나온 표현으로 경험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이방 나라들은 완전히 멸망한 줄로만 알았던 이스라엘이 재건되는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본 절의 처음과 끝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이 일을 직접 행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만 국한된 지역 신이 아니고 가아안에서 바벨론을 아우르는 모든 세계를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깨닫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c. 본문을 대하게 된 바벨론의 포로 공동체는 자신들을 이방인들에게 포로로 끌려오게 하신 하나님, 또한 이방인들에 의해서도 조롱을 당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혼란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d. 당시 바벨론 포로 공동체에게 절실한 것은 자기 민족의 외적 해방보다 자신들의 조상 때부터 믿어왔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확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절 서두와 말미에서 강조한 것처럼 바벨론 포로의 해방과 구원에 대한 확신은 죄악을 행하던 추한 모습의 자신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멸망시킨 이방인들에 의해서라도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게 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언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밝히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성호를 귀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이름이 다른 이방 신들과 도매금으로 취급되어 지역 신으로 취급되는 것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 만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참 신이심을 증거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부정한 질병이 발생하면 거주지에서 격리되어 나갔다가 치료가 끝나면 들어오는 율례와도 같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그 땅을 떠났다가 하나님이 그들을 정결하게 하심으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기에 거룩한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2026년을 사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기에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변별이 되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참된 모습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시겠다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역 신’이거나 ‘민족 신’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만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증거’(自證)하셨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스스로 증거하신 것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섬긴 죄에 대한 심판을 받고 정결케 된 후에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잘나서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성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다윗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거룩한 이름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영광이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예를 걸고 나를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이니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나라는 개인으로 적용하는 것이 무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도 모두를 그렇게 회복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니 내가 성도에 속하면 나 개인에게 적용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걸린 사안이기에 결코 포기하지도 능력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이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