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큐티 나눔

2026. 6. 23. 에스겔 36:24 ~ 38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다 - 2"

작성자팀2813|작성시간26.06.23|조회수29 목록 댓글 0

2026. 6. 23. 큐티

에스겔 36:24 ~ 38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다 - 2

관찰 :

1) 당신의 이름의 명예 회복을 위한 선민 회복의 일방적 약속 선언

- 24절.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a. 본 절은 포로 귀환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로민들을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는 지리적 이동과 정치적 해방은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의 과정에서 볼 때는 서곡에 불과한 것입니다.

b. 이스라엘 백성의 약속의 땅으로의 복귀에 대한 묘사는 본 절 단 한 절에 불과하지만 영적 새로워짐을 통한 하나님 백성으로의 새 창조에 대한 묘사는 25절부터 본 서 마지막 절까지 계속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즉 본 단락에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나 경제적 부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 회복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 25절.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a. 약속의 형태로 제시되는 선민의 회복된 모습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자세와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b. 본 절에서는 정결 의식을 소재로 하여 선민의 변화된 모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정결 의식은 레위인들이 제사 의식을 돕는 일을 하기 전, 즉 임직에 앞서서 레위인들에게 속죄의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고 레위인들을 요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정결 의식은 17-19절의 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17-19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이유가 그들이 부정한 행위로 땅을 더럽혔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에 그들이 땅을 더럽혔던 행위를 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정결 의식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c. 본 절에서 언급하는 정결 의식은 단지 과거에 행했던 부정한 일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행한 과거의 죄에 대한 속죄 의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잘못을 행하지 않는 자들로 변화시키기 위한 거듭남의 의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구출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이것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는 부정한 일을 행하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는 새로운 영과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d. 레위인들의 정결 예식 자체가 하나님께의 헌신과 새로운 직임을 시작하는 예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본 절은 과거의 죄로부터의 속죄와 더불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사명에 충실한 헌신된 새로운 삶을 출발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맑은 물로 뿌림을 받아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이전의 더러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선민으로서의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의미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 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a.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데에서 나오는 죄악을 행함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신을 분리시켜 악의 세계로 점점 더 빠져드는 악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 받아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새 마음과 새로운 영을 받아야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b. 구약성경에서 “마음”(레브)과 “영”(루아흐)이라는 단어가 본 절에서처럼 한 문장에서 함께 사용된 경우에는 서로 별개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지ㆍ정ㆍ의를 포괄하는 장소이자 인성과 인격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총칭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c. 하나님께서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신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그들의 내면과 인격에 부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d. 여기서의 새로움은 이전 것들과의 단절된 새로움이 아니라 이전 것들과 연관된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e.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서 “굳은 마음”이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딱딱한 돌과 같은 마음이고 “부드러운 마음”이란 하나님의 지시와 권고하심에 대해 민감하고 부드럽게 반응하는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하는 삶이 순종하는 삶으로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선민은 새 언약의 백성이 될 것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f. 27절에서는 하나님의 영을 주실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 절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말씀에 순종하는 성숙하고 헌신된 인성과 인격을 구비케 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 27절.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a.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내면으로 임하는 일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에만 이루어졌습니다. 민 11:25을 보면, 모세가 세운 칠십 인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에 그들이 일시적으로 예언을 하였으며, 삼상 16:13을 보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삿 6:34을 보면 기드온이 이방 족속들과 싸우기 위해 사사로 세워졌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백성이 장로나 왕이나 사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군을 온전하게 감당하게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혹은 정기적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포로 생활을 끝내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내면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7:14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다시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어지는 일은 메시야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사 44:3은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행위를 하나님의 복을 주시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욜 2:28은 장래 일을 말하게 되고 꿈을 꾸게 되며 비전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영이 부어짐으로써 새롭고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화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주도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임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c. 이스라엘 백성이 율례를 행하는 것이나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하게 만드실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즉 26, 27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신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지키는 백성으로 거듭났다는 의미입니다.

- 28절.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a. 본 절은 백성, 영토, 주권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b. 하나님 나라의 영토를 “내가 너희 조산들에게 준 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이나 ‘이스라엘의 땅’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과 관련지어 언급한 것은 이 땅이 갖는 언약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바벨론에서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땅을 그들의 땅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의 조상들의 땅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단지 그들에 대한 ‘인애’만이 아니고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기 위한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c. 본 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자신을 “너희 하나님”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는 일이 단지 정치적 회복이나 지리적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왕과 하나님이 되시고 포로민들은 왕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관계가 성립되는 구속사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d. 본 절은 언약의 땅과 하나님의 백성과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 29절.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a.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더러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비극의 원인이었습니다. 본 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더려운 데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는 죄악을 범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의미로서 28절에서 언급된 회복될 하나님 나라가 다시는 침범을 당하거나 망할 일이 없는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b. 더러운 데에서의 구원이 하나님 나라의 외적 견고함을 강조한 것이라면, 기근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적 견고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새로이 세워질 하나님 나라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나라 안에서의 삶 역시 기근이 없는 풍성한 삶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 30절.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a. 풍성한 열매와 곡식의 맺음이 백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b. 기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29절 내용의 반복입니다. 그런데 29절의 경우 기근을 이스라엘의 부정과 연결하여 기근의 원인이 제거됨으로써 기근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면 본 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들에게 당한 수치라는 기근의 결과와 관련시켜 다시는 그런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기근이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는 의미로 언급된 것입니다.

c.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근은 단지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육체적 굶주림의 의미만이 아니라 기근을 내는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멸시라는 정신적 모욕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d. 8-15절에서는 풍성한 열매와 곡식이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비방을 종식시키고 그 땅을 하나님 나라의 영토로 회복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29-30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모욕을 종식시키고 이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회복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 31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a.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지었던 죄악들을 지극히 혐오스러워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고를 하고 있습니다.

b.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닉하고 즐겼던 과거의 죄악에 대한 기억도 지극히 혐오스러워하게 되는 것은 27절에 언급된 것처럼 그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게 되었고, 28절에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삶을 통해 죄악을 지극히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c. 예기치 않았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은 율법적인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참 암으에서 우러나오는 회개를 경험하게 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는 회개의 열매를 맺기 마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어주신 거룩한 영은 그들을 물질적 측면에서 풍성함을 허락하고 사회적 측면에서 명예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영적 측면에서도 죄를 혐오하는 거룩한 성품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 32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a. 3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회복된 뒤에 자신들이 과거에 행했던 죄악에 대해 혐오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절은 다시 과거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한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는 31절의 내용이 회복될 이스라엘 공동체의 미래적 회개에 대한 예언이라고 한다면 본 절의 내용은 본서의 일차 독자인 바벨론의 포로 공동체를 향한 현재적 회개에 대한 촉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과거의 죄에 대한 회개와 반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는 자들이 반드시 행해야 할 당위적 의미인 것입니다.

- 33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a. 선민의 회복 시 누리게 될 혜택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29 - 30절에서는 기근이 없어지고 풍성한 먹거리가 주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31 - 32절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사람들이 돌아와 황폐한 땅에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질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믿음의 공동체에 필수적인 요소들, 곧 의식주와 영성이 하나님 나라에서 완벽하게 회복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b. 주거의 문제를 언급하는 본 절의 내용 중에 24, 25절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시는 날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의 멸망과 재건이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선민들을 그의 땅에 거주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거주하게 하신 그들은 황폐한 땅에 건축물을 세울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34절.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a. 본 절은 논과 밭의 경작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농작물의 재배되는 토지로서의 땅의 역할과 관련한 회복에 대한 묘사입니다.

- 35절.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a. 회복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해 33절에서는 황폐한 땅에 건물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 묘사했고, 34절에서는 황무한 땅이 경작될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위의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b. 본 절이 약속의 땅을 에덴 동산에 비유한 것은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케 하심은 단순히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전에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완벽한 상태가 되게 하시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c. 에덴 동산에는 여러 강줄기가 흘러 넘펴 각종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움이 있는 에덴 동산의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으며 불에 타고 가꿔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현재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바벨론 포로 공동체의 염려와 걱정을 덜어주는 희망의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 36절.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a. 회복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특별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본 절에서는 “나 여호와가”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반복을 통해 다른 그 어떤 존재가 아닌 바로 “나 여호와”가 이 모든 일의 주체임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b. 앞에 나오는 “나 여호와:는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작물을 심어 옥토가 되게 하시는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나 여호와“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즉 본 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여호와의 일방척 회복 약속과 병행되어야 할 선민들의 회복 간구의 필요성과 그 실현의 재강조

- 37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아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a. 바벨론의 유다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애굽의 도움이나 바벨론의 정치적 멸망을 통해 유다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회복 자체가 아니라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b. 본 절의 선민의 간구는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내적인 새 창조 사역의 촉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민들의 문제는 나라가 멸망했다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보다 그들이 창조주이자 구원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와 신뢰를 상실했다는 점이었는데, 본 절의 촉구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38절.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a. 양 떼의 비유가 앞선 37절에서는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많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면 본 절에서는 이러한 측면에 더하여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의 회복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b. "제사 드릴“이라는 ‘카다쉽’의 원형 ‘코데쉬’는 ‘거룩한’ 또는 ‘구별된’이라는 의미입니다. 본 절에서 이는 하나님께 바쳐지기로 구별된 양이 거룩하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c. "정한 절기의“에 해당하는 ‘빼모아데하’의 원형 ‘모예드’가 레 23:2에서 ‘여호와의 절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는 유월절 등 선민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열 절기들을 가리켰습니다. 이 절기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 때메는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 온 땅으로부터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가져오거나 구입한 양 떼들로 인해 북적였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 기록된 양의 비유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본서의 일차 독자인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올 시점으로 보면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35절에 기록된 것처럼 성읍이 재건되면 절기 때에 예루살렘에 몰려든 양 떼들처럼 많은 사람들로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양적으로 번성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제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적으로 회복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본 절이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이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이스라엘의 온전한 신앙 공동체 회복이라는 영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에서 가나안 땅으로 회복되어질 이스라엘이 모든 면에서 풍성하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식주 모든 문제를 가장 풍요롭게 채워주실 것이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영적인 풍요로움도 허락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2) 이제 회복될 언약 공동체는 거룩을 사모하게 되고 더러운 행위를 증오하게 될 것이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영적인 축복이 이와 같이 강조된 것은 새로운 모습입니다. 이제까지는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인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표현해 왔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에서 영적인 축복이 회복된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궁극적인 축복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에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넘어서는 것임을 말씀하시게 된 것이고, 그 내용은 구약과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시고자 하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지만 그 과정에서 정결케 하시고 회개를 소망하고 경험하게 하신 뒤에는 이 세상의 물질적인 축복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영적 축복의 영역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비밀을 진작부터 알려주시고 싶으셨지만 길고 어려운 프로세스를 통하여 이 비밀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4)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영적인 축복을 더욱 간절히 간구하는 존재들이 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더욱 갈망하는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깨끗한 물로 씻는 정결 예식을 통과해야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어린 양의 피, 예수의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외어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됨을 구약이지만 신약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에스겔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으로 구약에 있으면서 신약의 복음과 동일한 차원의 온전한 복음을 선포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벨론 포로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진정한 복이었습니다. 그들이 폐허가 된 곳에서 경작하게 되고 건물을 세우고 제사 때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북적거리고 그들이 끌고 온 양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한 물질적 축복을 넘어서는 축복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복은 깨끗한 물로 씻는 정결 예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는 죄사함의 은혜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그 은혜가 구약에서 에스겔을 통하여 이와 같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축복을 선민이 스스로 기도하고 간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이 제 안에서 성취됨을 인하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2)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가르치시고 회복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가 이 세상의 물질적 풍요로움 보다 영적인 풍요로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아직 50년이 더 지나야 포로 귀환의 시기가 오는 암울하고 암울한 상황에서 신약의 복음의 핵심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암흑의 상황에서 위대한 복음의 새롭게 하는 빛이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어두움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빛을 비추시는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삶 속에서 어둠이 임했을 때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빛으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님을 신뢰합니다. 물질적인 축복보다 더 우선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영적인 축복을 더 소망하고 즐거워하고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