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후에 궁정음악 |
| . . . 은은한 북소리가 공연장 이곳저곳을 메아리치며 30여초 이상 지속된다. 잠시 후 비파와 가야금 등 베트남 전통악기 4총사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박자와 조를 바꾸며 연주되기 시작하면 어느 샌가? 청중들은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이 신비스런 음악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만다. 누런 색 궁중예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나이가 지긋한 6명 (남자 셋, 여자 셋)의 궁정 악사들 역시 자신이 연주하는 이 고귀하고 감미로운 가락에 취한 듯 황홀한 표정으로 악기를 어루만진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후에 음악이 세계인들에게 어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 (웹사이트 youtube.com로 들어가 Nha Nhac Cung Dinh Hue라고 검색어를 치면 바로 이와 관련된 동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다.) 왕의 즉위식, 생일 등 국가 경축일이나 하늘과 땅에 제를 지낼 때 공연된 후에 궁중음악 (Hue imperial sympony)은 11-12세기 리 (Ly) 왕조 시대부터 궁중에서 시작되어 1945년 윙 (Nguyen)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정치, 사회, 경제가 바뀌어도 이 문화유산이 일천 년 이상 그 생명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궁중 음악을 아끼던 몇몇 황족들을 비롯하여 음악가와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 덕이었다. 민족의 활력, 창조력의 표상, 인류의 자부심 등으로 평가되는 후에 궁중음악은 좁게는 베트남인, 넓게는 인류 공통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쩡 왕조 시대의 안남지략, 레 (Le) 왕조 시대의 다이비엣 대백과전서 등을 참조해 보면 후에 음악은 짬족, 중국인 등과의 문화 교류를 통해 거듭 발전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10세기 말 레다이한 (Le Dai Hanh) 황제 시절에는 짬파 (Champa) 궁정음악을 흡수한 바 있으며 15세기 레 (Le) 왕조 시대에는 중국 궁정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어 18세기 탄 (Thanh) 왕조는 따이성 (Tay Son)의 안남국 (An Nam Quoc) 음악을 접하게 된다. 후에 궁중음악의 발달 과정을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882 - 1885년; 황금기 1802 야롱 (Gia Long) 황제가 제위에 오를 무렵부터 1885년 푸쑤언(Phu Xuan)이 함락될 때까지 후에 궁중음악은 황금기를 구가했다. 수도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 공연장 (오페라 하우스)이 세워져 귀족에서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야롱 (Gia Long) 황제는 (1802 - 1820)에는 바뚜언 (Ba Tuan) 극장 (1975년까지 존속), 마이빙 (Mai Vien) 극장, 호앙므이 (Hoang Muoi) 극장, 사우억 (Sau Ot) 극장 등 연극과 각종 춤을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이 많이 지었으며 200여명으로 구성된 궁정 음악대를 조직하여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였다. 민망 (Minh Mang) 황제 (1820-1840)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당시로서는 최초로 대형 공연장과 50여명으로 구성된 여성 가무단이 새로 창설하기도 했다. 윙 왕조시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후에 궁중음악은 뜨득 (Tu Duc) 황제 (1840-1883)때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탁월한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한 곡들이 창작되었으며 이 곡들은 빈팡 (Vinh Phan), 호앙쑤엉한 (Hoang Xuan Han) 등 대학자들에 의해 지금껏 수집, 분류, 보관되고 있다. 1885-1945년; 쇠락기 프랑스 군이 베트남 남부와 북부를 차례로 공략하던 시절 후에 음악은 급격히 쇠락한다. 탄타이 (Thanh Thai 1889-1925), 카이딘 (Khai Dinh, 1916-1925) 황제는 겨우 명맥을 이어나가던 후에 음악은 1945년 8월 31일바오다이 (1933 -1945) 황제가 폐위당하고 윙 왕조 시대가 막을 내리자 후에 궁정음악도 잠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45 - 1993년; 회복기 1969년 쩡방케 (Tran Van Khe), 윙흐우바 (Nguyen Huu Ba) 교수 등이 그 소리를 녹음하여 프랑스, 영어, 독일어로 세계 각국에 후에 음악을 소개하자 1970년 프랑스 한림원에서 주목하는 등 당시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게다가 1970년에는 윙흐우바 교수가 이끄는 음악단이 오사카 엑스포 공연장에 초청되어 세계걸작 문화유산으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었다. 1981년 유네스코 회장 Amadou Matar은 후에를 방문하여 이곳의 문화 유적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이후 1993년 12월, Faderico Mayor 유네스코 회장은 고도 후에의 역사문화 유적지를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공포했다. 이어 2003년 11월 7일 Koichiro Matsura 회장은 마침내 후에 궁정음악을 세계무형 문화유산으로 선포했다. 당시 Matsura 회장은 “후에 궁정음악이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걸작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후에 궁정음악이야말로 베트남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영원히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럽고 귀중한 인류공동의 보물”이라며 후에궁중음악을 높이 평가했다. 참고 : 후에 궁정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은 쩡 (Tran) 왕조 혹은 그 이전 시대부터 이미 사용해오던 후에의 대표적인 궁중 악기 가운데 하나인 당짠 (Dan Tranh, 베트남 식 가야금 - 한국의 가야금이나 거문고에 비견되는 Kinh 족의 전통악기로 줄이 16개라 텁룩 (Thap Luc, 16이란 뜻)으로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세로 110cm~120cm, 가로는 25~ 30cm 정도), 비엣 (Viet)족 전통악기 당응윗 (Dan Nguyet - 재료는 나무이며 몸통은 지름 30cm 정도의 둥그런 형태다. 기타처럼 소리를 튀기며 음을 창조해낸다.), 심금을 울리는 일현금(一絃琴) 단버우 (Dan bau - 각종 베트남 전통 악기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악기로 현재 베트남 민족 문화음악의 일급보물로 평가된다. 누구든지 그 부드럽고 감미로운 연주소리를 한 번 들으면 죽을 때까지 잊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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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후에 궁정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은 쩡 (Tran) 왕조 혹은 그 이전 시대부터 이미 사용해오던 후에의 대표적인 궁중 악기 가운데 하나인 당짠 (Dan Tranh, 베트남 식 가야금 - 한국의 가야금이나 거문고에 비견되는 Kinh 족의 전통악기로 줄이 16개라 텁룩 (Thap Luc, 16이란 뜻)으로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세로 110cm~120cm, 가로는 25~ 30cm 정도), 비엣 (Viet)족 전통악기 당응윗 (Dan Nguyet - 재료는 나무이며 몸통은 지름 30cm 정도의 둥그런 형태다. 기타처럼 소리를 튀기며 음을 창조해낸다.), 심금을 울리는 일현금(一絃琴) 단버우 (Dan bau - 각종 베트남 전통 악기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악기로 현재 베트남 민족 문화음악의 일급보물로 평가된다. 누구든지 그 부드럽고 감미로운 연주소리를 한 번 들으면 죽을 때까지 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