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______________ 詩 산책

바람의 집(겨울 판화 01) ~ 너무 큰 등받이 의자(겨울 판화 07) / 기형도 詩 7편

작성자운주사|작성시간20.02.05|조회수337 목록 댓글 0




바람의 집 - 겨울 판화 01

                  
      기 형 도 (1960~1989)


   내 유년 시절 바람의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 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도시의 눈 - 겨울 판화 02

                  
      기 형 도 (1960~1989)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우 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사방으로 인적이 끊어진 꽃밭, 새끼줄 따라 뛰어 가면 썩은 꽃잎들이 모여 울고 있을까.

     우리는 새벽안개 속에 뜬 철교 위에 서 있다. 눈발은 수 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하구로 뛰어 가고 너는 말했다. 물이 보여, 얼음장 맡으로 수상한 푸른 빛.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그대 소중한 웃음, 안개 속으로 물빛이 되어 새떼가 녹아드는 게 보여? 우리가











  성탄목 - 겨울 판화 03

                  
    기 형 도 (1960~1989)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다
그것뿐이다

오늘은 왜 자꾸만 기침이 날까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야
방안이 너무 어두워
한 달 내내 숲에 눈이 퍼부었던
저 달력은 어찌나 참을성이 많았던지
바로 뒤의 바람벽을 자꾸 잊곤 했어
성냥불을 긋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이야, 난 참으려 애썼어
어느새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네
그래, 고향에 가고 싶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지만
사과나무는 나를 사로잡았어
그 옆에 은박지 같은 예배당이 있었지
틀린 기억이어도 좋아
멀고먼 길 한가운데
알아? 얼음가루 꽉 찬 바다야
이 작은 성냥불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어머니는 나보고
소다가루를 좀 먹으라셔
어디선가 통통 기타 소리가 들려
방금 문을 연 촛불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참, 그런데
오늘은 왜 아까부터











삼촌의 죽음 - 겨울 판화 04

                  
    기 형 도 (1960~1989)


   그 해엔 왜 그토록 엄청난 눈이 나리었는지. 그 겨울이 다 갈 무렵 수은주 밑으로 새파랗게 곤두박질치며 우르르 몰려가던 폭설. 그때까지 나는 사람이 왜 없어지는지 또한 왜 돌아오지 않는지 알지 못하였다. 한낮의 눈보라는 자꾸만 가난 주위로 뭉쳤지만 밤이면 공중 여기저기에 빛나는 얼음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어른들은 입을 벌리고 잠을 잤다. 아이들은 있는 힘 다해 높은음자리로 뛰어올라가고 그날 밤 삼촌의 마른 기침은 가장 낮은 음계로 가라앉아 다시는 악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밤을 하얗게 새우며 생철 실로폰을 두드리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쥐불놀이 - 겨울 판화 05

                  
  기 형 도 (1960~1989)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대보름의 달이여
올해에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불 속에 숨어 있는 걸요?
돌리세요, 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꿩을 위해
돌리세요, 술래는 잠을 자고 있어요
헛간 마른 짚 속에서
대보름의 달이여
온 동네를 뒤지고도 또
어디까지?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램프와 빵 - 겨울 판화 06

                  
기 형 도 (1960~1989)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너무 큰 등받이 의자 - 겨울 판화 07

                  
     기 형 도 (1960~1989)


너무 큰 등받이 의자 깊숙이 오후, 가늘은 고드름 한 개 앉혀놓고 조그만 모빌처럼 흔들거리며, 아버지 또 어디로 도망치셨는지. 책상 위에 조용히 누워 눈뜨고 있는 커다란 물그림 가득 찬란한 햇빛의 손. 그 속의 나는 모든 것이 커 보이던 나이였다. 수수밥같이 침침한 마루 얇게 접히며, 학자풍 오후 나란히 짧은 세모잠. 가난한 아버지, 왜 항상 물그림만그리셨을까? 낡은 커튼을 열면 양철 추녀 밑 저벅저벅 걸어오다 불현듯 멎는 눈의 발, 수염투성이 투명한 사십. 가난한 아버지, 왜 항상 물그림만 그리셨을까? 그림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는 물 묻은 손을 들어 눈부신 겨울 햇살을 차마 만지지 못하였다. 창문 밑에는 발자국 하나 없고 나뭇가지는 손을 베일 듯 사나운 은빛이었다.
아버지, 불쌍한 내 장난감
내가 그린, 물그림 아버지







기 형 도


○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중 막내로 출생
○ 1979년 연세대학교에 입학.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하

     여 문학수업을 시작
○ 1980년 대학문학상 박영준 문학상에 <영하의 바람> 가작 입선
○ 1982년 대학문학상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식목제> 당선
○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 당선
○ 1989년 3월 7일 새벽 뇌졸증으로 사망
▲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짧은 여행의 기록>,
▲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전집 <기형도 전집> 등



  4 Beautiful Soundtracks | Relaxing Piano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