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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 詩 산책

봄 / 이 정 훈『경향신문/詩想과 세상』

작성자운주사|작성시간20.03.15|조회수59 목록 댓글 0




          봄

                  
     이 정 훈 (1967~ )



하루 식전엔 누가 대문 밖을 서성거리기에 문 빼꼼 열고 봤더니 그 눈치 없는 것, 봉두난발에 흙발로 샐쭉 깡통 내밀데요 언제 동네를 한바퀴 돌았는지 흰쌀에 노랑 조, 분홍 수수, 자주 팥 없는 것이 없는데 그냥 보내기 뭣해서 보리 싹 한줌 얹어주었지요 고것이 인사도 없이 뒤꿈치를 튀기며 가는데 멀어질수록 들판은 무거워지고 하늘은 둥둥 가벼워지고 먼 개울가에선 버들강아지 눈 틔우는 소리 들려왔어요 참 염치도 없지, 몽당숟갈 하나 들고 따라가고 싶더라니까요






         -『경향신문/詩想과세상』2020.03.15.-



    이 시에서는 구걸을 하러 온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의 추레한 행색보다는 그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얻어온 것들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뭘까. 흰쌀과 조와 수수와 팥 그리고 보리 싹 한 줌에 눈길이 먼저 가는 것은 아마도 파종을 하는 봄이 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노는 땅 없이 땅을 갈고, 종자를 파종하고, 또 여기저기서 새순이 푸른빛으로 움트는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몽글몽글한 버들강아지에 봄볕이 곱고, 뒷산에 진달래가 피고, 들에 쑥이 돋는 봄이다.

    봄이 왔지만 새싹과 꽃을 볼 여유가 도통 없는 요즘이다. 하지만 봄은 우리 앞에 쌓인, 불안과 고통의 언덕을 넘어 우리의 마음으로도 머잖아 들어올 것이다. 우리의 마음 바구니에도 파릇파릇하고 향긋한 봄이 얼른 담겼으면 한다.


    



           < 문태준 / 시인. 불교방송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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