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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복
그 방에 오래 있다 왔다 거기서 목침을 베고 누운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우는 것 같았고 그저 숨을 쉬는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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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낱말의 어원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살다’, ‘사르다’에서 ‘살’과 앙/엉이 결합되어 ‘살앙/살엉’이 사랑으로 변화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는 일/살아가는 일이다. 이 사는 일에 잠복해 있던 비가 내린다. ‘비가 온다 여보’라고 부르는 시인의 입말엔 ‘오래 된 아내처럼 굴고 싶어지는’ 시간의 신비가 생긴다.
신이 없어도 인간은 무의미에 짓눌리지 않도록 어떤 기념물을 세운다. 사랑이라는 자루를 뒤집어쓰고 나는 서로의 당신이 되었다. 나의 심장을 그렸고 새벽 흐릿한 빛 속에서 끓는 심장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빛났다. 늑골 사이로 뚫고 나오는 그 심장의 빛으로 나를 짓이겨서 나의 당신, 진흙 얼굴을 만든다. 이제는 심장도 얼굴도 아닌 이름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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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방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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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죽일 수 있는 사랑이 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생명이며 호흡이다. 다시 찾아오는 미래에 자리 잡은 과거의 시간이다.
마음은 신체에, 신체는 빈방에 들어 있다. 혼자인 것은 몸이다. 함께 있던 사람의 몸은 베개를 눌러 놓고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엔 아침밖에 없고 저녁은 그저 텅 빈 저녁일 뿐이다. 빈 방에 다시 온 '한 사람'은 그리움이 불러낸 환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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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시집 〈연애의 책〉 삼인/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