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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 詩 산책

[[詩]]잠복(外 1편) / 유진목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

작성자운주사|작성시간22.03.15|조회수60 목록 댓글 0
사진 〈Bing Images〉





잠 복



유 진 목 (1981~ )



그 방에 오래 있다 왔다 거기서 목침을 베고 누운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우는 것 같았고 그저 숨을 쉬는 건지도 몰랐다

부엌에 나가 금방 무친 나물과 함께 상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방에 있자니 오래된 아내처럼 굴고 싶어진 것이다 일으켜 밥을 먹이고 상을 물리고 나란히 누워 각자 먼 곳으로 갔다가 같은 이부자리에서 깨어나는 일

비가 온다 여보

당신도 이제 늙을 텐데 아직도 이렇게나 등이 아름답네요

검고 습한 두 개의 겨드랑이

이건 당신의 뼈

그리고 이건 당신의 고환

기록할 것이 많았던 연필처럼

여기는 매끄럽고 뭉둑한 끝

어떻게 적을까요

이불 한 채
방 한 칸

갓 지은 창문에 김이 서리도록 사랑하는 일을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2.03.15. -












‘사랑’이라는 낱말의 어원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살다’, ‘사르다’에서 ‘살’과 앙/엉이 결합되어 ‘살앙/살엉’이 사랑으로 변화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는 일/살아가는 일이다. 이 사는 일에 잠복해 있던 비가 내린다. ‘비가 온다 여보’라고 부르는 시인의 입말엔 ‘오래 된 아내처럼 굴고 싶어지는’ 시간의 신비가 생긴다.

매끄럽고 뭉둑한 연필의 끝으로 어떻게 적는가에 따라, 이 세상의 사랑은 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등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일은 ‘갓 지은 창문에 김이 서리도록 사랑하는 일을’처럼 고요하나 격정적이다. 놀라워라. 이런 사랑이여. 그런 사랑이여.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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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어도 인간은 무의미에 짓눌리지 않도록 어떤 기념물을 세운다. 사랑이라는 자루를 뒤집어쓰고 나는 서로의 당신이 되었다. 나의 심장을 그렸고 새벽 흐릿한 빛 속에서 끓는 심장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빛났다. 늑골 사이로 뚫고 나오는 그 심장의 빛으로 나를 짓이겨서 나의 당신, 진흙 얼굴을 만든다. 이제는 심장도 얼굴도 아닌 이름을 빚는다.

다정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단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던 그 이름이 진흙판 위에 새겨진다.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지난날들을 기억한다. 몸에는 뇌만큼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란히 누워 각자 먼 곳으로 갔다가 같은 이부자리에서 깨어나는 일”, 사랑은 이렇게 기억된다.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나는 가장 멀리에 있다.



〈황경숙 시인〉














사진 〈Bing Images〉





신체의 방



유 진 목 (1981~ )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보았다
한 사람이 가고 여기 움푹 패인 베개가 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될 거요
그러나 여기 한 사람이 오고 반듯한 베개가 있다
저녁에는 일어나 저녁을 보았다
나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도 없었다
금방 또 저녁이 오고 있었다




- 시집〈연애의 책〉-












여기 죽일 수 있는 사랑이 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생명이며 호흡이다. 다시 찾아오는 미래에 자리 잡은 과거의 시간이다.
마치 종이가 물속에서 녹아버리듯 내가 나에게 잠긴다. 되돌아온다. 오래전부터 미래에도 있을 사랑의 원소, 그리움의 리좀(Rhizome).



〈황경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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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신체에, 신체는 빈방에 들어 있다. 혼자인 것은 몸이다. 함께 있던 사람의 몸은 베개를 눌러 놓고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엔 아침밖에 없고 저녁은 그저 텅 빈 저녁일 뿐이다. 빈 방에 다시 온 '한 사람'은 그리움이 불러낸 환영이리라.
반듯한 베개는 한스럽지만 오지 않은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죽을 듯 사랑할 수밖에. 앓는 몸에서 스며 나온 마음은 비린데도 상한 기운이 없다. 신체의 방은 사랑의 깊은 방이다. 황진이가 현대에 오면 이런 시를 쓰지 않을까.





〈이영광 시인 /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chain of hearts by kavin hoo

유진목 시집 〈연애의 책〉 삼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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