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______________ 詩 산책

[[詩]]글쓰기의 어려움 『문화일보/유희경의 시:선(詩:選)』 '어디로 갈지 몰라 달팽이에게 길을 물었어요’ / 임수현

작성자운주사|작성시간22.03.16|조회수82 목록 댓글 0
사진 〈Bing Images〉




  글쓰기의 어려움
『문화일보/유희경의 시:선』2022.03.16.




어제도 오늘도
한 줄도 쓰지 못한 잎사귀는 아무렇게 낡아가요
초심이란 조바심과 같아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부를 때 쓰는 말일까요
(···)
슬픔을 잘 적으면 잎맥처럼 반짝인다. 문장을 보고
오늘은 어디든 가보겠다고 했지만



- 임수현 詩
『어디로 갈지 몰라 달팽이에게 길을 물었어요』中
- 詩 集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걷는사람/2021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직업을 밝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도리 없이 긴장하곤 한다. 시인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나, 남다른 것도 사실이다. 내 대답을 들으면 그렇군요! 하고 감탄한 다음, 무언가 떨어뜨린 사람처럼 다음 말을 찾느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에 관한 경험이나 생각을 풀어놓는 사람도 있다. 학창 시절 기억에 남은 시, 알고 지내는 시인 이름, 시인의 생활고까지 대화의 소재는 많고 전형적이다.

어떤 이들은 부러워한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시겠네요, 하는 식이다. 책도 많이 ‘읽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시인이요 작가겠으나, 그렇게 대답했다간 종일 부연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네, 잘 씁니다, 하기는 어려우니 나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렇다. 노력한다. 특히 쓰기에 관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의 시인 수는 어림잡아도 아주 많을 텐데, ‘아주 많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어찌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매번 막막하다. 나름 읽고 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시는 그리고 글은 늘 어렵고 쓰기 괴롭다. 이제, 술술 적히는 것까진 아니어도 서너 줄쯤은 거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번 처음으로 돌아간다. 머릿속은 앞에 놓인 백지처럼 새하얗고, 손은 난생처음 글을 쓰는 사람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남우세스러워 어디서도 말 못할 비밀이다. 어디 나만 그럴까. 전 세계 모든 문필가는 같은 경험 중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어디로 갈지 몰라 달팽이에게 길을 물었어요' 全文



임 수 현



어제도 오늘도
한 줄도 쓰지 못한 잎사귀는 아무렇게 낡아가요
초심이란 조바심과 같아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부를 때 쓰는 말일까요

다른 잎들은 다 싱싱해서
슬픔 같은 건 애초 없었던 것 같은데

슬픔을 잘 적으면 잎맥처럼 반짝인다. 문장을 보고
오늘은 어디든 가보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찾아간 병원은 임시휴일이고
밤은 온몸이 간지러워 이곳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죠

현수막은 한 줄로 말하는데
한 줄을 적었다 두 줄을 지우는 일
한여름에 눈사람을 굴리는 일
우산을 잃어버리고 우산 끝에 매달린 빗방울을 그리워
하는 일
밤을 틈타 돋아나는 소름 같은 걸 적어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조급하게 흔들린다지만
약봉지만 한 햇빛 따라 걷는 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발끝에 매달린 달팽이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한 발을 들고 걷느라
조그마한 그늘도 만들지 못했는걸요

소멸을 불면으로 불러보는 이런 밤에는
붉은 눈알을 바닥으로 툭툭 던져 볼까 봐요






〈임수현 시인〉


△ 경북 예천 출생. 계명대 문예창작과 석사.
2017년《시인동네》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16년《창비어린이》동시 부문 신인문학상, 제7회 문학동네 동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Yo-Yo Ma, Kathryn Stott - Romance for Cello and Piano

임수현 시집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걷는사람 | 2021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