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화수분이 있는 줄 알았다
철부지 때 졸라대면
다 나왔으니까
자전거 탈 때처럼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는데
뒤에 앉아 콧노래만 불렀다
쌩쌩 달리는 동안
숨소리가 시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서야 페달을 밟으며 알았다
그 보물단지는 눈물이었다는 것을
- 서울 지하철역(교대역, 답십리역, 강일역)에 게시
- 시 전문 계간지『계간문예』2023 -
사진 〈Bing Image〉
어 울 림
권 영 하
나무도 옮기면 스스로 몸살을 이겨낸다
잎이 무거우면 좀 떨구면서
뿌리로 손을 내밀어 땅을 꼬옥 껴안는다
어려울수록 더 힘껏 부둥켜안는다
지지대가 없어도 왜바람을 이기고
온몸으로 햇빛살을 받아 자리를 잡는다
밤에는 손끝으로 별빛까지 모아가며
비가 오면 잎을 펼쳐 물을 몸쪽으로 보낸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며 뒤엉켜
그곳의 산과 숲이 되어간다
- 시 전문 계간지『계간문예』2023 -
사진 〈Bing Image〉
개 혁
권 영 하
도배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낡은 벽은 기존 벽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 버짐으로 자랐다
벽지를 그 위에 새로 바를 수도 없었다
낡고 얼룩진 벽일수록 수리가 필요했고
장판 밑에는 곰팡이꽃이 만발했다
합지보다 실크벽지를 제거하는 것이
힘들고 시간도 더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사하거나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없었기에
낡아 헐어있는 벽을 살살 뜯어내고
새 벽지로 재단해서 붙였다
습기는 말리고 울퉁불퉁한 곳에는 초배지를 발랐다
못자국과 상흔이 남아 있었지만
잘 고른 벽지는 벽과 천장에서 환하게 뿌리를 내렸다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올랐기에
때 묻고 해진 곳은 꽃밭이 되었다
갈무리로 구석에 무늬를 맞추었더니
날개 다친 나비도 날아올랐다
방 안이 보송보송해졌다
-『신춘문예당선시집』문학세계사,『문장웹진』사이버문학광장 -
사진 〈Bing Image〉
두 더 지
권 영 하
십 년 동안 방에 담겨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서일까 중2부터
방문은 두꺼운 벽이 되었다
엄마도 문 앞에 동그스름 앉은
빈 그릇을 보고
문 닫힌 목숨이 살았음을 짐작할 뿐
메인보드 같은 도시에서 그는 두더지가 되었다
이불을 돌돌 말아
방에 굴과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쾅쾅 노크와 가족의 한숨도
입다문 방문을 열지 못했다
날마다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마우스로 벽을 탔고, 모니터 안으로 기어들어가
심연의 창을 수없이 열고 닫았다
마우스에서 손은 자랐고
손은 자라 곤궁한 몸이 되었다
널브러진 방에는, 간간이 랩만이
구두덜대며 뛰어다녔다
해수를 채운 잠수정으로 인터넷을 헤엄칠 때
모니터는 잠망경이고 마우스 불빛은 등대였다
사실 두려운 건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 〈2019 신춘문예당선시집〉문학세계사 / 현대시문학 (2019)
Ho Capito Che Ti Amo (Solo Piano) · Fariborz Lachini · Luigi Te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