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______________ 詩 산책

[[詩]]사과를 베어 물다 / 박설희

작성자운주사|작성시간25.03.13|조회수113 목록 댓글 0
사진〈Pinterest〉





사과를 베어 물다



박 설 희



 사각, 밝게 웃으며 한 입 베어 문다
 어제 마음의 준비를 하라잖아, 온통 헐은 대장 어디선가 피가 터져 발만 동동 구르는데 급사할 수도 있다고

 과육이 으깨지는 소리가 나며 입 주위로 과즙이 번진다
 응급실이든 중환자실이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게 일상이야, 어제도 의사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어

 창백한 입술이 촉촉이 젖어들며 혀와 말의 길이 부드럽다
 바로 옆 침대가 비어 있어서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갔다고 그래,
 집에 갔느냐고 했더니 돌아갔다고, 처음 온 곳으로 갔다고

 입 안 가득 베어 문다, 대학병원에서 혈액암으로 이 년째 투병 중인 아이를 둔 엄마가 희망을 베어물듯 사가사각 맛나게 사과를

 사과는 줄어들고 입 안의 물기는 많아지고 사과향이 점차 주변에 퍼지면서 으깨지는 사과는 말이 되고, 활기가 되고, 희망이 되어 스며들고

 어제도 같은 중환자실에서 둘이나 갔지만, 그래도 우리 애는 살아있어

 멍든 것첢 시퍼런 사과를 마지막 베어 물고 으적으적 씹다가 꾹꺽 삼키고 자리를 털며 일어난다,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며



- 시집〈가슴을 재다〉푸른사상







  Alice Sara Ott - Field: Nocturne No. 9 in E Minor, H. 46

박설희 시집 〈가슴을 재다〉 푸른사상 / 2021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