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왜 잔소리를 하는가가?”
결혼의 끝은 결국 사별이거나, 이혼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관계다.
한때는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처럼 사랑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흐르면 서로를 가장 많이 한숨 짓게 만드는 존재가 되니 말이다.
부부는 대개 행성 충돌 같은 거대한 사건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설거지 바로바로 하면 어디 덧나요?”
“양말을 왜 또 이렇게 휙 벗어서 던져 놨어요?”
“내 말, 듣는 시늉이라도 좀 해봐요.”
결국 관계를 흔드는 것은 혁명이나 전쟁이 아니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 몇 개, 덜 마른 젖은 수건 하나,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피로다.
젊은 날에는 사랑이 오직 낭만으로만 유지되는 줄 알았다.
함께 좋은 음악을 듣고, 손을 맞잡고,
예쁜 카페에 마주 앉아 있는 것만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래 살아보니 부부의 사랑은
의외로 아주 초라하고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 무심한 말속에,
밤늦게 귀가하는 이를 기다리며 켜둔 거실의 불빛 속에,
그리고 무엇보다 끝없이 반복되는 잔소리 속에 말이다.
가만히 짚어보면 사람은 관심 없는 존재에게 결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길가는 낯선 이의 양말이 뒤집혀 있다고 한마디 보태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이 밥을 거르든, 약을 거르든, 밤새 술을 마시든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며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셨어요?” 하고 툭 던지는 그 말조차,
실은 수십 년간 쌓여온 깊은 관심의 습관일지 모른다.
잔소리는 어쩌면, 식어가는 관계에 남은 마지막 체온 같은 것이다.
“왜 그렇게 씻지도 안 해요?”
“아프면 제발 병원 좀 가요.”
“그 나이에 그렇게 달고 짜게 먹으면 어떡해요.”
듣는 이는 귀찮고 성가시지만, 사실 그 말의 밑바닥에는 늘 하나의 문장이 숨어 있다.
‘당신, 나와 오래 살아야 해.’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겐 아직 당신이 필요해.’
물론 모든 잔소리가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이기적인 지배욕이기도 하고, 오랜 습관이거나,
그저 낱낱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일 때도 있다.
그러나 세월의 끝자락에 살아남는 많은 잔소리는,
결국 ‘관심’이라는 말을 민망하지 않게 바꾸어 부르는 그들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진짜 외로움은 홀로 남겨진 공간에서 오지 않는다.
나를 기억하고 염려해 줄 사람이 사라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약 챙겨 먹었느냐고 채근하는 사람, 늦으면 왜 늦었냐고 잔뜩 찌푸릴 사람,
설거지 안 해뒀다고 눈총을 줄 사람마저 사라진 순간,
인간은 비로소 삶의 깊은 적막 속으로 침잠한다.
평생을 티격태격하면서도 끝내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들이 아름다운 건 그 때문이다.
서로 싸우는 그 아웅다웅한 힘마저도 살아 있는 관계의 증거이니까.
그리하여 어느 날 문득,
“잔소리 좀 그만하라”며 방문을 닫아버리던 사람은,
정작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집 안에서,
사무치도록 그 잔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낯선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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