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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장: 4~7절 “그 목자가 바로 나입니다.”

작성자소치영 목사|작성시간26.06.05|조회수70 목록 댓글 2

눅15장: 4~7절
“그 목자가 바로 나입니다.”
 
세계 2차 대전중 네명의 형제를 잃은 한 가정의 사정을 알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찾아 주고자 여덟 명의 특수대원이 동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이언 일병구하기"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국가가 한 가정과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그 책임을 다 하는가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한 유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영혼을 살리고자 이 땅에 가장 위대한 특수부대원이신 예수님을 보낸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저는 어릴 때 송아지를 키우다 잃어버려서 온 동네를 다 돈 적이 있는데요. 정말 가슴이 터져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는 집안의 전 재산과도 같았거든요. 그런데요. 다른 것은 잊어버리거나 다시 찾으면 되는데 사람을 잃어버리면 그 아픔이 평생 가슴에 남아요. 이게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잃어버려도 사람만은 잃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1. ppt 잃은 양을 찾는 모습
잃어버림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할 때 유대라는 지역에선 목자가 양을 잃은 것을 설명하는 것만큼 마음에 빨리 와닿는 게 없기에 하나님은 오늘 잃은 양을 등장시키고 그 양을 찾는 목자를 등장시켜 설명하신 줄 믿습니다.
 
잃은 양은 직접 키워 본 목자입장에선 그 허탈감과 상실감이 엄청날 겁니다.

2 ppt 원어 설명

"잃은 양"이란 낱말 자체가 아폴롤로스(ἀπολωλός)라고 하는데요. 원래 이 동사의 원형은 ἀπόλλυμι (아폴뤼미)라고 읽습니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잃어버렸다.” 의미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멸망한다.” “파괴된다.” “죽음에 이르다.”라는 의미가 같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길을 잃은 양"이 아니라는 것이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물론 자신은 조금 있다가 죽을지도 모르고 절벽을 향해 갑니다. 물론 그 밑에는 사나운 짐승이 기다리고 있고요.
 
자, 이것을 내 자식, 내 사랑하는 자에게 대입해 봅시다. 이렇게 대입해서 생각해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 쪽에서는 자식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견딜 수 없는 내 새끼와 같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스러운 내 자식이 그냥 죽어가도록, 아니 죽음을 향해 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앉아서 바라만 보고는 있을 수 없죠. ‘잘 있다 돌아오겠지’ 하는 여유로운 생각으로 기다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도록 찾는다는 긴급한 표현, 간절한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3.ppt 산비탈, 절벽, 사나운 짐승
유대라는 지역은 유독 산과 돌산이 많습니다. 돌산이 있다는 것은 절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곳을 뒤진다!’ 목자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산비탈에서 구른 적이 있는데 그때 다친 곳이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목자는 혹시 하고 거기까지 가 볼 것입니다. 깊은 골짜기, 가파른 비탈, 양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몇 시간 안에 낭떠러지에 추락할 수도 있어 그의 발걸음은 여행하듯이 다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니까요?
더군다나 양의 냄새를 맡는 즉시 사나운 늑대와 짐승들이 쏜살같이 달려올 것을 생각하면 목자의 가슴은 더욱 초조해질 것입니다.
 
유대 같은 산악과 광야 지역에서 목자가 하루 동안 돌아다닐 수 있는 이동 거리는 15~25km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는데요. 이 거리를 뛰어다니듯 이를 잡듯이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에 못 찾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집으로 왔다가 언제 다시 찾아 나서겠습니까? 그러니 바위틈이나 동굴 같은데 잠시 피해 쪽 잠자다가 다시 찾아 나서는 모습이 오늘 찾도록 찾기까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수고를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잃은 양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잃은 양이니 내 책임이 아니잖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오다가 머물러 풀을 뜯다가 잃을 수도 있을 것이고, 여타 무리를 놓쳐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굳이 목자만을 탓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단서가 붙습니다. 길잃은 양입니다.
자기가 나갔던, 잘못 방향을 틀어서 양 무리를 놓쳤던 어쨌든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한 양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아무리 살펴봐도 자 잘못을 따지는데 초점이 있지 않더라고요.
목자가 실수해서 나갔다든지, 양이 쫓아오다가 무리를 놓쳤다든지 내용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누구의 실수를 논하려는 의도가 아닌 현재 무리와 따로 떨어져 고통스러운 가운데 놓여 있는 양만을 집중하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4. ppt 울고 있는 양모습
그 양이 얼마나 외롭겠냐?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함으로 인해서 고독하고 위태로운 양에게 제발 주목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양이 홀로 있을 때 얼마나, ‘외로울까!’ ‘무섭고 위태로울까!’에만 초점을 둔 것이고, 유일하게 그 양을 구하고 원래의 자리에 돌아와서 양 무리와 함께 예전처럼 즐겁고 웃음꽃 피우는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무엇일까! 초점을 맞추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 유일한 길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양은 스스로 찾아오기 어렵습니다. 양은 10미터 이상 앞을 바라보기 어렵다고 하네요. 대신 목소리로 구분하는 데 이미 멀리 떨어진 목자의 음성을 듣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나운 짐승 소리를 들을 때 치솟는 스트레스와 공포가 분간을 더욱 어렵게 해서 낭떠러지 등으로 떨어지거나 주저앉아 날짐승의 밥이 되게 합니다.
 
이러한 양에게 유일한 희망은 찾아와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을 가장 잘 알고 편안을 줄 자기 목자가 찾아와 주는 일만큼 안전한 게 없습니다. 물론 다른 목자도 찾아와 주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자는 구해 줘도 자기 것으로 삼든지 아니면 내 양이 아니니 파티를 위해서 그 양을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 나서도 자기 목자, 목동이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내 목소리, 내 채취를 가장 잘 아는 관계, 나 역시 그 양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기에 내가 가야 그 양이 안심하고 환영하는 그러한 관계를 가진 자가 찾아 나서는 것이죠.
 
그게 누구겠습니까?
요10장에 선한 목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여야 합니다.
 
같이 합시다. 선한 목자

5. ppt 요10:11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100 프로 선한 목자는 예수님밖에 없지요. 그런데 선한 목자가 어떤 분이 선한 목자냐? 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선한 목자입니다.
요10: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서 목숨을 버리러 오셨음을 밝힙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더라고요. 예수님은 목숨 걸고 우리를 구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진짜 목숨을 건 게 아니라 바쳤지요.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렇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마음 놓고 예배드리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면 우리 역시 목숨 걸고 잃은 양인 영혼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그냥 찾는 게 아니라, 목숨 걸고 찾아야 한다는 데 문제입니다.
 
과연 내가, 목숨 걸고 영혼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어떠세요? 목숨 걸고 찾는 게 과연 될까요? 그래서 몹시 예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집식구, 내 가족이라면 그게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찾아보니까, 양은 내 목소리를 ”알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 그래서 가능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비록 쓰기는 헬라어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는 유대인들이 쓰는 히브리어로 말씀했으니까, 이 말은 「야다」란 말입니다. 그럼 이것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가족관계에서 쓰는 말이니 가족처럼 양과 목자는 서로 없이는 죽고, 못사는 관계이고, 잃어버리면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99마리는 들에 두고 그 내 새끼 같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99마리가 소용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99마리도 이 잃은 한 마리처럼 똑 같이 소중한 양입니다. 그래서 그중의 어떤 양 하나를 잃어도 똑같은 심정으로 찾아 나설 것입니다. 유일하게 우리 가슴에서 부딪히길 바라는 말씀은 "한 마리도 포기하지 않겠다." 라는 사랑, 책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나 여러분이 이러한 한 마리의 양이 되어도 그렇게 하셨을 것이고, 옆에 계신 그 누구라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내 옆에 있어야 할 그분 그런데 지금은 없는 그분 잃은 양 같은 그 성도님 그 형제님 자매님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생각 안 드세요?
5.ppt 함께 찾고 기뻐하는 모습

그 목자가 지금 내 남편, 내 자식이라고 칩시다. 그들이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면 과연 나는 “잘 다녀오세요. 하고 손만 흔들까요?”
아마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찾던지, 적어도 주변만큼은 같이 찾아다녀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핀 주제는 잃은 양이 아닙니다. 그것을 찾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함께 찾아 나섭시다.
함께 그 심정을 가지고, 찾아 나서든지, 돕던지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같이 동행, 차마시기 식사하기등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합니다.
예수님 같은 선한 목자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함께 잃은 영혼을 찾는 심정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그렇게 하겠사오니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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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닉네임을 등록해 주세요 | 작성시간 26.06.06 주님을 닮길 원하고 원합니다
  • 작성자소치영 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6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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