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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2) 행 5:33~42

작성자yoonyeong choi|작성시간26.06.18|조회수26 목록 댓글 0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2) 5:33~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결국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말도 있고, 세상의 말도 있고, 내 감정의 말도 있고, 두려움의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의 기준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5장 앞부분에서 사도들은 공회 앞에 끌려왔으나 이렇게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29절입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멘!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고백 이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사도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말하며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자 공회원들이 분노하며 사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인 사도행전 533절에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크게 노하여 죽이려했다는 겁니다.

같은 설교말씀에 어떤 사람은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공회원들은 같은 복음 앞에서 사도들을 죽이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머리 숙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귀에는 여전히 욕심과 시기, 기득권을 지키려는 마음의 소리가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갈 것인가? 사람의 말, 세상의 말, 사탄의 말, 온갖 유혹의 소리들, 자기입장 자기자존심만을 내세우는 소리, 환경과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두려움과 근심 걱정하는 소리들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1. 가말리엘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

사도들을 죽이려는 분위기가 순식간 공회 안에 가득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하기 시작합니다. 34절입니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며 율법교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훗날 자신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23절입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하지만 가말리엘은 복음의 핵심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로 성경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기 때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회의 살기등등한 분위기 속에서 가말리엘의 신중한 발언을 통해 사도들의 생명을 보호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하삽니다. 하나님은 직접 일하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천사를 보내 옥문을 열기도 하시고, 때로는 믿음의 사람을 보내 돕기도 하시며 때로는 아직 믿음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의 말과 판단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요셉의 삶을 보십시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팔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모함했습니다. 감옥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사건을 엮어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야곱의 가족을 기근에서 살리셨습니다. 요셉의 고백이자 선언입니다. 창세기 50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것이 섭리입니다. 사람은 해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십니다. 사람은 막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길을 내십니다. 사람은 끝났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문을 여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도 공회는 사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말리엘을 일으키셨습니다. 공회 안에 있는 한 사람의 신중한 말이 사도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너무 좁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예상한 방법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대한 사람으로만 역사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방법을 통해 길을 여십니다. 때로는 반대자처럼 보이는 사람의 말까지도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꽉 막힌 길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열어주심이 나타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복음의 진리를 외쳤을 때 로마 가톨릭교회와 제국의 권력이 그를 압박했습니다. 보름스 회의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라는 마지막 요구를 받습니다. 물러서지 않으면 그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양심의 소리를 따라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제 루터는 붙잡혀 처형당할 위기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를 사용하셨습니다. 프리드리히는 공개적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찬성하고 추진한 사람은 아니지만 신중하고 정치적인 인물로서 마르틴 루터가 큰 위험에 처하자, 루터를 바르트부르크 성에 비밀리에 납치당한 것처럼 꾸며 숨겨 주었고, 그곳에서 루터는 독일어 신약성경 번역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은 민중의 언어로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프리드리히는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보존하는 데 사용하신 중요한 정치적 보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프리드리히라고 하는 사람을 사용해 루터가 종교개혁 역사의 문을 열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말리엘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는 완전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사도들을 보호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위기의 순간에도 두려워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눈에는 길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해 두십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213~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할렐루야!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사도들이 공회 앞에 서 있을 때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교회에도, 직장과 사업장 등 여러 사역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본문의 가말리엘을 준비하셨듯이,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도움을 준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의 분노가 아무리 커 보여도 하나님의 손이 더 큽니다. 사람의 계획이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더 강합니다. 우리가 위기 앞에 서 있을 때도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가말리엘은 공회 앞에서 두 가지 사례를 말합니다. 먼저 두다라는 사람이 일어났지만 사라졌고, 또 갈릴리 유다가 사람들을 이끌었지만 그도 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38~39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아멘!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무너뜨릴 수 없겠고.” 여기서 무너지다는 인간의 계획과 운동이 결국 한계에 부딪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야망 사람의 생각으로 시작된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인기 위에 세운 것은 언젠가 식습니다. 사람의 감정으로 시작한 것은 흔들립니다. 사람의 힘으로 세운 것은 사람의 힘이 끝날 때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아멘!

왜 교회와 성경말씀이 2천 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까? 교회가 핍박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하는 세상의 힘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시작부터 핍박받았습니다. 사도들은 감옥에 갇혔고, 채찍질을 당했고, 순교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를 정복한 로마 제국은 교회를 없애려 했습니다. 그 후에도 수많은 권력자 독재자들이 복음을 막고 성경과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지금도 세계각처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18절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028절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연약할 수 있고, 성도들이 부족할 수 있고, 리더들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하나님께로부터 난 복음의 역사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6:9~10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뜻은 설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빌립보서 1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내가 약해도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내가 흔들릴 때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가정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명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복음의 역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물론 흔들릴 수는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눈물의 시간을 지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붙드시면 끝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8~10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망하지 않습니다.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이 믿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 하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인기와 분위기에 의지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24~25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무너지지 않는 비결은 반석 위에 서는 데 있습니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반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반석 위에 선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 주로 다가온 새생명축제를 준비하면서도 우리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어려워 보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전도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능력은 여전히 살아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이 능력이 아니라 복음이 능력입니다. 우리의 설득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사람을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며 전하십시오. 사랑으로 초청하십시오. 눈물로 품으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난 복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3. 예수 이름으로 능욕 받고 기뻐하며 전도하는 사도들

가말리엘의 말로 사도들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끝난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540절입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공회는 사도들을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채찍은 몸을 찢는 고통이었습니다. 등에 피가 흐르고, 살이 터지고, 온몸이 무너지는 고통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이런 수치와 능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41절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보통 사람이라면 억울해했을 것입니다. 분노했을 것입니다. 상처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순종했는데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기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고난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그 고난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받는 고난이기에 그래서 그 고난과 능욕 당함을 영광으로 여긴 것입니다.

여기서 능욕은 헬라어로 수치, 모욕, 멸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합당한 자로 여기심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가치 있는 자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은 고난을 실패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수치를 부끄러움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손해를 어리석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예수님을 위한 고난이 영광이요 상급입니다. 마태복음 511~12절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예수님은 박해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이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자신들도 이제 비로소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3~14절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이 말씀처럼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믿는 것도 은혜이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복음의 역설입니다.

한국교회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가 강요될 때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가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임을 알고 거부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고통을 겪었고, 교회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타협하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가족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의 아내 오정모 사모, 남편이 반복해서 투옥되면서 가정의 생계는 사실상 무너졌고 생활비가 끊겼습니다. 자녀 교육이 어려웠습니다. 주변의 감시와 압박을 받았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가정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오정모 사모는 남편에게 단 한 번도 신사참배를 하고 감옥에서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목사님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했습니다.

후에 장로가 된 아들 주광조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아버지 주 목사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을 때 어린 주광조는 아버지를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겨우 면회 때마다 쇠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야 했고,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당시에는 왜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버지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가정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함으로써 가족에게 가장 귀한 신앙 유산을 남겨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1944년 감옥에서 주기철 목사는 가족을 만났습니다. 이미 고문과 영양실조로 몸이 심하게 상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녀들에게 끝까지 하나님을 잘 믿으라고 권면하며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고 전해집니다. 몇 달 뒤 그는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처럼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한국교회에 엄청난 영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재산을 유산이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유산이라 말씀하십니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가? 편안함의 말을 듣고 있는가? 타협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도 예수를 가르치고 전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전도는 그들의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그들의 입술과 발걸음을 움직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거절당할 수 있습니다. 무시당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도 전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작은 거절 앞에서 너무 쉽게 멈추지는 않았습니까? 한두 번 초청했는데 반응이 없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가족이 듣지 않는다고 기도를 멈추지는 않았습니까?

복음은 우리의 인내를 통해 흘러갑니다. 눈물의 기도를 통해 흘러갑니다. 사랑의 초청을 통해 흘러갑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닫힌 마음도 열립니다. 갈라디아서 6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포기하지 마십시오. 전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사랑을 멈추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결론: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새생명 축제를 앞두고 예안교회가 들어야 할 말은 세상의 부정적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복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붙드시는 성도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도 사도들처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교회가 됩시다. 마지막 날 우리가 들어야 할 음성은 사람의 박수가 아닙니다. 세상의 인정도 아닙니다. 주님의 칭찬입니다.

마태복음 25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이제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두려움의 말보다 믿음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보겠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하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안교회를 붙드시고,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새생명축제 위에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임 받고 생명의 말씀이 힘 있게 전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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