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에베소서 5장 1절 - 4절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에베소 교회는 실제적인 생활에서 심각한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밖에서 오는 환란이나 안에서 자생하는 이단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라기 보다 그들의 생활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함으로 노출되는 경건 생활의 실패가 주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어디가 나쁘다는 자기 비평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배우고 실천에 옮겨야 할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짓말하던 삶을 버리고 그 대신 참된 것을 말하는 삶을 시작하고, 도덕질하던 삶을 버리고 구제하는 삶을 시작하고, 분노 대신에 절제하며, 더러운 말 대신에 은혜로운 말을 하며, 악의에 찬 훼방 대신에 이웃을 향해서 인자하게 대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아직 부족합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우리가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5장부터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얻어지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이야기합니다.
엡 5장 1절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전 구절인 엡 4장 32절과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는(엡 4:32)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며(엡 5:1)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엡 5:2)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본으로 제시하면서 성도들이 그 본을 따라 거룩한 순결과 절제를 통해 그 당시 성행한 모든 이방인들의 악덕을 버리라고 우리에게 교훈 해주고 있습니다.
1380년에 독일인을 부모로 하고 프러시아의 캠펜이라는 지역에서 출생한 토마스 아 켐피스(Thamas Kempis, 1380-1471)라는 사람이『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약 600년이 넘는 이 현대까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하여 경건과 신앙의 도움을 받았던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이 사람은 화란에서 교육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수도사가 되었던 사람으로 기독교 역사뿐 아니라 인류사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그의 불멸의 명작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통하여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당대의 사회 형편을 보면 교황이 한 분이어야 할 로마 카도릭교회에 교황이 둘로 갈라져서 사분 오열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백년전쟁이라고 하는 엄청난 전쟁에 시달려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무서운 흑사병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육신 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암흑기를 맞이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 토마스 아 켐피스는 좌절과 절망 속에 헤매 이는 백성들과 시대가 살아가는 길은 도덕적인 희생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을 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던 중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만이 민족과 나라가 살 뿐 아니라 유럽이 살게 되는 길이요, 구라파가 사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가 사는 길이라고 외치기를 시작하여 마침내『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출판해냄으로 당대에 화란의 종교개혁을 일으킬 만큼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고, 도덕적으로 희생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요구보다 더 엄청난 요구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요구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하면 혹 우리는 부담 없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쓰고 오셔서 우리와 같이 이 세상에 사셨으므로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는 별로 큰 부담을 갖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너희는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습니까?
제한된 인간이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습니까?
이 요구는 인간 편에서 생각을 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요, 인간의 도덕수준과 윤리수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보신 수준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을 요구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위에서 엄청난 책임과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할 것을 보여준 말씀이요, 인간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이상적인 목표를 보여준 위대한 말씀입니다.
아이들은 그 부모를 흉내 냅니다.
아들은 훌륭한 아버지를 본받게 되려고 노력합니다.
딸들은 자랑스러운 어머니를 흉내 내려고 노력합니다.
아들과 딸이 아무리 흉내를 잘 내고 모방을 잘한 다해도 아버지와 같을 수 없고 어머니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처럼 되어질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