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의 코이노니아를 위해 제거해야 할 요소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 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 라.”(엡 5:3-4)
바울사도는 이제 자기 희생(self-sacrifice)에서 그 정반대인 방종(self-indulgence)으로 순수한
“사랑”에서 이것이 오도된 결과인 “욕정”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porneia(포르네이아/음해-illicit sex activity) 및 akatharsia(아카다르시아/ 더러운 것-uncleanness, impurity, filthiness)은 공히 모든 종류의 성적인 죄악, 다시 말해서 하 나님께서 규정해 놓으신 결혼제도 이외의 모든 성적 행위를 포함하는 말입니다.(마 5:32, 15:19, 요 8:41, 살전 4:3)
바울사도는 여기에다가 탐욕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앞에서 말한 두 가지가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육체를 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더욱 타락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제 10계명은 특히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도 모든 형태의 성적인 부정함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빠져들어서도 안될 뿐 아니라, 그에 관한 생각이나 말조차도 삼가함으로써, 그런 것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완전히 추방되도록 해야 합니다.
에베소 도시의 수호신인 헬라 여신 아데미(Artemis, 라틴명은 Diana)는 풍요의 여신으로 간주되 었기 때문에, 그를 숭배하는데는 보통 성적향연이 수반되었던 것입니다.
엡 5:4절은 부도덕한 언어에 관한 교훈입니다.
․누추함(shameful, filthy or obscene speech)이란 추잡함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말(foolish talk, silly talk)은 단순히 어리석고 무가치한 말 이상의 죄성 (罪性)을 띤 말입니다.
․희롱의 말(coarse jesting)은 가장 값싸고 품위 없는 형태의 농담을 뜻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추잡스러운 대화를 하는 가운데서 드러나는 더러운 마음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마땅치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농담을 더러운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의 입술로, 적절하지 못하고, 부정한 농담이나, 의문을 일으킬만한 이야기를 퍼 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으로 맛을 고르게 함같이 말해야”합니다.(롬 4:6)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습관적으로 살며, 고의로 거짓말을 하며 허탈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바 로 “불순종의 아들들”(엡 2:1-10)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돌이켜 감사한 말을 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언어가 본질상으로 자기 중심적임에 반해서 감사하는 말은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본질상 감사함은 부도덕한 언어의 분명한 내용물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부도덕한 말과 감사하는 말을 서로 명백하게 대조되는 것, 즉 성에 대한 이방인의 태도 및 기독교인의 태도로서 취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도덕한 말을 싫어하며 피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性)에 대한 그릇된 견해 를 가지고 있다거나,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성(性)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것이 값싸게 취급되 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성(性)을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지, 이를 희롱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그 가치를 잘 보존하는 길이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본받는 마음이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를 하십니까?
당신은 코이노니아를 행함에 있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