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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어성초꽃 필 무렵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05|조회수18 목록 댓글 0

어성초꽃 필 무렵

초여름 햇살이 대지를 덮기 시작하면 숲 가장자리와 습한 길섶에는 작은 흰 꽃들이 하나둘 피어난다. 화려한 장미도 아니고 눈길을 사로잡는 작약도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는 길목 아래, 초록 잎 사이에 숨어 피어나는 꽃. 바로 어성초 꽃이다.

어성초는 꽃보다 잎이 먼저 알려진 식물이다. 예부터 해독과 치유의 약초로 사랑받아 왔고, 특유의 향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기억한다. 하지만 정작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사람들은 그 앞에서 놀라곤 한다. 이렇게 작고 순결한 꽃을 품고 있었느냐고.

흰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꽃잎이 아니다. 꽃을 보호하기 위해 변한 잎이다. 가운데 노랗게 솟아오른 꽃차례에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인생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보이는 사람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곁을 지켜 주는 마음들, 드러내지 않지만 깊은 향기를 품은 삶들 말이다.

어성초 군락지를 바라보면 마치 초록 바다 위에 하얀 나비들이 내려앉은 듯하다. 바람이 스치면 꽃들은 일제히 몸을 흔들고, 숲은 잔잔한 물결처럼 출렁인다. 그 풍경은 크고 웅장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은 늘 작은 것으로 큰 감동을 준다.

거대한 산보다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가 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어성초가 그렇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살아가지만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시간을 살아낼 뿐이다.

문득 사람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남보다 더 높이 오르려 하고, 더 화려하게 빛나려 한다. 그러나 자연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크기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성실함에 있다고.

어성초는 습한 땅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척박한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운다.

그래서 어성초를 보고 있으면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좋은 환경만 기다리다 보면 꽃은 피지 못한다.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꽃은 피어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리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초록 잎 사이에서 반짝이는 흰 꽃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고, 햇살은 꽃 위에 내려앉고, 작은 벌 한 마리가 꽃 사이를 오간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연은 경쟁하지 않는다.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인간만이 늘 바쁘고 조급하다.

어성초 꽃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

“작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성초 꽃 필 무렵은 단순히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다. 자연이 삶의 본질을 다시 가르쳐 주는 시간이다.

초여름 숲길을 걷다가 어성초 군락을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춰 보자. 초록 잎 사이에 피어난 작은 흰 꽃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인생도 어성초 꽃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눈에 띄지 않아도 좋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생태의 철학인지도 모른다.

초록의 숲이 깊어가는 계절.

어성초 꽃은 오늘도 말없이 피어 있다.

작지만 깊은 향기로, 소박하지만 오래 남는 아름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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