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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꽃창포 곱게 피면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05|조회수14 목록 댓글 0

꽃창포 곱게 피면

초여름의 정원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나무들은 저마다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은 연둣빛 잎새를 흔들며 계절의 깊이를 더해 간다. 그 초록 한가운데 보랏빛 꽃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마치 숲이 오래 간직해 온 비밀을 조용히 꺼내 놓는 듯하다. 꽃창포가 피는 계절이다.

꽃창포는 화려한 꽃이 아니다. 장미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모란처럼 풍성하지도 않다. 그러나 한 번 눈길이 머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꽃잎은 마치 비단 치맛자락 같고, 보랏빛과 자주빛이 어우러진 자태는 우아한 선비의 품격을 닮았다.

초록 들판을 가득 채운 꽃창포 군락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폭의 수채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하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꽃잎 위에 내려앉고, 초록과 보라가 만나 만들어 내는 풍경은 마음 깊은 곳까지 맑게 씻어 준다.

꽃창포는 습지와 물가를 좋아한다. 늘 물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꽃창포를 보고 있으면 사람의 삶도 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언제나 맑다. 사람도 머물러 있는 것보다 흘러갈 때 성장한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사랑 때문에 아프고, 이별 때문에 울고, 세월 때문에 지친다. 그러나 자연은 상처를 품은 채 꽃을 피운다. 꽃창포 역시 긴 겨울을 견디고 봄비를 맞으며 마침내 지금의 아름다움에 이르렀다. 그래서 꽃은 늘 희망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한 송이 꽃은 말없이 말한다.

“견디면 피어난다.”

그 단순한 진실이 마음을 울린다. 보랏빛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오래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들길을 걷던 풍경,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지나던 여름날,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던 학창 시절이 꽃잎 사이에서 아련히 되살아난다.

꽃은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다.
특히 꽃창포는 그리움을 불러오는 꽃이다. 화려하지 않기에 더욱 오래 남고, 소박하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햇살 아래 꽃창포 군락은 마치 보랏빛 파도 같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들은 함께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혼자 피는 꽃은 없다.
한 송이가 아름다운 것은 곁에 다른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기에 삶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초여름 숲길을 따라 걷다 꽃창포 앞에 멈춰 선다.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여유가 돌아오고, 지친 마음에는 작은 위로가 내려앉는다.

꽃창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피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존재만으로도 풍경은 달라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특별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곁에 있어 주는 사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꽃창포가 아름다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초록 세상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계절을 살아가는 모습. 그 담백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움직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숲길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 무렵에도 꽃창포는 여전히 바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의 끝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모습이 참 곱다.

그래서 초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꽃창포를 찾아온다.
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꽃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꽃창포 곱게 피는 계절.
초록 숲은 더욱 깊어지고, 바람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보랏빛 꽃들은 오늘도 말없이 피어나 우리에게 삶의 한 문장을 건넨다.

“아름다움은 화려함이 아니라 자신의 계절을 충실히 살아내는 데 있다.”

그 말을 가슴에 품고 한참을 꽃 앞에 서 있었다.
초여름의 숲은 고요했고, 꽃창포는 참으로 곱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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