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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옛 포구의 추억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0|조회수24 목록 댓글 0

옛 포구의 추억

강은 말이 없다. 그러나 오래된 강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성당포구를 찾은 날, 나는 강물보다 먼저 나무를 만난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느티나무 한 그루가 포구 입구를 지키고 있다. 거대한 몸통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고, 뒤틀린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펼쳐진 채 지난 역사를 증언한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는 한 편의 서사시처럼 보인다. 굽은 몸통에는 바람과 비, 번개와 햇살이 지나간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다. 땅 위로 드러난 뿌리는 마치 용의 발톱처럼 대지를 움켜쥐고 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버텨 왔기에 저토록 단단해질 수 있었을까.

나무 아래에 서자 문득 사람의 삶이 떠오른다. 젊은 날에는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뿌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부모와 고향,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결국 삶을 지탱하는 뿌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성당포구는 한때 낙동강 물길을 따라 수많은 배들이 오가던 번성한 나루터였다. 포구는 사람을 만나게 했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삶을 이어 갔다. 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세상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지금은 배 대신 자동차가 다니고, 나루터 대신 다리가 놓였지만 포구에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남아 있다. 강변에 앉아 있노라면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나무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고 있다. 투박한 그릇에 담긴 음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웃음은 풍성하다. 한 사람이 음식을 건네고, 다른 이는 기꺼이 받아 먹는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전 우리 어머니들의 밥상 같다.

예전에는 함께 먹는 일이 곧 정을 나누는 일이었다. 한 그릇의 국을 나누어 먹으며 이웃이 되었고, 한 접시의 김치를 건네며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세상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다.

사진 속 한 장면에서는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음식을 먹여 주고 있다. 그 모습이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작은 행동 속에서 더 빛난다.

강가를 걷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나무 그늘 아래 모여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기억이다. 그 시절은 가난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부자였다.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겨울 하늘이 보인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나무는 오히려 더 아름답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가질 때보다 내려놓을 줄 알 때 더 깊은 아름다움을 품게 된다.

철학자들은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나는 삶이 포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떠나고 돌아온다. 꿈을 찾아 먼 길을 떠나기도 하고, 상처를 안고 돌아오기도 한다. 포구는 그런 사람들을 묵묵히 품어 준다.

성당포구의 느티나무도 그랬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맞이하며 수백 년을 살아왔을 것이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바라보면서도 한 자리를 지킨 나무는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인다.

강물은 지금도 흐른다. 물길은 달라졌고 세상은 변했지만 강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간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지만 흐름 자체는 멈추지 않는다.

해질 무렵 포구는 더욱 고요해진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강물은 노을빛을 품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서서히 잦아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적막하지 않다. 오래된 포구에는 시간의 온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느티나무 아래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생각한다. 추억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또 하나의 현재라고.

성당포구에서 만난 것은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월의 지혜였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온기였으며, 잊고 지냈던 고향의 기억이었다. 강물은 흘러가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옛 포구는 오늘도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닻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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