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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어느 골목길의 풍경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1|조회수54 목록 댓글 0

어느 골목길의 풍경

도시는 늘 앞으로 달려간다. 더 높고, 더 넓고, 더 화려한 것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 그러나 가끔은 그 흐름에서 비켜난 골목 하나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낡은 담장이 서 있고, 오래된 벽돌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으며, 이름 모를 생명 하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잊고 지낸 삶의 표정을 만난다.

어느 여름날, 한적한 골목길 끝에서 한 마리 개를 만났다.

검은 털이 윤기를 잃지 않은 도베르만은 좁은 담장 사이에 묶여 있었다.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자 두 발을 담장에 올리고 몸을 길게 세운다. 마치 세상 밖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다. 사납기로 알려진 품종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장난기 어린 동네 강아지처럼 보였다.

담장 안에는 작은 집 한 채가 놓여 있다. 주인보다 작은 집.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추운 겨울이면 몸을 웅크릴 공간일 것이다. 집 앞에는 먼지가 쌓여 있고, 오래된 시멘트 바닥에는 시간의 흔적이 군데군데 패여 있다.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한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넓은 집을 원하고, 좋은 자동차를 꿈꾸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 친구와 숨바꼭질하던 담벼락, 저녁이면 밥 먹으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다.

행복은 크기에 있지 않다.

골목은 늘 그것을 가르쳐 준다.

담장 너머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오래된 집들이 어깨를 맞댄 채 조용히 살아가는 풍경이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누군가는 늙어 갔으며, 또 누군가는 떠나갔을 것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골목은 기억을 품고 남는다.

그래서 골목은 살아 있는 역사책이다.

새 아파트 단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시간의 결이 있다. 벽에 남은 금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전깃줄에도 추억이 걸려 있다. 오래된 골목을 걷다 보면 마치 과거의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검은 개는 여전히 담장에 기대어 밖을 바라본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지나가는 사람일까, 하늘을 떠가는 구름일까, 아니면 담장 너머의 자유일까.

문득 인간의 모습이 겹쳐진다.

우리는 늘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곳, 조금 더 행복한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담장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리움은 인간만의 감정이 아니다.

기다림이 있는 곳에는 늘 그리움이 함께 산다.

골목은 이상한 힘을 지녔다. 화려한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낡고 오래되었기에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난다. 세월에 닳은 벽돌은 인간의 삶을 닮았고, 얼룩진 담장은 지나온 날들의 상처를 닮았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정겹다.

생각해 보면 자연도, 사람도, 골목도 모두 불완전하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난다.

곧 철거될지도 모를 골목길.

언젠가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담장은 사라지고, 개가 바라보던 풍경도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 속 한순간은 시간을 붙잡아 둔다.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공기와 침묵, 그리고 담장 위로 몸을 세운 개의 눈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은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느 골목길의 풍경은 특별한 사건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삶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이야기보다 소소한 하루가 더 오래 남고, 화려한 순간보다 평범한 풍경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오늘도 세상 어디엔가 이런 골목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담장 아래 바람이 불고, 작은 집 하나가 햇살을 받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생명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조용히 말한다.

인생이란 결국 사랑하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그 기다림이 있기에 골목은 늙지 않고, 삶은 끝내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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